신원소 을축년(1625, 인조3) 〔伸冤疏 乙丑〕
2월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이 약봉(藥峯) 서성(徐渻), 수몽(守夢) 정엽(鄭曄), 청천군(菁川君) 유순익(柳舜翼), 죽서(竹西) 심종직(沈宗直) 공들과 함께 연명으로 올렸다.
삼가 아룁니다. 백성은 임금과 부모와 스승 세 분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므로,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는 법입니다. 스승이 어쩌다 헤아릴 수 없는 화를 당하여 구천에서 억울한 원한을 품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수업한 자로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아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는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등은 어려서 송익필(宋翼弼)에게 수학하였습니다. 송익필의 문장과 학식은 한 시대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성혼(成渾)과 더불어 서로 강마(講磨)하는 교우(交友)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이가 죽은 뒤에 이발(李潑)과 백유양(白惟讓) 등의 무리가 이이와 성혼을 원수처럼 미워한 나머지, 송익필에게까지 화가 미쳐 기어이 죽을 곳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그만두려 하였습니다. 이는 갑(甲)에게 성난 것을 을(乙)에게 화풀이하는 정도가 심한 것이라고 할 만합니다.
송익필의 아버지 송사련(宋祀連)은 고인이 된 재상 안당(安瑭)의 서얼 누이동생의 아들입니다. 송사련의 어머니는 이미 종량(從良)하였고, 송사련은 또 잡과(雜科)에 급제하기까지 하였으니, 2대를 연이어 양역(良役)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60년의 연한을 경과한 자는 환천(還賤)할 수 없다.’는 것이 법전에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발 등은 송사련이 상변(上變)하여 안씨(安氏) 집안의 자손들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가 되었다고 여긴 까닭에, 기회를 틈타 사주하여 법을 무시하고 환천시켰습니다. 그 당시에 송관(訟官)이 혹시라도 법대로 곧게 집행할 뜻이 있으면, 이발 등이 송관을 논박하여 그를 체차시켰는데 두세 번을 그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뜻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무릇 법이라는 것은 역대 조정의 금석(金石)처럼 귀중한 전범(典範)입니다. 송사련이 비록 선비들에게 죄를 얻었고, 송익필이 비록 당시 사람들의 노여움을 범했다 할지라도, 어떻게 한때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분노를 가지고 역대 조정의 금석처럼 귀중한 전범을 왜곡하여, 자신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단 말입니까.
이 때문에 우리 선조대왕(宣祖大王)께서 지난 임진왜란에 서쪽으로 몽진하였을 때 송익필의 억울함을 호소함으로 인하여 비로소 그 원통함을 풀어 줄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형관(刑官)이 경황이 없어 성상의 뜻을 받들어 시행할 겨를이 없었으므로, 우선 서울에 돌아온 뒤에 판결하겠다는 내용으로 회계(回啓)하였습니다.
그 뒤에 신들의 스승 또한 죽자, 다시는 하소연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대로 덮어 둔 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다시 밝아져 억울하게 묻혀 있던 일들을 모두 신원(伸冤)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돌아가신 저희 스승의 억울함만은 풀리지 않아, 아직까지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있으니, 슬픈 일입니다.
돌아가신 스승은 고금을 널리 통한 학문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살아서는 미처 임금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죽어서는 노비라는 비천한 이름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신들만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국법이 무너진 것에 대해서는 식자들 역시 깊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신들은 항상 이를 성상께 한번 말씀드리려고 하였으나, 나라에 일이 많아 이를 아뢸 경황이 없었습니다.
신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신들은 모두 노쇠한 자들인바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는다면 마침내 스승을 저버린 귀신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신들이 어찌 감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부하고자 하여 위로 임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빨리 해당 관서에 이를 내려보내어, 법에 따라 원통함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신등은 떨리고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 해당 관서에 내려보내어 회계(回啓)하게 하였다.-
伸冤疏 乙丑二月。沙溪金先生。與藥峯徐公渻,守夢鄭公曄,菁川君柳公舜翼,竹西沈公宗直聯名。
伏以民生於三。事之如一。師或橫罹罔測之禍。抱冤泉壤之下。則受業於其人者。其可無一言以負事之如一之義乎。臣等少從宋翼弼受學。翼弼文章學識。超絶一世。與李珥,成渾爲講磨之交。李珥旣沒之後。李潑,白惟讓輩仇疾珥,渾。延及翼弼。必欲置之死地而後已。可謂怒甲移乙之甚者也。翼弼之父祀連。乃故相安瑭孼妹之子也。祀連之母。旣已從良。祀連又至於雜科出身。則連二代良役。且過六十年大限者。不得還賤。昭在法典。而潑等以祀連上變。爲安家子孫不共天之讐。故乘機指嗾。蔑法還賤。其時訟官或有執法之意。則潑等駁遞之至再至三。而後始得行其志。夫法者。祖宗金石之典也。祀連雖得罪士類。翼弼雖犯時怒。豈可以一時私憤而屈祖宗金石之典。以快其心哉。肆我宣祖大王昔在西幸。因其訴冤。始發開釋之端。而刑官蒼皇。未暇奉承。姑以還都辨決回啓。其後臣師亦淪亡。無復申籲。遂成掩置。以至于今。日月重明。幽枉畢伸。而獨此亡師之冤。尙不暝目於幽冥。噫。以亡師博古通今之學。生未爲聖主之所知。死未免奴隸之賤名。豈但臣等之隱痛於心。國法之壞。亦識者之所深憂也。臣等每欲以此一籲於天日之下。而國家多事。未遑於此。臣等自念。俱以衰老之人。朝夕溘然。則終爲負師之鬼。故敢此冒死陳達。臣等豈敢阿好。上誣君父哉。伏願 聖明亟下該曹。照法洩冤。不勝幸甚。臣等無任戰慄屛營之至。謹昩死以聞。下該曹回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