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재전투
그해 5월은 빨갛게 울었다
중공군 춘계 1차공세(4월공세)이후 서울골든선(행주~북한산후면~구리)에서
미1군단은 임진강, 캔사스선으로 재 반격 작전을 한다
사창리 선에서 무러난 국6사단이 배속된 미9군단은 북한강- 홍천강 선에서 중공군 5월공세(춘계2차공세)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미10군단과 국3군단 국1군단은 지금의 홍천에서 인제 간성에 이르는 주요 도로 서측 눙선과 한계리에서 양양에이르는 도로우측 가리봉과 설악일부에서 격전을 벌인다
이와같이 51년 5월공세의 주요축은 미9군단
중앙인 국6사의 용문산 전투, 국3군단의 현리 전투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용문산 전투는 51년4월 사창리에서 대량 피해를 입은 국6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여세로 중공군을 몰아붙여 화천 저수지에 중공군을 수장시키고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여 "파로호", 오랑캐를 물리친 호라는 휘호를 내리게 되는 신화 창출이 된다
이때 주요 전투지역이 경기 가평 설악의 엄소리 353고지 나산등 국6사 2연대가 결사수호한 지역이다
반면 이곳 현리는 국3군단이 무너지는 수모를 당한 역사의 현장이다
군단의 좌측은 미10군단으로 국7• 국5사 미2사 미1해병 등이 홍천북방 대룡산과 가리산에서 홍천고개를 연하는 곳에서 5월공세를 맞게 된다
국7사와 국3군단의 전투지경선으로 은밀침투한 중공군이 오미재를 차단하고 성동격서 전법을 시행하여 한석산 가리봉 현리 용포교 일대에 들어온 국3군단의 국3사 9사 국1군단의 수도사는 북진작전간 북에서 당한 중공군의 배후차단 기습에 겁먹고 지휘체계가 무너져 아비규환으로 방태산을 넘어 남으로 후퇴하여 경강국도변까지 간다
인제에서 현리를 오다보면 우측으로 한석산 매봉이 버티고 있는데 이곳은 국3사와 9사단이 3월말부터 계속적으로 번갈아가며 적들과 공방전을 한 곳이며 도중에 한석산-매봉 전적비가 도로변 우측에 있다
또한 도중에 원대리로 들어가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으로 들어가 마을회관 앞에 서면 바로 동쪽으로 야산이 있고 북으로는 조그만 개천과 그 너머로 약간 높은 산이 발달하게 된다
이곳이 전쟁전 8연대 2대대장 강태무가 대대병력을 이끌고 49년 5월3일~4일에 월북을 기도한 곳으로 무려 160여명이 전사하게 된다
그전에 춘천 원평리 모진교(지금은 춘천댐으로 수장)일대에서 월북한 표무원이 1대대장으로 그들은 이미 평양에서 교육을 받고 위장 남하하여 군에 들어온 세포조직 들이다
이 사건으로 8연대는 홍천으로 빠지게 된다
현리를 지나 용포교에 멈춘다
2000년도에 유해발굴을 시작해서 3번째 신원이 확인된 고 김권순 유해를 발굴한 곳이다
유복녀 김춘자씨의 요구로 시작된 발굴은 남편 정신현이 군 중사출신으로 탐문이 이루어지고 순천지역 같은 동네의 일가중 한명이 함께왔다가 생존함으로써 소설같은 테마가 살아났다
군에 간 손자가 근무하는 곳으로 면회를 왔다가 전사자가 숨져간 곳이 바로 용포교라는 것을 기억해 낼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위에게 소식이 전해지고 우리에게 제보가 이루어지며 발굴하게 된다
용포교를 오미재에 오른다
아, 우리 3군단이 무너진 그래서 어느 사단장도 군복 벗고 잠뱅이 걸치고 방태산을 넘어 후퇴했다는 곳, 비극의 현리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