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술'에 문제 있다
-수리논술, 과학논술, 학업적성논술은 사이비 논술이다
김종인(김천여자고등학교 교사)
지난 달 27일 국립 서울대학교가 2008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통합교과형' 논술 고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 아니냐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 여당과 교육부는 서울대의 '통합논술' 도입을 저지하겠다는 발표를 했으며,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본고사 부활'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기에 이르렀다. 내신과 수능 등급은 지원 자격 기준으로만 적용하고, '통합교과형' 논술 고사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것인데, 만약 언어논술, 수리논술, 과학논술, 통합논술 식으로 논술 고사를 치르겠다는 발상이면 이것은 틀림없이 논술의 탈을 쓴 사이비 논술이요, 변칙적인 '본고사 부활' 기도에 다름 아니다.
2006년도 대학 입시 1학기 수시 모집이 시작되었다. 1학기 수시 모집에서 주요한 사항은 내신 점수와 대학별 고사인데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대학별 고사에 문제가 많다. 대학별 고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소위 논술과 면접, 적성 검사로 구분할 수 있다. 2004학년도부터 심층 면접, 구술 고사, 전공 구술 면접은 이미 과거의 본고사 수준을 넘어섰다. 말이 면접이지 일반 면접과는 판이하게 달라 어려운 영어 지문을 주고 해석하게 하거나 본고사 수준 이상의 수학, 과학 문제를 제시하고 풀거나 풀이 과정을 설명하라는 식이니 본고사 문제가 무색할 지경으로 실력이 없는 학생은 단 한 마디 못 하고,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한 채 울면서 면접장을 나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성 검사도 말이 적성 검사이지 언어, 영어, 수리, 과학 등에서 수백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소위 인,적성 검사이니 말로만 면접이고, 적성 검사이지 과거 본고사 문제에 다름 아니다. 한술 더 떠서 서울의 소위 명문 대학이라는 두 대학이 2005학년도 수시 대학 입시에서 수리 논술, 과학 논술이라는 해괴한 탈을 덮어쓰고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수학, 과학 문제를 제시한 뒤, 그 문제를 풀이하라는 식의 논술 고사를 이미 치렀다.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국문학 교수들과 국어 교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 왜 아무 말도 안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작년에 시험을 친 그 두 대학의 수리 논술, 과학 논술은 이미 논술이 아니다. 논술이란 이름만 붙인 본고사 문제 풀이를 두고 논술이라고 우기니 전국의 수많은 논술 교사들에게 물어 보라. 아니 그 대학의 저명한 국문학 교수들에게 물어 보라. 논술이 아닌 논술을 두고 왜 논술이라 우기는가!
2006년도 수시 1학기 대학별 고사 중 논술은 현재 다섯 가지의 유형이 있다. 일반적인 언어 논술(일반 논술), 수리 논술, 영어혼합형 논술, 과학 논술, 학업 적성 논술이 그것인데, 논술이 처음 도입되던 최초의 논술은 언어 논술, 일반 논술뿐이었다. 해가 가면서 일반 언어 논술이 성에 차지 않는지 논술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제시문에 영어 지문이 제시되어 영어 지문을 해석하지 못 하면 논술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더니, 급기야 수리 논술, 과학 논술, 학업 적성 논술이라는 사이비 논술이 등장했고, 마침내 국립 서울대학교가 2008학년도에는 변별력이 큰 '통합 논술'로써 당락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논술이란 무엇인가?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우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글쓰기이다. 따라서 타당한 논거의 제시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글쓰기이다.(어떤 명제가 타당함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여 기술하는 것. '논리적으로'의 의미는 객관적인 근거를 적절하고 풍부하게 제시하는 과정을 말함.) 이러한 논술의 정의에 맞게 각 대학들은 문제를 출제했다. -바람직한 대학 교육의 방향에 관하여 논하라 ('96 중앙대), -바람직한 독서의 방향에 대하여 논하라 ('96 한성대) 같은 것이다. 통합교과형이라도 논술의 범위 안에 있었다. 구체적인 예시문을 주고 여러 교과목에 걸친 지식을 응용해 문제를 풀도록 하는 유형으로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서 채택했다. 이미 출제된 문제에서 이런 유형을 찾아보면, -예술적 감성과 사회적 환경의 관계에 대하여 자신의 지식과 체험을 활용하여 1,200자 내외로 쓰라 ('96 고려대), -놀이의 속성에 관한 진술을 참고하여 학문도 놀이의 속성을 갖고 있음을 논술하라 ('96 서강대) 등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전국의 국어 교사와 학부모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위와 같은 상식적인 일반 논술은 대학 입시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2006년도 대학 입시 수시 모집 1학기 중 논술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대학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전북대 등 11개 대학인데, 서울 중심의 유명한 사립 대학은 거의 망라하고 있다. 지난 해 고려대와 이화여대의 수리 논술, 과학 논술은 이미 논술이 아님을 말했거니와 올해 이들 대학 중 그 대학들이 스스로 제시한 논술 예시 문제를 살펴보자.
영어 제시문을 주고 '위 제시문의 요지를 8-9줄 분량으로 요약하시오'(동국대), 영어 제시문을 제시하고 위 제시문에 적합한 제목을 1줄 이내로 작성하시오(동국대 자연계열)밑줄 친 부분을 번역하시오. (동국대) 제시문 4개를 제시하고 (나)의 밑줄 친 (ㄱ)이 뜻하는 바를 정학하게 기술하시오 등 9문항(이화여대 언어 논술 중), x와 y사이의 관계식을 결정하고 y값의 범위에 대해 논하시오(9점)(이화여대 수리 논술), 전체 취업자 증가율 R을 구하는 방법을 논하시오(12점), 수확비율 x을 결정하시오(8점)(이화여대 수리 논술), 제시문 (가)를 풀이하시오, 밑줄 친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시오, 다음 분수 방정식을 풀고, 풀이 과정을 제시하시오(전북대 수시1학기 자연 계열), 다음 수열에서 극한값을 찾고 풀이 과정을 제시하시오(전북대 수시 1학기 자연 계열), 제시문 (가)에서 설명하고 있는 X와 Y가 각각 무엇인지 순서대로 원고지 첫 번째 줄에 쓰시오(경희대 수시 1학기 자연 계열), 행열과 함수에 대한 그래프를 주고, 이 때 실수 a, b, c의 값을 구하시오(고려대학교 수리 논술), a와 b의 관계식을 구하시오, C의 좌표를 a와 b의 식으로 나타내시오(고려대학교 수리 논술) 등이다. 이것이 각 대학들이 2006학년도 수시 1학기 대학 입시에서 수험생에게 제시한 예시 문제이다.
과연 논술인가? 각 대학들의 저명한 입시 담당자와 교수님들이 논술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몰라서 위와 같이 예시 문제를 제시했겠는가. 아니다. 일반 언어 논술이나 백 번 양보해서 영어 혼합 지문 제시형의 논술은 이해하더라도, 수리 논술, 과학 논술, 학업 적성 논술이란 이름으로 본고사 문제를 출제하여, 학생들을 뽑으려는 대학의 의도는 좌시할 수 없다.
국립 서울 대학교가 이미 공언했다. 2008학년도 지금의 고등학교 1학년이 대학에 갈 때는 내신과 수능은 변별력이 없어 우수한 학생들을 가려 뽑을 수 없다고. 그래서 '통합논술'로 학생들을 뽑겠다고. '통합논술'은 여러 교과를 통합하여 그 속에서 논술 문제를 출제하는 형식인데 오는 10월 그 예시 문제를 발표하겠단다. 그러자 전교조를 포함한 여러 교육 단체와 교육부와 정부 여당은 국립 서울대학교의 '통합논술'은 본고사 부활 기도가 분명하니 절대 좌시할 수 없고 결단코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마침내 대통령까지 나서서 '3불 정책'은 확고하고, 본고사 부활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 위에서 살펴본 바 올해 대입 수시 모집 1학기에서 국립 전북대학교를 포함한 11개의 유명한 대학들이 위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수리 논술, 과학 논술, 학업 적성 논술을 당장 이 달 안에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그냥 두고 볼 것인가. 이 대학들은 논술이란 이름을 덮어쓴 '사이비 논술'이요, 본고사 문제로 학생들을 뽑아도 그냥 두겠다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지난해부터 시작된 수리 논술 과학 논술, 영어 해석, 학업 적성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그 모든 '사이비 논술'을 타파하고, 처음 도입한 일반 논술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작금 논술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학생들을 진정시키는 길이요, 사교육에 휘둘리지 않는 길이며, 학교 정상화를 이루는 작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