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노래
찬양경배에는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 high praise, spontaneous song)가 불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노래는 다른 종류의 찬양들이 신령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노래는 일반 찬양과는 다른 찬양의 독특한 장르 입니다. 사실 이 노래가 어떤 노래들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찬양의 장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신령한 노래의 종류
에베소서 5:19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을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여기서 시 란 구약의 시편을 말하고, 찬미는 시편 외의 찬송들을 말합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은 신령한 노래를 첨가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신령한 노래를 독특한 노래의 장르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노래의 전통은 이미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이 노래가 악보로 그려져 있는 고정된 찬송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찬양드릴 때 자유롭게 부르는 즉흥적인 찬야잉 예배중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15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영으로 찬미하며 또 마음으로 찬미 하리라.. 이 말은 방언에 대한 말을 하다가 나온 말씀입니다. 14절부터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14:14,15)
여기서 마음으로 라는 말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보통 드리는 기도나 찬양은 그 내용이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기도하거나 찬미를 드릴 때는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초 방언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 영으로 찬미 라는 말은 보통 드리는 찬양이 좀더 영적으로 드려진다는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그러나 14,15절의 문맥으로 볼 때 영으로 찬미는 방언과 같이 조금 신비스런 찬양 입니다. 구약에도 이와 비슷한 찬양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시편 149:5,6을 봅시다. 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날가진 칼이로다.. 6절에 나오는 존영이라는 말은 로맘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는 높이다, 높게 하다 라는 뜻에서 파생 되었습니다. 로맘은 대부분의 성경이 찬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시편66:17은 개역성경에 이렇게 번역되었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 하였도다. 여기서 높이 찬송으로 번역된 말이 바로 로맘 입니다.
시편 66편과 149편에서 말하는 높은 찬양이 어떤 찬송인지는 역시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찬양의 다른 영역이 성경시대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이 찬양 방법은 무엇 일까요? 왜 이 방법은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현대의 찬양 사역자들은 이 찬양 방법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좀다 친밀하게 되었을 때 나오는 자연적이고 즉흥적인 노래 라고 봅니다. 찬양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음량은 작아지고,템포는 느려지고, 소리는 높아집니다. 가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음악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흥얼거리면서 노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곡조는 단순하지만 어딘가에 있는 곡조는 아닙니다. 거기에 가사를 붙이기도 하고 그냥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성경시대의 찬양경배에도 이런 종류의 찬양이 불리어 졌던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노래는 서양 음악 외의 다른 민속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분야 입니다. 우리나라의 국악 중에서 아악을 제외한 민속 음악의 경우는 사실 악보로 옮길수 없습니다. 판소리의 경우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음악이 달라집니다. 같은 명창이 똑같은 곡을 노래한다 해도 그 분위기에 따라 가사와 음악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실 판소리를 레코딩한다고 하면 그것은 판소리의 한 모습만을 듣게 되는게 됩니다. 일정한 음악적 패턴 안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자신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즉흥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것이 판소리 입니다.
히브리의 노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이 회당에서 부르는 노래는, 지금도 많은 부분 그 안에 즉흥성이 내재해 있습니다. 아마 시편을 노래하던 다윗시대에 이런 방법이 널리 통용되었으리라고 봅니다.
초대교회 때까지 이런 전통은 살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리스의 음악 정신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서 즉흥 연주법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을 하나의 철학 또는 수학으로 보았습니다. 감정이 표풀되는 것을 극히 자제해왔으며 악보를 만들고 음악이론을 체계화 시켰습니다.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서양 음악권만이 화성법과 대위법의 체계를 완성시켰습니다. 순수한 음의 세계인 순정조를 없애고 평균율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음악의 에토스론을 강조한 그리스 정신의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직된 음악 분위기 가운데에는 즉흥적인 노래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음악의 기교는 복잡하게 발전되었지만 히브리의 자유로움은 많이 상실되었습니다. 20세기에 성령운동이 다시 시작 되면서, 신령한 노래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입니다. 성령의 움직임은 매우 자유롭습니다.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매우 부드럽습니다. 신령한 노래라고 부르는 즉흥적인 찬송 방법은 성령이 임재하는 예배에 매우 적절한 찬양 방법입니다. 마치 바람이 불 듯 자유롭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연습할 수 있을까요? 방언은 은사인데 연습해서 될 수 있습니까? 방언은 우리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노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언과는 달리 신령한 노래 또는 즉흥적인 노래는 연습으로도 가능합니다. 이것이 성경시대에 불렀던 신령한 노래와 똑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부르는 찬송은 우리의 영을 더욱 자유롭게 만듭니다. 일정한 악보, 가사, 템포에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자유로운 노래를 연습해 보십시오.
2. 신령한 노래 연습
먼저 한 코드를 선정해서 연습합니다. 마장조의 코드를 계속 연주합니다. 처음에는 리듬을 넣지 말고 E코드를 신디나 오르간으로 계속 끌어 줍니다. 그 코드를 바탕으로 노래를 합니다. E장조에 나오는 3음중 한음만 자유롭게 선택해서 노래합니다. 가사는 할렐루야로 하고 리듬은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다음단계에는 E코드의 3음을 사용해서 노래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님사랑해요. 감사해요. 등의 가사를 사용해 보십시오. 허밍으로 해도 좋습니다. 대개 으뜸음과 딸림음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음의 속성상 딸림음과 으뜸음은 서로 강한 연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단계는 E코드의 3음 외에 비화성음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으뜸음과 딸림음을 주축으로 어떤 음이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사도 어떤 가사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악기들은 첨가해서 즉흥적으로 연주 해보십시오. 그러나 신령한 노래는 악기의 즉흥 연주 시간이 아니므로 너무 튀지 않도록 간단하게 연주 하십시오.
3번째 단계까지 들어간 찬양 팀은 이제 코드를 조금 변형해서 노래해 보십시오 간단한 화성진행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입니다. 아래와 같은 진행으로 시작하면 좋습니다
1-4-5-1
발전되면 재즈의 블루스 코드 진행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1-1-1-1- 4-4-1-1- 5-4-1-1
신령한 노래, 즉흥적인 노래는 자유롭기 때문에 조금은 무질서 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음향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가운데 노래할 때는 똑같은 방언으로 회중들이 노래하기도 합니다. 예언적인 노래가 나오기도 합니다. 회개가 일어나고 마음의 상처가 치료됩니다. 이것은 매우 신비스런 찬양입니다.
그러나 예식적인 예배에서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기가 어렵습니다. 초대교회의 전통이 가톨릭의 미사로 굳어지면서 이러한 찬양 방법은 교회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개신교의 전통적인 예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입니다. 주보의 순서에 따라 드려지는 예배, 찬송가를 들고 그 책의 찬송만을 부르는 예배에서라면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찬양 리더" 최혁 256~260p 2004.9.3 18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