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남의 그릴'이라는 상호에서 고기나 채소를 바로 구워서 멕시코식으로 내놓는 집이겠거니 생각했다. '이억남은 뭐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후 4시에 문을 연다기에 10분 전쯤 도착했다. 큰길도 아니고, 좁은 골목길에 웬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이 멕시칸 음식점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이억남 그릴드 파히타'를 먹는다고 했다. 파스타 말고 파히타(fajita)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릴에 구운 쇠고기와 돼지고기, 새우, 양파 등을 토르티야에 싸 먹는 음식이었다. 잠시 후 나온 파히타를 보니 밥으로는 2명이 먹어도 넉넉하고, 안주로는 3~4명도 충분히 먹을 양이었다.
어느 지역에서든 쌈에는 소스가 빠질 수 없다. 파히타도 마찬가지. 각기 다른 식재료를 조화시키는 역할을 맡아 풍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현동(25) 대표는 소스 개발 비사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멕시칸 음식점이 부산에 많이 생기는데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아 분석해보니 소스에 멕시코 향신료를 너무 현지 방식대로 사용한 것 아닌가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간장, 고추장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장류와 토마토소스 등을 적절히 배합했더니 주변 반응이 좋았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했던가. 적응과 변용, 퓨전이 이 집 음식 맛의 비결인 셈이다. 실제 먹어본 파히타는 불 맛 은은한 고기와 포근한 토르티야, 향이 풍부한 양파가 감칠맛 제대로 나는 소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은 길이다. 무엇을 얼마나 섞어야 '적절'한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는 이 대표의 일을 돕고 있는 아버지 이주식 씨는 "아들이 직접 소스를 만들어 수백 수천 번 맛보고 다시 만드는 일을 꼬박 석 달, 아침부터 밤까지 반복하며 지내더라"며 "가게를 시작한 뒤 수십 년 경력의 전문가가 이 집에서 소스 맛을 보더니 '직접 맛을 보며 만든 것 같다'고 알아봤다"고 전했다.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현재의 작은 성공은 몇 달 동안 잠을 줄여가며 겪었을 수많은 작은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대표는 고기 맛을 좋게 하려고 일각에서 사용하는 연육제를 거부하고, 오로지 불과 소스 맛으로 승부를 건다. '내가 못 먹는 음식은 손님도 못 먹는다'는 호혜의 정신이다. 외식경영 전공 공부뿐 아니라 '먹기 위해 산다'는 관점으로 음식 먹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이런 열정의 밑바탕이다.
왜 하필 멕시코였을까? "처음에는 족발집을 생각했는데 유행을 타는 멕시칸 요리를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못할 것 같았고, 시작도 많이 하지만 오래 버티는 전문 식당이 드물어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오후 7시 이후로는 대기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인기인 것을 보면 음식 개발자로서도, 경영자로서도 일단은 합격점을 줘야 할 것 같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이런저런 대출을 끌어모아 서면 한복판에 식당을 차린,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드높은 취업장벽을 생각하면 어쩌면 조금 빨리 찾은 돌파구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10여 명의 후배가 이곳에서 이 대표를 도우며 내일을 꿈꾸고 있다. '청년 창업'의 성공담이 될 수 있을까? 연간 '2억'을 버는 남자라는 뜻의 '이억남'이라는, 장난기 넘치는 세속적 이상향을 간판에 내건 이 젊은이들의 앞날이 궁금하다.
이억남 그릴드 파히타 3만 1000원, 트리플 미트 파히타 2만 9000원, 쉬림프 콤보 파히타 2만 8000원. 영업시간 오후 4시~오전 2시. 월요일 휴무.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702번길 27-8(부전동). 051-802-2469.
메뉴 | 이억남 그릴드 파히타 3만 1000원, 트리플 미트 파히타 2만 9000원, 쉬림프 콤보 파히타 2만 8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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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 세계음식 | 글쓴이 | 펀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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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168-97 | 전화번호 | 051-802-2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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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 | 오후 4시~오전 2시 | 휴무 |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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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법 | | 주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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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및 수정일 | 17-03-02 | 평점/조회수 | 2,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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