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시루를 닮은 모양이라 실레마을이라 불리던 곳
그곳에서 김유정은 청송심씨의 2남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죠
그러나 7세에 어머니가 9세에 아버지의사망으로 고아가 됩니다
가산은 형이 방탕한 생활로 거의 탕진하고
서울 종로 삼촌집에 얹혀 지내면서 휘문고보를 마치고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으나
제명당하고 판소리 명창 박녹주를 짝사랑 했으나 거절당한 채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마을에 야학당을 세우고 농촌계몽운동을 하며 농촌의 실상을 알게됩니다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등 작품 구상을 했던 문학의 산실로 알려져 있지요.
2년 뒤 1932년 야학당을 '금병의숙'으로 인가 받았는데 그 표지석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이후에 그는 다시 상경하여 사직동 누님집에 기거하며 폐결핵을 진단받고 작품활동에 매진
많은 단편과 수필 등을 발표하여 작가의 명성을 얻게 되지만 만 29세로 짧은 생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세월이 지나 향토작가 김유정의 문학혼을 기리자는 운동으로
김유정문학촌이 들러서고 김유정문학상이 시상되며 실레마을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우체국도 김유정 우체국으로 새단장을 하면서
마을의 식당이나 카페 등도 앞다투어 김유정의 작품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생가에서 밖으로 나온 김유정 동상 뒤로 다목적 공연장도 생겨 음악회 시상식 등 행사도 풍성하여 관광 명소가 되었지요.
김유정기념 시화전도 지금 한창 열리고 있는데 전통 창문문양의 시화가 독특합니다.
금병산엔 사시사철 등산객들이 붐비고 실레이야기길엔 소설 속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요절한 김유정은 다시 살아 돌아와 이제 우리 곁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