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1112호). (최화수 사진)
[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25)
"앞으로는 레저가 유망산업이예요. 설악산 등 강원도에선 개발 붐이 발빠르게 일고 있는데, 어째선지 지리산은 지지부진하다면서요?"
지리산권에 레저 타운을 세울만한 땅을 물색해달라고 부탁했던 인사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탁을 받은 아파트 옆집 부인이 자기 일처럼 열을 올리더군요.
"그런 대단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면 직접 지리산을 둘러보셔야지요."
적어도 레저 타운을 세우겠다는 사람이 도회지에 앉아서 적지(適地)를 물색해달라는 것이 말이 되기나 합니까?
"땅이야 많지만, 기왕이면 전망이 좋은 곳을…."
"그건 나도 모를 일이지요."
나는 발뺌을 했지만, 그쪽도 끈적끈적 늘어지더군요.
한번은 덕산에서 고운동과 청학동, 불일폭포를 거쳐 쌍계사로 그룹산행을 했습니다. 고운동 '미니 발전소'의 김부억씨 집 뜰에서 진주의 산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가운데 번드레한 인상의 신사들이 섞여 있었어요. 진주의 산친구는 고운동에 별장을 지을까, 어쩔까 하고 찾아든 사람이라고 귀띔해주더군요.
당시 지리산에는 별장을 짓고자 하는 이들이 설치고 다녔지요. 돈이 남아돌아 산수경관이 빼어난 곳에 별장을 짓겠다니 얼마나 팔자가 좋습니까. 그들은 궁궐 같은 집을 짓는데 돈으로 도배를 할 테지요. 그런데 나는 고작 오두막 한 채의 꿈마저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며 사실상 꽁무니를 빼고만 있었으니…!
고운재를 넘어 묵계리로 가는데, 길가에 물레방아가 보였어요. 버려진 폐가가 한 채, 주변은 묵혀둔 논밭들이었습니다.
"이곳을 레저 타운으로 만들면 좋겠지?"
별장 운운하던 이들에 열이 오른 나는 아파트 옆집 부인 말을 떠올린 거지요.
"최선생님이 어찌 그런 말씀을!"
나의 그 말에 우리 일행인 한 아가씨가 대경실색을 하더군요.
[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26)
나의 레저 타운 운운에 대경실색을 한 아가씨는 당시 우리들의 그룹산행에 곧잘 동행한 산꾼이었지요.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이쁘고 착하고 구김살이 없는 젊은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나의 ‘레저 타운’이란 말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문득 청소년수련장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일이 떠올랐어요.
1980년대 초반이었지요. 부산에서 JC 회장 등을 역임하고 의욕적으로 사회활동을 펴던 한 젊은 관광회사 사장이 나에게 느닷없이 "지리산에 함께 가달라"는 제의를 해왔어요. 내원사 입구에 청소년수련원을 만드는데, 현지에 가서 청소년들이 수련삼아 산행을 할 코스며 자연탐방로가 될 만한 곳들을 일러달라더군요.
그 때는 지리산을 오고가는 일이 꽤나 힘들었지요. 노선버스 아니면 관광버스를 대절해야만 되던 시절이니까요. 관광버스를 많이 갖고 있는 젊은 사장이 지리산 자연세계에서 청소년들의 건전한 심신수련 도장을 만들겠다는 취지와 의욕이 좋았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토요일 현지에 가기로 기꺼이 동의했지요.
"수련동은 아주 목조로 꾸밀 작정이오. 청소년들이 캠프파이어는 물론 직접 취사를 할 수 있도록 야외 조리대도 만들 것이고요…."
그의 계획은 아주 치밀하고 원대했어요. 그리고 나에게는 특별한 당부도 하더군요.
"오두막 한 채를 아주 최형의 몫으로 해놓을 테니까, 자주 찾아와서 청소년들을 잘 이끌어 주시오."
토요일 오전 일과가 끝나면 그와 함께 지리산으로 떠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도 있나요. 토요일 부산의 한 신문 사회면 머릿기사로 그 관광회사 사장이 구속된 기사가 실려 있지 않겠습니까. 지리산에 청소년 수련원을 짓는다며 산림을 훼손한 혐의라나요. 이렇게 하여 청소년수련원 계획은 어이없이 무산되고 말았지요.
첫댓글 추석 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