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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발효가 빚어낸 존재의 진경(眞景)
- 정목영 수필집 『78년의 기다림』에 나타난 성찰과 미학 -
최원현·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수필가협회제7대이사장·한국문인협회제27대부이사장·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이사
1. 들어가며 - 늦게 피어난 꽃, 문학으로 숙성된 생애
수필은 자기 경험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어렵다.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쉬운 얘기 같지만 말하지 않아도 될 내 이야기를 만인에 공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로가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문학적 장치로 내놓아야 하는 것이니 더더욱 어렵지 않을 수 없다.
정목영 수필가는 2025년 월간 『한국수필』 통권 제361호에 「마음 비우기」 외 1편으로 신인상에 당선하여 수필가가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시(漢詩)를 가까이하며 동양 고전의 절제된 언어와 깊은 사유 속에서 삶을 배워 왔다. 따라서 한시는 오랜 세월 그의 삶과 사유의 근본이 되어 왔다. 그래서 그의 수필들은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전력도 화려하다. 그는 1970년대 종합상사 근무 경험을 토대로 창업에 나서 두 회사를 창립했으며, 오랜 세월을 제조와 수출, 국제 무역 분야에서 활동하여 많은 재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국가대표 조정 선수를 거쳐 올림픽 조직위원과 조정협회의 여러 직책, 그리고 아시아조정연맹 집행이사로 활동하며 국제 스포츠 교류에도 깊게 참여하여 『대한민국 현대인물사』에도 등재되었다. 말하자면 정목영은 체육인이며 기업가이며 행정가다. 그래서 이 수필집엔 우리가 미처 알 수 없었던 아니 그가 말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런 숨겨진 이야기들도 수필이기에 가능해진다. 해서 수필은 한 사람의 기록이 모든 이의 기록 내지 한 시대의 기록이 되게도 한다.
정목영의 첫 수필집 『78년의 기다림』은 한 인간의 생애가 시간의 결을 따라 서서히 드러나는 늦은 결실의 문학이자 삶의 체험이 언어로 숙성된 회고적 성찰의 기록이다. 일흔여섯에 붓을 들어 일흔여덟에 매듭지은 이 책은 단순한 '늦깎이 창작'을 넘어 시간이 축적한 삶의 농도가 문학적 상징으로 치환된 결과물이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앞마당의 화려한 꽃밭이 아닌 뒷마당의 소박한 꽃"에 비유한다. 이는 겸양을 넘는 존재 인식의 방식이다. 화려함보다 지속을, 드러남보다 견딤을 택한 그의 태도는 수필집 전체를 지배하는 정조(情調)가 된다.
· 나의 삶은 앞마당의 화려한 꽃밭보다는 뒷마당의 소박한 꽃에 더 가까웠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라기보다 묵묵히 제 몫의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를 다듬어야 했던 자리였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았고,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경이로움을 배웠습니다.
· 이 글들은 내 인생의 ‘무늬’입니다. 좋았던 날도, 회한으로 점철된 날도, 묵묵히 버텨온 날도 모두 세월이라는 붓이 내 삶의 바탕 위에 새겨놓은 흔적들입니다. 지난 2년은 이 문장들을 다듬으며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책머리에」중
정목영은 2년이라는 시간을 76년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잡았던 것이다. 이는 세월이 살같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불안과 조급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더 늦지 않게 이 얘기만은 꼭 해서 함께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늦게나마 그의 수고와 공을 치하 하지 않을 수 없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의 열정은 이미 몇 차례의 공저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등단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이며 문예부흥 공동발행인도 맡고 있으며 정부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
2. 유년에서 근원으로 - 기억의 복원과 존재론적 층위
제1장 「유년의 뜰, 그리운 풍경들」은 단순한 과거 회상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언어철학적 성찰과 윤리적 승화라는 서사 구조를 갖는다.
「개꽃과 참꽃」에서 보여주는 꽃 이름에 대한 사유는 인상적이다. '개'와 '참'이라는 언어적 위계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편견을 성찰하며 자연 관찰을 넘어 언어철학적 사유로 확장되며 이름이 존재의 격을 규정한다는 통찰에 이른다.
이름이 단순한 식별을 넘어 존재의 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개꽃과 같은 이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무관하게 인간 중심적 사고와 편견에서 비롯된 오명(汚名)이다. 사람의 이름 역시 꽃과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항렬, 돌림자, 획수의 음양 등 피해야 할 조건이 많았다. 그로 인해 부르기 불편하고 듣기에도 거북한 이름 심지어 부정적인 뜻을 지닌 이름도 적지 않았다. 「개꽃과 참꽃」중
「훗날」과 「그리움이 서려 있는 그 집」에서 나타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기억-성찰-의미화'의 단계를 거쳐 유년의 감정이 시간의 간극을 넘어 유년의 기억이 존재의 뿌리를 복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이 노년의 회한과 깨달음의 서사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독자는 깊은 윤리적 울림을 경험할 것이다.
“떠날 때는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시구처럼 나는 어머니를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그래서 이승의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저승에서 하나씩 하나씩 풀면서 끝도 없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이 제한 없는 혜택들 또한 어머니께서 내게 내려준 홍복(洪福)이 아닐 수 없다. 「훗날」중
엄마와 나는 참으로 각별하다. 유학(留學)을 마치고 미국에 정착한 중형(仲兄) 댁에 사 년여 머문 것과 내가 서울로 유학(遊學) 와서 학기 중에 서울에서 하숙한 때를 제외하면 엄마는 줄곧 나와 함께 살았고 달포 이상 헤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아 근검해서 엄마의 염력 덕분에 삼십 대 초에 부(富)를 이루었다. 이제 긴 세월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엄마의 안도의 눈빛과 아들이 대견스럽다는 흐뭇한 미소가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인고의 세월을 뭇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잘 견디어 온 엄마는 그 시절이 오히려 아름답다고 하시니 도대체 엄마의 내공은 어디까지일까.「그리움이 서려 있는 그 집」중
「세월이 삭이지 못한 맛」은 단순한 음식 회상이 아니라 감각을 매개로 한 존재 회귀의 서사다. 김치라는 구체적 사물은 여기서 시간을 호출하는 매개체로 기능하는데 김치의 맛은 ‘혀끝의 기억’을 넘어 어머니의 노동·사랑·공동체 문화를 환기시키는 상징으로 확장된다. 특히 “땅의 온기와 바다의 감칠맛이 만나 발효되는 시간”이라는 표현은 자연과 인간이 결합된 생명의 순환 구조를 암시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안방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개다리소반에 차려 내오셨다. 어머니는 곁에서 그 투박한 손으로 쭉 찢어낸 김치 가닥을 밥숟가락 위에 얹어 주셨다. 김치 줄기를 타고 흐르던 어머니의 손맛과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월이 삭이지 못한 맛」중
나는 오늘도 김치를 한 점 입에 넣으며 내 영혼의 허기를 채워 주던 그 옛날의 어머니 사랑을 그리워한다. 칠십 년의 세월도 삭이지 못한 그 오묘한 맛, 그것은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맛의 기억이다. 「세월이 삭이지 못한 맛」중
이 글의 미덕은 감각적 디테일의 축적이다. 손의 통증, 멘소래담 냄새, 김장독의 구조 등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기억의 질감을 복원하는 장치가 된다. 결국 이 수필은 ‘맛을 잃었다’는 탄식으로 끝나지 않고, “그 맛은 곧 어머니의 사랑이었다”는 인식으로 귀결되면서 개인적 그리움을 보편적 정서로 승화시킨다.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서사다.
3. 서정과 철학의 결합 - 자연에서 읽어낸 ‘도(道)’
「봄꽃」은 계절 묘사를 출발점으로 삼되, 점차 노장사상적 자연관으로 나아간다. 꽃의 개화와 낙화를 통해 “생성과 소멸의 질서”를 사유하며, 노자의 “도법자연”과 “천도무친”을 끌어와 자연의 무심성과 공평성을 해석한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자연에 순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이 한 문장은 중요한 전환으로 자연의 도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슬픔과 애통 또한 자연의 일부로 긍정한다. 이는 ‘자연의 질서 + 인간의 감정 = 확장된 ‘도’의 개념으로 이어지며, 작가의 사유가 단순한 동양철학의 인용을 넘어 자기화된 철학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대설」은 외적 풍경과 내면 풍경이 겹쳐지는 대표적 작품으로 눈 내리는 산행은 단순한 자연 체험이 아니라 고독을 향한 의식적 접근이다. 특히 강설의 인용은 핵심적 역할을 하는데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 만경인종멸(萬徑人蹤滅)-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에는 사람 종적 없는데”의 세계는 절대적 고독의 상징이며, 작가가 지향하는 정신적 경지의 표상이다. ‘대설’은 두 겹의 의미를 갖는데 자연의 눈(外的 대설)과 내면에 쌓이는 사유와 고독(內的 대설)으로 작가는 “나는 그 고독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노년의 존재론적 자기 점검 곧 고독의 미학으로 읽힌다.
「이 죄를 어찌할꼬」는 이 수필집 전반부에서 가장 윤리적 밀도가 높은 글이다.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정신의 중요함을 유기한 죄, 과거를 망각하고 투정한 죄, 모두 나의 죄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풍요가 아닌 마음의 평화에 있음을 알면서도 물질적 풍요를 탐했다. 이승과 저승은 이어져 있고 저승은 새로운 이승의 시작이다. 이승의 죄는 모두 이승에서 벌 받고 회개하고 싶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새로 시작될 길을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맞고 싶다. 「이 죄를 어찌할꼬」중
‘밥’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생명·공동체·종교·나눔의 가치를 통합적으로 사유한다. 특히 동남아 불교 문화 체험은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탁발과 보시 문화는 과거 어머니의 삶과 연결되며, 개인 기억이 보편적 윤리로 확장된다. 핵심은 ‘죄의 자각’인데 물질적 욕망, 과거 망각, 나눔의 결핍 등 이 모든 것을 “죄”로 규정하며,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도덕적 자기 심판에 이른다. 이 또한 노년 수필에서 드물게 보이는 강도 높은 자기반성의 문학으로 밥과 죄의식을 통한 윤리적 성찰의 심화로 볼 수 있다.
4. 길 위의 철학: 문명 비판과 존재의 확장
제2장 <예술과 여행, 붓끝으로 남은 인생>의 연작 수필 「천혜의 땅 저주의 땅」 등에서 정목영은 '길 위의 인간(Homo Viator)'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여기서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문명과 존재에 대한 비판적 사유로 확장된다. 단순한 여행기나 회고담의 범주를 넘어, 문명 비판–존재 성찰–개인적 체험의 내면화라는 삼중 구조로 확장되는 사유의 기록이다. 각각의 글은 독립된 단편처럼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길 위의 인간”이라는 하나의 철학으로 수렴된다.
「천혜의 땅 저주의 땅」의 핵심은 “문명은 절멸의 포장지인가.”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작가는 태즈메이니아의 원초적 자연을 ‘성소’로 설정한다. 이때 자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간 이전의 시간, 즉 인류 이전의 존재론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서두의 묘사는 거의 신화적이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풍경” “수만 년의 생명의 호흡” 이러한 서정은 독자를 ‘원형적 세계’로 이끌며, 이후 전개될 비극과의 극적 대비를 준비한다. 그러나 글의 중반에서 이 서정은 급격히 전환된다. 팔라와족의 절멸 서사는 단순한 역사 소개가 아니라 문명의 본질에 대한 윤리적 고발로 상승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개화’ ‘진보’라는 단어의 전복, 보호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폭력의 구조 폭로, 언어의 소멸을 곧 존재의 소멸로 인식하는 철학적 시선으로 여기서 작가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증언자이자 사유하는 인간으로 변모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 글의 정점을 이룬다. 자연의 장엄함이 문명의 잔혹함을 가리는 “장막”이었다는 인식은 독자에게 깊은 윤리적 충격을 남긴다. 이 작품은 “자연의 찬미-역사적 폭력-문명 비판-윤리적 성찰”이라는 완결된 구조를 지니며 이 수필집의 사상적 중심축이 된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다름을 포용하고 성찰하며 존재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그 본질은 기술의 높이가 아니라 윤리의 깊이에 있지 않은가. 탐욕이 계몽이나 진보의 언어로 위장되는 순간 야만은 문명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한 종족의 기억과 인식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보호라는 미명 아래 양심이 침묵하고 폭력이 제도화되는 순간 절멸은 완전한 형태로 완성된다. 더욱 비극적 진실은 이 섬이 침묵하게 되면서 인류는 팔라와족이 품어 왔던 우주적 지혜, 그들이 자연과 소통하며 발견했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영원히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가 멈춘 곳에 남은 것은 승자의 역사와 텅 빈 땅의 메아리뿐이다. 「천혜의 땅 저주의 땅」중
「여행에도 급수가 있는가」 는 여행을 통한 삶의 단계론으로 앞선 작품의 비극성과 달리 비교적 유연한 형식의 사유적 에세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동일한 철학이 흐른다. 작가는 여행을 초급-중급-고급으로 나누며 단순한 분류를 넘어 인간 인식의 성장 단계로 재구성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초급에선 외부 세계 중심으로 시각적 소비를 말하고, 중급에선 관계와 경험의 확장을, 고급에선 자기성찰과 존재 인식의 구도로 사실상 “외부-관계- 내면”이라는 인간 성숙의 과정을 보여준다. 결말부에서 여행은 결국 인생의 축약판으로 귀결되는데 짐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여행의 이미지가 삶의 종착과 겹쳐지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거시적 역사 비판을 개인 삶의 방식으로 번역한 철학적 산문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은 인생의 축약판(縮約版)인가. 인생도 여행도 매 순간 새로운 길을 만나고 각자의 이야기를 품는다.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인생을 통해 여행을 구가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여행길이든, 고통과 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인생길이든 모두 자기 성찰과 내 안에 숨은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자신과 만나는 여행이라면 초급이든 중급이든 가릴 것 없이 여행의 진경(眞境)을 맛본 셈이니 그 사람은 이미 여행의 고수라 해야 할 것이다. 길(道)에서 깨닫고(道), 깨달음으로 지나감(道)이 여행이요 인생이다. 「여행에도 급수가 있는가」중
「걸음아 날 살려라」 는 발의 철학, 존재의 근원을 말하는 독특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손’과 ‘발’의 언어적 위계를 통해 인간 인식의 편향을 드러낸다. 손은 문명, 창조, 찬사,요, 발은 생존, 노동, 침묵이라며 정목영은 이 대비를 통해 문명이 간과해 온 “몸의 근원성”을 복원한다. 특히 중요한 인식은 인간의 생존은 발에서 시작된다. ‘문명은 손이 만들었지만 그 기반은 발이다’라며 단순한 비유를 넘어 존재론적 재평가에 가깝게 “문명보다 생존이 먼저다”라는 강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 마음속의 한 그루 나무」는 삶의 내면화와 정신의 계보를 말하는 작품으로 전형적인 ‘자기 성찰형 수필’이지만 그 깊이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선다. 작가는 삶의 단계를 꿈-성장-지속-반추로 변환시키며 이를 ‘나무’라는 상징으로 통합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성찰과 정화를 삶의 뿌리로 설정한 부분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철학이 아니라 어머니, 신앙, 전통이라는 정신의 계보로 확장된다. 이 수필집에서 가장 내면적이고 사색적 중심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자라는 나무가 곧 나의 본질이며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떻게 가꿀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라 생각된다. 균형 잡힌 나이테, 옹이마저 품은 결이 곱고 미려한 나무가 쓰임새가 많듯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조화롭고 고상한 삶의 바람은 결국 자기 성찰과 정화라는 고행의 여정과 함께한다. 돌아보면 내 마음 나무의 뿌리는 성찰과 정화였다. 꿈도, 성장도, 지속도, 반추도, 모두 그 토양 위에서 자라났다. 성찰과 정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가 그 뜻을 알기 전부터 자연스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조상으로부터 어머니를 통해 내려온 집안 내력인지 어머니의 깊은 신앙이 남긴 잔향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것이 내 생의 철학이자 등불이 되어 내 길을 비추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 마음속의 한 그루 나무」중
「폭풍의 언덕, 그 쓸쓸한 영감의 땅」은 문학의 기원과 고독의 풍경을 말하는 글로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문학 순례기다. 작가는 브론테 자매의 삶을 통해 문학의 탄생 조건을 탐색한다. 핵심은 척박한 환경을 상상력의 토양, 결핍을 창조의 에너지, 고독은 문학의 원천으로, 무어에서 느낀 고독을 사막의 고독과 대비하는 탁월함을 보인다. 곧 사막은 절대적 공허요, 무어는 생명 속의 고독으로 이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실존적 고독의 질적 차이를 포착한 대목이다. 이 수필은 세 가지의 성취를 보인다. 첫째는 여행을 철학으로 끌어올린 사유로 단순한 체험 기록을 넘어 여행을 존재론적 탐구로 확장시켰다는 것이요, 둘째는 문명에 대한 일관된 비판 의식으로 태즈메이니아의 학살, 손과 발의 대비를 모두 문명의 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본 것이다. 셋째는 ‘길’이라는 통합적 은유인데 여행의 길, 인생의 길, 사유의 길, 이 세 가지가 하나로 결합되며 수필집 전체를 하나의 큰 서사로 묶는다. 이 작품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길 위에서 인간은 문명을 성찰하고, 사물과 기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가 될 것인데 이처럼 정목영의 수필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깊은 체험과 정밀한 사유에서 우러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이런 글은 읽는 순간보다 읽은 뒤 더 오래 남는 수필이 될 것이다.
그녀의 집을 나서며 가장 깊이 와닿은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날의 경이와 감동은 긴 세월 동안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씨앗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글로 되살아난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게 한 사람의 삶에 스며들고, 가장 고요한 순간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힘은 마음을 흔들고 또 다른 길을 열어 준다. 늦고 조용하지만, 문학의 여운은 언제나 길고도 깊은 것 같다.「폭풍의 언덕, 그 쓸쓸한 영감의 땅」중
「낡은 구두」는 사물의 시간, 존재의 증명을 나타낸 작품으로 수필집에서 완성도가 높은 서정적 작품 중 하나다.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낡은 신발 한 켤레를 꺼냈다. 얇게 내려앉은 먼지 아래 가죽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미세한 균열을 품고 있었다. 결혼 10주년에 받았던 아내의 선물이었다. 그때의 설렘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주름으로 변해 있었다. 닳은 가죽을 손끝으로 어루만지자, 한 생이 남긴 따뜻한 숨결이 은밀히 되살아났다.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눈물과 희망,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이 시간의 주름처럼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그 신발을 신고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가.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서둘던 날들, 먼 타국의 낯선 거리에서 하루하루를 견뎌 온 시간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던 고향 집 마당에서 석양을 함께 바라보며 미소 짓던 일까지. 그 모든 풍경과 기억들이 이 낡은 밑창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낡은 구두」중
낡은 구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압축된 존재”로 형상화된다. 핵심 미학은 다음 세 가지다. 물질의 변형은 시간의 가시화요, 갈라진 가죽은 세월이며, 닳은 밑창은 삶의 궤적이다, 곧 사물과 인간의 동일시로 구두의 닳음을 인간의 삶으로, 흔적을 존재의 증명, 관계의 은유로, 아내의 손길을 삶을 지탱한 보이지 않는 힘, 특히 “닳음은 소실이 아니라 증명”이라는 인식은 이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유이기도 하여 존재의 시간성과 인간관계의 깊이를 가장 서정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5. 시대의 증언과 선택의 윤리: 기록문학적 가치
제3장 <시대의 파편, 기록의 증언>은 조정 선수이자 기업가로서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작가의 이력이 돋보이는 구간이다. 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 시대와 인간, 그리고 선택의 윤리를 증언하는 기록문학적 수필로 읽힐 수 있는 이 장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그때 왜 그렇게 선택했는가”에 대한 내면의 증언과 도덕적 자각의 서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북한 팀을 돕는 결단이나 미사리 경기장 건설 비화는 수필의 '진실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시대의 파편”이라는 표현은 이 장 전체의 미학을 압축하는데 여기서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역사의 틈새에서 건져 올린 ‘윤리적 순간’임을 확인 시킨다. 특히 이 장의 특징은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고백의 형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인데 이는 침묵의 시간을 통과한 기억이 개인적 체험에서 공적 증언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이 장은 ‘기억의 기록’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게 된 기억의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드러나는 베이징 아시안게임의 일화는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체제와 이념, 국익과 인간 사이에서의 치열한 내적 투쟁을 보여준다. 북한 선수단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침묵 속에 안전을 택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작가는 끝내 ‘공정’이라는 원칙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메달을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으며,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개인적 불이익까지 감내해야 하는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승패는 한순간이지만 선택의 무게는 오래 간다”는 인식 속에서, 스포츠의 본질과 인간의 도리를 지켜낸다. 이 대목은 이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도덕적 중심축이자, 작가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그날 밤 술잔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술이 아니라 마음이 넘쳐흐르는 밤이었다. 그들의 잔에는 우리를 향한 감사와 벅참이 담겨 있었고 술은 목으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정치도 이념도 체제도 그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서로에게 잔을 올리며 핏줄로, 말로, 마음으로 우리는 이미 오래된 이웃이 되어 있었다. 웃음꽃이 피다가도 문득 눈시울이 붉어졌다. 음식점을 나서자 북경의 가을밤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 여덟 명은 말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기약 없는 이별 앞에서 포옹 하나로 모든 말을 대신했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그들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1990년 9월 27일이었다.
. 승패는 한순간이지만 선택의 무게는 오래 간다. 경기장은 언제나 공정해야 하고 그 공정함을 지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날 나는 승부를 넘어 사람과 스포츠가 지켜야 할 선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경기장에 서서 나는 메달보다 더 오래 남을 가치를 물었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자리에 서 있던 나와 그리고 그날의 선택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중
「죽의 장막 상하이에서」는 수교 이전의 중국을 배경으로, 이념의 장벽 속에서 경험한 낯섦과 긴장, 그리고 그 이면의 인간적 온기를 동시에 포착한다. 작가는 단순한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역사와 외교의 흐름 속에 놓인 한 개인으로서 체제를 체감한다. 특히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비밀리에 찾는 장면이 훗날 정부 차원에서 옛 청사 건물을 매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개인의 감정과 민족사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깊은 울림이 만들어진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기억의 복원’이자 ‘역사의 재조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문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 하루의 회의 공백을 틈타, 은밀히 현지인을 교섭해 박사와 함께 상해 임시정부 옛 청사 건물을 찾았다. 그 시절 이후 주소 체계가 두어 차례나 바뀐 탓에 한참을 헤맨 끝에 마침내 그 건물 앞에 섰을 때 박사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닦았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뭉클한 장면이다. 상하이는 우리 독립운동 본거지며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투척 사건은 우리 역사의 한 맥이다. 이때의 비밀스러운 방문이 훗날 정부 차원에서 옛 청사 건물을 매입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같은 또는 비슷한 이유로 나는 수교 전까지 세 차례나 더 중국을 방문했다.
· 상하이에서의 첫 발걸음은 단순한 외교 방문만이 아니라, 이념과 체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한 깊은 경험이었다. 낯섦과 경계 속에서도 나는 그 땅에 흐르는 시간과 사람 그리고 역사의 결을 보았다. 그것은 수교 이후 수차례 중국을 다시 찾게 만든 내 생애에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의 시작이었다. 「죽의 장막 상하이에서」중
「백 년의 결단, 천년의 유산」과 「레만 호수에서 한강까지」는 ‘시간을 보는 눈’에 관한 수필이다. 미사리 조정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드러나는 토마스 켈러의 혜안은 단기적 효율과 장기적 가치 사이의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탄생하는 숨은 이야기로 정목영은 자신의 과거 판단을 솔직히 돌아보며, 한 인물의 원칙과 통찰이 어떻게 한 나라의 자산이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인물 회고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로 확장된다.
1971년, 나는 일본 사이타마현의 도다 코스에서 열린 전일본선수권대회에 참가했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렸던 그곳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완벽한 인공 경기장이었습니다. 레인 간 유속의 차이가 없는,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그 수로는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정 경기의 이상적인 무대였다. 시합하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기장이 생긴다면. 그것은 선수로서 품었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의 재정은 한계에 이르고 있었고. 나는 국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마음속 꿈을 접고 정부안을 지지했습니다. 다만 그 생각 뒤로는 도다 코스의 수면 위에서 품었던 오래된 꿈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켈러는 달랐습니다. 그는 정부 당국자들의 거듭된 압박과 권유에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조정 종목에는 금메달이 14개나 걸려 있습니다. 샛강에서는 공정한 경기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조정 경기 자체를 취소하겠습니다.” 회의장의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간 국제 스포츠 무대를 이끌어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흔들림 없는 원칙의 선언이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을 직접 만나겠습니다.” 그 한마디로 논쟁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때의 판단대로 흘러갔다면, 수위 조절도 어렵고 경기 공정성도 담보할 수 없는 어설픈 수역에 경기장을 앉힐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의 이 아름다운 미사리는 영영 우리 곁에 없었을 것입니다. 「백 년의 결단, 천년의 유산」
「그 섬이 있던 강」이나 「사십만 평의 고결한 복지」에서 드러나는 한강과 미사리의 풍경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시간의 축적과 삶의 흔적을 품은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사라진 ‘중지도’에 대한 회상은, 물리적 공간의 소멸이 어떻게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처럼 작가는 개인의 체험을 통해 장소를 ‘기억의 장소’로 승화시키며, 독자에게도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환기시킨다. ‘기억의 서정성’이다.
우리는 흔히 가치를 숫자로 측정하려 하지만, 조정경기장이 내어주는 위로만큼은 그 어떤 화폐 단위로도 환산할 수 없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이 말없이 먼 물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얻는 평온은 세상 그 어떤 처방보다 근원적이다. 이곳에서 누리는 시공간의 여유와 자연의 품은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평등하게 주어지는 고결한 복지다. 경기장의 물길은 세대를 넘어 흐르며 그 물길을 따라 깃든 기억들은 후대의 시민들에게도 고스란히 유산으로 전승될 것이다. 자연이 빚어낸 이 넉넉한 그릇 속에 시민들의 일상이 담기고, 그 일상이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순환한다. 조정경기장은 오늘도 지치지 않는 평온의 쉼터가 되어 우리 곁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사십만 평의 고결한 복지」중
「물결 위의 품위」와 「물길을 넓히는 사람」에서는 ‘인간의 품격’과 ‘리더십’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프린세스 앤의 절제된 태도에서 발견한 품위, 그리고 현대 조정 행정가의 헌신적 노력 속에서 읽어낸 리더십은, 화려한 수사 없이도 깊은 설득력을 지닌다. 작가는 인물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태도와 선택 속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특히 토마스 켈리와의 우정을 다룬 여러 편은 스포츠와 인간, 공정과 진실, 삶과 우정을 더욱 깊이있게 돌아보게 한다.
결국 제3부는 ‘기억의 개인사’를 ‘시대의 공적 기록’으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한 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수필은 더 이상 사적인 감상의 장르가 아니라, 역사와 윤리,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증언의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시대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다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환기한다.
북한 팀을 돕는 장면은 이 장의 핵심으로 작품 전체에서도 가장 강력한 윤리적 장면이 되는데 국가 이익과 공정성, 개인의 양심과 체제의 위험, 스포츠 규정과 인간적 연민, 이 모든 갈등이 추상적이지 않고 실제 상황의 긴장으로 살아 움직여 갈등의 사실적 밀도를 더한다. 또한 ‘결단의 순간’을 서사화한 힘에서도 “도와야 한다”는 결론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두려움과 손실을 모두 인식한 뒤의 선택인데 이 또한 교훈이 아니라 윤리적 실천의 기록이 된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메달을 놓치나 작가는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 “승패는 한순간이지만 선택의 무게는 오래 간다.”는 문장으로 이 장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사상이 되며 이 수필집의 윤리적 축이 된다. 또 하나 스포츠를 넘어선 인간의 연대를 볼 수 있는데 북경의 술자리 장면에서도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이념이 지워진 순간의 인간성”이었다. 정치도 체제도 사라지고 남는 것은 눈빛과 포옹뿐인 이 장면은 냉전 시대의 긴장을 넘어서는 가장 인간적인 평화의 형식을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복원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상하이와 미사리라는 공간을 통한 시대 읽기를 하게 되는데 상하이 체제의 풍경인 인민복, 자전거, 태극권, 형식화된 친절과 긴장 등의 묘사는 공산권 체제의 공기와 인간의 표정까지 포착한 기록문학적 시선으로 “흑백사진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풍경”이라는 표현은 시간과 체제가 겹쳐진 이미지로 매우 뛰어나다.
미사리는 미래를 향한 선택으로 건설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의 스케일”, 곧 당장의 경제성과 백 년의 가치, 현실적 타협과 미래적 통찰, 특히 토마스 켈러의 “백년을 내다봐라.”는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문명의 설계에 대한 선언으로 토마스 켈러는 단순한 외국 인사가 아니라 “가치를 구현하는 인물”로 형상화 되면서 공정성에 대한 절대적 신념의 원칙, 미래를 설계하는 시야를 가진 통찰, 친구로서의 따뜻함을 가진 인간성으로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어 인물 수필, 자기 성찰의 구조를 가진 인물 서사를 보여준다. 여기에 반복적으로 물, 물결, 수면, 강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 물은 시간과 역사라는 흐름, 스포츠의 본질인 공정, 인간의 관계, 특히 “물길을 넓히는 사람”으로의 포용을 비유가 아니라 이 작품 전체의 인간형을 정의하는 상징어로 활용된다.
정목영이 치처럼 제3장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체험을 넘어선 윤리적 서사, 시대를 담아낸 기록문학적 깊이, 인물과 사건이 결합된 입체적 구조의 절제된 문장 속의 묵직한 울림으로 자신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킨 것이라고도 할수 있다.
6. 미학적 통합: 예술적 감수성과 동양적 사유
제4부는 '비움과 숙성'이라는 동양 미학의 정수로 수렴된다. 단순한 생활 수필에 머물지 않고, 한시와 동양화, 가곡 등 전통 예술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은 이 수필집을 단순한 체험담이 아니라 문예적 깊이를 지닌 성찰 수필로 끌어올린다.
「복사꽃 오얏꽃 피는 밤에」는 산업화 세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자기 고백적 회고록이자, 동시에 노년의 철학적 반성문이다. 젊은 시절 ‘조국 근대화’라는 시대적 이념 속에서 스스로를 소진해 온 삶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시대의 강요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일중독의 전 단계”라는 자각은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성취 중심 사회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워라밸”에 대한 인식 전환은 이 작품의 핵심 축이다.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그 사이에서 작가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새벽에 잠이 깨면 가끔 회한이 들 때가 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질없는 강박에 사로잡혀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내 삶이 다시 주어진다면 일중독에서 벗어나 별빛을 받으며 걸어보리라. 흘러가는 강물에 발도 담가보고 꽃 피는 날이면 보고 싶은 사람에게 불시에 만나자 할 것이다. 복사꽃 오얏꽃 피는 밤에 친구를 불러 주연도 베풀 것이다. 천삼백 년 전에 이백 같은 시인은 젊은 나이에 삶의 진리를 꿰뚫어 볼 줄 알았다. 얼마나 통찰력 있는 시인이요 철학자인가. 옛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밤놀이하며 인생을 즐겼다는 <춘야연도리원서>를 읽으면 감개와 마주쳐서 눈물이 난다.
젊어서는 일로 세월을 허송했고 지금은 바람을 쏘이려 햇볕을 쪼이려 세월을 허송한다. 이래저래 내 인생은 세월을 허송하느라 바쁘다. 「복사꽃 오얏꽃 피는 밤에」중
시대사와 개인사가 결합 된 서사, 회한을 통해 도달한 ‘삶의 균형’이라는 철학,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자기 성취의 서사를 지나 삶의 본질로 돌아온 한 인간의 늦은 각성이다.
「한 여인의 사랑」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예술·사랑·존재의 초월성을 탐구하는 서사적 수필이다. 대원각(길상사)의 공간적 체험에서 시작하여, 자야(김영한)와 시인 백석의 사랑으로 확장되는 구조는 매우 입체적이다. 특히 전통춤과 향락 문화에 대한 묘사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자야의 사랑을 “이성적 애착을 넘어선 초월적 사랑”으로 해석한 부분은 작품의 정점이다.
공간-인물-사랑으로 확장되는 서사 구조나 전통문화와 개인적 체험의 결합, ‘순애’의 신화화 등은 사랑이 인간을 넘어 전설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 서정적 철학을 보여준다.
김영한(필명 자야, 불명 길상화)은 대원각을 포함 전 재산을 법정스님을 통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길상화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회향(廻向)에 감격했다. 천년고찰도 심산유곡에 명찰(名刹)도 많은데 절 하나 더 생긴다고 불교 중흥에 얼마나 보탬이 된다고 절에다 희사하는가.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여 천년 후에도 후인(後人)들에게 선인(先人)들의 여가문화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보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상화 역시 춤과 노래 시와 문학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재원으로 권번 출신의 정통 기생 아닌가. 그러나 길상화는 육신과 재산을 불가에 함께 보시함으로써 백석과의 애절한 사랑이 영원히 회자되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과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모두 지나온 고독한 영혼이 내린 명철한 판단이었으리라.
백석의 생일에는 곡기를 끊고 사모와 애절함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길상화의 육십여 년 애틋한 사랑은 영원한 전설이 되었고, 순애(純愛)의 이름으로 남았다. 백석보다, 백석의 시보다 길상화의 지고지순의 사랑과 일편단심 지조가 크고 위대해 보였다. 오십 년만에 끊은 담배보다 더 그리운 사람. 수천억 원의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는 그녀. 목숨을 달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는 그녀. 그녀의 사랑은 인간의 이성적 애착을 넘어선 초월적 사랑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의 언어로는 감히 그녀의 사랑과 아픔을 온전히 풀어낼 수 없다. 「한 여인의 사랑」중
「마음 비우기」는 글쓰기와 정신 수양을 결합한 ‘내면 수행의 기록’이다. ‘잡념’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한시(漢詩)’를 선택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정신의 치환 방식으로서의 문학을 제시한다. 특히 “글을 쓴다는 것은 차 있는 생각을 비우는 일”이라는 문장은 이 작품의 핵심 명제이자 제4부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으로 동양적 사유(무념·허심)의 현대적 재해석, 글쓰기의 존재론적 의미 확장, 체험에서 도출된 사유의 설득력 등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질서를 회복해 가는 수행의 기록이다.
「틈의 지혜」는 제4부에서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비유 중심의 철학 수필이다. 물독과 문풍지라는 두 이미지로 시작해 그것을 사랑과 결혼의 원리로 확장하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특히 “밀착과 간격”이라는 이중 구조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생활적 이미지를 철학적 개념으로 상승하고, 반복과 대비를 통한 논리적 완성, 구체성과 보편성의 균형으로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간격’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한 수작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기 틈을 품고 살아간다. 벽과 벽 사이의 위태로운 실금 같은 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서먹한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진 뜻의 간극, 그리고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시간의 틈까지. 어떤 틈은 단 한 점의 바람도 허용하지 않아야 온기를 지켜내는 보온병의 입구처럼 단단히 메워야 하고, 또 어떤 틈은 여름의 팽창을 견디기 위해 비워 둔 철로의 이음새처럼 남겨 두어야만 온전해진다. 삶은 결국 이 수많은 틈을 언제 문풍지처럼 밀착시키고, 언제 물독처럼 비워 둘 것인가를 결정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틈의 지혜」중
「일어서기」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일어섬”이라는 행위로 압축한 존재론적 수필이다. 아기의 첫걸음에서 인류의 진화로, 스포츠에서 개인의 삶으로 확장되는 구조가 매우 탄탄하다. 특히 글쓰기까지 ‘일어섬’으로 연결시키는 지점에서 삶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통합된다. 반복적 상징(일어섬)을 통한 의미 확장, 생물학적·철학적·개인적 층위의 결합, 강한 메시지와 서사적 설득력으로 존재란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행위임을 증명한 선언적 수필이다.
「술 빚기 글 쓰기」는 비유의 완성도가 뛰어난 미학적 수필이다. 술의 발효 과정과 글쓰기의 숙성 과정을 병치시키는 방식이 매우 정교하며 특히 “여운”이라는 개념으로 결론을 맺는 구조가 아름답다. 발효에서 숙성, 여운의 구조적 대응과 장인 정신과 작가 정신의 통합, 감각적이면서도 사유적인 문장으로 시간과 인내가 예술을 완성한다는 진리를 감각적으로 구현한 글이다.
결국 명주와 명문이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는 여운일 것이다. 좋은 술은 한 모금 안에 모든 복합적인 맛을 담아 내고, 목을 넘긴 뒤에도 그 잔향이 오래 입안에 머문다. 훌륭한 글 또한 독자를 하나의 감정으로 가두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통찰과 연민 등 다층적인 사유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책을 덮은 뒤에도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긴 여운을 남긴다. 명문은 인간의 지혜와 경험을 숙성시킨 언어의 증류주이며, 명주는 자연의 생명력과 시간의 예술을 농축시킨 침묵의 문장이다. 이 둘은 결핍을 완성으로, 찰나를 영원으로 빚어낸 인류의 숭고한 결과물이다. 그리하여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적시고 깨우는 예술로 기능한다. 「술 빚기 글 쓰기」중
「나의 술 이야기」는 삶의 단계에 따라 변해가는 술의 의미를 통해 인생을 회고한 수필이다. 젊음에서 중년, 노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명확하며, 술이 단순한 음주를 넘어 문화·철학·미학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가치 변화, 동양적 음주 문화의 재현, 자전적 서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술을 통해 삶의 깊이를 측정한 인생 회고록이다.
「국화 향기 속으로」는 문우에 대한 애도의 글이자 문학적 헌사다. 고전적 어휘와 한문 표현을 적극 활용하여 애도의 격을 높였으며, 단순한 슬픔을 넘어 문학 공동체의 상실로 확장된다. 고전적 문체의 품격은 개인적 슬픔의 공동체적 확장이 되며 절제된 감정의 깊이를 더해 한 인간과 한 문학인을 동시에 추모한 품격 있는 애도문이 되게 했다.
「낙화에 묻고 조락에 답하다」는 계절의 이미지로 삶의 단계를 해석한 철학적 수필이다. 봄꽃과 가을꽃의 대비를 통해 젊음과 노년을 대비시키는 방식이 매우 상징적이며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의 정수다. 자연 이미지의 철학적 전환, 시간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 서정성과 사유의 균형으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 존재를 다시 읽어낸 성찰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의 무늬」는 제4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신체적 체험을 통한 존재 인식의 글인데 목 디스크라는 구체적 사건을 통해 “몸에 새겨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육체 경험을 철학적 인식으로 전환하고 ‘세월의 무늬’라는 강력한 은유로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몸에 새겨진 시간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읽어낸 성찰의 결말이 의미롭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나는 세월을 소모가 아닌 형성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기계처럼 마모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과 인내가 쌓여 한 사람의 고유한 무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비록 그 무늬가 매끈한 직선은 아닐지라도. 이제 나는 내 몸에 음각된 세월의 겹 무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스스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법도 배웠다. 거칠고 굴곡진 이 문양은 지울 수 없는 나의 역사이자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제는 땅만 보며 걷지 않으려 한다. 고개를 들어 흘러가는 구름과 붉게 물드는 노을도 자주 바라보려 한다. 무엇보다 몸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고 싶다. 세월은 이미 충분히 나를 지나왔고, 나는 그 끝자락에서 남은 생의 무늬를 담담히, 조금 더 부드러운 곡선으로 덧그려 나간다. 그러고 보면 내 몸에 오는 신호 하나하나가 내가 살아온 세월의 무늬인 같다. 「세월의 무늬」중
제4부는 “삶을 다 살아낸 사람이 비로소 쓰는 문장들”이다. 모든 작품이 체험에서 출발하며, 관념이 아니라 삶에서 길어 올린 사유의 경험 농도가 높은 글이요, 일과 삶, 사랑과 거리, 채움과 비움이라는 모든 대비가 하나의 중심 사상으로 통합되는 ‘비움’과 ‘균형’의 철학이요, 감상에 머물지 않고 통찰로 나아가며, 개인적 이야기를 보편적 의미로 확장하는 노년 문학의 모범적 형식으로 세월을 통과한 인간이 삶의 본질을 ‘비움과 여백’이라는 언어로 완성해 낸 깊은 성찰의 장이다.
7. 나가며-시간을 건너온 문장, 삶을 완성하는 성찰의 서사
이 수필집은 한 인간의 생애를 따라가며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연속적 사유의 기록이다. 제1부에서 출발한 기억의 서정은 제2부와 제3부를 거치며 현실과 관계, 삶의 실천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제4부에 이르러 마침내 성찰의 깊이로 수렴된다. 이 네 개의 층위는 각각 독립된 장이면서도 하나의 유기적 흐름을 이루며, 한 인간이 ‘살아낸 시간’을 ‘이해된 시간’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반부의 글들이 기억과 체험의 재현에 집중한다면, 중반부에서는 삶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갈등과 조율이 중심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의미로 확장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가족, 사회,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결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이해하는 단서로 기능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문장은 점점 절제되고 사유는 깊어진다. 특히 제4부는 이 수필집 전체의 사유를 집약하는 장으로, 삶의 본질을 ‘비움’과 ‘균형’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젊은 시절의 치열한 성취 지향적 삶이 노년에 이르러 반성과 성찰로 전환되는 과정은, 개인적 서사를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세대의 집단적 경험으로 읽힌다.
이 수필집의 가장 큰 미덕은 체험과 사유의 균형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성찰의 재료로 삼는다. 그 결과 문장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독자에게 사유의 여백을 제공한다. 특히 일상적 소재를 통해 보편적 진리를 도출하는 능력은 이 수필집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이 작품은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시간은 초반부에서는 흘러가는 것이지만, 후반부에서는 몸과 기억에 새겨지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 전환은 단순한 관점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성숙을 의미한다.
결국 이 수필집은 삶의 결을 따라 형성된 하나의 문학적 지도와 같다. 그 지도는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 또한 되돌아보게 된다.
이 작품이 남기는 가장 깊은 울림은 여기에 있다. 삶은 무엇을 더 채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비우고 어떻게 균형을 이루느냐의 문제라는 깨달음. 그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곧 이 수필집의 서사이며, 그 서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삶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78년의 기다림』은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문학으로 완성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수필집의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지연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 “삶의 의미가 숙성되는 시간”, “언어가 비로소 깊어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정목영의 이 작품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한다. 삶은 늦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익었을 때 비로소 문장이 되고, 한 권의 책이 된다고.
“일흔여섯에 시작해 일흔여덟에 맺은 이 작은 결실이, 저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들께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는 정목영 수필가의 아름답게 전달되었음 싶다.
정목영 수필가의 아름다운 염원이 독자의 마음에도 잘 전달 되었음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