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태을도 대시국 천지공정 원문보기 글쓴이: 동방청룡
2024 태을도 4월 의통군 소집 도훈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한길로
2024. 4. 27. (음 3.19)
여기가 우주의 총중심지다, 나 있는 데가.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상제님이 그러시잖아요. “나 있는 데가 천하의 대중화다.” 하느님이 계신 데가 천하의 중심지잖아요. 그러니까 천하의 중심지에 있는 상제님을 중심으로 온 천하의 무생물, 유생물, 동물, 식물, 해와 별, 이 모두가 다 상제님한테 집중해 있는 거예요.
천지부모님은 음양으로 존재
근데 상제님 고수부님은 가셨잖아요. 상제님은 1901년부터 9년까지 천지공사를 하시고 돌아가셨고, 고수부님은 1911년에 이어받아서 신정공사를 하시고 1935년도에 가셨어요. 말하자면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가신 거예요.
앞서 치성 수련에서 우리가 도통주 주문을 읽었지만, 기독교 천주교에서 얘기하는 하느님 아버지, 천주님, 하나님, 그분이 남녀로 같이 있다는 거예요. 후천개벽 시대가 되어야 남녀가 함께 있는 게 알려져요. 그전까지는 억음존양 시대이기 때문에 남자의 존재만 알아요. 사실은 여자의 존재는 감춰진 거지요. 후천개벽기에 이르러서야 천주교와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하느님, 하나님, 천주님, 이것이 부모로 계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천지부모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불교에서도, 우리가 읽었듯이 미륵존불이 있고 또 미륵존불의 부인도 있단 말이에요. 유불선서도 모두 선천에서는 남성 위주였는데, 이제 원래대로, 본래 음양으로 되어있던 것이 후천개벽기가 돼서 드러난단 말이에요.
근데 상제님은 1909년도에 돌아가셨고, 고수부님도 1935년도에 돌아가셔서 지금 2024년이니까 90년째 됐는데,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가 가신지를 전혀 몰라요.
천주교의 수장인 로마 교황도, 그렇게 하느님을 찾으면서 정작 하느님이 강증산과 고판례라는 분이란 걸 모른단 말이에요. 여기 불교의 중심지인 조계사에서도 불교 종정이 그렇게 신자들한테 “미륵불 세상을 위해서 여러분 노력하십시다.”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정작 강증산 고판례라는 분이 미륵불의 쌍으로 오신 분인지 모른단 말이에요.
그런 시점인데, 지금 유불선 서도의 내놓으라 하는 그런 분들보다 사회적으로 우리가 알려지지도 않고 명망은 없지만, 본질로 보면 우주의 비밀을, 신도의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단 말이에요. 오늘 오신 사모님도 강증산이 하느님이라는 게 잘 믿겨지지 않지요? 남편이 하니까 그런가보다 그러지요?
인간의 무의식은 천지부모님을 찾게 되어있다
근데 사실 우리의 무의식은 항상 진리를 향하게 돼 있어요. 애들이 “엄마 엄마” 그러잖아요. 어디 달려가다 돌부리에 딱 걸리면 “엄마야!” 그러잖아요. 본질적으로 엄마를 찾게 돼 있다고요. 그러니까 ‘엄마’는 내 구원의 소리예요. 위기의 순간에, 가장 위험할 때 찾는 게 엄마잖아요, 엄마. 잘 나갈 때보다도 힘들 때 엄마를 찾는단 말이에요. 엄마는 내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면서 진리의 고향이에요. 내 생명의 구세주이지요.
근데 우주에도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거예요. 그 엄마가 우리가 앞서 치성 수련때 읽었던 태을주에서 훔치훔치하는 태을, 태을자리가 엄마예요. 근데 그 엄마는 유형과 무형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유형화된, 유형의 음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강증산 고판례라는 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강증산 고판례를 중심으로 이 우주가 움직여요.
그런데 그분들은 돌아가셨고, 돌아가신 그분들을 대행해서 저와 종부님이 이렇게 음양 짝으로 와서 대행하고 있고, 여러분은 그것을 믿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급살병에서 구하자고 이 바쁜 중에 시간 내서 온 거예요. 부산 충헌 도인도 올라온다고 그러는데, 부산에서 오고 여기 진해에서 오고 장성에서 오고, 올라오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직장생활하고 사업하고 그러면 토요일 일요일에 좀 쉬어야 하는데, 그 휴식하는 시간을 쪼개서 우리가 여기 모인 거는 우리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예요, 자기 역할.
오늘이 2024년 4월 27일인데, 4월 27일에 이 사회가 우리한테 요구하는 역할보다 더 근본적인 역할을 자신이 안단 말이지요. 충양도인, 자신이 할 역할 알잖아요, 그렇지요? 자신이 할 역할을 우리 충영도인도 알잖아요. 한의사 하시는 우리 충본도인도 자신이 할 역할을 알잖아요. 우리 충봉도인도 송구봉 선생을 통해서 알음귀를 받아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대략 이런 거겠다’ 생각하고 있잖아요.
우리 사모님은 어머니 보내드리신 직후라, 누구보다도 생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자신의 존재 근거. 계실 때는 잘 몰랐는데 그리움이 사무치잖아요. 없으면 그 자리가 그렇게 커 보인다고. 마찬가지로 천지부모님이 계셨을 때는 제자들이 잘 몰랐어요. 옆에서 같이 밥도 잡숫고 술도 잡숫고 하니까 “하느님도 밥 잡숫네.”, “미륵불도 술 잡숫네.” 언제까지나 계실 줄 알았는데 딱 사라져 버리시니까 얼마나 그리움이 사무쳤겠어요. 그 그리움들이 모여서 경전을 만들고 이렇게 우리한테 전해진 거예요.
근데 우리는 상제님 고수부님 얼굴을 모르잖아요. 저렇게 신단에 있는 어진으로만 알지요.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다고요. 그렇지만 그리움은 상제님 고수부님 생전의 제자들이나 우리나 크게 다름이 없어요. 마치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얼굴을 알지만 위로 올라가면 증조 고조는 모르잖아요.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잖아요. 분명히 계신단 말이에요. 그렇듯이 우리 선배 신앙인들이 상제님 고수부님 얼굴을 봐서 그분들은 증거를 하지만, 우리는 안 봤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건 뭐냐? 생명에 대한 그리움, 천지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을 우리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워하지도, 사무치지도 않으면 우리가 생각을 안 하겠지요.
그러니까 후천개벽기인 지금은 전 세계 80억 가까운 인류가 돌부리에 차여 가지고 넘어져서 엄마를 찾는 때란 말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가정적으로나 직장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지금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에요. 우리 인간들이 선천 5만 년 동안 윤회환생하면서 살아왔지만, 그 살아온 결과 우리의 무의식은 이제 얼마 안 있어서 자신이 급살병으로 죽는다는 걸 알아요. 우리는 상제님 말씀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지만, 상제님 고수부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깊이 심연에 자리 잡은 진리의 그리움, 생명의 그리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 그 그리움들이 사무치게 “나를 살려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얘기한단 말이에요, 자기 무의식이 자기 의식에게.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몰라요. 자기 무의식이 뭘 원하는지를 모른단 말이에요. 자기 무의식은 살려달라고 그러는데, 자기 의식은 자기 무의식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놀기 바빠서, 오늘도 들로 산으로 간단 말이에요. 그런 형국이란 말이지요.
인간계는 의식으로 활동, 신명계는 무의식으로 활동
그러기 때문에 천지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두 분의 뜻과 가르침을 전해서 급살병에서 세상 사람들을 구해내자’ 그런 길을 걸었던 선배 신앙인들이 그 역할을 우리한테 물려주고 가셨단 말이에요. 근데 그 선배 신앙인들이 육신은 없지만 저세상에서 살아생전보다 더 열심히 할 거 아니에요. 우리 충일도인도 만일 이 세상에서 열심히 상제님 일을 하다가 저세상에 가면 더 잘 보일 거 아니야. ‘내 살아생전에 이렇게 해야 했는데’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든 후배 신앙인들한테 알음귀를 열어주려고 “옛날에 나는 이렇게 신앙했지만 이제 보니까 이렇게 신앙해야 해.” 그렇게 알음귀를 열어주려고, 후배 신앙인들의 무의식과 연결시키려고 얼마나 열심히 작업하겠나 이거예요.
인간은 살아있기 때문에 주로 의식으로 활동해요. 저세상 사람은 주로 무의식으로 활동하고. 그러니까 서로 잘 안 맞는 거야, 핀트가. 돌아가신 분이 아무리 살아있는 사람한테 얘기해도 못 알아먹어요. 부모님이 자식한테 “얘야, 그게 아니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아무리 얘기해도 후손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후손은 의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선배 신앙인들이 “내가 생전에 이렇게 신앙을 했는데 그렇게 신앙하면 안 돼요.” 아무리 외쳐도 우리 살아있는, 지금 육신을 가진 신앙인들은 의식이 앞서기 때문에 선배 신앙인들의 그 간절한 마음을 몰라요. 그러니까 자신의 의식대로 살다가 사단이 나면 “뭐가 잘못됐나?” 이러지요.
우리 부모님이 후손들하고 만나는 걸 확인하는 게 꿈이야, 꿈. 잘 때 선몽(현몽)을 한다고. 꿈이라는 건 내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의식이 잦아들고 무의식이 깨어나는 게 꿈이기 때문에 꿈속에서 부모님하고 만나잖아. 그 노래도 있잖아요. 꿈속에서 부모 만나는 노래가 많잖아요. 꿈속에서 부모도 만나고 연인도 만나고 뭐도 만나고. 그래서 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봤는데, 꿈을 꾸면서도 꿈에서 안 깼으면 한다는 거예요. 꿈에서 안 깨야지 우리 부모님을 더 만나니까. 근데 안 깨야지 하는 순간은 깨는 순간이지, 그렇지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참 반갑게 만났는데, 더 얘기하고 싶은데, 안타까워서 이 꿈이 안 깼으면 하는 순간에 깨는 순간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살아생전에 잘하라 그러잖아요.
성숙한 신앙 : 철이 들어야
진리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상제님 고수부님 제자들이 살아생전에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상제님 고수부님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가 남을 거 아니에요. “아이고, 알고 보니 진짜로 우리 상제님이 하느님 아버지였네. 우리 고판례 수부님이 하느님 어머니였네.” 이렇게 뒤늦게 깨친단 말이에요. 어린 애들도 처음에는 우리 엄마 아버지 고마움을 몰라요. 차츰차츰 나이를 먹고 학교 다니고 직장생활하고 결혼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이랬었구나” 안단 말이에요.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신앙도 크게 보면 선천 5만 년이라는 기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 우리 나이로는 100살도 못 살지만, 숱한 윤회환생 속에서 우리가 의식 무의식으로 경험한 게 많아요. 그 경험들이 모여서 이제는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면, 미륵부처님이 아니면, 옥황상제님이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거를 우리가 알기 때문에 상제님 고수부님을 만나서 “우리 부모님의 뜻이 이렇구나” 해서 건방설도 의통성업을 향해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오직 한 길로 천지부모님의 뜻을 받들어서 가려면 내가 철이 들어야 해요.
성숙한 신앙 : 자존심이 없어야
철이 들어야 되고 자존심이 없어져야 해요. 부모가 애들 키울 때 자존심 가지고 키우지 않잖아요. 부모님한테 효도할 때 자존심이 있으면 효도를 제대로 못 해요. 부모님이 병이 위중해져서 오래 가면, 자식도 힘드니까 자식의 자존심이 살아나요. “아유, 그냥 돌아가시지.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이게 내 자존심이거든요. 자존심이 올라오는 거예요. 자존심이 올라오는 순간에 불효를 하게 돼 있어요. 자존심이 올라오는 순간에 불충하게 돼 있다니까. 자존심이 올라오는 순간에 스승한테 불민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천지부모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자존심이 없는 분이야. 왜냐하면 천지인 삼계를 위해서 상제님 고수부님이 자기 모든 걸 내놨기 때문에 무슨 자존심이 있겠어요? 자기가 천지고, 천지가 상제님 고수부님인데. 상대방하고 나하고 똑같으면 자존심이 없잖아요. 네가 난데. 그렇잖아요. 그래야지 한 길로 갈 수 있단 말이에요, 샛길로 안 가고 정도를 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진법을 증거할 수가 있어요.
가정에서도 가장 자존심이 없는 자식이 가장 효자야. “내가 옛날에 돈 잘 벌 때 우리 엄마한테 아버지한테 많이 해줬는데, 이제는 둘째가 해라. 내가 그만하면 됐지. 너는 옛날에는 엄마 아버지한테 잘못했으니까 이제 니가 병구완해.” 이게 결국 형제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거든요. 그럼 부모님 모시는 게 결국 누구 몫이 되냐. 가슴은 썩지만 그래도 자존심을 내려놓은 사람이 웬수니, 악수니 해도 그런 자식이, 그런 형제가, 결국은 부모님을 마지막까지 맡고 임종을 지켜봐요.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사람이에요. 역사 속에도 의병 있잖아요, 의병. 그런 사람은 벼슬도 없어요. 정부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에요. 나라가 망할 때 이름 없는 무명 잡초 같은 의병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지켜요. 그 사람들은 자존심이 없잖아요, 자존심. 자존심이 없기 때문에 무서울 게 없는 거예요.
진리 세계도 마찬가지예요. 스승의 가르침을 받든 제자가 자존심 있으면 스승 얘기를 잘 안 들어요. 자기 임의로 판단하는 거지요.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요.” 스승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알려주려고 한단 말이에요, 자기 명이 다하기 전에. 스승한테 제자는 영적인 자식이에요, 육친의 부모에게 육신의 자식이 있듯이. 임금한테는 신하가 임금의 자식이에요. 나라를 운영하는 자식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군사부는 크게 보면 부모 자식 관계하고 똑같아요. 그러니까 임금은 임금 나름대로 자기 신하를 자식처럼 키우는 거야. 또 스승은 그 학문을, 진리를 제자한테 전수하지요. 제자를 자식처럼 키우는 거예요.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그런데 자식과 제자와 신하들은 자존심을 내세운단 말이에요.
중국에서 무협지를 보면 고수들은요, 냄새가 안 나요. 무협지 읽어보면 고수들은 샌님같이 생겼어요. 그런데 문파에 갓 입문해서 조금 배운 사람들은 뭔가 티를 내요. 어디 가다가도 나무 돌멩이를 탁 차고 누가 나한테 안 좋은 말 하면 시비 걸어서 접시도 건들고. 근데 그렇게 해서 싸움이 일어나요. 그렇게 각 문파의 초짜들끼리 서로 배웠다고 문파 자랑 스승 자랑하다가 정작 싸움이 벌어지면 누가 해결하냐? 스승, 고수들이 와서 해결해요. 일은 초짜들이 저질러놓고 해결은 고수들이 한다고. 세상 이치가 그런 거예요.
결론은, 후천개벽기에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이 군산발 급살병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어야 해요. 천지부모님한테 자존심이 없어야 해요. 세상 사람한테 자존심이 없어야 해요. 그래야 원수를 은인같이 사랑할 수가 있어요. 상제님이 그러시잖아. 원수를 은인같이 사랑하라고. 그게 상생이에요.
성숙한 신앙 : 정음정양
상제님이 또 자기 부인 고수부님한테 절을 세 번씩 했잖아요. 그렇게 고마운 거예요. 선천 세상이 후천 세상으로 가려면 정음정양이 되어야 해요, 정음정양. 후천을 만드는 바탕이 정음정양이에요. 강증산한테 고판례라는 여성이 없었으면 상제님 천지공사도 헛방이라고. 그러니 얼마나 고마워요. 천지공사를 아무리 잘 보면 뭐 해요. 고수부님이 “강증산 당신, 아니야.” 그러면 끝이지.
제가 상제님한테 천명을 받아서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여기 있는 종부님이 “내가 지켜보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헛고생하지 마시고 가세요. 나야 뭐 결혼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살지만, 여러분은 헛고생하지 마세요” 우리 종부님이 그래봐. 이치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수부님도 남자종도들에게 그러잖아요. “니 마누라한테 엎어져서 절해라, 이놈들아.” 대꼬바리로 후려치면서 그러잖아요. 니 마누라가 그렇게 고마운 존재고 그렇게 존귀한 존재인데, 뭘 마누라한테 불평하냐고. 후려갈기잖아요. 그러니까 상극의 금수세상에서 상생의 태을세상으로 넘어가는데 제일 관건이, 첫째는 자기 부인을 대하는데 자존심이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정음정양이 되지요. 또 부인도 마찬가지로 남편을 대할 때 자존심이 없어야 해요. 그것이 출발이에요.
모든 인간관계는 남녀 관계에서 출발해요. 남녀 사이에 애가 생기면 자식 관계가 부모 관계가 된다고. 주역에서도 기본은 ‘일음일양이 도’라 한다고요. 일음일양이 만나서 자식을 낳아서 이제 세상에 퍼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도의 수준은 마누라를 대하는 것을 보면 알아요. 우리 사모님이, 우리 충일도인이 대하는 걸 보면 “이 양반 태을도 수준이 이거구나” 이렇게 가늠하면 돼요. 그게 원칙이에요, 원칙. 상제님 당신도 그랬어요. 그럼 우리가 강증산을 받드니까, 그분 말마따나 마누라한테 자존심이 없어야 하잖아요. 강증산도 고판례라는 마누라한테 자존심을 다 빼고 절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유교 사회에서 어떻게 마누라한테 절을 세 번씩 해요. 말이 안 되지.
종부님 만난 후로 제가요, 생일 때랑 결혼기념일에 항상 꽃다발을 줬다고. 꽃다발하고 손편지를 썼어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그거보다 더 좋게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이 있으면 하셔도 되는데, 인간 꽃이 꽃 중에 제일 아름답다고 그러는데, 최소한도 우리가 꽃다발 하나 드리고 부인한테 손편지 쓰면 그게 돈으로 그 값어치를 헤아리겠어요. 그래서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한 길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하나의 길로 쭉 가기 위해서는 내 자존심을 없애야 한다, 자존심을 없애야 원수를 은인같이 대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성숙한 신앙 :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
자존심을 없애야 사람이 순결해져요. 진정한 용기는 순결에서 나와요. 대부분 순결하면 여자만 생각하는데, 상제님께서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고 그러셨어요. 상제님 얘기는 주로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 거예요. 억음존양 세상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괄시하고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후천개벽기에 양의 시대에서 음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남자들을 잘 교육시켜야 해서, 남자를 대상으로 얘기한 거예요. “너희는 순결해라.” 남자의 순결성이 없으면 태을도는 어느 귀신이 잡아가든 잡아가요. 여자한테 척 지면, 원한이 맺히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석가모니가 여자하고 결혼하면 진리의 세계를 못 간다고 했어요. 근데 상제님은 여자한테 잘못하면 발목 잡혀서 진리의 길을 못 간다고 하셨어요. 여기 결혼한 분도 있고 안하신 분도 있지만, 반드시 결혼했다고 해서 남녀 관계가 형성되는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의 반은 남자고 세상의 반은 여자잖아요.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평소에 여자를 대하는 자세가 여자하고 결혼하면 그대로 나오게 되어있어요. 물론 연애할 때는 쇼를 할지 모르지만, 결혼하면 그 버릇이 나오는 거라.
자존심을 버리고 모시는 마음으로
그래서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후천 5만 년 상생세상을 가기 위해 건방설도 의통성업을 해나가는데, 우리가 자존심을 버리고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자존심을 버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자존심을 버리고 마나님을 모시고, 남편을 모시고, 자존심을 버리고 스승을 모시고, 자존심을 버리고 우리 도반을 모셔야 한다 이거예요. 그게 모실 시예요, 모실 시. 수운 선생이 받아내린 게 모실 시잖아요, 모실 시. 잘 모셔야 한다는 거예요. 선천은 무시하는 시대고 후천은 모시는 시대에요. 내가 자존심이 있으니까 무시하는 거예요. 상대방을 위하면 모시게 돼요. 무시하는 건 상극이고, 모시는 건 상생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눈앞에 다가온 이 군산발 급살병에서 세상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면 내 자존심을 버리고, 무시하는 게 아니고 모시는 마음으로 한 길로 가야 한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모실 수 있지요? (네!) 감사합니다.
첫댓글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세상은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태을세상입니다. 내가 나를 생각하듯 남을 대우하고 모시는 세상이 후천 상생세상입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남을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대우해야 성공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천하사에 초지일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사선을 넘을 수 있는 깨침이 있어야 그 힘으로 초지일관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