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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필요 및 권위와 개인의 자발성. 전쟁 자원병이 아닌 평화 자원병.
매춘. 성생활의 갈등 해소. 노동자의 힘.
P. 바이스: 저항의 미학1, 탁선미 역, 문학과지성 2016.
1-22
전선에서는 전투가 우선입니다. 전선에서는 적의 움직임에 온 정신을 쏟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적을 공격하는 데 집중하지요. 그러나 후방에서는 힘과 물자의 상당 부분을 부대를 염탐하고, 통제하고, 획일화하고, 노선대로 추종하도록 만드는 데 쓰고 있어요. 경찰이 인민군 안의 또 하나의 군대로 커버렸어요. 정보기관과 심문기관들이 점점 늘어나고, 구치소, 감옥, 조사위원회, 특별재판소의 활동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뮌처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의 의식이 분열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지시들을 규율 때문에 따르면서, 의식이 지속적인 압박을 받는 거예요.(저항1,365)
체제에 순응하려고 애쓰는 건 정치와 군대의 지도부만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사실 그건 우리의 투쟁을 실행하기 위한 전제죠. 누구도 전쟁을 혼자 힘으로 치를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는 지휘에 수반되는 원칙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시만은 자기로서는 지금 의사 표현의 자유를 고집하고 분파를 조장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제거한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뒤에 통일된 확고한 전술이 있고, 내가 그것을 전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필요하면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그 전술이 고수될 거라는 사실이 전선의 자신에게는 유일한 확실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믿음직한 동지들만 스페인에 온 것이 아니고, 모험가, 사기꾼, 첩자 들도 왔다고 했다. 따라서 어떤 방해 세력이 거침없이 활동하게 놔두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개입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점점 강해지는 반동 세력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유럽^ 남부의 요새인 이곳에는 우리밖에 없다고 했다. 만일 후방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군대가 알게 된다면, 그건 군의 기강에 치명적이라고 했다.(저항1,365-366)
뮌처가 말을 받았다. 전투에서는 우리의 목표와 정부의 목표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습니다. 전선에서는 부대원과 장교들이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서로 단결하고, 모든 행동에서 서로 의지하죠. 전선에서 명령을 받았는데 무시하는 경우는 결코 없죠. 그런데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휴식 중인 지금, 반목을 조장하고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 이단자, 변절자를 우리 틈에서 찾아내야 하니까요. 갑자기 우리가 스페인에 온 동기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어요. 이런 의심은 모욕이며 굴욕입니다. 뮌처가 물었다. 누가 지도부에게 우리를 이렇게 창피 주고 무력하게 만들 권한을 주었나요.(저항1,366)
우리가 처한 모순 때문에 분열된 인간들이 생겨난다는 제 주장은, 언제나 우리를 종속된 위치에 서도록 강제하는 그 패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의 것들, 우리 계급 고유의 것들을 갈구해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강요되는 것들을 비판하고 거부하려고 노력했지요. 마르크스가 가르치려고 했던 건, 노동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필요한 건 적응이 아니라, 우리를 종속된 존재로 만드는 체제들을 파괴하는 겁니다. 그런데 생산수단을 우리 손에 넣는 대신, 반쪽짜리 해결로 만족하라는 요구를 우리에게 하고 있단 말이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동시에 다른 종류의 힘, 그러니까 억압하는 힘도 함께 커졌어요. 이제 나아졌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바로 퇴행이 시작된 거죠. 우리와 직접 관련된 어떤 걸 이야기할 때마다, 그런 건 이미 다 지나간 문제라고 단정하곤 했죠.(저항1,366)
아이시만이 말을 받았다. 대표직이나 지휘 업무를 맡은 많은 사람도 우리처럼 자유를 제약받으며, 우리처^럼 정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들도 임시처방, 과도기적 형태, 타협안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그것만도 대단한 거라고 했다. 우리의 전진과 동시에 적의 힘 역시 점점 강화되고 있으며, 그 힘은 우리를 정지시키고 무력화하려 든다고 했다. 뮌처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적과 공공연하게 전투를 벌이는 중이죠. 그런데 상급자들의 활동 조건을 배려해서 불만족스러운 것, 임시방편, 일탈, 명백한 오류 들을 언제나 그냥 넘깁니다. 아이시만은 우리가 그 자리에 있다 해도 더 잘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말했다.(저항1,366-367)
걸으면서 뮌처가 입을 열었다. 아이시만의 말은 맞지 않다고 했다. 언제나 기본적인 부담은 우리가 맡고, 행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한다면, 강압적 체제를 해소하려는 원래 목표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10월 혁명 이후 이제 2십년이 지났죠. 그런데 가부장적 국가, 관리와 간부들의 지도와 보호, 장교 계급, 맹목적인 복종, 최고 명령권자의 위엄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여전히 대고 있어요. 그래야 할 이유가 노동자 지배라는 목표를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단계들보다 더 많아요. 나는, 스페인에서는 사람들이 숙명론에 기대면서 구체제가 천천히 고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속속 청산할 것으로 믿었어요.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이곳에 왔고. 하지만 여기서도 사람들은 좁은 길을 간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걸 잘라버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저항1,367)
인민전쟁에서는 단 하나의 노선만이 유효했다. 전술은 오로지 하나의 방향으로만 구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치에서 도덕 개념은 인간관계에서와는 다른 척도를 가졌다. 정치에서는 현실감각으로 결정을 내렸다. 현실감각이 따지는 건 감정이 아니라 실용 가치였다. 친구 아니면 적이 존재할 뿐이었다.(저항1,369)
공산당이 인민전선을 지켜내리라는 걸 증명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건 스페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국, 프랑스와 함께 반파시즘 동맹을 세우려는 소련의 노력을 이어가는 데도 필수적이었다. 공화국은 서구 열강의 존중과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스페인이 혁명적 변혁을 지지한다는 의구심을 조금이라도 불러일으켰다면, 제네바 및 서구의 여러 외교 중심 도시에서 진행 중이었던 위태위태한 협상들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스페인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과 동시에 소련을 지켜내야만 했다. 소련이 위험해지면, 우리도 결국 패배하게 될 테니까.(저항1,369)
뮌처가 말을 했다. 내가 당의 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지적하는 건 어떤 근본적인 문제라오. 당내에서 우리의 존재에 관한 것이지. 우리가 대적하는 적은 너무나 비열해서, 그 앞에서 당의 모든 결함과 잘못은 사소한 것으로 보이지.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침묵하는 것과, 열등함을 드러내는 침묵은 별개죠. 우리는 우리를 지키려고 조직을 세운 거라고. 조직이 우리의 의식을 촉진해야지, 순종심을 조장해서는 안 되는 거죠. 우리의 조직들은 연대하려는 우리의 의지, 함께 행동하려는 우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어요. 진보와 해방을 향한 우리의 길에 대한 가능한 모든 상상은 바로 이 연대의 사유에서 나오는 거라오. 그런데 우리가 습관적인 단점을 버리지 않고, 의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조직에 도움을 바라기만 하고, 조직이 우리를 단순히 끌고 가도록 놔둔다면, 우리의 참여는 별 가치가 없겠죠. 뮌처의 말이 이어졌다. 오히려 조직이 개개인에게 자기만의 몫을 하라고, 함께 이끌어가자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하는 거죠.(저항1,369-370)
우리는 어릴 적부터 우리를 옭아매려는 거짓들에 맞서 싸우면서 우리의 입장을 선택했어요. 임금 투쟁에만 관심이 있는 노조의 경박한 개혁주의 여론과 탈정치에 빠지지 말고, 전체 사회와 경제, 문화를 스스로 이해하자고 다짐했죠. 그가 말했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해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거요. 그리고 지금, 바로 그런 지적 노력이 더 알려는 우리의 열망에 가해지는 억압에 저항하는 거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순종을 언제나 철저한 연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오. 100퍼센트 단결해야만 냉혹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결코 우리를 불투명한 상태, 위선, 신비화에 묶어두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야죠. 우리가 그렇게 적당히 넘어간다면, 고국에서 파시즘이 선동한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부정하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와 국수주의의 쓰레기를 삼킨 수백만 사람에게 할 말이 없어요. 제국 영토 수복이니, 피와 땅이니, 기쁨의 힘이니, 모성적 여성이니, 강한 남성이니, 감사할 줄 아는 어린이니 하는 슬로건들, 내려주기만 하면 어떤 구호도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 천박한 유행을 따르듯 신이 나서 양털 모자 장식과 엽도를 갖추고, 유니폼 줄을 달고, 징이 박힌 장화를 싣는 수백만 사람에게 말예요.(저항1,370)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건, 토양이 척박했기 때문이라오. 노동운동이 고유한 가치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오. 정원용 난쟁이 인형이나 카나리아, 수놓은 방석이나 휴식과 안락함을 말하는 벽 장식용 경구들에 노동자들이 아주 쉽게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눈이 먼 사람들이 이제 거짓 안전과 거짓 평화, 거짓 풍요와 거짓 완전고용이라는 새 질서를 얻었지. 그런데 만일 우리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대변할 만큼 강하지 않다면, 만일 우리마저 자기부정과 불확실성과 강요에 갇혀 꼼짝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새 질서에 효과적으로 대적할 수 있겠어요.(저항1,371)
아이시만은 협박과 맹목의 이 시대에 절대주의를, 극단적 강압을 완전히 내재화한 적을 물리치려면 권위적인 권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뮌처가 응수했다. 공포정치와 싸우기 때문에, 내가 사용하는 수단과 관련된 정보를 언제라도 줄 수 있는 권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나는 납득할 수 없어요.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가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그건 치명적이라오. 우리의 후대는 틀림없이 그런 태도를 버리게 될 거야.(저항1,371)
우리는 늘 마야콥스키를 얘기했다오. 마야콥스키는 특정 인물의 이름이지만, 다른 인간들을 같이 끌어주었던 거지. 그 이름은 우리도 표현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였지. 우리 모두 말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늘 쓰레기 사이에 있는 우리가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였지.(저항1,372)
뮌처가 외쳤다. 국가 통치권으로 무장하고, 완벽과 불가침의 특권으로 치장한 모든 것을 난 증오해. 마야콥스키가 우리의 수호 화신이었던 만큼, 그의 죽음, 그의 자살은 우리의 추락이기도 했다네. 불현듯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약속된 미래를 만드는 일에 여전히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불현듯 다시 느꼈다. 노동이 얼마나 우리를 소모시켰는지, 생존의 근심이 우리를 얼마나 지치게 했는지, 우리가 자기 교육을 위해 힘을 내는 데 얼마나 무능했는지.(저항1,372)
그의 아내는 물론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겠지만, 두 아이 때문에, 또 교사직을 잃지 않으려고, 이혼 신청을 낸 상태였다. 이것 역시 인민전쟁의 일부였다. 전투행위에서 멀어진 순간, 언제라도 과거와 혼란이 다가왔다. 가족의 거처가 불안해졌다. 하지만 전선에서 요구되는 것과 동일한 강건함을 개인적인 문제에서도 견지해야 했다. 사실 스페인에서 보여준 용기와 희생정신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개개인에게 매일 어떤 절제와 자기극복이 필요했는지를 함께 보아야 했다. 영웅성의 가장 큰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단지 전선 여기저기서 돌진하는 부대들이었다. 이 돌진하는 행위에 담겨 있는 인간의 삶은 정식 보고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농담 정도로, 또는 웃거나, 가벼운 제스처로 얘기하고 그냥 흘려버리는 대상이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왈가왈부해서도 안 되었다. 이 엄청난 수의 인간이 결집하고, 이 엄청난 사회적 힘들이 충돌하는데, 달리 어쩔 수 있었겠는가.(저항1,373)
사람들은 개인의 삶을 가지고 이곳에 도착했지만, 그들의 과제는 하나로 엮인 사슬이 되는 것이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누구나 전체의 일부로서만 간주되었다. 한 명이 없어지면, 그 빈자리는 다시 메워져야 했다. 그의 무덤처럼 그 역시 이름 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과거에 존재했다는 표시가 한 가지는 남을 수 있었다.(저항1,373)
1-23
신생 소비에트 국가는 현재 스페인공화국처럼 모든 게 부족했^죠. 생필품도, 군사 장비도 없었던 만큼, 의견 다툼과 적대적 경쟁 관계들도 많았죠. 모든 혁명운동과 인민전쟁에는 대립과 격렬한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굶주림과 물자 부족을 피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것은 투쟁의 자연스러운 일부죠. 사회적 변혁이 시작되면, 이해관계가 정확한 두 개의 계급만 대립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무력 충돌 전체를 추동하는 적대감은 언제나 투쟁하는 각 진영 내부도 장악합니다. 우리가 단결과 공동 행동을, 상호 이해 및 연대를 외치면서 공격의 기세를 올릴 때, 그곳에는 언제나 상이한 종류의 견해, 노력, 목표 들이 함께 부글대고 있죠. 노선에 합의하고, 공동의 적에 대항해 협력하려는 마음은 언제나 또 다른 욕망에 직면합니다. 내게 절대적 선이고 진리인 어떤 것을 실현하려는 욕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생각일 뿐,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리와 다르다고 여기죠. 처음 돌파할 때는 이런 모든 것이 사소할 수 있고, 그래서 곧 잊힙니다. 그때 정말 혁명적인 것이 생겨납니다. 새로운 것, 새로운 인간의 단초가 탄생합니다. 그것은 이념이 물리적 힘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때에는 지금까지 몰랐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힘이 모든 사람을 추동합니다.(저항1,375-376)
하지만 이런 상태는 결코 계속될 수 없죠. 무언가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런 상태는 금방 와해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론은 행동을 향해 돌진해서, 숙고한 결과임을 주장하며 매 단계 자기 식으로 관철하려고 듭니다. 이론은 언제나 실천보다 더 논란을 부르게 마련이고, 그래서 첫 단계가 지나면 바로 위기가 오죠.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확실한 생각에 불화가 스며들고, 서로 어긋나는 복잡한 생각으로 행동의 단순함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던 사람들 사이에 가장 심한 경계선들이 생기고, 서로 물고 뜯는 지경까지 가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역사에 대한 넓은 안목과 함께, 가장 끈기 있고 가장 영리한 리더십만이 수많은 흐름을 모아 지속 가능한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죠.(저항1,376)
호단이 말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229)의 평화 이후, 중요한 건 혁명의 보존이었죠. 그가 물었다. 그렇다면 사회혁명주의자들의 봉기를 진압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내전이 끝나고 연합국의 간섭을 물리친 후에 터진 크론슈타트의 폭동도 마찬가지고요. 소비에트 국가를 건설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반대파들은 다양한 활동 무대를 갖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지금 재판에서 폭력으로 받아칠 수밖에 없도록 말이죠.(저항1,376)
우리 눈에는 소련에서 만들어진 것이 디트로이트나 루르 지역의 것보다 우월했다. 자본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생산하는 자에게 이익이 되는, 그런 생산이 이제 여기서 처음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들은 거들먹거리며 러시아 노동자들의 궁핍한 삶을 꼬집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 나라에 살고 있는 몇 배나 더 가난한 수백만 인구를 상기시켰고, 그들의 부를 떠받치는 착취를 지적했다. 그렇다. 서구의 국가들은 소련에는 없는 식으로 부를 모았고, 재화를 독점했다. 그들은 강탈한 재화로 으스대며, 그들이 자랑하는 우월한 사회체제가 불쌍한 민족과 대륙들의 부담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침묵했다.(저항1,378-379)
드네프르 강에서는 발전기가 돌기 시작하고, 독일에서 파시즘이 성공적으로 돌파하기 1년 전,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용광로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이 도시 주변으로 주민이 10만 명이 넘어가고, 차르코프에서는 트랙터가 줄지어 나오고, 고리키에서는 트럭이 생산되고, 쿠즈네츠크 탄전에서는 석탄이 줄줄이 실려 나오게 되자, 서방 문명의 주도자들은 분노의 소리를 높였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독자적인 산업국가로 자신들에게 맞서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라면 스스로 무장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면 숨기고 싶은 자신들의 공격심에 맞서 방어를 할 테니까.(저항1,379)
호단이 말했다. 횔덜린의 통찰, 그의 헬레니즘, 프랑스 혁명의 세례를 받은 그의 정신이 아니라, 피히테의 게르만 중심의 국수주의가 독일인의 심성에 영향을 주었지. 합리적 계몽주의자인 후텐230)이 지나치게 민족성을 강조한 루터에 의해 밀려났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헤르더가 감성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괴테에 의해 밀려났고, 인간의 경험 영역에 사유를 국한했던 사실적인 칸트가 형이상학적인 헤겔에 의해 밀려났어. 호단은 우세했던 이 인물들이 특별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영주를 위해 일했고, 그 모든 진보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배 체제의 유지에 기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지배 체제에 진정한 민주 세력들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인민에게 이성과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충직한 복종을 권했던 이들, 통치권자들의 지주였던 이 거인들, 다른 한편 포르스터, 클라이스트, 그^라베, 뷔히너, 하이네231) 같은 핍박받고 배척당한 혁명적인 인물들, 이 양자 간의 괴리 때문에, 독일에서는 한 번도 휴머니즘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바그너의 선율에 도취하고 베토벤을 남용하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호단은 말했다.(저항1,382-383)
단정하면서도 흘려 쓴 작은 글씨들은 전쟁 자원병이 아니라 평화 자원병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 글은 지배자적이고 남성적인 감성이 국제적 필요에 자신을 맞출 줄 아는 건강한 자아감으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또 영웅적 군인이 아니라 평화의 영웅이라는 이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겨진 종이쪽지 위에서 호단은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방향의 전환과 안정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묻고 있었다.(저항1,383)
1-24
나는 코피와, 하일만을 당장 불러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브레델은 우리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상황에 맞는 표현을 찾아내고, 장애물을 돌파하고, 우리 자신의 책을 문화라는 금단의 영역으로 투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스파르타쿠스단의 일원이었고, 공산당 건립 때부터 당원이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2년이나 투옥되었고, 파시스트들의 집단수용소에 1년간 갇혀 있다가 도망쳐 나온 이 서른여섯 살 남자는 우리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끈기와 우월성의 화신이었다.(저항1,385)
호단은 좌중에 터진 웃음에 휩쓸리지 않았다. 약간 새된 숨소리로 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메비스와^ 슈탈만이 끝내자는 손짓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했다. 모든 전쟁은, 그것이 국가적 인민전쟁이라고 할지라도 일종의 병적 상태이며, 모든 개인적 후유증을 동반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리 정치적 의식이 높다고 해도, 전투병들은 금욕 생활로 일종의 과민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것은 병사들의 저항력을 약화시킨다고 했다. 계급국가는 유곽을 세워서 병사들의 충동을 충족시켰지만, 인민군은 그런 방식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병사들의 정서를 안정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건 여성들에게 굴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시스트들에게 여성은 전쟁 중에도 각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존재이니까, 그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호단의 말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스페인공화국에서 매춘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사회적・교리적 독단들을 차치하면, 여성은 원칙적으로 남성과 동등합니다.(저항1,387-388)
그러나 특히 스페인 동지들의 경우, 가톨릭 도덕률의 영향으로 여전히 이성 문제를 도외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결혼할 때 여성이 처녀여야 한다는 어리석은 원칙이 아직도 유효하기에, 휴가를 나온 많은 병사가 여자 친구를 다정하게 포옹한 뒤 유곽에서 해소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호단이 말했다. 매춘부들을 좀더 품위 있는 노동의 삶으로 재교육해야 하는 지금, 남성도 재교육을 받아야 합니다.(저항1,388)
이 해방전쟁에서 남녀가 동지로 만남으로써 비로소 여성의 순수성을 숭배하는 구태에서 해방될 거라고^ 했다. 자위에 관해서 말하자면, 전쟁 중에, 또 매춘을 거부하는 우리로서는 그것을 자연적인 예방 수단으로 간주해야만 한다고 했다. 슈탈만은 사자 같은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그 얼굴에 내내 담고 있던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호단은 많은 사람에게 이 문제는 청교도적인 조심성, 불안 그리고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신념처럼 과학적으로 명료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설명해나갔다.(저항1,388-389)
자신의 임상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사회 계층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 성 문제와 관련된 장애와 불안, 우울증이 더 많이 나타나며, 치료는 사회학적 계몽과 똑같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피임이나 임신중절 또는 자위를 이야기하는 건, 시민적인 도덕 코드가 쳐놓은 선입견이나 강압과 대결하는 겁니다. 착취의 체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성생활의 갈등 역시 가장 많이 겪게 되는 거죠. 호단의 깊이 있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거리낌이 여전히 느껴졌다. 메비스는 스포츠 같은 신체 단련이나 추가적인 군사교육이 영혼을 파고드는 것보다 병사들의 안녕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호단으로서는 사회적 역량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어떤 전체적인^ 존재였고, 전체적인 존재란 심리적 현실을 포함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저항1,389-390)
자신은 언제나 환자와의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화나, 또는 그룹 치료를 선호하는데, 그것은 개인의 문제에 내포된 사회적 맥락을 풀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메비스는 다시 말을 받았다. 그는 호단이 노동자 계급의 문제들을 민간 차원에서 다루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문제를 축소시킨다고 했다. 이 문제 역시 결정권은 오로지 당에 있는데, 왜냐하면 개인은 정치적 공동체를 통해서만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슈탈만 역시 공세적으로 자세를 바꾸며,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쿠에바에 사설 도당이라도 세우려는 겁니까. 아니면 아나키스트 사교클럽을 세우려는 겁니까. 슈탈만이라면 그렇게 조롱할 만했다. 그가 맡은 과제들은 호단의 정신의학적 문제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는 적의 후배지에서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교량과 화약고들을 폭파했다. 그는 포르투갈 국경까지 진격했다.(저항1,390)
슈탈만이 소리를 높였다. 모든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토론 클럽을 소집한다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거요. 슈탈만이라면 이런 말을 할 만했다. 그의 빨치산 부대야말로 맹목적 복종 같은 건 전혀 없고 다만 긴밀하고 당연한 협조가 있을 뿐이었으니까. 메비스가 말했다. 한데 어느 부대나 발언권은 있습니다. 누구나 민주적인 방식으로 제안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다고요. 그러자 에렌부르크가 응수했다. 아나키스트들은 그런 게 허용되어 있느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의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에서는 그런 것은 아예 전제라고 그는 말했다. 누구도 같이 싸우는 동지를 후견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누구도 봉급 수준과 연계되는, 더 높은 지위나 더 많은 권한을 주장하는 오만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저항1,391)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절멸된 지금, 아나키스트들의 지도자인 두루티와 절친했던 에렌부르크가 다시 이렇게 아나키즘을 옹호하다니. 하지만 이 지점에서 에렌부르크의 특징인 변증법적 반전이 시작되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아나키스트들의 많은 혁명 원칙은 옳았죠. 그들이 따르던 도덕은 이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상당 주민들이 희망했던 것들과 일치했고요. 그러나 이처럼 정당하고 진실한 것도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잘못이고 진실이 아닌 게 될 수밖에 없었죠. 그들의 진실은 추구할 가치가 있었고, 또 희생을 감수할 만큼 위대한 거였지만, 장기적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도덕적 진실이 사회 정치적 환경 탓에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건 틀린 거라고 했다. 또한 처음에는 이상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논리적으로 숙고하고 그 토대가 강화되면서, 결국 우월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고 했다.(저항1,391)
당에 가입한다고 해서, 특히 그 당이 작가의 견해를 실현할 방법을 알고 있는 당이라면, 작가의 생각에 부담이 더해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위기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작가의 창조적 자유가 방해받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오늘날 자신이 어떤 정치적 진영을 선택했는지는 자신의 인격 전체로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예술에 현재를 넘어서는 어떤 자기만의 영역이나, 우리의 시간과 다른 고유한 시간 차원이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작가는 최전선의 전투병, 불법 행동의 기획자와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예술 작업을 현실을 결정하는 행동들에서 비켜선 좁은 주변 영역에 두려는 모든 시도는 낡은 세계의 규범을 고수하는 것과 같을 뿐 아니라, 공공연하게 적을 돕는 거라고 했다.(저항1,392-393)
에렌부르크가 다시 적극적 비판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완전한 고요와 고립 속에서, 세상의 혼잡을 멀리해야 창조적일 수 있다는 괴테의 이상에 동의하려는 건 아니지만, 가장 시사적인 르포보다 시대를 더 많이 말해주는 시적 비전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격랑의 깊은 한가운데서, 현재의 사건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개의치 않으면서, 시대를 말해주는 시적 비전이. 작가가 자신을 전부 던져 생생한 현실에 섞이고, 그다음 자기만의 고유한 수단으로 그에 반응하는 건, 시민의 권리인 폴리테이아, 즉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런 행동은 그 자체로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저항1,393)
그런데 왜 우리는 전투를 하는 걸까요. 그건 우리의 문학이 속한 이 세계를 왜곡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전투에 사용하는 무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어떤 작가들은 전선에 함께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 그들이 묘사한 것, 또 그들이 예측한 미래가 우리를 지지해주고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우리가 무사히 살아나온다면 말이죠. 자신의 에너지를 전적으로 내면의 표상에 집중하는 사람들, 우리로서는 가장 중요한, 실제적인 요구들 앞에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 그들보다 우리가 더 용맹한 것은 아닙니다. 슈탈만이 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없다면 그 사람들은 무력할 뿐이오. 끝장이라고. 에렌부르크가 응답했다. 그리고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닐 거고.(저항1,393-394)
금기가 된 이름들, 바벨, 메이예르홀트, 타이로프, 트레차코프, 만델스탐, 아흐마토바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에렌부르크는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호단이 에렌부르크의 동지들, 진작 스페인을 떠나 귀환한 오브세옌코, 로젠베르크, 콜초프에 대해 질문했다. 에렌부르크의 발언으로 그 역시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에렌부르크는 다시 몸을 곧추세우더니 말을 계속했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몰락하는 법이죠. 내 말은, 전투 중이거나 아니면 후방 어디서 방어를 하거나, 우리 모두 똑같이 치명적인 위협에 처해 있다는 거죠.(저항1,394)
이 나라의 내전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이 나라는 하나의 상징 이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우리 자신의 관심 때문에, 우리 자신의 활동을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우리는 몇 개의 도시와 한 개의 위수병원을 보았다. 막사 한 곳, 그리고 한 번의 이동을 경험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에 있기도 했다. 우리가 본 것은 지극히 작은 단면들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의무에 만족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며, 우리는 먼 곳을 향한 국제적 과업을 펼치고 있었다. 이 땅에서 세계운동이 계속 살아 있다는 생각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언어, 무기, 군 장비는 엉망진창이었다. 우리의 소속감은 정치적인 결단에서 오는 것이었다. 스페인이라는 이 행동의 장, 이 전술적 표상, 그러나 이 지도는 아직 살아 있는 구조물이 아니었다.(저항1,397-398)
이곳에서도 농부들과 관청 사이에서 이견을 조정해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농부들은 농업부의 규정에 따라 잉여생산물을 여단의 행정부에 제공해야 했다. 관청은 이들을 통제하고 지시하며 농경에 간섭했고, 농부들은 몇 번이나 파업을 하겠다고 위협하며 맞섰다. 호단은 후임자에게 결과보고서를 넘겨주면서,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군사 전투만큼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중국의 옛 격언이 말하듯, 해^방전쟁에서 군인이 인민 속에서 물속의 물고기처럼 움직이지 못하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했다.(저항1,398-399)
네가 부르주아 계급의 교육을 받았다면, 네가 겪는 모든 것이 바로 너의 문제이며, 너의 견해를 요구한다는 확신을 가졌을 거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상황을 너를 중심으로 생각했을 거야. 그러는 대신 너는 여전히 열패감의 경험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무도 네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공부한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확신이 없지.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는 청년 노동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런 점을 반복해서 경험했지.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전하는 데 겁을 내.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를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야. 학교에서는 그들을 진작부터 제쳐놓았지. 학문이나 예술, 경영을 할 리는 없고, 조만간 기계 밥을 먹도록 정해져 있다고 치부하니까.(저항1,402)
나는 그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가 무엇을 배웠다면, 언제나 소극성을 조장하는 교육에 완강히 맞서면서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얻을 수 없었으며, 언제나 반항과 강압적 반격을 거쳐서 얻어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결정을 주도하는 세계로 도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저항1,402)
호단이 말했다. 그렇지만 노동하는 사람들의 결단력이 의결하는 사람들의 권력보다 더 우세한 거야. 단지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을 사회에서 아직 이용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도덕성이나 연대의식을 보면, 노동하는 사람들이 미래의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는 걸 느끼지. 호단의 말이 이어졌다. 스페인에 온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 바로 노동자들이지. 이들 편에 선 부르주아 출신들은 자신의 계급과 절연한 거야.^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 사실 역시 노동자 계급의 미래를 암시하는 거야. 노동자는 누구도 자기 가치를 자각하려고 자신의 출신과 단절할 필요가 없어. 반대로 그의 전 잠재력은 바로 자신의 출신에 있지. 부르주아 계급의 짐을 진 우리들은 오히려 우선 자신의 출신에 맞서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지. 호단은 말했다. 여러 면에서 자신의 계급을 부정해야 하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자신의 계급을 진보적 계급으로 긍정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길보다 어려운 법이지.(저항1,402)
내가 말을 받았다. 우리가 그 점에서는 비열한 부르주아지보다 앞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상황을 넓게 조망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연대해서 성취하는 것보다, 그들은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어떤 경우 더 많은 것을 성취하죠. 하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수천 개의 단어와 개념을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그 때문에 우리가 주눅 들었던 적은 사실 결코 없었어요. 우리가 문학이나 예술, 그리고 학문적 주제를 놓고 토론할 때면, 일단은 차용해서 하는 얘기라는 것, 장차 구체화하고 실행해야 할 것의 스케치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준비였던 셈이죠. 지금은 더듬거리지만, 언젠가 일관되고, 지속적인 언어로 바뀔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요. 지금 우리가 미처 표현해내지 못하는 그것을, 10년, 20년 뒤면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지요. 그런 대화를 할 때면, 우리는 언제나 오래 살기를 원했어요. 우리의 불리함을 만회하려면 오래 사는 게 전제겠죠.(저항1,403)
호단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네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아야 해. 겸양은 어떤 열등감과 상관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이런 시대에는 우리의 기대수명이 줄어든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만 해. 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거나, 직접 기록하지 않는다면, 너를 향한 선입견에 스스로 따르는 거야. 우리가 원하는 노동자 문학은 처음부터 모든 경계를 넘어서야만 해. 노동자 문학이 부르주아 계급의 문학에서 전제하는 그런 교양 수준에 도달하기를 기다려서는 안 돼.노동자가 쓴 작품에 다른 모든 예술 작품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장점이라고 봐.(저항1,403-404)
그는 한 나라가 사회 경제적 배경들을 은폐해야 하면, 언제나 이국 취향을 칭송하는 법이라고 했다. 한 나라가 자신을 뭔가 색다르고 비밀스럽게 꾸며댈수록, 불의와 빈곤과 불행은 더 큰 법이라고 했다. 여행자용 엽서들이 깔끔하면 할수록, 그 나라는 소요로 들끓는 거라고 했다. 호단이 말했다. 모든 대륙에서 어떤 도시, 어떤 지역이든 그곳의 물질적 조건들을 알고 있으면 흥미로웠지. 도덕, 관습, 신화, 춤, 음악에서 다른 점을 찾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 동일한 기원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을 찾아보곤 했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었어. 이상한 부족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스스로 세상을 모른다는 걸, 지적 오만에 빠져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야.(저항1,405)
그는 과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명제로 그런 인본주의적 입장에 부응했다고 말했다. 1917년 10월, 레닌은 인도, 중국, 남미 국가들, 그리고 아직 속박 상태인 아프리카가 곧 따라올 것이라고 판단했지. 하지만 그 후 20년간 마구 뻗어간 제국주의의 힘이 혁명의 줄기를 끊어버렸고, 산발적인 봉기들만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이런 상황은 여러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해방 투쟁들이 해당 국가에만 제한되고, 국제주의 이념이 뒤로 물러나고 실종^되어버리지. 또 혁명에 대해 더 이상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결국 우리끼리 싸우게 되고. 소련이 스페인에 군사 원조를 하는 것은 공동의 토대를 다시 마련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을 거라고, 호단은 덧붙였다. 그러나 이 지원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소련으로서도 모든 힘을 자국의 방어에 쏟아야 하니,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확실치가 않다고 했다.(저항1,405-406)
호단이 말했다. 이민자와 정치적 망명자는 달라. 이민자는 자신이 낯선 세계, 어떤 진공 상태에 처했다고 느끼지. 고향의 익숙한 것들이 없는 게 고통스럽지. 종종 이민자는 자신에게 닥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아. 개인적인 고통이나 변화를 견뎌야 하는 어려움, 새로운 나라에 적응해야만 하는 어려움으로 늘 힘들어하지. 반면 정치적 망명자는 추방을 결코 수긍하지 않아. 늘 자신이 추방된 이유를 생각하면서,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로 노력하지.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우리는 망명 생활에서 생기는 피로 현상이나 역할 부재에서 비롯되는 정신장애 조짐에 적극 대응해야 해. 우리는 항상 자신을 역사적 사건들의 요청에 따라 다른 장소로 배정된 행동가로 생각해야만 해.(저항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