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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성욱 |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지옥도’는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의 지도로, 지옥을 점점 깊어지는 아홉 층의 구덩이로 묘사했다. 그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쓰여 있다.고대로부터 전쟁은 인간에게 지옥 같은 고통과 절망을 안겼다. 그러나 그런 전쟁 때문에 의학이 발전한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단테를 안내한 베르길리우스처럼 나는 독자들을 고대의 트로이전쟁에서 중세를 거쳐 마침내 아비규환 같은 현대의 전장으로 안내하려 한다. 독자들은 지옥 같은 전장의 참혹함을 볼 것이나, 지옥에서 천국을 보듯이 이 연재가 끝날 때는 전쟁이 꽃피운 의술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듯이….
내 몸에 붙은 영웅의 이름…아킬레스건의 유래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이 중국에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은 ‘중국 사업은 아무개 회장의 아킬레스 힘줄이다’라고 표현했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외래어인 ‘아킬레스건, 아킬레스 힘줄’의 원래 의미를 잘 살리면서 우리말의 단어 구성에 맞는 대체어로 ‘치명적 약점’을 선정하기도 했다.
‘아킬레스 힘줄(Achilles tendon)’은 사람 몸의 한 부분으로 종아리의 근육들인 장딴지근과 가자미근을 발꿈치뼈에 연결해 주는 힘줄이다 .
이 구조물의 이름을 처음으로 지어낸 사람은 네덜란드의 해부학자이자 외과 의사인 베르헤옌(1648∼1710)이다. 그는 저서 ‘사람 몸 해부’에서 이 구조물을 ‘chorda Achillis’라고 기술했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기술된 용장 ‘아킬레스’의 이야기를 읽고 이 이름을 붙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족의 왕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졌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비너스)가 사과를 갖기 위해 서로 다투다가, 신탁을 받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고 그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결정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택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약속대로 파리스에게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종아리의 근육들인 장딴지근과 가자미근을 발꿈치뼈에 연결해 주는 발꿈치 힘줄(아킬레스 힘줄).
아킬레스, 펠레우스 왕·테티스 여신 사이에서 탄생
외교 사절로 방문한 파리스가 왕비를 납치해 가자,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연합군을 조직해 파리스를 공격했고 이리하여 트로이전쟁이 시작됐다. 연합군의 영웅 아킬레스는 바로 그 펠레우스 왕과 테티스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이 아이를 불사신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아이 몸을 스틱스 강에 담그면 칼과 창도 뚫지 못하는 강철의 몸이 된다고 알려주었다. 테티스는 아킬레스의 발뒤꿈치를 잡고 강 속에 몸을 담가 강철로도 뚫지 못하는 몸을 가지게 했지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어 강물이 닿지 않았던 발뒤꿈치만큼은 불사가 아니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연승을 거둔 아킬레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쏜 독화살을 발뒤꿈치에 맞고 전사했다.
여신들의 시기심으로 트로이전쟁 발발?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읽어보면 당시(BC 13세기) 전쟁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뜻이었다. 여신들의 시기심에서 출발해 트로이전쟁이 일어났고,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군이 싸울 때도 관장하는 신들의 기분에 따라 형세가 바뀌었다. 아킬레스가 잘 싸우는 것도 여신의 뒷배가 든든해서였다.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은 사람들은 트로이전쟁이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었다. 그러다가 독일의 슐리만(1822∼1890)이 1870∼1873년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해 역사적 근거를 얻게 됐다.
‘뚝!’소리와 함께 아킬레스 힘줄 파열되기도
국가대표 체조선수가 아킬레스 힘줄의 파열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낸 일이 있다. 또한 프로농구 선수들도 이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은퇴했다는 소식을 가끔 듣는다. 아킬레스 힘줄은 발뒤꿈치에 걸리는 체중을 최종적으로 지탱하는 근육의 하나이며 걷거나 뛸 때 하중이 걸리는 근육인지라 오래 달리거나 점프를 자주 하거나, 헛디딜 경우 부상할 수 있다. 파열 시 뒤에서 발꿈치를 걷어차인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뚝!” 하는 소리가 들린다. 파열된 부분을 봉합하는 수술이 원칙이지만, 수술이 어려운 고령에는 석고 고정을 하기도 한다. 병사들도 전투체력 훈련이나 행군 후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보행에 지장이 있는 경우 군의관을 만나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