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수상자 : 윤윤례
수상년도 : 2022년
수상작 : 따뜻함과 향기가 흐르는
— 서금복의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을 읽고
따뜻함과 향기가 흐르는
십팔 세 소년 피아니스트 머리카락이 폭우 속의 새처럼 날았다. 격랑에서 솟구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었다. 건반을 바다 삼아 혼신을 바쳐 달리던 그의 손이 머리 위에서 갑자기 멈췄다. 손가락에 집중된 중력이 사라진 곳에 껍데기란 껍데기는 전부 소멸한 뒤였다. 극적인 파이널, 군더더기 없는 결말이었다.
소년의 피아노 소리가 가슴을 울릴 때, 서금복 작가의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을 읽었다. 가정주부로서 부단히 글 밭을 일구며 살아온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의 비상과 환호는 골방 속에서 건반과의 사투 후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서금복 작가의 이 뭉클한 글들도 작가로서의 고뇌와 갈등 위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20년 동안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하신 친정아버지 구완을 하느라 허리가 아프고 관절이 다 닳은 어머니를 보는 딸의 마음은 무겁다. 아버지는 작가인 딸에게 ‘감사패’에 관해 물으신다. 퉁명스러운 딸의 반응에는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진심을 안 순간 딸은 친정에 다녀올 때마다 느꼈던 아픔과 슬픔이 옅어진다. 아버지가 계획하고 있는 ‘감사패’는 없는 집으로 시집와서, 20년 동안이나 남편의 병구완을 하는 아내에게 바치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딸에게 내준 「숙제」는 작가의 기지로 세상에 둘도 없는 ‘감사패’가 되었을 것이다. 평생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안겨준 남편의 손을 통해 감사패를 받는 어머니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총을 쏜다고 대장의 권위가 높아지지 않는다. 큰소리를 내고 가족을 억압한다고 아버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글로써 슬픔을 깊게 표현한다고 독자가 그 깊이만큼 공감하지 않듯 말이다. 작가는 감상으로 눈물을 유도하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처럼 턱 던져놓고 독자의 가슴을 친다. ‘친정 식구와 전세버스를 타긴 처음이었다.’ 「빨리빨리 아버지」도 그렇다, 아버지 장례 이야기를 이렇게 가족과 단체로 놀이를 가듯 담백하게 시작했다. 이런 무덤덤함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허리 조임이 느슨해진 바지를 입었던가? 트램펄린에서 점프를 하던 형의 바지가 자꾸 내려온다. 자신을 따돌림 하는 형을 위해 동생이 바지를 벗어 주는 장면을 보며, 자신은 누나로서 동생들에게 텔레비전 속 아이처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자책한다. 작가는 「벤틀리가 바지를 벗었다」에서 아픈 아버지를 향한 동생들의 마음이 소홀하다고 느낀다. 동생들이라고 아픈 아버지를 외면했을까! 빛의 파장이 똑같지 않듯이 마음 씀의 방법이 달랐을 뿐이었다.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다. 우리는 달의 뒷면보다 심해(深海)에 대해 더 알지 못한다고. 먼 곳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알고 싶어서 탐구하고 연구하지만, 가까이 있는 가족들의 마음에는 등을 돌린다는 뜻일 게다. 사람은 때로 깊은 바다 밑바닥으로 침몰한다. 마음도 그렇다.
누구도 깊은 물에 잠긴 나의 마음과 당신의 심연을 살피려 하지 않을 때, 서럽고 고독하다. 내 등의 짐에 몰두하느라 동생들의 무심함에 서운했던 작가는 벤틀리를 보고서야 동생들이 자신에게 벗어준 바지를 알아챈다. 아이의 행동이 어른 가슴에 ‘너른 터’를 마련해 주었다. 코가 매캐했다.
글 쓰는 행위 앞에서 누구보다 엄숙했던 작가 황순원. 그의 작품 「소나기」에서 윤 초시의 증손녀가 소년에게 묻는다.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냐고. 소년이 대답한다. 마타리꽃이라고. 초가을 양평의 들판엔 마타리꽃이 사금처럼 반짝인다.
그런 곳, 양평에서 작가는 친정어머니 칠순 잔치를 계획한다. 겸해서 부모님 ‘금혼식’도 함께 하자고 판을 키운다. 자꾸 커지는 ‘판’의 책임자는 나란한 치열로 책날개에서 웃고 있는 작가다. 부모님께 헌정할 사진첩을 만들고, 가족 문집을 기획하고 가계도까지 해냈다. 그날의 풍경이 담긴 사진에선 ‘가족꽃 향기’가 풍겨서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꽃 중의 꽃은 ‘가족꽃’이고, 향기 중의 향기는 ‘가족의 향기’가 아니겠는가. 양평의 어느 뜨락을 상상해 본다. 「가족꽃 향기 가득한」 그 뜰에 나도 서 있고 싶다.
나에게 양평이란 고을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고였다가 떠나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날아와 쌓이는 곳이다. 「그 남자의 이사」 속 남자가 작가의 양평 집에 남기고 간 러닝머신 위에, 강아지 털빛 같은 눈이 쌓이듯 인연의 무게는 보이지 않게 무겁다. 작가의 양평 집에 ‘이사’를 왔다가 자신이 사놓은 부지에 집을 짓지 못한 채 하늘로 영영 ‘이사’를 가버린 남자. ‘자기의 집’을 짓지 못한 이유는 꿈인 ‘노인복지센터’를 짓기 위한 땅을 샀기 때문이었다. 꿈은 실현되는 듯했으나 사기였다. 남자의 소망이 무너진 자리 위로 종양이 뿌리를 내렸다. 텃밭을 일구려고 주말에 들르는 작가 부부를 위해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과 노래를 들려주던 남자는 조관우 노래 가사처럼 이승의 커튼을 젖히고 먼 곳으로 ‘이사’갔다. 그 겨울, 그가 사놓은 땅은 그대로 하늘 아래 누워 느긋하게 겨울 햇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 길을 가는 우리의 발부리 앞에는 수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열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발을 딛는 「소나기」 속 소년의 앞길을 방해하는 징검다리가 있을 수 있고, 가족의 반목과 우환, 자녀들의 실패와 내 꿈의 좌절이 있을 수 있다. 걸림돌은 곧 우리의 ‘환부’가 된다. 아픈 곳을 건드리면 소스라친다. 그러기에 삶은 곧 아픔이다. 이 아픔들은 어디엔가에, 누군가에게 토해 놓아야 내가 산다. 나를 털어놓는 행위는 대중 앞에서 발가벗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렵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말했다. ‘두려움이 실명이 될 수 있다’라고. 두려움 때문에 환부를 부여안고 눈이 먼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삶의 생채기 앞에서 실명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감추며 책을 엮어낸다. 그럼에도 서금복 작가의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에는 따뜻함이 흐르고, 향기가 있다. 작가의 주말 집, CCTV를 거꾸로 돌리면 아직도 상추밭 뭉개고, 콩잎 다 따간 고라니가 발로 상추를 일으켜 세우고, 콩잎을 게워내고, 한 장 한 장 붙여 놓고 뒷걸음질로 달아나고 있겠지. 온 들판의 꽃이 수득수득 볼품없는 계절이 온다 해도 양평의 길 위에서 나는 웃을 것만 같다. 고라니처럼 꾸밈없는 글을 선물해 준 시인이자, 수필가인 서금복 작가의 글이 양평 ‘서후리 숲’의 자작나무처럼 빛나서 그렇고, 수필을 읽는 묘미를 알게 해준 책이기 때문이다. 임윤찬의 힘 찬타건(打鍵)처럼 카타르시스를 맛본 수필집이기도 하다.
수상 소감
‘글 문’의 실체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평 강씨봉 휴양림의 단풍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그러나 어둠이 빨리 왔다. 계곡을 벗어나니 새로운 아침을 맞는 것처럼 가을빛이 고왔다. 함께 온 친구가 봉선사의 산문(⼭⾨) 건립공사 이야기를 했다. 사찰 입구에 서 있는 일주문의 존재는 알지만 산문의 실체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속적인 삶에 머물 것이냐, 불가에 입문할 것이냐를 고뇌하는 경계가 산의 문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죽은 누이를 생각하는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에서 산문(⼭⾨)이 관념의 문이 아니란 것을 드디어 깨닫는 순간이었다. ‘누이야, 가을 산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저절로 시의 한 구절이 튀어나왔다.
초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이어진 구리 문화원의 수필 강의실은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의 열기로 깊어가는 밤이 아쉬웠다. 비로소 꿈에 그리던 문학 수업의 문턱을 넘는 날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문이 아닌 ‘글 문’에 서서 곱고 친절하게 맞아준 수필 반선생님이 『수필 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을 선물해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내게 있어 그 책은 ‘글 문’의 실체다. 감사의 마음을 나는 독후감으로 대신했다. 이런 영광이 어리둥절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눈빛 반짝이며 각자 써온 글에 울고 웃던 날을 생각한다. 19기 구리문예대학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탐 책탐>ㆍ<글 너머> 가족 덕분에 하루하루 성장하는 나를 느낀다. 함께 하는 독서는 서로를 향한 격려와 도약이다. 그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윤윤례 ylygreen0362@daum.net
한별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19기 구리문예대학 수료.
심사평
심사위원|유혜자ㆍ지연희ㆍ최원현
한국수필에서 독서문학상이라는 독창적인 상을 제정하여 시상한 지 다섯 번째를 맞았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독후감이나 독서감상문이 아니라 작가가 기존 작품을 소재로 또 하나의 문학작품을 탄생시킨다는 어려움에서인지 응모작의 숫자는 별로 늘지 않았으나 질적인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낄 수있어서 기쁘다.
지정 작품이 많았음에도 9작품을 대상으로 11분의 작품이 응모해왔다. 대개 좋은 작품을 대상으로 한 독서감상문이 우수했다. 대상으로 선정된 문민순 님의 「솔개 꿈을 이루다」는 김선화 작가의 『솔개』를 읽고 쓴 독서문학이다. “새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솔개, 그래서 어른들도 쩔쩔매며 무서워했다는데,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그 웅장한 날갯짓이 부럽게 느껴졌다.”는 작가의 고백에 이끌려 여러 작품들을 감상한다. 삶도 생각도 자신과 닮은 듯 공감하며 작가와 교감을 나누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작가의 삶이 힘차게 창공 날개를 꿈꾸며 살아가듯 나 또한 읽고 느낀 만큼 꿈도, 글도 글에 대한 욕심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는 희망적인 결미이다. 최우수상의 박정화 님은 『나도 낙엽인 것을』(김용대 지음)을 읽고 「내 삶의 궤적에 치유의 밑줄을」이라는 독서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 낙엽이 편안하고 휴식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게 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진통을 앓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모습으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우수상은 『수필쓰기에 딱 좋은 사람들』(서금복 지음)을 읽고 쓴 윤윤례 님의 「따뜻함과 향기가 흐르는 수필들」이 차지했다. 기쁨보다는 애달프고 힘든 삶의 내용으로 채워진 작품들에 연민하며 향기와 따뜻함이 흐름을 감지해낸다. 화려한 비유와 필력이 과장된 느낌이 있으나 읽는 이에게도 동참하게 하는 힘을 준다고 보겠다.
세 분의 입상자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 유혜자(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