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차례’의 어원
「학기(學記)」의 마지막 구절은 ‘三王之祭川也(삼왕지제천야) 皆先河而後海(개선하이후해) 或源也(혹원야) 或委也(혹위야) 此之謂務本(차지위무본)’이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의 띄어 읽기에 따라 그 뜻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듯, 한문 역시 그 띄어 읽기에 따라 천양지차의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특히 띄어쓰기가 안되어 있는 한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한문 해석의 가장 큰 오류의 비롯됨이라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三王之祭川也(삼왕지제천야)’ 또한 그 한 보기[례(例)]로 나타난다.
대개 삼왕(三王)에서 끊어 하(夏)·은(殷)·주(周) 3대의 왕들로 보아 주어로 해석한다. 이어 지제(之祭)를 제사지내러 가다는 동사로, 천야(川也)를 보어(목적어)로 보며, 전체적으로 내[천(川)]에 제사를 지낸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뒷부분에서 먼저 강[하(河)]에 지내고, 후에 바다에서 지내는 곧 두 번 지내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면 천야(川也)에서 어조사/야(也)의 의미(문장의 끝에 붙여 단정·부름·감탄·의문의 뜻을 나타낸다)가 쉽게 무시되는 억지가 생긴다. 이 부분의 의미는 제사를 비유로 들어 가르침(혹은 배움/學)의 목적은 그 근본 곧 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에 힘쓰게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단락이다. 즉, 제사의 근본 의미를 비유로 제시한 의미이다.
따라서 삼왕지제(三王之祭)를 주절로 끊어 해석해야 한다. 곧 삼왕들의 제사는 내[천(川)]와 같이 지냈다는 뜻이다. 강을 나타내는 한말글 강(江)과 하(河)는 금문부터 나타난다. 즉, 일반적인 강의 뜻은 갑골문에 나타나는 내/천(川)이었는데, 금문시대부터 강(江)과 하(河)로 구분하여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고랑[공(工) > 강]에 담긴 물[수(水)]의 구조적 특성에 따른 강(江)과 경계(지역)를 가르는[가(可) > 하] 물[수(水)]의 현상적 특성에 따른 하(河)로 구분했다. 즉, 일반적인 ‘내[천(川)]’와 ‘고랑(강)물[강(江)]’ 그리고 ‘가람[하(河)]’등의 한말이 그것이다. 천(川)의 갑골문은 수(水)의 가운데 부분 ‘≀'이 세 개가 좌우로 겹쳐진 자형이다. 즉, ‘갈려진 고랑(두둑) 사이로[≀≀] 천천히/처지어 내려[천] 갈려지며 흐르는[≀]’ 얼개이다. 그러면 한말 ‘내’는 ‘내리는 이’의 준말이다.
결국 삼왕의 제사는 물 흐르듯이 행한 제사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두 다(모든 제사는/삼왕들 모두의 제사는)[개(皆)] 먼저 강물이 흐르듯이 시작하여 후에는 바다에 흘러들 듯이 마친다는[皆先河而後海(개선하이후해)] 의미이다. 언제나 (먼저는) 근원이었고[或源也(혹원야)], 늘 (나중은) 쌓임 그 결실이었다[或委也(혹위야)]. 반드시 근본에 힘써야한다고 일컫는 말(뜻)이 바로 이것이다[此之謂務本(차지위무본)]. 따라서 가르침 또는 배움은 반드시 근본에 힘써야 하고, 그 근본은 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역설(力說)하기 위한 비유로 삼왕의 제사와 견주어 나타낸 것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역설적으로 제사가 삶의 근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시 근본이란 무엇인가? 근본은 처음의 일이고, 처음은 마지막의 다음이다. 마지막이 처음이고, 처음이 마지막이다. 하루는 해가 밤낮으로 출렁거린 리듬 그 하나의 사이클이다. 하루의 리듬은 다시 12 마디 시간의 리듬이듯, 하루의 처음은 자시(子時)이고 마지막 또한 자시(子時)이다. 나아가 보름달에서 다음 보름달까지 대략 30일 리듬이 달의 한 사이클이다. 12달 마디가 이루는 한 사이클이 또한 한 해 리듬의 시작이다. 이처럼 우주는 끝없는 자기복제의 프렉탈 구조를 이룬다. 자기복제 첫 마디의 리듬 그 사이클이 바로 근본의 의미이다. 우리의 첫 리듬은 천명을 받아 잉태되는 사이클이다. 천명의 리듬이 끝없이 자기복제하며 프렉탈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샘물로 솟아 강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내[천(川)]의 한 사이클이 물의 근본이고, 그러한 리듬의 한 사이클처럼 제사가 진행되는 이유 또한 같은 의미를 공유/공명하기 위한 바램과 성찰의 요식 절차이다.
흔히 ‘차례’는 다례(茶禮)의 다(茶)가 차를 나타내며 차(茶)로도 발음됨에 따라 차례(茶禮)의 한자어로 알고 있다. 그래서 차례는 간단히 차(茶) 한 잔을 올려놓고 드려도 무방한 명절제사의 뜻으로 설명한다. 명절(名節)은 절기(節氣)와 마찬가지로 그 한 해의 시작과 마침의 사이클에 나타나는 마디와 같다. 그 마디의 ‘차례(순서)’로 ‘ᄎᆞ례’의 한말이다. 곧 ‘차츰차츰(차곡차곡) 차(채워)가며[차] 리어(잇달아, 계속하여)[려] 니르ᅘᅧ다(일으키다)/니스취다(잇대다)[이]’의 준말이다.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 이루어 맺히는 얼의 리듬(파동) 그 사이클이 차례대로 차례차례 이어지는 뜻이고, 어느 한 마디의 차례에 이르러 그 차례를 염원과 성찰로 드리는 제사의 차례(순서)에 대한 요식절차이기도 하다. 곧 명절제사가 차례제사이다.
기제사나 차례제사나 그 진행되는 순서 그 처음부터 끝까지의 절차는 시간 마디의 리듬이 출렁이듯, 물[천(川)]의 사이클이 흐르듯, 근본 프렉탈 그 잉태와 출산의 한 과정과 맥이 닿아 있다. 나아가 모든 제사상의 원리 또한 근본 프렉탈에 수렴된다. 다례(茶禮)는 차례와 다른 한자어이다. 곧 차례나 제사를 차[다(茶)]로 지내는 의례로, 차례를 간략화/간소화 시킨 것일 뿐이다. 또는 본래 다도(茶道)의 의미였으나 한말‘차례’를 한자로 음차(音借)하면서 제사의 의미로 쓰이자 다도(茶道)로 구분했을 수도 있다. 덧붙여 단순한 순서를 나타내는 의미의 차례(次例)와 서로 구분 짓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다(茶)는 ‘나를[여(余)] 다려낸(우려낸)[다] 풀(물)[초(艸)]’의 얼개로 제사상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뜻이기 때문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