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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어김없이 늦게늦게 발제문 올립니다.(새벽이긴 합니다만) 죄가 쌓여만 갑니다.
민족해방과 노동해방
−맑스-레닌주의 민족론−
홍 승 용(현대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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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의 한일 경제전쟁은 민족적 적대가 자본주의적 지배관계와 얼마나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는지를 새삼 환기시킨다. 또한 ‘제국주의’가 결코 지난 세기에 사멸한 역사적 개념은 아니라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일본의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솔직히 드러냈다. 타국 대표를 상대로 하인 꾸짖듯이 면전에서 ‘무례하다’고 말하고 정권교체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의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반복해서 늘어놓을 수 있는 패권주의적 의식구조, 관제언론을 통한 무비판적 애국주의 및 타민족에 대한 혐오 양산, 이 흐름에 제동을 걸만한 반대운동세력의 무기력 상태 내지 광범한 정치적 무관심, 이런 사회상을 뒷받침해주는 기술독점과 경제력⋅군사력 혹은 이 물적 토대 서열의 동요, 기술 내지 생산력의 불균등 발전경향으로 인해 후발 경쟁국과 시장 및 이윤 분할 변동을 중심으로 벌일 수밖에 없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 등등은 1세기 전 열강들을 세계대전으로 몰아갔던 주요 조건들의 조합과 무시할 수 없는 일치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코앞에 닥친 미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 그리고 미국의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계기로 증폭되는 군사적 불안요인 등이 함께 뒤엉켜 요동하는 상황은 제국주의전쟁의 전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한국은 친일 역사 청산 실패로 인한 그 동안의 대일 정치⋅경제⋅기술적 예속상태, 그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한 국내 하청업체들의 기술개발을 홀대해온 대기업들의 이력 등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광범한 불매운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인들의 몸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식민지 경험은 일본의 공격에 맞서는 강력하고 정당한 저항의 동력이 되고 있다. 이 전쟁의 결과들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한국의 기술력⋅생산력은 일본이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인 듯하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경제의 탈일본화는 어느 정도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전쟁 과정에서 야기될 피해가 노동자 대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된다. 자본권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극우 야당은 심지어 이 와중에 벌써 ‘민부론’이라는 이름 아래 미래 경제전략의 일환으로, ‘대체 근로 전면 허용, 도급 파견 가능, 직장(시설)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연장,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삭제’ 등등의 방안을 내놓으며 노동운동 무력화를 공공연히 벼르고 있다.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추구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오늘의 위기국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운동 대신 불매운동을 하는 것으로 족한가? 일본 제국주의를 격파하는 삼성의 눈부신 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국내의 집요한 친일세력과 댓글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본분을 다하는 셈인가?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 중에 ‘세계대전을 내전으로’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맑스나 엥겔스라면, 또 레닌이라면 오늘의 경제전쟁 내지 민족적 갈등 상황에서 노동해방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민족해방과 노동해방을 위해 우리가 다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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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에게 민족문제는 계급문제에 비해 부차적이다. 그들은 이러한 배치의 근거를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자체에서 찾는다. “부르주아지의 상품의 싼 가격은, 부르주아지가 모든 만리장성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완고하기 그지없는 증오심을 굴복시키는 중포이다.” 「공산당선언」에 따르면, 부르주아지가 만들어내는 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민족의 일면성⋅고립성은 허물어지고, 민족 간의 분리와 대립은 소멸해간다. “민족들의 국민적 분리와 대립들은 이미 부르주아지의 발전과 더불어, 상업의 자유, 세계시장, 공업생산의 천편일률성 및 그에 상응하는 생활상태의 천편일률성 등과 더불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선언418)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속에서 민족적 분리가 점차 소멸해간다고 파악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따르는 이러한 변화가 인간해방의 조건을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과거의 민족적 고립상태와 비교해 원칙상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미래사회에서 민족적 분리와 대립은 더 약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선언418)
이처럼 자본주의의 발전을 과거의 생산양식과 대조해 진보로 보는 기본입장은 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한 맑스의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국의 증기력과 자유무역은 인도 공동체의 경제적 기초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끔찍한 곤궁을 수반하는 것임을 명시하면서도 맑스는 이 과정의 진보적 혁명적 측면을 강조한다. 즉 이 과정은 협소한 촌락공동체에 기초하는 인도의 전제정치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인도 인민의 해방과 생활 개선을 위한 물적 전제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맑스는 영국 부르주아지가 이룩하는 이 기술진보 과정이 인도 인민의 해방이나 생활조건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이 생산력들이 인민의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단서를 붙인다. 부르주아 시대 내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진보적 의의는 ‘새로운 세계의 물적 토대를 창조’하는 데에 한정되는 것이다.(인도425)
이 경우 인도문화에 대한 맑스의 피상적 이해와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오늘날의 관점에서 특히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다시 들끓고 있는 민족갈등들을 근거로 혹은 다양한 민족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려는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민족적 분리와 대립의 소멸 테제에 대해 사실인식 차원에서만 아니라 가치판단의 차원에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서 소규모 민족 공동체들이나 봉건적 국가단위들이 통합되어 온 점을 감안할 때, 맑스의 테제는 완결상태에 대한 진단이 아니라 발전경향의 차원에서 살아 있다. 그의 ‘유럽중심주의’ 역시 자본주의가 보편화되는 정도에 따라 보편적 타당성을 얻으며 유럽중심주의를 탈피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발전경향의 문제와 별도로, 다양한 민족문화의 가치들은 교환가치와 자본증식의 관점으로 그것들을 평가하는 자본주의보다, 사용가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좀 더 존중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민족적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차이를 차별의 발판으로 삼아 착취하고 지배하려 드는 자본주의 내지 제국주의 단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맑스도 이런 필요성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맑스가 영국의 인도 지배에 담긴 진보적 성격을 인정한다고 해서 인도 인민에 대한 영국 부르주아지의 무자비한 지배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그는 세포이 반란기(1857~1858) 세포이 병사들의 잔인한 행위는 영국인들 자신의 행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인류 역사에는 응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응보의 무기는 피해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해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역사적 응보의 법칙이다.”(인도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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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에 따른 민족적 분리의 점차적 소멸을 전제한다면, 프롤레타리아 해방운동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보편적 생산력의 발전 및 보편적 교류의 확립과 더불어 ‘지역적으로 국한된 개인들은 세계사적 보편경험을 가진 개인들로’ 변해간다. “대공업은 하나의 계급을 창출해 냈다. 그들은 모든 국민들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민족이란 이미 죽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독일115) 교류의 확장은 지역적인 공산주의를 폐지시킬 것이며, “경험적으로 공산주의는 오로지 ‘단 한 번에’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배적인 민족들의 행위로서만 가능하며, 이것은 생산력과 그와 연결된 세계적 교류의 보편적 발전을 전제로 삼는다.”(독일74) “공산주의 혁명은 결코 일국적인 혁명이 아니라 모든 문명국들에서, 즉 적어도 영국, 아메리카,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혁명이게 될 것이다. 이들 각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은,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발전된 공업, 더 큰 부, 더 큰 양의 생산력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혹은 급격하게 혹은 완만하게 전개될 것이다. (…) 공산주의 혁명은 하나의 세계혁명이며, 따라서 또한 세계적 지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맑스는 특히 영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나라들 가운데 영국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대립이 가장 발전되어 있는 바로 그러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영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영국 프롤레타리아들의 승리는 억압자들에 대한 모든 피억압자들의 승리를 위해서 결정적입니다.”
이러한 진술에서도 그것이 역사적 현실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보다 경향적으로 관철되고 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어느 정도 그러한 경향이 범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영국을 선두로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길들이기 위해 특히 운동 지도부를 매수하여 노동귀족화하는 현상이 광범하게 벌어졌고, 한국에서는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의 분리 등을 통해 맑스와 엥겔스가 예상하던 형태로 노동자들이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게 되지는 않고 있다. 또한 러시아 혁명 이후의 사회주의 역사를 생각하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배적인 민족들의 행위’라는 구상도 역사적 경험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국적 자본의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고려할 때, 노동운동이 각 민족단위 혹은 국가단위로 고립된 상태에서는 근본적 변혁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 점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동시혁명론’ 혹은 ‘세계혁명론’에서 그 ‘동시’의 구간을 얼마나 넓게 혹은 좁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밝히는 맑스와 엥겔스의 다음 테제에서는 국제주의의 기본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문명국들 내에서의 단결된 행동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첫째 조건들 중의 하나이다. 한 개인에 의한 다른 개인의 착취가 폐기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한 국민에 의한 다른 국민의 착취도 폐기될 것이다. 한 국민 내에서 계급들의 대립이 없어짐과 아울러 국민들 상호간의 적대적 자세도 없어질 것이다.”(선언418) 엥겔스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민족들을 이간질하는 것, 어떤 민족을 억압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을 이용하는 것, 그리하여 절대적 지배권의 유지를 도모하는 것−이것이 지금까지의 권력자들과 그들의 외교관들의 기술이고 작업이었다. 독일은 이 점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 독일은 이웃 민족들을 자유롭게 하는 그만큼 그 자신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과연 국제주의가 현실적으로 의미 있게 구현된 적이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바젤선언(1912)과 대조되는 제2인터내셔널의 변질, 혹은 중소 이념분쟁이나 베트남과 중국 간의 전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코민테른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할 수 있다. 좀 더 일반적으로 전쟁기간에 비등하는 배외주의나 평소에도 흔히 경험하는 국가이기주의를 감안하여 국제주의를 무의미한 구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주의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의미 있는 수준에서 구현되었던 역사적 사례들까지 애써 지워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페인 내전기의 국제여단처럼 잘 알려진 경우는 아니지만, 엥겔스가 1870년대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시기의 독일 노동자들의 태도와 관련해 서술하는 내용은 국제주의적 실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1870년에 들어서자마자, 독일 노동자들 앞에는 중대한 시련이 가로놓여졌는데, 보나파르티즘적 전쟁의 발발과 그 당연한 귀결로서 독일에서의 일반적인 국민적 열광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 노동자들은 한순간도 혼란되지 않았다. 민족 쇼비니즘의 영향은 그들에게 아주 조그만 흔적도 남길 수 없었다. 승리를 위한 광기 속에서도 그들은 냉정을 잃지 않고 ‘프랑스공화국과의 공정한 강화와 무병합’을 요구하였으며 계엄조차도 그들을 침묵시킬 수 없었다. 전쟁의 영예도, 독일제국의 영광이라는 화려한 수사도 그들을 유혹하지 못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전 유럽 노동자의 해방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곤란한 시련을 받았으면서도 이처럼 훌륭하게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노동자는 어느 나라에도 없으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엥겔스가 말하는 시련은 집회해산, 언론인과 연설자들의 체포, 투옥, 해외추방, 재산몰수 등등을 포함한다. 엥겔스는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독일 노동운동이 강력하게 성장했음을 자랑한다.(혁명사24)
오늘날에도 특히 전시체제가 시작될 경우 민족주의 내지 배외주의의 폭발적 열광 속에서 평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국제주의를 견지하면서 노동해방운동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역시 노동운동의 주요 당면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2인터내셔널만 아니라 코민테른도 이미 옛날에 해체되었고, 제4인터내셔널의 현실적 존재감도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국제주의를 맑스주의와 함께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이 노동해방의 전제조건’이며 ‘일국 내 계급 대립의 해소와 함께 국민들 상호간의 적대도 소멸한다’는 이념은, 야만화와 파국을 감수하면서 언제라도 일전 불사하려드는 국제자본과 호전적 제국주의의 흐름에 맞서는 노동해방운동의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현실적으로 얼마나 광범하게 혹은 효율적으로 실현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앞서는 지향목표로서 운동의 의미와 성격을 규정하고, 특히 운동의 지속성⋅보편성⋅정당성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즉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이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노동해방이 가능해진다는 전제 하에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현상확인을 근거로 운동을 포기해야만 하는 아니라, 국제적 단결을 이념적으로 지향함으로써 운동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측면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제주의는 그러한 잠재력을 충분히 내포한 채 살아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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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의 민족론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요체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당대 자본주의 발전의 본질적 경향과 노동해방운동의 현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선언418)는 명제는 국제주의의 극단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식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의 실제 활동과 그들이 처해 있던 조건, 또 그들이 「공산당선언」을 쓰던 1848년 혁명기 유럽 노동자들의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지 공허한 선전문구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식민지 경험을 뼈에 새겨온 우리의 입장에서 그러한 테제를 오늘날의 현실에 합당한 진술이라고 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국제주의를 이념으로서 받아들이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노동해방을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들은 국제주의에 국한될 수 없다.
맑스와 엥겔스도 민족 및 국가를 결코 무의미한 존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밝힌다. “부르주아지에 대항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 처음에는 일국적이다.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당연히 맨 먼저 그들 나라의 부르주아지를 끝장내야 한다.”(선언411)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해야만 하며, 국민적 계급으로 올라서야 하며, 스스로를 국민으로서 정립해야만 하기 때문에 비록 부르주아지가 생각하는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아직은 그 자체 국민적이다.”(선언418) 맑스는 이 점을 1875년의 「고타강령 비판」에서도 다시 확인한다. “노동자계급이 도대체 투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국에서 계급으로서 조직되어야 하며 국내가 그들의 투쟁의 직접적인 무대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맑스는 다시 계급투쟁의 일국적 성격이 실질적으로는 국제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족 국가의 테두리’, 예를 들면 독일 제국의 테두리는, 그 자체가 다시 경제적으로는 ‘세계시장의 테두리 안’에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국가체계의 테두리 안’에 있다. 일류급의 상인이라면 누구나, 독일의 상업은 동시에 대외무역이며 비스마르크 씨의 위대함의 요체는 바로 일종의 국제정책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타380) 경제와 정치 전체가 대외무역과 국제정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관계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맑스와 엥겔스가 일국적 투쟁과 국제주의를 결합하는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 있어서 국적에 상관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 있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구별된다.”(선언412)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이 직접 당면한 목적들과 이익들의 달성을 위해 투쟁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운동의 미래를 대변한다.”(선언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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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 내지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현재의 운동 속에서 운동의 미래를 대변’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나 국제주의의 구현방법에 대해서는,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 시기(1889~1920) 독일 사민당의 우경화에 맞선 룩셈부르크의 혁명노선을 높이 평가하지만, 특히 민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룩셈부르크가 “폴란드의 민족주의에 대한 투쟁에 정신을 빼앗겨 대러시아인들의 민족주의를 망각해버렸다”고 비판한다. 연속혁명⋅세계혁명⋅영구혁명을 핵심으로 하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과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단순한 의견차를 넘어서 정치생명을 건 노선투쟁으로 치달았다. 각각의 입장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논자들도 자신의 입지나 정세판단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내릴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특히 레닌의 주장이 대체로 현실적이며 오늘의 노동해방운동에서도 참조할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레닌 역시 맑스주의자로서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 내지 ‘모든 민족들의 융합’을 옹호한다.(민족38) 그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맞서 모든 민족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것이 맑스주의자들의 임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국제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실제로는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은밀한 민족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이데올로그들을 논박한다. ‘문화적-민족적 자치’를 옹호하는 분트파와 해당파, 좌익-나로드니키, 우익 입헌민주주의파 등등이 그 대상이다. 예컨대 그는 분트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것들은 자본주의세계에서 끝까지 커다란 두 계급진영에 일치하는, 그리고 민족 문제에서 두 개의 정책(아니 두 개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서로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인 슬로건들이다. 민족문화 슬로건을 옹호하고 그 위에 소위 ‘문화적-민족적 자치’라는 완벽한 계획과 실천적 강령을 쌓아감으로써, 분트파는 사실상 노동자들 사이에서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도구로 행동하고 있다.”(민족31)
‘문화적-민족적 자치’에 맞서 레닌은 민족자결을 내세운다. 이때 그는 민족자결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힌다. “민족자결이란 이민족으로부터의 정치적 분리와 독립된 민족국가 수립을 의미한다”.(민족66) 그는 ‘맑스주의자들이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를 배반하지 않고자 한다면’ 민족자결권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민족자결권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한 기회주의이며 아직도 강력한 반동적 대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민족23)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를 옹호하는 레닌이 민족자결, 즉 ‘정치적 분리’와 ‘독립된 민족국가 수립’을 옹호하는 것은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국제주의와 민족자결을 결합하는 레닌의 논지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우선 그는 맑스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발전에 근거해 민족 문제를 파악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민족 문제에는 두 가지의 역사적 경향이 나타난다. 첫째는 민족의 삶과 민족운동에 대한 자각, 모든 민족적 억압에 대한 투쟁, 민족국가의 창출이다. 둘째는 모든 형태의 국제적 교류의 발전과 성장, 민족적 장벽의 분쇄, 자본, 경제생활 일반, 정치, 과학 등등의 국제적 통일의 창조이다.”(민족32) 맑스와 엥겔스가 주로 둘째 경향을 강조한 데 반해, 레닌은 제국주의 시대의 러시아 현실 및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상황에 비추어 첫째 경향에도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두 경향을 함께 고려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민족의 완전히 동등한 권리. 민족자결권. 모든 민족의 노동자들의 통일−이러한 것들이 맑스주의, 전 세계의 경험, 러시아의 경험이 노동자들에게 가르치는 민족강령이다.(민족120)
민족자결권을 내세울 때 레닌의 강조점은 ‘분리’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완전히 동등한 권리’에 있다. “민족과 언어의 평등을 인정하지도 옹호하지도 않는 자는, 그리고 모든 민족적 억압이나 불평등에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누구나 맑스주의자가 아니며, 심지어 민주주의자조차 아니다.”(민족33) 레닌은 ‘분리’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려는 지역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이혼할 권리’가 ‘이혼에 찬성해서 투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민족21) 뿐만 아니라 그는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민족자결권이 곧장 민족분리를 초래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대중들은 지리적이고 경제적인 유대의 가치와, 큰 시장과 큰 국가의 장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민족적 억압과 민족적 불화가 공동생활을 더 이상 못 견디게 하고 모든 경제적 교류를 방해할 때에만, 분리를 호소할 것이다. 그 경우에 자본주의발전의 이익과 계급투쟁의 자유의 이익은 분리에 의해서 가장 도움 받을 것이다.”(민족90)
‘모든 민족의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실질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레닌은 모든 민족을 억압민족과 피억압민족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부르주아 평화주의라는 시각에서나 자본주의하에서 독립된 여러 민족들 간의 평화적 경쟁이라는 속물적 공상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는 의미 없는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투쟁의 시각에서 볼 때는 아주 의미심장한 것이다.”(민족152)
이 구분에 근거해 레닌은 민족자결권과 관련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억압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는 피억압민족이 분리권을 가져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들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유대를 인정하는 것이 사실상 공허한 문구로, 순전한 위선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피억압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는 억압민족의 노동자와 피억압민족의 노동자 사이의 통일과 융합에 일차적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사회민주주의자는 언제나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영토를 합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리고 언제나 민중과 민주주의의 이익을 배신하는, 자국의 부르주아지와 무심결에 동맹을 맺게 될 것이다.”(민족152) 피억압민족의 민족주의에 대한 레닌의 관점도 명확하다. “어떠한 피억압민족의 부르주아 민족주의도, 억압에 대항하는 일반민주주의적 내용을 가지는데,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 내용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민족적 배타성으로 흐르는 경향과 엄격하게 구별한다.”(민족80)
이제 민족자결권에 대한 옹호와 국제주의의 결합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결합의 기초는 ‘타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맑스주의 이념이다. “우리는 자결, 다시 말해 독립, 즉 피억압민족의 분리의 자유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라의 경제적 세분화를 꿈꾸거나 소국가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분리의 자유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진실로 국제주의적인 기초 위에서만, 대국가와 민족들의 한층 더 밀접한 통일 및 평등한 연합을 원하기 때문이다.”(민족156) 레닌은 스웨덴으로부터 노르웨이가 분리되는 과정을 사례로 민족자결권과 국제주의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밝힌다. 노르웨이 의회는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의 분리를 결정하고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에 대해 스웨덴 노동자들은 지주들의 전쟁선동에 응하지 않았고 스웨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노르웨이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때 노르웨이와 스웨덴 노동자들의 평등하고 강고한 계급연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민족95-96)
민족자결권을 중요시하는 레닌의 입장은 러시아 혁명 직후의 민족 문제 해법에서도 드러난다. 1922년 스탈린은 민족 문제 담당 인민위원으로서 러시아 중심의 자치 지역에 그루지야를 편입하고자 했으나, 그루지야 볼셰비키는 이를 차르시대 구 러시아로의 회귀로 여겨 단호히 거부했다. 그것은 그루지야 인민들의 독립정신과도 맞지 않았다. 레닌은 스탈린이 급히 서두르는 나머지 원칙을 간과했다고 보고, 재고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레닌이 분리주의자들을 고무하는 민족적 자유주의에 빠져 있다고 반발하면서 ‘트랜스코카시아연방’이라는 수정안의 틀로 그루지야를 소비에트에 묶어놓고자 했다. 그루지야는 다시 반발했다. 레닌은 이 문제로 스탈린을 주요 공직에서 몰아낼 생각까지 했으며 당의 관료주의화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때 레닌은 억압 민족의 민족주의와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를 구별하고,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폭력과 무례행위를 저질렀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대한 비-러시아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과거 러시아가 비-러시아인에게 가했던 불신과 의심과 모욕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문제의 이러한 측면을 무시하거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비난을 아무데나 내뱉어 버리는 그 그루지야인(사실, 그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고 참으로 ‘민족주의적인 사회주의’이며 심지어는 통속적인 대러시아적 골목대장입니다)은 실질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연대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적 불공평만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단결의 강화와 발전을 방해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상한 민족’은, 설사 무관심이나 농담이라 하더라도 평등감과 그러한 평등에 대한 침해, 그리고 같은 프롤레타리아 동료들에 의해 저질러진 평등에 대한 침해에 대해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보다도 민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경우에 소수민족에 대해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양보와 관용이 차라리 더 나은 이유입니다.”
이상은 어찌 보면 사소한 주도권 싸움 같지만 민족자결과 국제주의를 대하는 레닌의 확고한 원칙적 입장과 현실감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맑스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일정하고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주어진 시기의 역사적 과정의 객관적인 내용을 정당하게 고려하는 데 있다. 이것은 먼저 어느 계급의 운동이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가능한 진보의 추동력인가를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민족131) 레닌 자신이 이러한 맑스의 방법을 누구보다도 유효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 점은 민족적 차이와 국제 공산주의 노동운동 전술의 통합 문제에 대한 다음의 글에서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민족마다 나라마다 민족적 국가적 차이들이 존재하는 한−그리고 이런 차이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세계적 규모로 이룩된 이후까지도 너무나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다−모든 나라의 공산주의 노동운동의 국제적 전술을 통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성의 제거나 민족적 차이의 소멸(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하다)이 아니라 공산주의 기본 원칙들(소비에트 권력과 트롤레타리아트 독재)을 적용하되, 이런 원칙 하나하나를 올바로 변형시키고 민족 내지 민족적 국가적 차이에 맞게 올바로 조정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성과 차이의 말살’이니 ‘획일화’니 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상투어들과도 별 상관없지만, 또한 차이를 어떤 제일원리로 물신화하는 형이상학적 심오함과도 동떨어진 실천적 사유방식이 민족해방⋅노동해방의 노선을 따라 거침없이 작동하는 것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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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기술력을 무기로 하는 아베정권의 공격은, 그에 따르는 경제적 피해를 떠나 식민지 우민들을 대하는 듯한 제국주의자들의 무례한 언동으로 인해, 촛불로 정권까지 바꾼 한국 시민들의 격렬한 분노를 야기했다. 이들 제국주의자들의 사고와 감각에는, ‘민족들의 평등한 연합’ 혹은 ‘완전히 동등한 권리’라는 고결한 이념이 스며들 틈이 전무해 보인다. 그러한 언동을 가능케 한 일본의 정치지형과 문화적 풍토가 우리의 민족적 분노로, 불매운동으로, 혹은 WTO제소나 국제여론전으로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외적 자극이 일본의 사회적 역학관계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뿐만 아니라 지금 대다수 한국 국민들이 갈망하는 바처럼 산업기술의 탈일본화를 통해 경제력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것만으로는 양국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될 수 없다. 끊임없이 요동하는 갑을관계 속에서 늘 다양한 형태의 전쟁 상황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항시적 전쟁 상황은 국내의 억압관계를 은폐하고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발 빠르게 감원 또는 임금삭감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노동시간은 얼마나 늘어나야 하는지 따지기도 어렵게 되었다. 현대차 파업은 반역죄 수준으로 여론의 화살을 맞을 듯하다. 낭설인지 정확한 보도인지도 모를 삼성의 전부품 국산화 선언만으로도 이재용은 완전한 면죄부와 함께 국민영웅의 지위까지 얻었다. 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과 관련한 대기업들의 고질적인 갑질 역사는 박정희-기시 노부스케의 유착관계에 대한 Jtbc(삼성)의 토막 강좌로 대략 덮이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전쟁 중에 장수의 역할을 할 대기업들을 향해 내부총질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답답한 분위기 못지않게 우리의 뜨거운 분위기도 그다지 해방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해방적인 문제해결의 길은 무엇일까? 자본의 무한증식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현재의 패권주의적 지배관계, 지배적 사고, 지배적 욕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는가? 우선 완벽한 성공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논리는 꼼짝도 하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라는 전제 하에, 좋은 방향으로 나가면 가는 만큼 좋아진다는 현실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하자. 현실적으로 한국자본과 일본자본의 얽히고설킨 관계, 국제적 기술 분업 사슬, 생산력의 불균등 발전 경향 등을 감안할 때, 일본의 공격은 한국경제를 종속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형태를 바꿔가며 얼마든지 갈등을 재생산할 것이다. 갈등관계 속에서 업종에 따라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손익이 갈리겠지만, 전반적인 자본축적의 위기가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축적위기는 필히 노동자 대중에게 전가될 것이다. 이에 따른 대중적 고통은 우선 기술혁신에 따르는 광범한 구조조정의 형태로 닥쳐올 것이다. 물론 합당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합당한 대응은, 향후 더욱 가속화될 기술혁신 내지 생산력 발전이 자본축적의 위기와 아울러 극단적 양극화 및 범사회적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 상식으로서 널리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후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을 절대 상수로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 자본주의는 인류사 속의 짧은 경과기라는 점을 인정하고, 자본주의의 성과들을 축적이 아니라 사용가치 중심의 물질대사를 위해 활용하도록 사회적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레닌이 세계대전에 맞서 제시한 내전의 변형이다. 내전의 구체적 양상이나 목적지의 모습은 기존 해방운동의 유산들과 오늘의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부단히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생산력에 부응하는 노동일의 획기적 축소와 기초생활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통해 누구나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아무도 타인을 향해 멋대로 갑질할 수 없는 평등사회라고 추상적으로 그릴 수는 있을 것이다. 내전의 주체는 우리 사회가 전자의 길로 들어설 때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대중이다. 노동자 정권은 이 내전의 핵심 교두보가 될 것이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이며 교수노조까지 민주노총의 일원이 된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 정권이야말로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환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 자본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다. 따라서 한국 내에서의 이러한 전환도 맑스의 표현으로 ‘세계혁명’의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지금 제국주의 분위기에 휘말려 있는 일본의 진보적 민중과의 국제주의적 연대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일본의 극우 제국주의 정치세력을 민주세력이 제압하고, 일본 역시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향해 획기적으로 전환해갈 때 현재의 갈등도 국제주의 정신 속에서 근본적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타격을 주는 불매운동은 지속하되, 진보세력들과의 연대는 배가할 필요가 있다. 또 국내 기업들이 반제국주의 전쟁에서의 역할을 적극 수행하는 한에서 지지하되, 그 지지는 한시적이고 조건적일 필요가 있다. 위기와 고통을 노동자대중에게 전가하지 않는 한에서, 스스로도 제국주의적 패권욕을 불태우지 않는 한에서, 자본증식을 절대화하지 않고 사용가치 중심의 새로운 경제철학을 구현하는 한에서, 사회적 생산에 걸맞은 사회적 소유관계를 존중하는 한에서,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물적 토대 형성에 앞장서는 한에서, 즉 케케묵은 전통적 의미의 자본이기를 포기하는 한에서.
첫댓글 민족주의가 아닌 민족자결이라, 이 시점에 꼭 필요합니다. 레닌의 지적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습니다. 민족주의는 국제주의와는 배치되면서 항상적 갈등을 내포할 수 있다면, 민족자결과 함께 가는 국제주의는 적어도 피억압자를 노동시장에서 몰아내지는 않겠지요 . 내공이 많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늦은 시간인데 아직 계셨군요. 늘 시간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끝내고는 아쉬워합니다. 다른 이론가들의 논의를 별로 살피지 못했네요.
이론보다도(지금도 충분) 현장감 있는 글이라 더 깊이 와 닫습니다. 건강 챙기시길~~ 길게 글을 보아야죠.
이만 총총~~~ 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