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해만의 수학여행 (2)
여행이 즐거우려면 천기를 잘 만나야 한다. 날씨가 좋아야 여행이 신난다. 어느 학교든 수학여행에 봄이나 가을을 택하는 것은 상수다. 허나 날씨는 미리 내다보기 어려워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수학여행 떠나기 하루 전날, 오리엔테이션하면서 가장 힘주어 말했던 내용 중 하나가 우산 준비였다. 기상청 주간 날씨예보를 보니, 수학여행 떠나는 날부터 여행지인 충청지역에 비가 내릴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헌데 이번 여행하는 동안 비가 우리 일행을 피해 다녔다. 우리가 도착하면 바로 날이 개고, 우리가 떠나면 차창 밖으로 비가 쏟아졌다. 천기도 우리 편이 되어준 것이다.
올해 2학년 학급담임을 맡았다. 우리학교는 음악중점학교라서 학년 당 두 개 반을 음악특기생으로 선발한다. 내가 담당하는 반이 그 중의 하나다. 음악반은 학생의 음악 특기로 입학하기 때문에 인천 어느 곳에서든 지원할 수 있다. 우리학교가 속한 동부 관내는 물론이고, 서부, 북부, 남부에서도 입학할 수 있다. 우리 반 대다수 학생의 통학 거리가 먼 것이 이 때문이다. 집이 멀다는 핑계로 평소 자주 지각하는 녀석이 몇 명 있어서, 아침 출발시간에 늦을까봐 무척 걱정했다. 허나 나의 우려는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스물다섯 명 모두 출발시간인 여덟시 전에 등교한 것이다. 나는 신이 나서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룰~루랄~루!
음악반 학생들은 거주 지역 분포만 다양한 게 아니다. 개성도 각양각색이다. 얼마 전, 1학년 음악반 담임인 해정(海亭) 000 선생이 했던 말이다.
“음악반 아이들은 매일 소리를 들으며 지내기 때문에 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익숙해요. 아이들이 어디서건 가만있질 못하고 말 많고 시끄러운 건 모든 걸 소리로 듣고 나타내기 때문일 거예요. 걔네는 입이 몸이지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군요. 역시 시인다운 예리한 관찰력이네요. 하하하!”
해정 000 선생은 문예지에 등단한 시인이다. 해정 선생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고, 그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오늘은 여행 가는 날이다. 그것도 2박3일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 같은 날, 버스에서 소란한 것쯤이야 얼마든지 눈감아 주리라. 실컷 떠들고 외치고 멋대로 놀아라. 너희들에게 언제 또 이런 날이 찾아오겠는가. 나는 부동심(不動心)하리라!
이번 여행 첫 기착지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잡월드(Job World)’였다. ‘잡월드’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직업의 세계’쯤 될 텐데, 청소년들의 진로 및 직업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진로교육 강화라는 학교장의 교육방침과 학교 교육 과정에 따라 여행 일정에 집어넣은 것이다.
학교교육도 시류를 타는지라 요즘 진로교육이 대세다. 여러 가지 직업을 알려주고 체험하도록 해주면 학생 스스로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게 되리라는 믿음을 깔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실용적이고 건설적인 교육 방법 같다. 허나 실제 수업운영을 들여다보면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면이 많다. 더욱이 한문이나 제2외국어 수업시수를 줄이거나 없애고, 그 대신 진로수업시수를 늘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인문교육을 소홀히 하고서 소기하는 학교교육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학생의 지적 계발과 심미적 감성능력 함양 없는 도구적 진로교육은 허망한 일이 아닐까. 명승고적 탐방이라는 수학여행은 옛 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 것일까.
아이들은 각자 선택한 직업코너에서 한 시간 정도 체험하기로 되어있었다. 나는 한 바퀴 둘러보다가 패션쇼코너에 머물렀다.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패션모델 차림을 하고 음악 반주에 맞춰 걷는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홀쭉이 넙죽이 뚱뚱이 난쟁이처럼 분장을 하고는 신나게 열연했다. 어떤 녀석은 야릇한 눈길을 보내며 방댕이를 지나치다싶을 만큼 비쭉비쭉 흔들며 걷기도 했다. 패션쇼가 끝났다.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건너편 레스토랑 코너로 갔다. 레스토랑 코너는 레스토랑 예절을 배우고, 함박스테이크를 직접 요리해서 시식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레스토랑 코너 지배인이 나를 보더니 식당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들어와서 아이들이 만든 음식을 한 번 먹어보라고 권유한다. 지배인의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레스토랑 안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이것저것 한 조각씩 맛을 봤다.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레스토랑 밖에 우르르 모여 구경하던 녀석들이 자기도 한 조각 달라고 애원했다. 그 중 한 녀석 입에 집어넣어 주기도 했다.
레스토랑을 나와 이층에 설치된 방송국으로 향했다.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방송국 안에서 아이들 서넛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유리벽 바깥에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방송국 맞은편에서 늙수그레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와 초면 인사를 나눴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이곳 ‘잡월드’의 책임자라고 소개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잡월드’의 시초는 일본이고, 현재 동경(동경(東京))에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옆에 어린이 체험관 ‘키자니아’가 있고, 올해 개장한 이곳이 두 번째라고 했다. 자기가 근무하는 분당의 ‘잡월드’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운영하며, 고용노동부가 만들었기 때문에 비용이 저렴하다고 했다. ‘키자니아’는 3만원이나 드는데, ‘잡월드’는 만원이면 된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잡월드’ 건물은 밖에서 보면 배 모양이라, 분당의 명물이 될 것이라 자랑하기도 했다. 내가 묻지도 않는데 신념에 차서 이말 저말 하는 그의 모습을 쳐다보며 고개나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은 일정상 그곳에 무작정 머물 수 없었다. ‘잡월드’를 뒤로 한 채 다시 버스에 올라야했다.
2012. 5. 5(토) 21:20 자중 서.
#여행이 즐거우려면 천기를 잘 만나야 한다. #걔네는 입이 몸이지요. #학교교육도 시류를 타는지라 요즘 진로교육이 대세다. #명승고적 탐방이라는 수학여행은 옛 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 것일까. #분당의 ‘잡월드’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운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