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305-Re.성차별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 by 최인걸
부부전임교수불가 입장이라는 것이 성차별이냐 아니냐를 놓고 그동안 진행된 논쟁들을 여러번 지켜봤지만, 이번처럼 초점을 맞춰서 문제성을 제대로 제기하신 분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특히 당사자들인 총장님을 비롯한 감신대교수님들과 이에 맞서 싸워오신 강남순교수님을 비롯한 박충구교수님, 그리고 이외의 많은 분들이 이문제를 놓고 설왕설래를 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의 흐름은 분명히 인권탄압(?)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지만, 이론적으로 왜 부부전임불가가 성차별인지에 대한 논의는 그만큼 명확지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신 doxa님의 글은 상당히 의미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doxa님이 제기하신 문제, 즉 부부전임교수불가는 성차별로 다뤄질 주제가 아니라 가족관계로 인한 인권탄압이 아니냐는 입장은 부부라는 말과 성차별이라는 말을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 보셨기에 갖게된 판단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부'라는 말은 단순히 남편과 아내라는 보통명사의 사전적인 의미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만으로는 남편과 아내라는 말이 상당히 중립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기에 성차별과는 상관이 없는 개념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더 깊이있게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차원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선 우리가 부부를 남편과 아내(처)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철저히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가족관입니다. 남편이라는 성역할과 아내라고 하는 성역할이 남성중심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창부수(남편이 부르면 아내는 따르는 것)이고 여필종부(여자는 죽을때까지 남편을 따르고 순종한다)라는 식의 유교적인 내용을 표방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미 그러한 의식으로 형성된 제도와 풍습은 여전히 우리의 생활과 의식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남성중심의 부부관이 전제된 상황에서 부부라는 가족관계는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와 달리 명백한 성차별적 의식이 이미 내포되어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성차별이라는 것도 '성의 다름에서 오는 차별, 즉 여자이기때문에 혹은 남자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라고 역시 언어적으로 단순히 이해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성차별이라는 말의 역사적인 성립과정은 본래부터 '여성차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온갖 불평등한 차별의 의미로서의 성차별입니다. 성차별이라는 말에서는 남성차별이라는 말이 형식논리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어도 본질은 여성에 대한 차별입니다. 가부장적 부부관에 이미 여성차별의식이 들어 있기에 부부전임불가라는 판단이 가능한 것이지요.
오늘 뉴스를 보니까 미국 뉴욕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동성간의 결혼을 허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장면이 비춰지더군요. 아시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주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시장이 자의로 기습적으로 동성결혼을 허락하면서 대단한 뉴스거리로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날에는 이미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개념이 거의 쇠퇴되어가고 전혀 다른 형태로 진화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모든 변화의 이면은 가족구성원 간의 평등구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감신대학의 교수파동을 지켜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의 고답적인 자세를 보면 전형적인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찌든 모습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전혀 성차별을 한 적도 없고 부부교수불가를 논의한적도 없다고 다시 말을 바꿔가며 이런저런 성명서를 발표하더군요. 거기다가 교수 한분만 이거 틀린거다 하고 외쳐왔는데, 딱하게도 그분이 바로 강남순교수의 남편되는 박충구교수였으니 바른말인 줄은 알면서도 욕은 욕대로 얻어 먹고 계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세월 지나면 이 모든 과정들이 하나의 역사로 기록되리라 믿습니다.
강남순 교수님의 복직을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좋은 글 올리신 doxa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