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라는 공회의 위협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교회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간구합니다.
23-28절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 메시아를 향한 헛된 적대가 있을 것을 미리 제시하신 분, 뜻을 세우시고 역사를 예정하시는 분, 그야말로 모든 것의 통치자이신 대주재이십니다. 그러니 공회로부터 위협을 당한 교회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닥치고 시대가 위태로울 때,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나지 맙시다. 대주재이신 하나님,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우리 삶과 사명을 주께 의탁합시다.
13절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면서 그들의 눈에 이상했던 예수님을 떠올렸고,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낸 시간을 통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계신 예수의 영(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꼭 닮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할 때(참조. 엡 5:18; 골 3:16), 우리는 주님을 닮은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14-18, 21,22절 사도들을 막을 명분도 없고 사도들의 주장을 반박할 논거도 없는 상황에서 공회원들이 내린 선택은 권력을 이용한 위협과 겁박이었습니다. 사실을 감추고 진리를 거부하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꺼내드는 수단은 늘 옹졸하고 비겁한 폭력의 방법이었습니다.
19,20절 공회원들의 위협과 침묵 강요에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불복종을 선언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 어떤 권세보다 하나님의 권세가 더 큼을 아는 지식이 불복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세상의 대세를 거스르는 불복종이 때론 지극히 거룩한 행위입니다.
29-31절 교회는 위협당하는 자신을 굽어살펴 달라고도 간구했지만, 무엇보다 교회가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복음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퍼져나갔습니다. 편안한 삶을 구하는 기도 말고, 평화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가 내게도 있습니까? (매일성경, 2024.05/06, p.40-41, 막을 수 없는 복음, 사도행전 4:13-31에서 인용).
① 침묵하라는 공회의 위협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교회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간구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 메시아를 향한 헛된 적대가 있을 것을 미리 제시하신 분, 뜻을 세우시고 역사를 예정하시는 분, 그야말로 모든 것의 통치자이신 대주재이십니다. 그러니 공회로부터 위협을 당한 교회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닥치고 시대가 위태로울 때,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나지 맙시다. 대주재이신 하나님,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우리 삶과 사명을 주께 의탁합시다.
②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면서 그들의 눈에 이상했던 예수님을 떠올렸고,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낸 시간을 통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계신 예수의 영(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꼭 닮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할 때(참조. 엡 5:18; 골 3:16), 우리는 주님을 닮은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③ 사도들을 막을 명분도 없고 사도들의 주장을 반박할 논거도 없는 상황에서 공회원들이 내린 선택은 권력을 이용한 위협과 겁박이었습니다. 사실을 감추고 진리를 거부하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꺼내드는 수단은 늘 옹졸하고 비겁한 폭력의 방법이었습니다.
④ 공회원들의 위협과 침묵 강요에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불복종을 선언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 어떤 권세보다 하나님의 권세가 더 큼을 아는 지식이 불복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세상의 대세를 거스르는 불복종이 때론 지극히 거룩한 행위입니다.
⑤ 교회는 위협당하는 자신을 굽어살펴 달라고도 간구했지만, 무엇보다 교회가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복음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퍼져나갔습니다. 편안한 삶을 구하는 기도 말고, 평화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가 내게도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