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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니와 준하 3
씬 21. INT. 영화사 사장실/ 사무실. 낮
사장실의 응접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 준하. 고개를 돌려 사장의 말을 기다린다.
여전히 해 맑은 얼굴. 맞은편에 사장, 준하의 옆에는 프로듀서가 앉아 있다.
사장: (고개를 끄덕이며) 음~. (준하에게) 필요 이상으로 무겁다는 우려가 있으니까 신경 좀 써 주시고……. 근데 이거 장르는 뭐라고 해야 되나? 사랑, 우정, 배신의 느와르. 그냥 그러기엔 판타지 성격도 꽤 강하잖아?
프로듀서: 하드보일드 판타지. 어떠세요? 이 영화는 로맨스에 판타지의 맛이 잘 섞이는 게 꼭 필요한 거 같은데. 준하씨 생각은 어때?
준하: (당당하고 자신 있는 어투로) 전 그냥 ‘사람의 진심은 참 알기 어렵다.’ 뭐, 그런 걸 재밌게 써 볼려고 했는데요?
약간 썰렁해지는 사장과 프로듀서.
CUT TO
벽에는 영화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걸려있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 파티션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수화기를 들고 열심히 통화하는 사람들. 사장실에서 나와 프로듀서와 둘이서 얘기하는 준하.
프로듀서: 계약은 다음 고 나오면 하고 크게 바뀔 게 있으면 전화로 자주 하자고. 참, 연락은 어디로 하지? 집에 잘 없던데.
준하: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이 번호로 메시지 남겨 주세요. 자주 전화 드릴게요.
프로듀서: 참, 요즘 세상에……. 핸드폰 하나 해라. 해줄까?
준하: (웃으며) 해주시면 고맙게 받겠지만……. 그냥 없으면 안 될까요?
프로듀서: 뭐……. 안 될거야……. 그리고, 감독 확정되면 그때는 콘도 하나 잡아서 하자고. 의사소통도 그렇고 아무래도 집중력이 필요하니까.
준하: 신 감독님하고 또…….
프로듀서: 민병수라고 해외 유학판데 단편 만든 것만 보고는 아직 판단이 안서네.
고개를 끄덕이는 준하.
준하: 근데, 전 그냥 집에서 쓰는 게 제일 좋거든요?
프로듀서: (피식 웃으며) 김준하씨. 은근히 까다롭네. 순한 척 하면서 할 얘긴 다 하는구만.
씬 22. INT. 준하의 옥탑방. 낮
준하가 창문턱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준하의 작은 옥탑방은 책들이 빼곡하고 제법 그럴듯한 오디오와 수많은 L. P.가 특징적이다. 벽에는 한 장소에서 시간을 달리해서 찍은 풍경사진이며, 시장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무술)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즈음에 붙여 놓았던 포스트잇들도 가득하다. 턴테이블 위에선 L. P.가 돌아가고 오디오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밖으로는 서울의 빌딩들이 보이고 도시의 소음들이 들려온다.
불쑥 일어나서 자신의 응답 전화기를 쑥 빼더니 둘둘 말아 가방에 넣는다.
CUT TO
책꽂이에서 소설책들을 골라 가방에 챙겨 넣는 준하. 어느 책에선가 사진 한 장이 그의 발밑으로 떨어진다. 와니가 회사 작업대에 앉아 일하고 있는 모습인데 몰래 찍은 듯 하다. 준하,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책상 앞 벽면에 사진을 붙인다.
씬 23. INT. 대형 할인매장. 낮
카트를 밀며 장을 보는 준하. 카트에는 이미 뭔가 담겨져 있다. (스파게티 재료)
주류코너에 서서 맥주 서 너 병을 싣고 가더니 ‘이게 아니지’ 하는 얼굴로 돌아서서 도로 내려놓고는 와인을 한 병 꺼낸다.
JUMP CUT
준하의 옆에서 네 살쯤 된 어떤 꼬마가 엄마에게 카트에 태워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엄마의 카트에는 라면이나 휴지 등이 박스 째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자리가 없다.
준하가 자신의 카트에 담겨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밀치더니 아이를 달랑 들어 태워서 속력을 내어 빠르게 밀어준다. 그리고는 자신도 뛰어가다가 팔걸이를 짚고 카트를 타고 있다. 활짝 웃는 아이와 준하.
씬 24. INT. 와니의 집 거실 / 부엌. 황혼녘.
거실 노트북에서는 계속 음악이 흐르고 주방에서 준하가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면서 저녁식탁을 준비한다. 움직이는 동안 준하는 계속 기분 좋은 듯이 고개로 리듬을 맞춰 흔들고 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는 물이 끓고 있다. 소금을 한 줌 집어넣고 스파게티 몇 가락도 넣는다. 잠시 후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천장으로 던진다.
천장에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스파게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때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뚜루루루. 뚜루루루루……. 준하, 슬쩍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지만 이내 무시한다.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방안의 구식 벨소리도 함께.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거실의 자동 응답기가 돌아간다.
‘지금은 부재중이오니 용건을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삐익.
전화 속 목소리: %^&**%#$#@$^&*@&^%% (알아들을 수 없는 여자아이의 목소리)
준하, 다가와서 수화기를 든다.
준하: (장난스럽게) 아하! 니가 자꾸 전화한다는 문제의 아가씨구나?
여자아이 목소리: &^$#$#@$%^&*(**&&^%$#
준하: (혼잣말로) 음……. 아직 말도 못하는 녀석이 전화를.
여자아이 목소리: 엄마!
준하: 앗! 너, 엄마는 할 줄 아는구나? 이름이 뭐야아?
전화 속 목소리: #$%^&. (멀리서 전화기 쪽으로 다가오는 애기엄마 목소리) 소원아! 소원이 어디 전화하는거야아? 아유, 어쩜 그렇게 전화기를 좋아해? (딸깍 끊기는 전화)
준하: (머쓱해서 혼자 씨익 웃는다) ……. 소원이. 예쁜 이름이네.
수화기를 내려놓자 다시 울리는 전화벨.
준하: (수화기를 들며 상냥하게) 여보세요?
전화 속 목소리: …….
준하: 여보세요? 소원이니?
영민(전화 속 목소리): 저, 거기 이와니씨댁 아닌가요?
준하: (순간, 당황하며) 아, 죄송합니다. 맞는데요? 아직 퇴근 전입니다.
영민(전화 속 목소리): 누구……. 시죠?
준하: 네? (난처한 듯) 어-, 저는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인데요?
영민(전화 속 목소리): …….
준하: 말씀 남겨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영민(전화 속 목소리): ……. 동생입니다.
준하: 아! 유럽에 있는?…….
영민(전화 속 목소리): 다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려 한다)
준하: 잠깐만.
영민(전화 속 목소리): …….
준하: 난, 김준하라고 합니다.
영민(전화 속 목소리): ……. 네.
저쪽에서 먼저 전화가 ‘뚜우’ 끊기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 해 보는 준하.
씬 25. EXT. 와니의 집 앞. 어스름한 저녁 (현재->과거->현재)
집으로 걸어오는 와니. 대문을 밀어 보지만 잠겨있다. 열쇠를 찾아보지만 없다. 가방을 뒤져봐도……. 없다. 난감해지는 와니. 어떻게 해야 되나 싶은 얼굴로 멀뚱히 서 있다.
그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자목소리로 잔잔한 동요가 들려온다. 약간 언덕진 골목 끝에서 마치 땅에서 솟아오르듯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는 건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이다. 조용히 동요를 읊조리는 여자의 모습은 아무래도 약간 기이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는 와니. 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날 때쯤 여자의 뒤로 꼬마의 모습이 조금씩 솟아오른다.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 왼쪽 뺨에 긁힌 상처가 있는 전체적으로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이다. 엄마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 엄마는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던가 보다. 여자와 아이는 점점 와니 쪽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온다. 와니, 뒤를 돌아본다. 와니의 뒤쪽에서 어떤 신사가 걸어오다 아이를 발견하고는 팔을 활짝 벌린다.
그리고 신사는 여자아이를 향해 '와니야' 라고 부르며 번쩍 안아 올린다. (와니의 시점으로 보이는 과거의 장면인데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의 와니가 한 공간에 있다) 현재의 와니는 얼어붙은 듯 서서 그 광경을 본다. 신사의 뒤에는 여섯 살의 사내아이가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다. 낯선 사내아이를 발견한 어린 와니는 엄마의 뒤 쪽 편으로 숨듯이 뛰어가서 빼 꼼이 내다본다.
엄마: (사내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얼굴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정인 듯한 눈빛으로) 너……. 기차 타고 왔니?
고개를 끄덕이는 어린 영민.
……. 이제부턴 내가 네 엄마다. 알겠니?
어린 영민 이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놀란 눈이 되는 어린 와니.
어린 와니와 영민의 눈이 마주 친다. 어느새 엄마, 아빠는 사라진 공간에서 서로 쳐다보고 있는 어린 와니와 영민.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현재의 와니. 아무 표정도 없다.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서 있는 와니. 그녀의 머리위로 우산이 씌어진다. 와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면 대문을 열고 나온 준하가 우산을 들고 서 있다. 골목에는 와니와 준하뿐 아무도 없다.
준하: (놀라며) 뭐해?
와니: 어! 없는 줄 알고. 벌써 온 거야?
준하: 벨이라도 눌러보지?
와니: 젖어버린 머리카락을 스윽 만지며) 비……. 오네…….
준하: 꼭 한 템포씩 느리다니까. 비 오네? 그럴 줄 알고 마중 가는 길이잖아. 제발 우산 좀 챙겨라.
와니, ‘헤’하는 표정으로 웃고는 집으로 들어간다. 준하, 집으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골목을 보면 아무도 없다. 텅 빈 골목. 고개를 갸웃거려보는 준하.
씬 26. INT. 와니의 집 주방. 저녁
거실, 준하의 노트북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부엌 식탁에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와니와 준하. 와니의 어깨에는 하얀 수건이 걸쳐져있고 머리가 아직 젖은 채다. 준하가 와인을 따라준다. 와니, 스파게티를 한 입 먹어본다.
준하: 괜찮아?
와니: 음. 맛있어. 언제 이런 걸 다 배웠어?
준하: 뭘, 기본이지.
와니: 그 동안은 왜 안 한 거야?
준하: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라구.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와니: !?…….
준하: 일 년전 오늘, 너희 회사 취재 가서 처음 너 봤잖아.
와니: (^^) 기억하고 있었어?
CUT TO
준하가 선물을 했는지 포장을 뜯어보고 있는 와니. 내용물은 여성용 모자이다.
준하: 너, 우산 잘 잊어먹으니까 아예 흐린 날은 쓰고 다녀라. 머리라도 덜 젖게.
와니: (모자를 써 보며) 좀 웃기지 않을까?
준하: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아~니.
와니: (민망하지만 기분 좋은 듯이 모자를 벗었다 다시 한 번 써 보고한다) …….
준하: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 아 참! 동생이 전화했었어. 이름이 영민이라 그랬나?
눈이 동그래지는 와니. 썼던 모자를 벗어 옆 의자에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여 눈을 피한다. 준하는 마음대로 전화를 받은 자기 때문에 와니가 화난 것이라고 오해한다.
(와니의 눈치를 보고 변명하듯) 아니, 내가 응답 전화기를 가져 왔거든. 애기가 장난전화 한 거 받다가…….
와니: 아마 돌아온다고 연락 한 걸거야.
준하: 돌아온대? 언제?
와니: 가을에.
준하: 그래? 야~ 아. 오랜만에 보는 거지? 3년 됐다 그랬나? ……. 아, 근데 동생 오기 전에 나,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와니: (약간 돌출적으로 보일 만큼 목소리가 커지며) 아냐……. 여기 안 있을지도 몰라. 서울에 있고 싶어 할 거야. 친구들도 모두 거기 있고 또…….
와니,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숙이고 스파게티를 포크로 둘둘 만다. 와니의 반응에 약간 당황한 준하도 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접시에 두고 있다. 둘 사이에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흐른다……. 순간, 부엌 천장에 붙어 있던 스파게티 국수 한 가락이 가스레인지 위에 비스듬히 걸쳐있던 냄비 뚜껑에 ‘척’ 떨어지며 뚜껑이 미끄러지면서 ‘챙그르르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동시에 괘종시계의 종소리도 댕. 울리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서로를 마주보는 두 사람.
카메라, 거실로 이동하면 거실의 한 쪽에서는 과거의 영민(18살)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괘종시계의 태엽을 감고 있다.
씬 27. INT. 와니의 방. 밤 (과거)
거실에서 괘종시계가 댕……. 댕……. 울리는 소리 이어진다. 19살의 와니는 양발을 개고 의자에 앉아 만화책의 그림을 베껴보고 있다가 쿵쿵거리며 나무 계단을 올라오는 영민(18살)의 발소리와 괘종시계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조금씩 고조되고 가만히 듣고 있던 와니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영민. 깜짝 놀라며 만화책을 가리는 와니. 와니의 방안엔 심야 라디오 방송이 나직이 흘러나오고 있다.(1993년도쯤의 방송 내용이…….)
와니: 야아! 엄만줄 알았잖아! (짐짓 화난 척) 그리고, 꼭 그렇게 쿵쿵거리며 다녀야겠어?
영민: 소리 들었으면, 뭘 놀래?
와니: 너 또, 마루시계 1시간 앞당겼지?
영민: (^^) 알았었어?
와니: 왜 그러는 건데?
영민: 왠지 하루에 한 시간씩 더 빨리 사는 것 같지 않아? ……. 빨리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그랬으면 좋겠어. 근데 태엽이 풀려서 좀만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 가버려.
와니: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너, 빨리 어른 되고 싶니?
영민: 당연하지. 지금이 좋아?
와니: (^^;) 그, 글쎄…….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
영민: 흠! 흠! 이상하네…….
와니: 뭐가?
영민: 왜 내방이랑 냄새가 다르지. 향수 뿌렸어?
와니: 아~니. 무슨 냄새 나는데?
영민, 성큼 와니에게 다가와 자연스레 어깨에 손을 얹는다. 영민의 손이 닿자 와니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움찔한다. 영민도 약간 어색함을 느끼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고개를 숙여 와니의 목덜미 근처에 코를 대고 한껏 숨을 들이쉰다. 영민의 얼굴이 다가오자 어깨를 움츠리며 살구를 깨물었을 때 같은 표정을 짓는 와니.
와니: 무슨 냄새 나?
영민: (고개를 갸웃하며 어색함을 감추고) 그냥……. 여자냄샌가?
와니: 여자냄새? (도망치듯 방을 나가려던 영민을 보고) 어디 가?
영민: 응? 내 방.
와니: (마치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이며) 아…….
영민, 방을 나가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가만히 있던 와니, 왼손을 들어 영민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만져보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서 냄새를 맡아본다.(‘아무 냄새도 안 나네 뭘’ 하는 표정이 되더니 ‘후아~’)
씬 28. INSERT. EXT. 와니집 외경. 밤
현관 위 지붕 밑에 매달린 풍경이 나직이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댕그랑……. 댕그랑…….
씬 29. EXT. 와니의 학교 앞. 밤 (과거)
깜깜한 밤. 교문을 나오는 여학생들. 그 틈에 친구들과 함께 나오는 와니가 보인다.
교문 앞에는 엄마들이 혹은 아빠들이 마중을 나와 있고 자가용으로 부모님과 함께 가기 위해 와니네 일행,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간다. 언덕을 걸어 내려오는데 학교 앞 환하게 불 켜진 문방구 앞에 와니를 기다리는 영민이 자전거를 잡고 서있다. 영민은 와니를 찾을 생각은 안하고 밀려드는 여학생들의 눈을 피해 뒤돌아 서서 가게 유리창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서 있다. 친구들 영민을 보고
친구들: 쟤 뭐냐? 여고 앞에서.
와니, 친구들의 시선을 따라 문방구 앞을 바라보면 영민이 있다. 와니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퍼진다. 영민, 돌아보면서 와니를 발견하고 한 손을 스윽 들어 인사를 한다.
와니가 아릿한 이미지로 보던 준하의 포즈와 동일하다.
와니: (친구들에게) 나 먼저 갈게.
친구들: 야! 어디 가?
단숨에 영민에게로 뛰어 가는 와니. 영민도 와니를 보고 웃는다.
친구들: 우와아~! 이와니!
와니: (돌아보며) 내일 봐.
와니가 자전거의 뒷자리에 올라타자 영민이 출발한다.
CUT TO
자전거가 언덕을 따라 내려간다.
와니의 친구들 서넛이 맞은편 계단으로 우르르 뛰어 내려간다.(우스꽝스런 걸음으로)
CUT TO
가로등이 서있는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자전거. 계단을 뛰어 내려온 친구들이 와니와 영민이 탄 자전거가 지나가자 소리를 질러댄다. 와니가 뒤돌아보며 손까지 흔들어 댄다.
영민은 말없이 웃기만 하며 페달을 밟는다. 와니는 영민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슬며시 영민의 등에 얼굴을 기대어 보는 와니. 깨끗하고 단정한 와니의 얼굴은 영민의 등에 기댄 채 멍하게 생각에 잠긴다. 아니, 아무 생각도 안하려는 듯하다.
씬 30. EXT. 와니 집 앞 골목. 밤 (과거)
부감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와니집 앞 골목을 천천히 다가오는 영민과 와니가 탄 자전거. 집에 다 왔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대문 앞을 지나쳐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집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마치 둘만의 시간을 연장하려는 듯이. 두 사람과 자전거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