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의 세계
THE SHADOW WORLD(2011)
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조아영·이세현 옮김, 오월의봄 2021
전쟁에서 누가 이윤을 얻는지 알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알 수 있다.
−헨리 포드Henry Ford
한번 무기밀수업자는 영원한 무기밀수업자다.
−이프라임 디버롤리Efraim Diveroli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둠의 세계》가 한국에서 출간되어 기쁘다. 그동안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그 열 번째가 한국어판이다. 이 책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영화 <섀도 월드>가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출판사, 번역자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나의 활동을 지원하고 널리 알려준 수많은 단체들, 그리고 무기산업의 규제 강화와 부패 척결, 평화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는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지난 몇 년간 세계 무기산업은 매우 우려되는 방향으로 흘러왔고,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무기산업의 뿌리 깊은 부패와 실상이 끊임없이 확인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9년 세계의 군비 지출이 1조9,00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인구 1명당 약 25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중 미국은 국방예산 7,300억 달러를 포함해 연간 1조 달러 이상을 국가안보에 지출하고 있다. 크고 작은 재래식 무기거래와 군사서비스 산업의 규모는 연간 4,000억 달러에 달한다.
무기산업의 사회경제적 기회비용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신음하는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다.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무기 보유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평화로운 국가와 위협에 시달리는 국가 모두에서, 방대한 국방예산은 사회와 발전에 꼭 필요한 자원을 가져가며, 이느 다시 안정과 안보를 저해한다.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출하는 미국과 영국이 코로나19 팬데믹에 전혀 대비하지 못한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20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의 공식적인 군사예산은 7,380억 달러지만, 국제정책센터 빌 하텅에 따르면 국방 관련 지출을 모두 합할 경우 실제 지출은 연간 1조 2,5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금액의 절반만 갖고도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 수요를 대부분 충족할 수 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의료체계는 심각한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은 코로나19의 2차 유행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국방예산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160억 파운드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최전선의 보건 및 돌보 인력은 가장 기본적인 방역물품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이를 볼 때 미국과 영국의 1인당 코로나19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기산업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언제나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들이다. 무기에 의해 직접 살해당한 이들, 그리고 분쟁으로 인한 인도적 위기 속에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예멘 내전은 최근의 가장 끔찍한 사례다. 2015년 3월 이후 민간인 2만 명가량이 사망했으며, 2,400만 명은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유니세프는 예멘의 상황을 세계 최대의 인도적 위기로 규정했다.
예멘 내전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수출한 무기에 의해 더욱 불붙고 있다. UN 예멘 전문가위원회는 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주도하는 연합군에 의해 국제 인도주의법 위반행위와 전쟁범죄가 저질러졌다고 기록했다. 또한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예멘의 민간인들이 분쟁 중에 흔히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에 따라 희생된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살상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를 볼 때 예멘에 대한 무기수출은 각국의 국내법은 물론 경우에 따라 지역적·국제적 조약을 위반한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2019년 6월, 영국 항소법원은 UN 등의 보고서를 토대로 사우디에 대한 무기판매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각 부처 장관들이 민간인에 대한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지 않은 채 무기 수출을 불법적으로 승인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줄곧 허가해왔고, 2020년 7월에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전면적으로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국제법 위반 및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그것이 “예외적 사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 며칠 뒤, 영국 국방부는 지금까지 파악된 사우디의 예멘 내 국제법 위반행위가 500건 이상이라고 인정했다. 그 발표 전후로 최소 8명의 예멘 어린이들이 사우디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세계 최대 무기수출국들의 불법행위로 예멘 내전에는 무기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으며, 이는 무기수출 통제 조치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놓고 법치를 위반하는 행위가 어떻게 묵인될 수 있을까? 영국과 미국 정부는 끔찍한 인명피해를 낳을 것이 명백한 분쟁에 왜 끊임없이 무기를 공급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답은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세계 무기산업의 매우 독특한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무기거래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 중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책임한 행위다. 이는 고위급 정치인, 방산업체 임원, 군 고위급 인사, 그리고 대부분 비윤리적인 중개인의 비밀스러운 공모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들은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실상 처벌받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불법행위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며, 기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무기거래는 원래 규제와 법에 따라 제한되어야 하지만,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각국 정부는 규제를 교묘하게 비틀어 불법행위를 일시적으로 합법화하고, 비윤리적 행위를 묵인한다. 무기거래는 민주주의를 침식하고, 취약국을 더욱 약화시키며,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해한다.
사우디에 대한 무기판매를 일부 중단시킨 독일처럼 실질적 무기 통제가 조금이라도 이뤄지는 국가의 무기업체들은 최근 들어 수출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수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려되는 현상의 대표적 사례는 라인메탈Rheinmetall이다. 독일 기업인 라인메탈은 이탈리아 사르데냐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해 예멘에 수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탈리아에서는 라인메탈이 독일 기업이므로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독일에서는 생산시설이 이탈리아에 있으므로 당국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법적으로 모두 잘못된 것으로, 각국 정부가 무기수출에 대한 실질적 감독을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억지를 부리는지를 보여준다. 라인메탈은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영 무기수출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라인메탈 데넬 뮤니션’은 예멘 내전 당사자들에게 무기를 수출한 혐의도 받는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라인메탈의 전 CEO가 현재 사우디의 국영 무기업체 ‘사우디아라비아 군사산업’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우디가 자체적인 무기제조 능력을 보유할 경우 무기의 종류와 활용 방식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피할 수 있고, 더욱 쉽게 국제법을 위반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항상 그렇듯 부패는 무기산업의 핵심 축이다. 《어둠의 세계》가 처음 출간된 2011년, 많은 반부패 활동가들은 영국의 무기업체 BAE를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책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거대한 부패가 20년간 누적된 결과였다.
BAE의 대표적인 에이전트로는 유럽 곳곳에서 커미션 전달을 도운 무기딜러 알폰스 멘스도르프-포윌리 백작이 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필자가 직접 진행한 인터뷰와 함께 이 책 10장과 11장에 정리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검찰은 흔히 ‘백작’으로 불리는 그를 유로파이터 전투기 도입 관련 뇌물 혐의로 구속하려 했다. 그러나 법적 문제, 그리고 국가 차원의 무기딜러 보호에 부딪힌 나머지, 증거조작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만을 이끌어냈을 뿐이다. 미카엘 라다스틱스 검사는 ‘정확히 누가 뇌물을 지급받았는지 증명할 수 없어’ 뇌물공여 혐의로는 백작을 기소하지 못했다고 법원에 밝혔다. .슈테판 아포스톨 판사는 “이것으로 모든 혐위가 벗겨진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악취가 난다”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세계 무기산업의 관행은 지난 몇 년 사이 오히려 악화되었다.
기업형 로펌, 은행, 감사인, 컨설턴트는 이처럼 처벌을 무마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2018년 3월, 《가디언》은 430억 파운드 규모의 영국-사우디 무기거래 ‘알야마마’ 사업에 대한 미국의 수사가 ‘프리 스포킨 앤 설리번Freeh Sporkin & Sullivan’이라는 로펌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로펌은 미 법무부가 발간한 조사 보고서에서 수사 대상에게 불리할 수 있는 정보를 삭제하는 데 성공했다며 ‘실적’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 로펌의 대표는 FBI 국장을 역임한 루이스 프리다. 2020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BAE의 사우디아라비아 자회사 BAES SAL과의 거래를 금지한 오바마의 행정명령을 취소했다. 이로써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거래에 대한 처벌조차도 일시적이며 이후의 무기거래를 결코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BAE는 끊임없이 부패 혐의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5월, 《선데이타임즈》는 탐사보도를 통해 BAE가 스텔라 식카우 남아공 전 공기업부 장관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BAE가 식카우 전 장관의 딸을 런던의 한 마케팅 업체에 취업시켜주고 3년간 이를 지원할 예산을 책정했으며, 그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 숙소 등 각종 편의를 봐주었다는 것이다. 익명의 제보자는 또한 식카우 장관의 딸과 남아공 국방장관의 정치적 조언자이자 BAE 에이전트인 파나 롱웨인, 기타 정치인들이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다 같이 모여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BAE가 비용을 대주었다고 폭로했다.
2019년 5월, 호주 국방부는 해군 무기도입 사업에서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근거 없이 부풀린 혐의로 BAE와 프랑스의 무기업체 탈레스Thales(구 톰슨CSF−옮긴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외부 조사위원들은 BAE의 애들레이드급 프리깃함 가격이 3,300만 호주달러(약 2,300만 달러)가량 부풀려졌고, 이 프리깃함의 유지 보수 비용으로 탈레스가 1,600만 호주달러가량을 불필요하게 지급받기로 했다는 혐의를 확인할 예정이다. 무기 가격 부풀리기는 부패가 발생했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기업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는 아마도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Leonardo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지금까지 한국, 인도, 파나마,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수많은 부패 혐의에 연루되었다. 이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건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개인 또는 중간상인을 통해 뇌물을 지급함으로써 주요 평가 기준을 바꾸거나 핵심 의사결정권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무기조달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치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역시 다른 사건들과 비슷했다. 각국은 부적합한 장비에 수십억 달러를 낭비했고, 부패에 연루된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빈곤에 시달리는 니제르에서는 최근 일련의 무기거래와 관련해 부패가 발생했다. 규모는 레오나르도 사건에 비하면 작았지만, 니제르 국민들의 삶과 거버넌스, 법치주의에 대한 악영향은 훨씬 컸다. ‘조직 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 아프리카 지부의 대담한 취재에 따르면 니제르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막대한 군비 지출을 단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패한 관료들과 브로커들이 예산을 빼돌릴 수 있도록 여러 국제 무기거래의 비용을 부풀렸다.
부패의 중심에는 무기거래의 중개인 역할을 한 니제르의 기업인 2명이 있었다. 유명한 무기딜러 아부바카르 히마, 그리고 방산 부문 경력이 없는 건설업자 아부바카르 샤르푸가 그들이다. 무기거래를 감사한 전문가들은 이들이 경쟁 입찰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자신들이 관리하는 업체들을 활용한 것으로 보았다. 2016년 니제르 국방부는 러시아의 국영 방산업체 로소보로 넥스포르트로부터 군용 수송/공격 헬리콥터 Mi-171Sh 2대를 구매했다. 계약에 포함된 유지 보수 및 탄약에 대해 니제르는 5,48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감사원에 따르면 이는 부패와 기만으로 약 1,970만 달러가 부풀려진 것이었다. 놀랍게도 히마는 거래 양측에 모두 관여했다. “그는 국방부를 대신해 구매를 관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업체 TSI가 니제르에서 로소보로넥스포르트를 대표하도록 했다.” 이는 필자가 세계 무기 산업을 20년 이상 파헤치면서 본 것 중에서도 가장 대담하고 극단적인 부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부패 인사들의 처지는 지난 몇 년 사이 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공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고 BAE를 위한 무기딜러로 활약했던 존 브레덴캄프일 것이다. 브레덴캄프는 2020년 6월 사망했다. 그의 동료이자 고객이었던, 부패하고 잔인한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사망한 지 1년이 채 되기 전이었다.
2017년, 앙골라의 부패한 대통령 도스 산토스는 건강 악화로 인해 40년 가까운 철권통치를 마감했다. 그는 아들이나 딸에게 권좌를 넘겨주고자 했지만 집권 세력 앙골라해방인민운동MPLA이 마침내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도스 산토스의 국가 수탈로 커다란 이익을 본 그의 아들과 딸은 사실 심각한 법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앙골라 국부펀드 운영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아들 조즈는 영국의 한 은행으로 5억 달러를 불법 송금한 혐의로 해임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형량은 징역 5년이었으며, 실제 복역한 기간은 7개월이었다.
도스 산토스의 딸 이자벨은 2020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U 및 BBC가 불법행위에 관한 자료를 입수해 폭로한 ‘루안다 리크스Luanda Leaks’의 핵심 인물이다. ICIJ는 그녀가 20년간의 부패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된 과정, 그리고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앙골라가 세계 최빈국이 된 이유를 매우 상세하게 밝혔다. 산토스가 물러나자마자 이자벨은 앙골라의 국영 석유기업 소낭골Sonangol 대표이사에서 해임되었다. 소낭골은 앙골라와 러시아의 무기거래에서 비롯된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부패에 관여되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 책 19장과 20장에서 다루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자벨이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소낭골에서 3,200억 달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했다. ICIJ는 이자벨과 최근 사망한 그녀의 남편이 41개국에 400여 개의 업체를 소유해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업체 중 94개는 몰타, 모리셔스, 홍콩 등 비밀거래가 가능한 지역에 설립되었다. 2019년 12월 이자벨의 자산은 앙골라로부터 압류되었으며, 그녀가 부정축재한 자산을 대규모로 숨겨놓은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에서는 2020년 2월 은행 계좌에 대한 동결명령이 내려졌다. 이자벨은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는 부패 인사들이 항상 그렇듯 현재 런던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다. 그녀의 부패와 돈세탁을 가능하게 해준 은행, 기업형 로펌, 감사인, 컨설턴트 역시 사법당국이나 직업윤리 감독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전 대통령은 사법당국의 수사를 피하지 못했다. 이 책 10장과 11장에서 설명하는 남아공 무기거래에서 뇌물을 수수한 주마는 뇌물을 공여한 프랑스 무기업체 탈레스와 함께 부패,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주마는 언제든 법정에서 결백을 증명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법정에 서지 않기 위해 변호인단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의 재판은 2021년 시작될 예정이다. 필자는 이 책에 서술한 사건들에 관해 208명의 다른 증인들과 함께 주마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를 제출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어둠의 세계》가 출간된 뒤로도 주마는 대통령직에 8년 이상 머무르면서 자신의 무기거래 경험을 살려 ‘국가 포획state capture’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부패를 통해 남아공 GDP의 3분의 1을 수탈했다. 무기거래 관련 부패에 대한 재판은 주마에게 시작일 뿐이다. 이는 부패한 무기거래가 남아공의 신생 민주주의에서 거버넌스와 책임성에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는지 잘 보여준다. 주마의 ‘국가 포획’을 가능하게 해준 은행, 로펌, 감사인, 컨설턴트 들은 도스 산토스 일가의 앙골라 수탈을 도운 이들과 다를 바 없다.
6장과 8장에서 등장하는, 악명 높은 무기딜러이자 전쟁범죄를 사주한 거스 코웬호벤은 주마의 재임 기간 동안 남아공 비자를 얻어 호화롭게 생활했다. 2017년, 코웬호벤은 이 책에서 설명한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 결국 네덜란드 법원에서 전쟁범죄, 라이베리아 및 기니에서의 불법 무기거래 등 세 가지 혐의에 대해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따르면 그는 민간인 3명의 머리를 절단하고 아기들을 벽에 던져 살해했으며,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사용하고 재산을 빼앗기도 했다. 이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남아공 주마 정권은 체포를 피해 도망친 코웬호벤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송센터’의 끈질긴 캠페인 끝에 그의 비자는 2020년 말 취소되었으며, 그를 네덜란드에 인도하지 않는다는 남아공 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가 즉시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코웬호벤의 범죄와 악행이 남아공 언론에 활발히 보도되는 와중에 국제기구인 ‘채굴산업 투명성 이니셔티브EITI’는 코웬호벤의 사업 파트너를 공고민주공화국에 대한 산하 감시기구 위원으로 임명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역시 코웬호벤이 잔인하고 부패한 정권을 등에 업고 막대한 부를 쌓은 곳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각국 정부가 무기딜러 및 전범들에게 계속 피난처를 제공한다면, 그리고 EITI 같은 단체가 무기딜러들을 위한 ‘평판 세탁’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끔찍한 인권침해를 낳은 무기거래는 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장려하면서 참가자들을 계속 끌어모을 것이다.
미국의 행동은 언제나 그렇듯 세계 무기산업의 향배를 결정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 미국의 국제적 군사모험주의와 과도한 국방비 지출에 반대했지만, 당선 이후 입장을 바꿔 사우디를 비롯한 억압적 정권들에 대대적으로 무기를 판매하고 무기수출 규제를 완화해왔다. 또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말하면서도 공화당 신보수주의 세력과 미국의 동맹인 사우디, UAE, 이스라엘의 오랜 표적이었던 이란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행정부가 F-35 전투기에 무려 1조 5,00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며 비판했으나, 대통령에 당선되자 역사상 가장 비싼 무기체계인 F-35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F-35는 중대한 소프트웨어 결함부터 기관포 조준 오류까지 각종 문제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F-35가 “너무 자주 고장난다”며 국방부가 이례적으로 인정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책의 4부에서 밝히는 것처럼 록히드마틴 등 방산업체들은 설계 결함, 일정 지연, 과도한 지출 등 무기체계의 여러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F-35는 그것의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들였음에도 감독 및 책임성의 부재가 심각했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상황이 달라질까? 방산업체들의 정치자금 기여도,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발언, 그리고 다양한 국가안보 엘리트와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바이든 집권 이후에도 현상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행정부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분야가 있다면 분쟁과 기후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군사주의와 전쟁이 환경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쟁과 환경 관측소’의 연구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이 연구는 군사력 강화와 분쟁 자체의 영향은 물론, 분쟁 이후에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하여 사람과 환경에 치명적 영향이 미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6조 4,000억 달러를 투입한 전쟁으로 3,7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80만 1,000명이 사망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우선은 이 책의 도입부에서 설명하듯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 축은 서구와 사우디의 관계라는 사실이며, 그다음은 당시 주미 사우디 대사가 알야마마 사업에서 부정하게 지급받은 10억 파운드 중 일부가 반다르 왕자의 부인 계좌를 거쳐 9·11 테러 당시 비행기를 납치한 사우디인 15명 중 2명의 계좌로 ‘우연히’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의 시민들은 낭비가 심한 국방 부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밀 무기거래에 지금처럼 많은 세금이 투입되는 관행을 거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부패는 더욱 심화되고 민주주의는 약화되며, 세계의 건전성과 안전성은 오히려 후퇴할 것이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