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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2
씬 51. 골목길 가게/밤.
동주와 호정만이 평상에 앉아있다.
웃음을 머금은 호정이 동주를 빤히 쳐다본다.
헛기침을 하며 잔을 드는 동주의 눈에 반창고를 여러 개 붙이고 있는 호정의 손이 보인다.
동주: 그 손은 왜?
호정 아, 이거요? 철사장 연습하다가요.
동주: 철사장요?
호정: 손가락 단련.
호정이 평상에서 일어나 다리를 벌리더니 자세를 잡는다.
호정: 모래를 불에 달군 다음 손을 넣었다 빼는 거죠. 슉! 슉! 슉! 그 모래를 화룡출판사 편집장 얼굴이다 생각하고 슉! 슉!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굳은살이 베길 때까지!
동주: 술, 괜찮으시겠어요?
호정: 여기 혈!
호정이 갑자기 동주의 명치쪽으로 손바닥을 빠르게 내민다.
깜짝 놀라는 동주.
동주: 헉!
호정: 날 만만하게 보는 놈들 쿡!
다시 다소곳하게 앉는 호정.
호정: 한 잔 따르시죠.
동주: 네.
다시 단숨에 한잔을 비운 호정.
동주: 근데, 그 술은 괜찮…….
비실비실 웃더니 동주의 무릎 위에 쓰러지며 잠든다.
동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동주: 어이그, 내가 진짜 선생, 선생만 아니라면.
씬 52. 개천 길/밤.
길을 걸어가던 완득 부가 술기운에 휘청한다.
부축하는 완득.
완득 부 앞에 등을 대고 앉는다.
잠시 보던 완득 부가 완득에게 업힌다.
완득 부: (완득이 일어서는 속도와 동일하게) 아이구, 높다. 이 자식. 다리 긴 것 좀 봐라. 완득아……. 멋있다. 완득이……. 멋있어…….
잠이 드는 완득 부.
길을 오르는 완득의 얼굴이 한 동안 보여 진다.
씬 53. 교무실.
교무실에서 햇반에 컵라면을 먹고 있는 동주.
그에게 다가가는 학생부장.
학생부장: 저기, 이 선생.
동주: (돌아서며) 네.
학생부장이 서류를 한 장 흔든다.
학생부장: 이게, 이게 야간자율학습을 면제시키는 이유가 됩니까?
동주: 네?
학생부장: 예체능 학원도 아니고 킥복싱, 나, 참. 답답하시네.
동주: 아, 도완득이요. (음식을 탁탁 정리하며) 주임선생님. 킥복싱 배우면 깡패 된답니까? 킥복싱, 그거 그냥 운동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하겠다는데 뭔 권리로 막습니까? 그리고 선생님께선 국어를 가르치시죠? 제가 답답합니다. 말 그대로 야간자율학습입니다. 자율학습을 면제 시킨다는 게 문법에 맞나요?
학생부장: 뭐요?
동주: 뭐, 위에서 야간강제학습으로 바꾼다면 고려해보죠. 전 수업시간이 다 돼서, 이만. (잘 먹었다는 듯 배를 문지르며) 아, 못 먹었다.
학생부장: 아니, 이 선생!
동주가 총총걸음으로 걸어간다.
뿔이 난 모습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학생부장.
씬 54. 체육관.
몇 몇의 관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자세를 가다듬어주는 관장.
관장이 한 쪽으로 시선을 쓱 돌리면 체육관 앞에 서있는 완득이 보인다.
완득을 무시하는 관장.
그렇게 체육관의 전경이 시간흐름으로 잠깐 보인다.
이내, 완득의 앞으로 던져지는 줄넘기용 줄.
완득이 올려다보면 관장이 서있다.
관장: 이제부터 내 허락 없이 글러브 잡지 마. 기초체력부터 다져. 여기 오면 줄넘기. 나가면 달리기다. 알겠어?
사무실로 들어가는 관장.
완득이 줄을 두 손으로 잡아본다.
씬 55. 길거리/새벽.
길을 뛰어 올라가는 완득.
길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의 짐칸에 신문이 가득 실려 있다. 잠시 후, 골목 안에서 뛰어나오는 신문배달원.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완득이 시선을 돌리면 신문보급소의 간판이 보인다.
신문배달을 하는 완득.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뚫고 달리는 완득의 모습이 한 동안 보인다.
씬 56. 교실/낮.
동주: 저 위대한 킥복싱 선수 좀 봐라. 안 일어나, 새끼야!
완득이 고개를 번쩍 들고 일어난다.
동주: 혁주처럼 책 보는 척 자는 성의나 보이던가. 새끼가 대놓고 엎드려 자고 자빠졌어.
혁주도 입가에 침을 닦으며 부스스 눈을 뜬다.
동주: 얌마, 도완득. 싸움 자신 있다고 야자 빼줬더니 얻어터지고 와. 야, 혁주하고 완득이. 내가 꼴 보기 싫어 죽겠지? 니들은 고3때도 내가 무조건 담임이다. 새끼들아.
순간, 들리는 노크 소리.
일제히 문 쪽으로 시선이 향한다.
잠시 후, 학생부장이 문을 열고 그 뒤로 한 남자가 보인다.
학생부장: 이 선생님.
동주가 학생부장을 쳐다보면, 학생부장이 이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으로 뒤의 남자를 돌아본다.
남자: 이 동주 선생님이시죠?
동주: 그런데요.
남자: 잠깐 나와 주시죠.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는 동주.
남자: 학생들 있는데 좀 나와 주시죠.
동주: 학생들 있는 게 보이면 지금 수업중인 거 아시겠네요.
남자: 네?
동주: 문 닫으세요.
학생부장이 남자의 표정을 살핀다.
동주: 자, 어디까지 했지? 그러니까 이 사회보장제도라는 건…….
남자가 동주와 학생들의 시선을 살피더니 문을 닫는다.
씬 57. 운동장/낮.
승용차 앞에 서있는 동주와 형사.
동주: 신고한 사람이 누굽니까?
형사: 서에 가서 얘기 하시죠.
동주: 이 상준씨죠?
형사: 타시죠.
동주: 아, 영감. 진짜.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있는 동주의 모습이 보인다.
씬 58. 체육관/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샌드백을 치고 있는 완득에게 다가가는 관장.
관장: 요 며칠 핫산이 안 나오네?
완득: 핫산 형이요?
관장: 한 번도 운동 빠진 일이 없는 녀석인데……. 이상하네. 너 킥 한 번 보자.
완득이 미들킥으로 샌드백을 친다.
관장: 디딤 발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무릎을 깊이 넣고 이렇게!
관장의 미들킥에 샌드백이 강하게 울린다.
관장을 따라 샌드백을 차는 완득.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관장.
씬 59. 교실/낮.
혁주: 야, 똥주. 외국인 노동자들 먹여주고 재워줘서 잡혀간 거래.
완득: 그게 왜? 그게 죄야?
완득: 그 외국인들이 불법체류자니까 문제가 된다는데. 똥주, 공산당인가? (소리 낮춰) 아무튼 남부서 유치장에 잡혀 있데.
완득: 뭐? 누가 그래?
혁주: 좀 전에 교무실 지나다가 들었어.
씬 60. 복도/교실/낮.
하교를 하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정 윤하를 불러 세우는 완득.
완득: 정 윤하, 나 좀 잠깐 보자.
윤하: 왜?
완득: 여기는 좀 그렇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완득.
따라 들어가는 정 윤하.
완득: 똥주한테 같이 좀 가자.
윤하: 담임? 어디 있는데?
완득: 경찰서.
윤하: 어머, 왜?
완득: 나도 몰라.
윤하: 근데 거길 우리가 왜 가?
완득: 그냥, 토요일이고, 날씨도 좋으니까.
윤하: 너 지금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완득: 그렇다 치자.
윤하: 그런데 하필이면 경찰서냐? 좋아, 가자.
씬 61. 경찰서/낮.
면회실.
동주, 완득, 정 윤하가 마주하고 있다.
동주는 아주 지저분한 모습이다.
동주: 이게 누구야, 일등하고 꼴찌 아냐!
그 소리에 옆에 있던 경찰관과 눈이 마주치는 완득.
경찰관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간다.
외면하는 완득.
윤하: (태연하게) 선생님, 왜 여기 계세요?
동주: 경찰이 막 끌고 왔잖아.
윤하: 그러니까 경찰이 왜 끌고 왔냐고요.
동주: 나도 몰라. 하여간 금방 나갈 거야.
윤하: 금방 나오는지 어떻게 알아요?
동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빨리 가. 학생들이 이런 곳에 오래 있으면 안 좋아.
윤하: 네.
윤하가 일어서다가 동주를 쳐다본다.
윤하: 근데, 선생님. 이 사람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동주: 뭐가?
윤하: 이런데 잡혀왔다고 세수도 못하게 해요? 치사하게.
윤하가 시선을 돌려서 경찰관을 째려본다.
동주와 시선이 마주치는 경찰관.
헛기침하는 동주.
동주: 얌마! 도완득.
완득: 네.
동주: 넌 윤하 보디가드냐? 새끼가 가만히 와서 가만히 가네.
완득: …….
동주: 사식이라도 좀 넣었냐?
완득: 네?
동주: 됐다. 새끼야. 제자라는 게 선생이 고생하는데. 가라. 가! 새끼야.
몸을 돌리다가 다시 돌아서는 동주.
동주: 얌마, 도완득. 너 교회 사랑방은 한 번 들러봤냐?
완득: 아무도 없던데요.
동주: 그래? 알았어. 가 봐.
문을 나서는 완득과 윤하를 잠시 보더니 돌아서 들어가는 동주.
씬 62. 산성길/밤.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완득과 윤하.
완득: 요즘은 편지지 안 팔린다고 천원에 엄청 주더라.
윤하: 편지지? 왜?
머쓱한 표정의 완득이 말이 없다.
윤하: (씩웃으며) 나한테 편지 적었구나? 맞지? 맞지?
완득: 아니, 그게…….
윤하: 줘 봐, 빨랑. 빨랑. 빨랑. 빨랑!
완득이 품속에서 편지지 한 장을 꺼낸다.
얼른 낚아채는 윤하.
완득: 집에 가서 읽어.
윤하: 지금 못 읽게 하면 나 안 읽어.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는 완득.
윤하가 편지지를 펼쳐서 읽는다.
“윤하에게”
“요즘은 내가 보는 모든 게 너랑 닮았다. 구름도 닮았고 꽃도 닮았고 달도 닮았다. 오늘 구름은 쭉 찢어진 게 너의 웃는 모습을 닮아서 나도 입이 쭉 찢어지게 웃었다.”
완득이 안 되겠다는 듯 일어나서 편지지를 뺏으려고 한다. 요리 조리 피하는 윤하.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완득과 윤하의 실루엣.
마치 그림자극을 연상시킨다.
문뜩 멈추는 두 그림자. 멀리서 들려오는 대사들.
윤하: 너, 내일 뭐해?
완득: 뭐? 체육관 가야지.
윤하: 나도 갈래.
완득: 니가 거길 왜 와?
다시 ‘나 잡아봐라’를 하는 두 그림자.
윤하: 나도 갈래.
완득: 학원이나 가. 빨리 줘.
두 그림자의 실랑이가 한 동안 보여 진다.
씬 63. 골목길/밤.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골목길을 오르는 완득. 완득이 어딘가를 올려다본다.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불 꺼진 동주의 옥탑 방이 보인다.
다시 올라가는 완득.
이내, 들려오는 벨소리.
계속해서 이어진다.
완득이 다가가면, 호정이 대문의 벨을 계속 누르고 있다.
완득: 없어요.
호정이 돌아보는데 술을 한 잔한 얼굴이다.
호정: 왜? 글빨이 막혀서 찾아왔는데. 술 한 잔 하면서 뚫어보려고.
완득: 잡혀갔어요.
호정: 네? 어디요?
완득: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호정: 네? 그 분 선생님아니에요?
완득: 맞아요.
호정: 근데 왜?
완득: 낮엔 그렇긴 한데 밤엔 뭐하는지 모르니까요.
집으로 올라가는 완득.
의아한 표정의 호정.
씬 64. 체육관/낮.
완득은 샌드백을 차고 있고 정 윤하는 조그만 아령을 들고 끙끙대고 있다.
완득: 옆으로 다가오는 관장.
관장: 누구냐?
완득: 우리 반 애요.
관장: 근데 여긴 왜 왔대?
완득: 다이어트한대요.
관장: 여기가 무슨 헬스클럽이냐?
관장이 완득을 빤히 쳐다본다.
관장: 몸 다 풀었냐?
관장을 쳐다보는 완득.
관장: 윤하라고 했냐?
윤하: 네.
관장: 니가 심판 좀 봐라.
링 위에는 완득과 관장이 있고 링 밖에는 윤하가 서있다.
윤하: 시작!
관장의 잽과 킥이 빠르고 정확하게 나온다.
완득은 관장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버거워 보인다.
가드 위를 향하는 공격에도 중심이 휘청거린다.
완득이 공격을 나가려면 번번이 한발 앞선 관장의 공격 때문에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완득: (소리) 기회는 온다. 한 방이다. 한 방을 노린다.
잠시의 공방이 있은 후, 완득의 페인트 모션에 주춤하는 관장.
완득: (소리) 왔다!
관장의 옆구리에 미들킥을 넣기 위해 빠르게 회전하는 완득.
하지만 예상 외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관장이 팔꿈치와 무릎으로 미들킥을 방어함과 동시에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는 완득의 왼쪽 다리에 강한 로우킥을 집어넣는다.
철퍼덕 넘어지는 완득.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허벅지를 부여잡고 다시 쓰러지고 마는 완득.
링에 누워서 천정을 쳐다보고 있는데 수건 한 장이 펄럭이며 날아와서 얼굴을 덮는다.
잠시 후, 수건을 걷어내며 다가오는 얼굴.
정 윤하다.
윤하: (팔을 잡으며) 괜찮아?
숨쉬기가 어려운 듯 컥컥거리는 완득.
윤하: 구운 마늘을 먹어야 되는데.
완득: 뭐?
윤하: 추신수 선수는 그거 먹는데.
완득: 내가 야구선수냐?
윤하: 야, 나 앞으로 너 매니저 할래.
완득: 뭐, 어휴.
코너에서 관장이 글러브와 장비들을 정리하고 있다.
관장: 지는 연습부터 하는 거야. 맞아 봐야 맞는 법도, 피하는 법도 알지.
껄껄거리며 링을 내려가는 관장.
반한 모습으로 관장을 말을 듣고 있는 윤하.
윤하: 맞어.
관장: 내가 공격할 부위만 보지 말고, 상대방 움직임을 봐.
윤하: 맞어.
완득이 윤하와 관장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인다.
씬 65. 완득의 집/밤.
문을 열려는데 아래쪽에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보인다.
보자기를 풀면 찬합이 들어있고 그 위에 놓인 쪽지가 보인다.
완득이 쪽지를 열어본다.
완득 모: (소리) 기다려도 안 와서 그냥 갑니다. 반찬 남기지 말고 먹으세요.
찬합 통을 열면 백반에 맛깔스러운 반찬이 가득이다.
찬합을 다시 덮고는 방 안 구석에 둔다.
렌지에 냄비를 올려서 불을 켠 후, 라면 하나를 까서 그 옆에 둔다.
물이 끓을 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완득의 눈에 찬합이 자꾸 밟힌다.
벌떡 일어나 렌지의 불을 끄고는 찬합을 다시 푼다.
음식을 먹는 완득.
완득: 아……. 짜다…….
그러면서도 우걱우걱 먹는 완득.
씬 66. 주택가/새벽.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거리를 달리는 완득.
그의 등 뒤로 메어진 가방에는 신문 뭉치가 들어있다.
신문을 하나씩 빼내면서 배달하는 완득.
원투 로우킥, 원투 하이킥 등 고난이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완득의 모습이 빠르고 경쾌하다.
씬 67. 킥복싱 체육관/오후.
완득을 포함한 서너 명의 관원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타닥거리며 바닥을 치는 줄 소리가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들려온다.
샌드백을 향해서 날리는 완득의 하이킥이 제법 모양 나온다.
그런 완득을 쳐다보는 관장.
관장: 너, 다른 체육관 애랑 스파링 한번 해볼래?
씬 68. 교실/낮.
문 앞에 서있는 동주.
경찰서보다 한층 지저분한 모습이다.
동주: 새끼들, 이게 웬 미친 학습모드야!
순간, 환호성을 지르며 책상을 두드리는 학생들.
성큼성큼 들어와 교탁 앞에 서는 동주.
동주: 이놈의 인기는, 싸인 받고 싶은 사람은 야자 시간에 따로 찾아와. 싸인 받은 사람은 야자 하루 면제다.
다시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들.
동주: 시험 얼마 안 남았다. 알아서들 해. 그렇다고 체육이나 음악시간에 대놓고 다른 과목 공부하지 말고, 그 선생님들도 졸라 공부해서 선생 됐으니까. 알았어?
학생들: 네.
교실을 나가는 동주.
혁주: (완득에게) 담탱이, 유치장까지 갔다 와놓고, 무슨 빽으로 학교에 복귀했냐? 그리고 저 거지같은 외모는 뭐야?
완득: 내가 어떻게 알아?
혁주: 옆 집 사는 애가 그것도 몰라?
완득: 됐다.
혁주: 음, 완득아. 오늘밤은 니네 집에 가서 라면 먹어도 돼?
완득이 혁주를 보며 한숨 쉰다.
완득: 화장실이나 갈란다.
혁주: 얌마! 완득아. 에이, 그럼.
혁주가 윤하를 쳐다보면 윤하가 앙칼진 얼굴로 쳐다본다.
혁주: 나도 화장실이나 갈란다.
씬 69. 동주의 집/밤.
문 앞에 두부를 들고 서있는 완득 부.
그 옆으로 완득과 민구가 보인다.
완득: 선생님…….
조용하다.
완득: 없나 봐요. 그냥 가요.
완득 부가 완득을 한 번 쳐다보더니 직접 부른다.
완득 부: 선생님! 이 선생님!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나오는 동주.
얼굴에 온통 비누 거품이다.
씬 70. 동주의 방/밤.
동주: 김치가 있어야 되는데, 없으니 그냥 먹겠습니다.
커다란 두부를 우걱우걱 먹는 동주.
완득이 동주의 방을 둘러본다.
완득의 집과 별 차이가 없지만 한 쪽 벽면이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다.
민구는 책장에서 튀어나온 책들을 밀어 넣거나 책장 앞 쪽에 있는 사진들을 나란히 정리한다.
완득 부는 함께 가져온 오징어와 소주를 꺼낸 후, 동주에게 따른다.
완득 부: 무슨 일로 선생님이 그런 험한 곳을.
동주: 외국인 노동자들 약점 잡아서 부려먹는 고약한 노인네 하나가 저를 신고했거든요.
완득 부: 왜요?
동주: 내가 그 노인네를 신고 했었거든요.
완득 부: 선생님 계신 곳이 무슨 단체라도.
동주: 단체 없어요. 맘 맞는 사람들끼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이번에는 제법 덩치가 있는 곳을 찔렀더니 바로 맞받아치더라 고요. 그나저나 오일장 다니시는 건 좀 어떠세요?
완득 부: 자리 잡기가 힘들어요. 좀 크다 싶은 장은 조합이 있어서 목 좋은 자리는 알음알음 그 사람들이 다 차지해요.
동주: 그놈의 연줄이 시장에도 있었네.
민구: 연줄, 요즘 안 팔려, 안 팔려.
동주와 완득 부가 민구의 말에 픽 웃는다.
완득: 핫산 형은 어떻게 됐나요?
동주: (얼굴이 어두워지며) 핫산? 잡혀서 추방당했다.
완득: 왜요?
동주: 일하다 보니 체류기간을 넘겼어. 대부분 그렇게 불법이 되는 거지. 고용주들은 그걸 악용하기도 하고. (혼자말로) 고약한 노인네.
완득: 그 사람들하고 계속 있으면, 선생님 또 잡혀가시는 거 아니에요?
동주: 외국인 노동자하고 있는 게 불법이냐? 하하하.
한참을 웃는 동주.
완득: 그럼 그 교회는 교회를 가장한 외국인 노동자 모임 장소네요.
동주: 교회 맞아. 새끼야!
완득: 근데 그 교회, 사이비 아니에요?
동주: 사이비 아냐, 새끼야!
완득: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던데요?
동주: 무슨 기도?
사람들이 완득을 가만히 쳐다본다.
완득: (머쓱하게) 저 먼저 가요. 드시고 오세요.
집을 나가는 완득의 뒤에 대고 소리치는 동주.
동주: 무슨 기도냐고? 임마! 기도는 열심히! 매일 매일 해야지. 새꺄!
씬 71. 동주의 집 옥상/밤.
동네를 둘러보는 완득. 야밤의 불빛이 동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씬 72. 몽타주/낮.
경쾌한 음악소리 아래, 완득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모습이 빠르게 편집되어 보여 진다.
윤하는 간간히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샌드백을 치고 있는 완득의 옆에서 코치인양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정 윤하.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완득.
미트를 대고 있는 윤하.
망설이는 완득.
빨리 차라는 윤하.
미들킥을 날리는 완득.
미트와 함께 뒤로 자빠지는 윤하.
줄넘기를 하고 있는 완득.
미트를 대고 있는 관장과 호흡을 맞추는 완득.
펑펑하며 들리는 미트 소리가 강하다.
그 위로 어렴풋이 종소리가 울린다.
씬 73. 학교 교실/낮.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동주.
맞은편으로 학생들이 앉아있고 그 사이에 역시 엎드려서 자고 있는 완득이 보인다.
학생부장이 들어와서 동주에게 다가간다.
학생부장: 이 선생. 이 선생.
동주: (부시시 일어나며) 어? 무슨 일이세요?
학생부장: 내 수업시간이에요.
동주: 아, 그래요.
동주가 일어나서 교실을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칠판을 지우는데 ‘자습’이라고 씌어져 있다.
씬 74. 골목길/밤.
골목길을 경쾌하게 뛰어오르는 완득.
문뜩 멈춘다.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티코가 보인다.
민구는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그 옆으로 도시락을 든 완득 모와 완득 부가 서로 노려보고 있다.
말없이 지나치는 두 사람.
완득 모가 골목길을 내려오자, 완득이 한 쪽 코너로 몸을 숨긴다.
완득 모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완득.
씬 75. 체육관/낮.
앙다문 얼굴의 완득.
샌드백에 유독 강하게 전달되는 완득의 다양한 킥과 펀치.
한 동안 보인다.
씬 76. 교회/밤.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완득과 윤하.
윤하가 완득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
윤하: 너 내일 시합인데 괜찮니?
완득: 괜찮아.
윤하: 너무 무리했나봐. 눈동자까지 충혈 됐네. 너 나 보이니?
완득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눈을 살피는 윤하.
완득의 눈에 정 윤하의 입술이 보인다.
뽀뽀를 하는 완득.
잠시 가만히 있는 두 사람.
윤하: 야!
완득: 왜?
윤하: 뭐 이런 게 다 있어? 니가 내 남자친구야? 너 미쳤어!
완득: 나가자. 똥주 나타날지 몰라.
소리: 나타났다. 새끼야.
두 사람 놀라서 돌아보면 동주가 서있다.
동주: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서 선생님한테 똥주야! 니들 딱 붙어서 뭐 했어?
완득: 뽀뽀했는데요.
동주: 뭐! 형제님들! 형제님들은 왜 남의 교회에서 연애질을 하고 계십니까?
완득: 선생님은 여기 무슨 일로…….
동주: 나 여기 전도사로 있기로 했다. 이 새끼야.
완득: 뭐요?
동주: 뭘 놀래, 형제님 새끼야. 전도사 첨 봐?
완득: 네, 선생님 같은 전도사는 처음 봅니다.
동주: 뭐야? 이 새끼야!
완득: 여기 교회 맞아요?
동주: 맞지, 새끼야. 십자가 안 보여? 그리고 여기 성경책. 새끼가 생각보다 믿음이 좋아.
완득: (뒤로 돌아보며) 무슨 믿음이요, 여기 교회도 아니면서.
동주: 교회다 싶으면 교횐 거지, 교회가 뭐 특별한 데라도 되는 줄 아냐? 윤하야. 너 왜 저런 새끼랑 다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차라리 혁주랑 다녀라!
킥킥거리는 정 윤하.
완득: 가자!
동주: 얌마, 도완득.
완득이 돌아서 동주를 쳐다본다.
씬 77. 교회마당/밤.
한 쪽에 서 있는 동주와 완득.
한참 떨어진 곳에 윤하가 서성이고 있다.
동주: 너, 이 새끼. 윤하랑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된거야!
완득: 네?
동주: 그러니까! (힐끔 윤하 쪽을 쳐다보더니) 여자는 어떻게 꼬시냐고?
완득이 가만히 동주를 쳐다본다.
씬 78. 성북동 체육관/낮.
체육관에 서 있는 완득, 관장, 성북동 체육관 관장 그리고 다수의 관원들이 보인다.
현대적인 시설로 잘 꾸며진 체육관이다.
관장: 애들 몸 좀 풀어 놨냐?
성북관장: 우리 애들이야 늘 풀려 있죠. 도진아, 몸 좀 풀었냐?
도진: 예!
관장: 쟤야?
성북관장: 네.
관장: 그럼 바로 할까? (완득에게) 괜찮지?
완득: 네
보호 장구를 착용한 완득과 도진이 링 위에 서있다.
심판을 보기로 한 김 사범의 신호에 시합이 시작된다.
링 주위에 몰려있는 회원들.
공 소리와 함께 서서히 상대에게 다가가는 완득과 도진.
잠시의 탐색전 후, 원투스트레이트 로우킥, 원투스트레이트 하이킥.
컴비네이션을 펼친다.
순간적으로 도진의 얼굴에 적중되는 스트레이트성 잽.
휘청하는 도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파고 들어가며 잽과 로우 킥을 무수히 날린다.
하지만 도진은 완득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민첩하게 공격으로 연결한다.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 속에 라운드가 끝난다. 코너에 앉아있는 완득에게 쉼 호흡을 시키는 관장.
지친 모습이 역력한 완득.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다.
관장: 지치기는 저 쪽도 마찬가지다. 괜찮아?
완득: 헉, 헉. 관장님.
관장: 왜?
완득: 3분이, 헉, 헉, 왜 이렇게, 헉, 헉, 길어요?
관장: 흐흐흐. 죽지는 않겠네.
2라운드 공이 울린다.
관장: 3분이다. 가자!
주먹을 강하게 부딪히며 일어나는 완득.
라운드가 시작되자, 도진의 공격에 초반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맞으면 맞을수록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완득.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방어는 되지 않는다.
점점 멍해지는 완득의 오감.
완득의 눈에 뭐라고 소리 지르는 관장의 액션이 보이지만 왠지 느린 화면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도진의 공격 속에 링 밖의 소리는 이미 들리지도 않는다.
무모한 완득의 라이트 훅을 피하며 터지는 도진의 카운터. 링 위에 대자로 쓰러지는 완득.
깊은 물속으로 잠수한 듯 진공소리만이 완득의 귓가를 맴돈다.
뭔가 꿈을 꾸는 듯, 아버지와 어머니, 윤하, 민구 삼촌의 얼굴이 일렁거리며 지나간다.
피식 피식 웃는 완득.
이내 동주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예 소리까지 내며 웃는 완득.
정신은 놓은 것처럼 보인다.
짧게 웃다가 짧게 코를 골고 잤다가 난리다.
헤롱거리는 완득의 얼굴위로 쏟아지는 물. 완득의 시선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장과 성북관장.
완득의 얼굴은 여전히 넋이 나간 듯 웃고 있다.
성북관장: 골이 꽤 흔들렸네요.
관장: 응. 웃다가 자다가. 제대로네.
관장이 완득을 일으켜 코너에 앉힌다.
관장: 이 정도면 잘했다. 쟤 고등부 랭킹 3위야.
완득: 히히, 3위. 히히.
관장: 아직도 골이 제자리를 못 찾았구만.
엉망인 얼굴로 천정을 올려다보는 완득.
정말 속 시원하게 맞은 듯, 크고 통쾌하게 웃는 완득.
씬 79. 길거리/낮
한적한 길거리의 벤치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먹고 있는 완득과 관장.
관장: 완득아.
완득: 네.
관장: 체육관, 문 닫을 생각이다.
완득: (관장을 잠시 쳐다보다가) 관장님!
관장: 별 신통치도 않은 체육관 문 닫으려고 하니 핫산 오고 너 오더라. 동주 선생이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고.
관장을 쳐다보는 완득.
관장: 이 선생 말이 너 안에 불덩이를 하나 품고 있는 게 보이는 데, 그거 잘못 뿜으면 여럿 다칠 것 같다고 부탁하더라.
완득: 어디로 가시는데요?
관장: 알면?
완득: 따라가서 운동하게요.
관장: 거기서 어떻게 운동을 해.
완득: 어딘데요!
관장: 마누라가 많이 아프다. 의사가 공기 좋은 데서 지내래서 홍천으로 간다.
완득: 강원도요?
관장: 그래. 젊어서 맞고 때린 사람은 난데, 왜 마누라가 아퍼. 전생에 업보가 쌓였나.
잠시 말없이 앉아있는 두 사람.
완득: 자주 찾아갈게요.
관장: 홍천?
완득: 네.
씬 80. 완득의 집/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는 완득.
새시 문에 열쇠를 꽂으려던 완득이 손을 멈춘다.
문이 잠겨있지 않은 게 보인다.
방 안에선 얼뜻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완득: 아버지가 왔다면 티코가 있어야 하는데 도둑?
완득이 열쇠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운동화의 끈을 바짝 조인다.
조용히 새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방문을 잡고 쉼 호흡을 한 후, 문을 빠르게 열며 방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서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한 걸음 다가간 후, 무릎을 깊이 넣고 정확하게 정강이로 옆구리를 가격하는 완득.
푹 꼬꾸라지는 어둠속의 인물.
스위치를 켠다.
깜짝 놀라는 완득의 얼굴.
동주다.
옆구리를 잡은 채 뒹굴고 있다.
완득: 헉!
동주: 너, 이 싸지가 없는 새끼 감히 학생이 선, 선생을…….
씬 81. 개 천길/밤.
동주를 업고 개천 길을 다급하게 뛰어가는 완득.
교회 옆을 지나가다 잠시 멈춘다.
완득: 하나님, 헉헉! 제 기도를 이런 식으로 들어주나요? 헉헉!
다시 달리는 완득.
그 앞으로 고양이가 한 마리 휙 지나간다.
완득: 비켜! 개새끼야!
동주: (힘겹게) 고양이야. 이 새끼야.
동주의 말소리에 멈춰서는 완득.
고개를 돌려 동주를 쳐다보는 완득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동주: 이……. 새끼……. 무슨 기도 한 지……. 알았다……. 이 새끼……. 매일 매일! 열심히! 기도한 모양이네. 이 새끼…….
완득: (울면서) 이, 씨. 좆나게 무겁네. 씨.
동주: 나는 좆나게 아프다……. 이 새끼야…….
다시 개천 길을 뛰어가는 완득.
바람에 눈물이 옆으로 흩날린다.
씬 82. 교실/낮.
학생부장이 교실 앞에 서있다.
학생부장: 담임선생 곧 돌아오실 거다. 자리에 없다고 야자 빠지거나 하지 말고 착실히 수업하도록. 얌마, 도완득.
완득: 네?
학생부장: 알겠지?
완득: 네.
학생부장이 교실을 나간다.
혁주: 담탱이 또 잡혀갔냐?
완득: 뼈에 금이 가서 입원했어.
혁주: 왜?
완득: 킥복싱하다가.
혁주: 하다하다 이제 별짓을 다 하는구나.
씬 83. 병원/밤.
완득이 조심스레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주 옆에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문을 닫으려는 완득.
동주: 얌마, 도완득! 와놓고 어디 가?
완득: 손님이 계셔서요.
동주: 옆에 앉아 있어.
완득이 동주: 옆, 빈 침대에 걸터앉는다.
동주 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게…….
동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까 그러는 거예요.
동주 부: 그래서 제 아비 공장을 신고했냐?
동주: 외국인 노동자들 험하게 대하셨잖아요.
동주 부: 나는 그 사람들, 합법적으로 대했다.
동주: 합법적으로 법을 피해서 대했겠죠.
동주 부: 이놈, 꼴같잖은 선생질이나 똑바로 할 일이지. 뭔 놈에, 외국인 노동 자, 외국인 노동자. 노래를 부르고 다니냐? 왜? 외국인 신부라도 하나 데려오려고 그러냐! 너 앞가림이나 잘 해! 이놈아! 약해 빠진 놈 같으니라고!
동주가 완득을 잠시 쳐다본다.
동주: 베트남에서 온 티로 누나 기억하시죠? 아 왜, 필통 판금하다가 절단 기에 손가락 잘려서 귀국시켰던. 저요, 그때부터 철로 된 필통 안 썼어요.
동주 부: 자원봉사도 아니고, 노동이 안 되는 사람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순 없었다.
동주: 하하하. 치료는 하고 보내셨어야죠. 안 그래요? 잘린 손가락 세 개가 손등까지 썩도록 부려먹다 보냈잖아요. 도대체 외국인 노동자한테만 왜 그러세요? 아! 맞다. 아버지는 원래 약자한테만 무지 강한 분이셨죠. 그걸 자꾸 잊네, 내가.
동주 부: 정 기사, 정 기사!
동주 부가 흥분된 표정으로 문 쪽을 쳐다본다.
동주 부: 천하의 못된 놈!
동주 부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양복 차림의 정 기사와 완득이 어리둥절하게 동주 부를 쳐다본다.
문 앞에 서있는 완득을 보고 그 옆에 멈추는 동주 부.
동주 부: 니가 찬 놈이냐?
완득: 죄송합니다.
동주 부: 아주 뒈지도록 찼어야지 이놈아!
병실 문을 나서는 동주 부.
휠체어를 끌고 따르다가 이내 접어서 들고 나가는 정 기사.
동주가 힐끗 완득을 쳐다본다.
동주: 아이고 나 죽네. 너 이 새끼, 퇴원하면 봐.
완득: 아주 살짝 금 갔대요. 아주 살짝. 아직 퇴원 안 했냐고 물어보던데 요?
동주: 누가 그래? 나 죽을지도 몰라, 새끼야.
완득: 그러게 왜 남의 집에 계세요. 열쇠는 어디서 나셨어요? 그리고 불이 라도 켜고 계시죠.
동주: 니가 불 켤 때 스위치 거기 있는 줄 알았다. 새끼야. 그리고 니 아버님이 너한테 일 생기면 봐달라고 열쇠 하나 줬고.
완득: 나한테 무슨 일이 있다고 왔어요, 그럼?
동주: 니가 아니라 나한테 있어서 갔지. 아까 그 영감이 밤에 갑자기 들이닥쳤잖아.
완득: 부잔가 봐요.
동주: 부자지.
완득: 선생님도 부자겠네요.
동주: 왜, 부자라 싫으냐?
완득: 저 원래 선생님 싫어해요.
동주: 알아, 새끼야.
완득: 근데 왜 가난한 척하고 다녔어요?
동주: 새끼야, 척이 아니라 진짜야. 옥탑 방에 사는 거 보면 몰라?
완득: 아닌 건 아닌 거예요! 하도 가난해서 다른 나라로 시집온 어머니 있어봤어요? 장애인 아버지 때문에 놀림 받아봤어요? 배고파서 쪽 팔린대도 참고 수급품 받아가 봤어요?
동주: 새끼가 주둥이로 킥복싱을 배웠나? 니 아버지, 사고로 키 안 크신 게 니 아버지 잘못이냐? 그리고 니 아버지가 너한테 금칠은 못줬어도 굶기지는 않았잖아? 이 새끼야.
완득: 제가 재미있으시죠?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불쌍한 놈이 있을까하고 재미있으신 거죠!
동주: 이 새끼가? 그래, 이 새끼야. 재밌다. 이 새끼야. 아주 재밌어 환장 하겠다. 이 새끼야. 문병 오면서 복숭아 하나 안 사오고 싸가지 없는 새끼.
침대에서 일어나는 완득.
동주: 야, 어디 가.
대답이 없이 가방을 챙기는 완득.
동주: 운동하러 가냐? 데이트나 해, 새끼야. 만날 얻어터지면서 운동은 그리고 너. 이 새끼야. 어머님한테 잘 해드려. 음식 해 오시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어?
완득: 선생님 아버지. 많은 늙으셨던데 좀 잘하시지 그래요.
동주: 닥쳐, 이 새끼야. 이 새끼, 주둥이로 킥복싱 한 거 맞네. 갈려면 가. 나도 졸려. 새끼야.
획 돌아서 나가는 완득.
씬 84. 골목길/밤.
집 앞 골목길을 오르는 완득.
어딘가를 쳐다보며 멈추는 완득.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완득 모가 도시락을 들고 내려오고 있다.
완득 모: 안 씻어놔도 되는데 왜 씻었어요.
완득: 잘 먹었습니다. 힘들게 매번 음식 안 해주셔도 되요.
완득 모: 얼굴이?
완득: 괜찮아요.
완득 모: 네……. 운동한다면서요. 힘들 텐데.
완득: 그렇죠. 뭐.
잠시 말이 없는 두 사람.
완득 모: 갈게요.
완득 모가 완득을 지나쳐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완득.
완득: 저기요.
완득 모가 돌아본다.
완득: 아버지 한 번 만나보실래요?
씬 85. 교무실/낮.
몇 몇의 선생님들이 앉아있는 조용한 교무실 분위기.
완득이 동주 앞에 서있다.
동주: 그래서, 내일 수업을 빼달라고?
완득: 네.
동주: 일요일 날 가면 되잖아. 새끼야.
완득: 어머니, 일하시는 날이라 서요.
동주: 너, 잘 판단 한 거야?
완득: 네?
동주: 두 분, 따로 사시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완득: 그래도 가 보려고요.
동주: 부딪혀 보겠다? 좋아. (다짐받듯) 잘 해라!
완득: 네.
동주: 그럼 나한테 뭐 해줄래?
완득: 네?
동주: 수업 빼주면 뭐 해줄 거냐고. 이 새끼야.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아, 맞다. 너 요즘 신문 돌린다며?
완득: 네.
동주: 잘 됐다. 요즘 볼 만한 신문이 없어. 돈 주고 보는 건 아까우니까. 하나씩 쌔벼 와.
완득: 인터넷으로 보세요, 그냥.
동주: 새끼야 너는 똥 쌀 때 컴퓨터 들고 가냐?
완득: 노트북을 사든가요.
동주: 니가 사줘라 노트북.
어이없는 표정의 완득.
동주가 신문을 챙겨들고 일어나다가 문뜩 멈추더니 옆구리를 부여잡는다.
동주: 아! 아야, 이 씨.
완득을 째려보며 교무실을 나가는 동주.
씬 86. 도로/낮.
한적한 바닷가 길을 달리고 있는 시외버스.
맨 뒷자리에 창가에 완득이 앉아있고 그 대각선 앞자리에 완득 모가 앉아있다.
완득 모가 힐끔 뒤를 돌아보면 완득은 창밖만 응시하고 있다.
씬 87. 오일장 내외/낮.
완득과 완득 모가 어딘가를 올려다보면 ‘OO오일장’이라는 큰 간판이 보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고 그 사이로 들어가는 두 사람. 학교 운동장 사이즈의 넓은 공간.
수많은 천막과 장사꾼들이 보이고 그 위로 트로트 음악과 상인들의 외침이 뒤섞인다. 주위를 살피며 걸어가는 두 사람.
어딘가 ‘밀양머슴아리랑’이 들려온다.
두 사람이 시선을 돌리면 완득 부와 민구가 춤을 추며 물건을 팔고 있다.
피에로 분장에 우스꽝스런 옷을 입은 두 사람.
춤추는 사이사이 완득 부의 외침이 들려온다.
완득 부: 반들반들 마사지용 채칼! 변강쇠 깔창! 집나간 남편 돌아옵니다. 마사지 채칼! 고기반찬 올라옵니다. 변강쇠 깔창!
완득은 어색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고 완득 모는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소리를 지르며 호객을 하던 완득 부의 시선이 완득과 완득 모에게서 멈춘다.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완득 부와 완득 모.
씬 88. 숙소 앞/밤.
완득 부와 민구의 숙소다.
민박집 형식으로 나란히 방이 있고 방마다 앞쪽으로 조그만 마루가 붙어있다.
가운데 마당에는 공용 수돗가가 만들어져 있고 그 위로 빨랫줄에는 완득 부와 민구의 빨래가 나란히 널려있다.
덧마루에는 완득과 민구가 앉아있다.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의 민구.
완득의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낡은 분홍색 단화가 보인다.
이때,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완득 모: (소리) 아무리 가난해도 자랑스러운 남편이었으면 했어요.
씬 89. 방안/밤.
완득 부와 완득 모가 마주 앉아있다.
완득 부: 그래서 보내줬잖아.
완득 모: 내가 떠났어요.
완득 부: 그래, 떠났지.
완득 모: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한테 무시당하며 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 여자 저 여자 아무나 손잡고 춤추고! 아무나 당신을 만지고!
완득 부: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
완득 모: 완득이한테는 미안했지만, 당신한텐 미안하지 않았어요.
완득 부: 나도 그래. 그래서 핏덩이 같은 아들을 두고 떠났나? 그러고선 지금 나타나는 이유가 뭐야?
완득 모: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까요.
완득 부: 낳기만 한다고 다 엄만가?
완득 모: 당신도 제대로 키운 거 같지 않은데요.
완득 부: 뭐야?
완득 모: 어린 애가 혼자 밥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당신이 잘 키울 수 있다면서요!
완득 부: 왜 이래!
완득 모: 가끔 와서 용돈 주고 쌀독 채워놓으면 다예요? 그럴 줄 알았으면 당신이 싫었어도 끝까지 옆에 있었을 거라고요!
씬 90. 숙소 앞/밤.
벌컥 문이 열리며 완득 모가 나온다.
마루에서 일어나는 완득과 민구.
완득 모가 분홍색 단화를 신고는 옆으로 걸어가서 선다.
완득 모: (돌아선 채로) 배고프죠? 밥을, 밥을 해야 되는데.
완득: 한국에 밥하러 오셨어요?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 보이는 완득.
잠시의 시간이 흐른다.
완득이 열려진 문틈을 바라보면 완득 부가 쳐다보고 있다.
잠시 쳐다보던 완득 부가 시선을 내리더니 문을 천천히 닫는다.
완득: (완득 모에게) 따라오세요.
앞장서 걸어가는 완득을 잠시 쳐다보더니 뒤를 따르는 완득 모.
민구가 두 사람과 방 문 사이에서 왔다갔다 망설이더니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다.
씬 91. 재래시장/밤.
시장을 걸어가는 두 사람.
그 앞 쪽으로 보이는 신발가게.
완득: 들어오세요.
입구에서 멈칫거리는 완득 모.
주인이 두 사람 끼어든다.
주인: 그래, 얼른 들어 와. 골라 봐. 많아.
완득: 들어오시라고요.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완득 모.
완득: 신발 몇 신어요?
완득 모: 난 괜찮아요.
완득: 몇 신냐고요.
주인: 240은 되겠네.
완득: 그럼 240짜리 구두 보여주세요. 굽 좀 있는 걸로요. 저렇게 납작한 거 말고.
주인: (구두를 챙기며) 여기서 골라 봐. 응? 이거? 이거? 한 번 신어 봐. 어서.
완득이 작은 리본이 달린 검은 구두를 든다.
완득: 신어보세요.
머뭇거리는 완득 모.
주인: 사준다고 할 때 신어. 좋은 걸로 골랐네. 근데 둘이 무슨 사이야?
당황한 완득 모가 얼른 구두를 신는다.
주인: 꼭 맞네.
다시 신발을 벗는 완득 모.
완득: 그냥 신고 가세요.
다시 신발을 신는 완득 모.
완득: 얼마에요?
주인: 삼만 오 천 원인데 삼만 삼 천 원만 내.
완득이 삼만 오 천원을 내고 가게를 나간다.
가게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는 완득.
잠시 후, 완득 모가 나오는데 손에 이천 원이 들려있다.
완득에게 내밀어지는 돈.
잠시 쳐다보더니 돈을 받아드는 완득.
그 뒤에서 두 사람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주인이 보인다.
주인: 아니, 무슨 사인데 이 양반이 이렇게 쩔쩔매?
완득 모: (난처한 듯) 그냥…….
완득: 어머니요. 제 어머니.
길을 걸어가는 완득과 완득 모.
그들을 쳐다보는 주인.
씬 92. 시외버스 정류장/밤.
벤치에 앉아있는 완득 모.
완득 모의 무릎 위에는 검정색 구두가 올려져있고 발에는 분홍색 단화가 신겨져 있다.
고개를 드는 어머니의 턱이 파르르 떨린다.
턱까지 흘러내린 눈물이 덜렁거리다가 검정색 구두 위로 떨어진다.
옷소매로 구두 위에 떨어진 눈물을 닦아내는 완득 모.
잠시 후, 완득이 버스표를 들고 다가와서 옆에 앉는다.
완득 모: 고마워요…….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완득: 음식이 좀 짜요. 저 아버지처럼 짜게 안 먹어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는 완득 모.
완득: 그리고 다음에는 존댓말 하지 마세요.
완득 모: 와……. 완득아……. 이름을…….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어요.
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완득 모.
완득 모: 부탁이 있는데 한번 안아보고 싶어요.
머뭇거리던 완득이 일어선다.
따라 일어서는 완득 모.
완득이 다가가서 팔을 벌린다.
안겨오는 완득 모.
완득의 긴 팔이 조그만 완득 모의 몸을 포근히 감싼다.
완득의 눈에서 쪼르륵 흐르는 눈물 한 방울.
씬 93. 동주 집 옥상/밤.
옥상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주.
불 꺼진 완득의 옥탑 방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잠시 후, 담배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씬 94. 방안/밤.
상 위에는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올려져있고 완득 부와 민구가 그 음식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완득 부는 간간히 소주를 마신다.
민구: 맛있다, 맛있다.
완득 부: 그래? 맛있어?
민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민구: 근데, 좀, 짜다, 짜다.
완득 부: 하하하.
민구: 좋다, 좋다.
완득 부: 아주머니가 좋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민구.
민구: 완득이도 엄마 있으면 좋다. 엄마 좋다, 엄마 좋다.
소주를 한잔 마시는 완득 부.
씬 95. 산성 길.
윤하와 완득이 초콜릿과 음료수를 주며 데이트하는 장면.
씬 96. 동주 집 옥상/밤.
옥탑방 문을 열려다가 멈추는 동주.
돌아서서 완득의 옥탑 방을 가만히 쳐다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씬 97. 성남식당 외부/낮.
평범해 보이는 식당.
그 앞으로 주차되어있는 티코.
티코의 내부와 외부는 온통 짐으로 가득하다.
씬 98. 성남식당 내부/낮.
꽤 널찍해 보이는 홀에 십 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한 쪽 벽면으로는 서 너 개의 홀이 자리하고 있다.
띄엄띄엄 앉아있는 손님들.
그 사이에 앉아있는 완득 부와 민구.
민구는 헤헤거리며 음식을 먹고 있고 그 맞은편에 완득 부가 앉아있다.
계산대에 모여 있던 두 명의 종업원이 완득 부와 민구를 쳐다보며 뭔가 수군거린다.
종업원1: (조심스럽게) 야, 야. 바보하고 곱추지? 키도 되게 작네. 난쟁인가?
종업원2: 아닌 것 같은데? 멀쩡하잖아. 좀 작기는 하지만.
종업원1: 좀 작어? 많이 작구만.
종업원2: 하긴, 의자에 앉으니 다리가 안 닿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완득 모.
배달을 다녀왔는지 머리에 큰 쟁반을 이고 있다.
쟁반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돌리는데 완득 부와 민구가 보인다. 가만히 쳐다보는 완득 모.
완득 모에게 다가가는 종업원들.
완득 모에게 완득 부를 손짓으로 가르친다.
어림짐작한 키 높이를 맞추며 킥킥거린다.
완득 부와 민구를 보던 완득 모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한다.
완득 모의 시선을 따라가면 늘 완득에게 가져가던 찬합보자기가 보인다. 컷되면, 테이블에 놓여지는 찬합 한 단. 그 속에 가득 채워진 맛깔스러운 음식들. 완득 부가 올려다보면 완득모가 보인다. 민구는 완득모를 쳐다보며 깜짝 놀란 듯 ‘어?’하며 소리치다가 완득 부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급하게 음식만 먹는다. 완득모가 잔에 물을 따라서 완득 부의 옆에 둔다. 잠시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완득모가 다시 주방 쪽으로 움직인다. 완득모에게 모여드는 종업원들.
종업원1 뭔 얘기했어?
종업원2 아는 사람이야?
완득 모: (필리핀어) 내 남편. (한국어) 내 남편이에요.
놀란 표정의 종업원 1, 2. 여전히 음식을 먹고 있는 완득 부와 민구의 모습이 잠시 보인다.
씬 99. 교실(낮)
동주: 이번 방학 끝나면 이제 고3이야. 승부 갈렸다고. 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공부를 해두던가. 이제 와서 암만 공부해도 니들 대학 은 다 정해 졌어. 그러니까 이번 방학 때 실컷 놀아. 알았어? 그리 고, 도완득, 혁주. 내년에도 내가 담임한다고 했지? 니들은 반 편성 벌써 끝났어. 3학교 3반이다. 당연히 담임은 나고 새끼들아. 그리고 완득이! 아버님 춤은 내가 전수받기로 했다. 괜히 가업 물려받을 생 각 하지 말고 전단지나 착실히 돌려. 이상.
학생들 감사합니다!
동주가 교실을 나가자, 우르르 일어나는 학생들.
혁주: 야, 니네 아빠 요즘에는 담탱이랑 카바레 다니냐?
완득: 너 또 손가락 부러지고 싶어?
입이 쏙 들어가는 혁주.
씬 100. 재래시장(낮)
시장을 걸어가고 있는 완득과 완득모. 가게 앞에 서는 두 사람.
완득 모: 이 폐닭은 얼마에요?
주인 세 마리 오 천 원이요.
완득 모: 주세요. 그거하고 돼지 목살도 좀 주세요.
완득: 그렇게 많이 살 필요 없잖아요. 그냥 닭으로 사요. 질긴데.
완득 모: 싸서 산 게 아니야. 아버지가 이 닭을 좋아하셔. 몰랐니?
그런 완득 모를 가만히 쳐다보는 완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