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시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절은 “여호와여 도우소서” 라고 시작합니다. 많이 보던 것이지요. 탄식시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 탄원하시는 시입니다. 그런데 표제를 보시면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도자가 인도하면서 이 시를 불렀는지 모르지만, 인도자가 있다는 것은 공동체가 함께 이 시편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시편의 구조를보면 1절에서 4절까지는 공동체를 대표해서 인도자가 어떤 부조리나 하나님께서 간섭해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다른 예배자들을 대표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공동체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 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다고 확신을 선포합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을 살펴 봅시다.
먼저, 첫번째 부분을 보시면,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도움을 부르짖으면서 탄원합니까? 무엇이 이 시인을 탄원하게 만듭니까? 그것은 바로 1절에 나오듯이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건한 자”라고 번역되는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인애”, “인자하심”으로 번역되는 ‘헤세드’와 어원이 같습니다. “경건함”과 “충실”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경건한 자, 충실한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언약에 신실한 분임을 알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공동체의 인도자가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건한 자가 없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2절에 나옵니다. 2절을 보시면 “그들”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들이 없어지게 만드는 악한 자들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를 없어지게 만드는가 하면, 말입니다. "이웃에게 거짓을 말함으로"입니다. 그리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시인이나 경건한 자들이 악한 자들의 거짓 증거에 의해서 거짓 고소를 당하고, 그런 거짓으로 경건한 자들이 끊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한 마음과 한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마음, 뜻과 그들의 뜻와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고 따로따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3절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이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지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4절에 악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혀가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지게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하나님을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을 주장할 자가 없다는것입니다. 여호와의 통치나 자신들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악인들의 특징이고, 내 혀로, 내 입으로 하고 싶은 말 하는데, 상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입과 말에 아무런 영향력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제 5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것이 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일어나셔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을 거슬러 살아가는 악인들, 그 말로 경건한 자들을 모함하고 폭력을 일삼은 악인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처리할 것입니다. 악인의 말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경건한 자들을 도우시기 위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나십니다. 언약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언약적 의무를 신실하게 수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말로 고통 받고, 억압 받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중상과 모욕으로부터 그 백성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6절에서 8절 마지막 연에서 역시 말에 대한 주제가 이어집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합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고, 진실되고 누구를 해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2절과 3절에 말한 악인의 말과 대조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후 예배 시간에 배웠듯이 하나님의 성품이 지극히 순결하기 때문입니다. 순결하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과 행동은 순결합니다. 그것을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다는 표현이 강화시켜줍니다. “일곱 번”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결함입니다. 다른 말로는 거룩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그분의 말씀은 순결하기에 그 말씀을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완전하고 순결한 말씀은 악인들의 쓰레기와 같은 말과 비교가 됩니다. 이제그분의 말씀을 의지하는 정결한 자를 하나님은 돌보십니다.
7절에서 보면 이 세대로 부터 영원까지 지킨다고 합니다. 8절에 마지막으로 인생이 어떤 짓을 하고 살아가는지 보여줍니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열함”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로는 “무가치한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무가치 한 것을 높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결국에 여전히 악인들이 곳곳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1절에서 사용한 인생을 8절 마지막에도 사용하면서 인크루지오(inclusio, 수미쌍관 법)로 시를 마칩니다. 시인은 철저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함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시는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억압을 받는, 특별히 그들의 말과 자랑과 중상모략으로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한 시입니다. 이 시는 이 시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의 실체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차적으로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아첨하는 말을 수없이 듣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함을 받고,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공격을 받았습니다. 갖은 중상모략과 거짓에 공격 받고 억압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시인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고발하는 시끄러운 고발 소리 중에서도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부활로 당신의 순결함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오늘 시편은 우리에게 말로 억울하게 공격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보여줍니다. 시편의 기자와 시편을 부른 공동체와 같이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누가 자기에게 나쁜 말하고 말로서 힘들게 하면 성경만 읽어 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말씀으로 읽고 위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편의 기자처럼 또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정당하지 않은 비난을 받고 그것으로 상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한탄하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토로하고, 푸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갚아 준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를 욕한다고 해서 같이 욕하면 안되고,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기도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푸념할 수 있고, 우리의 괴로움을 말로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오늘 시편의 시인과 같이 용기와 확신을 얻게 해 줄 것입니다. 말로 억울한 일 당하고, 이상한 소문이 우리를 억압할 때,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남에게 말로서 상처 줄 수 있고, 말로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시편에서 나오는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자이기에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이지만, 우리도 말로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 합니다. 우선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말로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가족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지요. 아이들에게 쉽게 화를 내고, 나쁜 말을 하고, 아내에게 남편에게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이 아닌 우리의 악한 감정으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입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힌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배우자들에게, 형제, 자매, 부모님들에게 우리가 말로 악한 상처 준 적이 없는지 돌아 봅시다. 하나님의공동체인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이 아니라 말로 서로 상처를 주거나 근거 없는 소문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겠지요. 우리 모두의 입술이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의 명예와 생명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