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10 ㅡ 장군의 딸과 007작전 ( 사소 )
나이가 서너 살 어린 동생의 면역결핍과 원형 탈모를 동반한 한 움큼의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 또 다른 동생의 필수적인 큰 수술 예정을 알게 됐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007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큰언니와 손을 꼭 잡고 타지에서 부모님의 임종을 맞게하는 건 불효라는 속설을 물리치고 코로나의 삼엄한 진료거부 속에서 동생들에게 부모님을 탈취하다시피 긴급 수송 작전을 했었다.
그리고 2년 반.
그사이 엄마는 소원대로 다른 나라로 가셨다.
아빠의 첫 외출은
엄마를 보내드린지 1년 반 만에,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외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가짜 치과 진료 명목 하에 주치의의 묵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평택으로 처음 오셨을 때의 15%만 기능을 할 수 있었던 신장, 투석에 혈관이 자주 막히는 건 노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치의는 아빠의 폐에 물이 차고 있다는 걸 알려왔다. 겁 많고 섬세하신 아빠는 웬일인지 상세한 작전 설명을 듣고 나선 평소와는 달리 외출 거부 대신 " 알았다"는 짧은 답변을 하셨다.
두 번째 외출.
형부와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도대로 날씨는 맑았고 바람마저 잔잔했다. 송가인의 열광 팬덤이신 아빠는 딸의 소원대로 송가인이 타는 차를 연예인처럼 타고 아빠답지 않게 재벌처럼 호사를 누렸다. 딸이 학원 인테리어 디자인을 저렴한 비용에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도를 하는 바람에, 지역 내에선 재벌의 딸이라는 헛소문이 났었다. 정직한 딸은 평생 박봉이시던 아빠가 재벌로 둔갑되는 코믹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빠 병원에 틈틈이 선물을 보내 주치의와 간호사를 뇌물로 포섭하고, 특급대우를 받게하려는 의도 정황을 마련해 줄 수 있었고, 그 일은 우리끼리 즐거운 너스레 감이 되었다.
몇 시간의 소원이었던 시간.
아픈 손가락이던 딸이 행여 잘못될까 봐 매일같이 평택의 코로나 수효를 세고, 지역 뉴스에 바짝 귀 기울이시며 노심초사하신 아빠.
번쩍번쩍하는 전광판을 아빠 부디 보시라고,
딸 간판 옆에 아들의 간판이 나란히 걸린 것을 보시라고, 이교실 저 교실 어지럼증이 나시지만 플랙서블 한 폴딩도어에 감탄하시고, 배너에 걸린 대학 합격자 수효를 보시라고... 아빠 앞에서만은 난생처음 딸의 모습은 넘치는 자랑이고 싶었다.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는 차 안으로 노을이 들어왔다.
" 아빠! 노을 참 예쁘다. 아빠. 근데 난 왜 어릴 때 노을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을까? 아빠는 알았어?"
" 노을이야 원래 예뻤지. 어떨 때는 노을이 빨갛게 타오를 때는 구름에 불이 붙은 것 같어야. 그거 내가 사진도 많이 찍었지 "
" 노을 속에 달 사진도 내가 많이 안 찍었냐? 수 천장인데... "
찍으셨던 사진이 못내 아까우신 게다.
" 아빠! 궁금한 게 있는데 지구는 행성이잖아. 근데 항성이랑 행성이랑 밝기가 같아? 항성 중에 가장 빛나는 별이 뭐야? "
" 그 거사 거리랑 관련이 있제. 그 이름이 뭐더라. 새벽에 빛나는 거... 큰개자리였는데 그게 뭐였더라..."
아빠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신가 보다. 딸은 평생 엄격한 교육자였던 아빠께 보복 숙제를 낼 기회를 드디어 포착했다.
"아빠! 그 이름 알려주는 거 다음번 만났을 때 숙제다." 그러나 아빠는 이내
" 그거 시리우스야. 시리우스 " 기회를 봉쇄하셨다.
어릴 때 아빠가 교육청 천문실에서 근무하신다는 걸 알게 된 어느 샘이 농담스럽게 , 너의 아버지가 별을 다루는 일을 하시니 네 아버지는 장군이시다. 그러니 너는 장군의 딸이라고 하실 때 너무 창피해서 어디라도 숨고 싶어 했던 기억이 잠시 났다.
' 그래 장군의 딸이야'
연좌제에 병역기피자로 사법고시를 포기하시고 학교 선생님으로, 9급 기능직 말단 공무원으로 전전하셨지만 그럼에도 가정과 육 남매와 일가친척을 온몸으로 지켜낸 딸의 아빠는 그야말로 강강한 장군이셨다. 평생 박봉을 숨기시고 아빠를 자녀들에겐 최고 능력자, 고위 연봉자로 속여주셨던 현명하고 따뜻했던 우리 엄마. 아빠는 엄마를 잃고 난 뒤 우울을 동반한 치매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빠는 병원을 되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늘은 그놈들이 미사일을 왜 거꾸로 쏜 거냐? 고 딸도 모르는 뉴스도 말씀하시고, 윤0렬은 하는 것을 보니 아주 상놈의 00이라고, 그놈의 당이 잡탕당이어서 그런 거라고 국내외 정세도 살피시고 계셨다. 형부는 윤가가 우리 해남 윤 씨였으면 예의가 있었을 텐데 파평 윤 씨여서 틀려버렸다는 족보에도 없는 유머를 흘리셨고, 오빠는 재빠른 검색으로 시리우스 별이 태양의 스물다섯 배 밝기다고 아직 아빠의 총총함을 증명해주었다.
아까 차에 오르기 전 중간에 가짜 치과 진료 알리바이를 위해 정말로 치과 병원에 갔었다. 구순이 다 되신 데다가 건강이 위태로우신 아빠께 치과 의사가 임플란트와 틀니, 인공뼈 식재 수술을 권유했을 때 ㅡ멀리서 사는 치과의사 동생이 이미 아빠 상태에는 무리고 위험하다고, 틀니만 가능할 거라고 얘기해준 걸 알고 있었고, 주치의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그것마져 할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주치의는 딸의 전화를 다시 받더니 "그래 뭐 합시다.뭐 "하신다. 그 맘을 아는거다. ㅡ 딸은 용기가 절실했다.
코로나로 아빠가 병원에 온통 감금 당하다시피 한 몇 년. 면회도 외출도 안돼고, 위험군으로 분류돼 어떤 접촉마저 금지됐던 시간, 틀니가 안 맞아서 죽만 드셨던 시간, 골다공증이 유난히 심해 스쳐도 골절이라 주치의는 늘 말씀하셨고, 그사이 근육이 다 보타 지셨던 아빠.
그동안 아빠에게 희망을 드리는 건,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면 나오실 수 있다고, 코로나 끝나면 틀니도 다시 하고 반드시 밖에 나와서 같이 산책하자고 희망이라는 마약을 드렸었다. 영상 통화땐 자녀 얼굴마저 헷갈려하셨고 모든 것이 희미해져 있었었다. 불안하셨던지 외래 진료를 나와도 단 삼십분도 바람 쐴 여유를 허락치 않으시고 빨리 병원 복귀만 보채셨던 아빠.
그런데 아빠는 평소와 달리,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젊으셨을 때의 의지에 넘치는 눈빛을 빛내고 계셨고 딸은 그런 아빠의 눈을 보고 가족들의 반대가 예상되었지만, 아빠가 원하시는대로 하시자고 했다.
아주 짧은 순간, 곧 겨울이 올 텐데..
그걸 하시다 어떻게라도 되면,
폐 때문에 틀니가 완성되기 전에 가실 수도 있는데...아빠가 병상에서 네 분을 죽음으로 보내셨다고... 병원은 죽음의 대기소라고 두어 번 하셨던 말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엄마가 긴 투병 끝에 '살아서 지옥 죽어서 천국'이라 하셨다는 걸 듣고, 연명치료 포기 각서에 서명을 혼자서 할 때랑 같았다.
'왜 이다지도 생은 고독한 것이냐?'
임플란트와 틀니 덕분에 아빠의 외출은 더 이상 거짓말일 필요가 없고, 더 여러번 당당하게 나오실 수 있다. 우린 최선을 다해 행복한 순간을 기쁘게 기쁘게 맞을 것이다.
첫댓글 저 별보는 것, 하늘보는 것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성경말씀 가운데 하나도 다니엘서의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리라"예요.
오공주와 한 왕자님, 부모님의 관계를 보니 장군님^^은 잘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장군님과 장군의 아내분은 일평생 희생해 오신 덕이 크답니다. 베풀기만 하시고 누리질 못하셔서 한스런 세월입니다.
백합님!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다니엘 12장 3절. 이 구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설을 찾아보니 정말 의미가 좋네요. 제가 나이롱 크리스챤이라 암송하는 게 별로 안되는데 귀하게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