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03-26 주일설교
믿음과 소망을 담아내는 장례식
창세기 50:1~14
다음 주일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 주일과 고난주간이 지나면 부활주일이 옵니다. 저는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앞두고 3월 한 달 동안 죽음에 관한 설교를 시리즈로 해왔는데 오늘이 네 번째, 마지막입니다. 다음 주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설교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출생도 중요하고 죽음도 중요한데 장례식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경도 사람의 출생부터 장례식까지의 전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의 첫 번째 책, 창세기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이야기로 시작해서 5장에서는 아담부터 노아까지 낳고 죽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50장에서는 야곱의 장례식과 요셉의 죽음으로 마칩니다. 신약의 첫 번째 책, 마태복음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식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가 덧붙여졌습니다.
장례식에는 그 시대의 사회상뿐 아니라 고인과 유족의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장례식을 보면 여러 가지 미신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야곱의 장례식을 통해 장례식의 성경적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현행 장례식에서 비신앙적인 요소를 짚어 드리며 바람직한 신자의 장례식에 관하여 정리해보겠습니다.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아버지의 시신을 40일간 향으로 처리했는데 이것은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26절에 보면 요셉이 죽었을 때도 향으로 처리했는데 성경에서 죽은 후에 미라가 된 사람은 야곱과 요셉 두 사람입니다.
야곱이 죽자 애굽 사람들은 70일간 애곡(哀哭)했는데 이는 국장(國葬)을 70일간 했다는 말입니다. 그 후 요셉은 야곱의 미라를 가지고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가서 또 7일간 애곡(哀哭)하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사람 하나 죽었는데 이렇게 긴 기간, 성대하게 장례를 하는 것은 당시 애굽에서 요셉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잘 섬긴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니다.
결혼식 손님은 주로 부모님의 손님이고 장례식 손님은 주로 자녀의 손님입니다. 저도 친구 자녀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면서 결혼식에 가는 일이 많습니다. 또 생전에 뵌 적도 없는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에 가는 일도 많습니다.
장례식이 성대한 것은 자녀를 잘 길러서 자녀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장례식에는 조문객이 많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어떤 사람은 부모 장례식에 자기 돈으로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붙인 ‘셀프 화환’을 놓는다니 슬픈 이야기죠.
장례식은 시대마다 예법이 있고 장례예법은 그 시대의 사회상이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도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요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야곱의 장례식은 40일간 미라로 만들고 70일간 국장을 한 것도 특별하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것은 그다음 모습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었으면 피라미드나 화려한 무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1922년에 발견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황금 마스크와 황금 관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를 위해 그런 무덤을 만들지 않고 가나안 땅에 있는 막벨라 굴에 야곱을 매장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야곱의 유언 때문인데 거기에는 야곱과 요셉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은 반드시 자신을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유언했고 요셉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창 49: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애굽 총리의 체면을 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믿음으로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서 자녀가 대대로 믿음을 지키는 가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은 왜 자기 시신을 애굽의 화려한 무덤이 아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했을까요? 그곳은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묻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를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막벨라 굴에 매장하라고 유언한 것은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즉 야곱이 조상의 무덤에 묻히고 싶다는 말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준다고 하신 약속을 믿는 신앙 고백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열조에게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천국을 향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의 유언대로 아버지를 약속의 땅에 장사했습니다.
여러분의 가문도 대대로 하나님만 섬기고 이 땅을 떠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눈뜨기를 소망하는 믿음의 가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도 믿음을 고백하지만 장례식을 통해서도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례식은 신앙 안에서 삶을 재해석하는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은 고인이 천국에 가도록 기도하는 자리가 아니라 살아남은 유족과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믿음과 소망을 재점검하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죽은 것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가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는 저승사자처럼 무섭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육신이 약해서 이 땅을 떠날 때 천국에서 우리를 맞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엄마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고 지친 아이들을 집에서 맞이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장례식에는 통상 4번의 예배가 있는데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입니다. 장례예배는 유족들과 지인들이 믿음으로 천국을 소망하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장례식의 핵심은 영생과 부활 소망입니다. 고인(故人)은 이미 물리적 시간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공동체, 즉 교회는 유족들이 고인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믿음과 소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오늘날 장례식에는 개선이 필요한 미신적, 비성경적 요소가 많습니다.
우선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버려야 합니다. 고인의 부인을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순장(殉葬)풍습에서 생겨난 표현인데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안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미망인이 아니라 그냥 유족(遺族)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삼우제라는 말도 버려야 합니다. 유교에서는 장례를 마친 당일 제사를 초우, 다음날 드리는 제사를 재우, 그 다음날에 드리는 제사를 삼우라고 합니다.
또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7일마다 불공을 드리며 7번째는 49재라고 합니다. 신자는 이런 이교적인 용어를 모두 버려야 합니다. 장례 후 이틀만에 무덤을 살피러 가는 것은 삼우제 대신에 첫 성묘라고 하면 됩니다.
용어 외에도 장례식에는 의미없는 요소나 하지 말아야 하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장례식장 측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해 버립니다.
빈소에 촛불을 켜는 것은 혼령이 저승길을 잘 찾아가도록 밝히는 의미인데 어이없는 소리입니다. 촛불을 켜 놓으면 조문객 중에 그 촛불에 향을 피우려는 사람이 있는데 성도는 처음부터 초와 향을 거부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고인에게 향 대신에 국화를 드리는데 사실 이것도 문제가 좀 있습니다. 기독교 장례 개선을 앞장서는 송길원 목사에 의하면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우리가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고 하면서도 국화를 여전히 사용합니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에게도 흰 국화를 바치고 있습니다.
송길원 목사의 말 가운데 더 재미있는 것 국화를 왜 주었다가 뺏느냐는 것입니다. 조문객이 가고 나면 상주들이 국화를 거두어 다시 꽃병에 꽂아버리는데 고인이 말할 수 있다면 왜 내 꽃을 뺏어가느냐고 하지 않을까요? 진짜 헌화를 하려면 고인이 좋아했던 꽃을 조문객이 준비해서 드려야 맞겠지요.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영정 사진입니다. 영정 사진 위에 人(사람 인) 모양의 띠를 두르면 죄수(罪囚)를 뜻하는 囚(가둘 수)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당연한 듯 고인의 사진에 띠를 두르고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발인식 때 딸들은 부모의 영정 사진을 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철저히 유교적 사고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오늘날 아들 없는 사람이 많은데 언제까지 부모 영정 사진을 다른 남자가 들게 할 것입니까?
이제 진짜로 중요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송길원 목사에 의하면 비대면 장례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 어머니 장례식 때 어머니를 보지 못하다가 입관식 할 때 잠깐 보고는 바로 관 뚜껑을 닫았습니다. 만일 어떤 자녀가 해외에 살아서 입관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장례식에 와서도 부모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송길원목사는 전시(戰時)가 아니면 시신 위에 시신이 있거나 시신 아래에 시신이 있으면 안 되는데 우리나라는 시신을 냉장실 서랍에 담아 켜켜이 쌓아두니 큰 모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송길원 목사가 제안하는 방식은 수의 대신에 고인이 좋아했던 평상복을 입히고 예쁘게 메이컵을 해서 보고 싶은 사람은 몇 번이고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수의도 필요 없고 시신을 일곱 마디로 꽁꽁 묶는 염습도 하지 않습니다. 작년 9월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을 기억하시죠. 외국에는 장례식 내내 보고 싶은 가족과 지인이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송길원목사가 제안하는 것은 장례식에서 고인을 대면하는 것과 함께 메모리얼 테이블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그 테이블 위에 고인의 성경책, 고인의 애장품, 고인이 받은 상패 등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물품을 전시해 놓고 조문객이 잠시 고인과 대화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두 주간에 걸쳐 “하이패밀리 장례식장 방문기”(https://cafe.daum.net/saechulbal/Mld1/331)를 주보에 연재했는데 하이패밀리 장례식에서 매우 새로운 것은 유가족이 화장장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시신이 화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충격에 실신하는 가족도 있는데 하이패밀리 장례식은 영국방식으로 대리인과 가족 대표만 화장장에 다녀와서 유골을 놓고 발인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장례식이 교회마다 보급되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장례식으로 끝이 나는데 장례식은 고인과 유족의 믿음과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족과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례식에서 믿음의 고백, 영생과 부활 소망이 다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장례식을 통해 가족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지고 온 가족이 대대손손 믿음으로 살기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교적 풍습을 버리고 비인간적인 과정도 바꾸어서 가족이 위로받는 장례식, 온 교회가 은혜받는 성경적 장례식을 하기 바랍니다.
첫댓글 https://youtu.be/_ZxrKn-K_eU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