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터널 / 김석수
호찌민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자마자 현지 여행사를 찾았다. 호텔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여행사가 많다고 한다. 간판을 보고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직원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서툰 영어로 내게 메콩강과 구찌 터널 여행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몇몇 서양사람도 와서 상담하고 있다. 구찌 터널은 반나절 메콩강은 종일 걸린다. 맛있는 점심도 준다고 한다. 가격을 흥정해서 요구하는 것보다 싸게 예약했다.
다음 날 호텔에서 아침 먹고 여덟 시 전에 관광 버스가 오는 곳으로 갔다. 20대 후반의 젊은이와 60대 초반의 서양 여자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서 왔냐고 했더니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왔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열여섯 시간 걸려서 이곳까지 왔다. 아시아 여행은 처음이고 베트남에서 보름 여행할 예정이다. 초등학교에서 특수 교사로 일하다 작년에 은퇴했다. 아들은 '장애인을 돌봐주는 의료 요원(paramedical staff)’으로 아동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이 모처럼 휴가를 받아서 여행을 왔다. 자기는 린(Lynn)이고 아들은 아담(Adam)이라고 소개한다. 한 마디만 물어봐도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호찌민 여행 후 달랏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미니버스가 왔다.
가이드가 버스에서 내려와 영어로 안내했다. 서양과 인도 사람 몇이 타고 있다. 버스는 다른 호텔과 여행사를 몇 군데 들러서 함께 갈 사람을 태웠다. 아내와 딸은 운전석 뒤에 나는 뒤쪽 빈자리에 앉았다. 조금 있으니 미국 시애틀에서 온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컴퓨터 소프트웨어업계 회사에 취직했다. 출근하기 전에 가족과 함께 졸업여행으로 왔다. 케이팝(K-pop)과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아시아는 처음 여행이다. 베트남 여행 후 태국으로 간다고 했다.
가이드는 마지막 호텔에 들러 사람을 태운 후 20여 명의 인원을 점검하고 자기를 라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어를 잘했다. 마음은 스물한 살이고 실제 나이는 서른한 살이라고 한다. 베트남 역사와 전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수백 년 동안 중국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가 백 년간 식민 통치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식민 국가 대부분이 독립했지만 베트남은 그렇지 못했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독립 전쟁을 했다. 이때 베트남 비정규 군대가 프랑스군에 대항하려고 호찌민시에서 북서쪽으로 60킬로 떨어진 농촌에서 시작해서 48킬로미터 터널을 만들었다. 이후 북베트남의 공산군과 미군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 정부군 사이 전쟁이 일어나면서 터널은 250킬로미터로 늘어났다.
버스가 호찌민 시내를 벗어난 지 한 시간 반쯤 지나서 판화를 파는 휴게소에 들렀다. 아오자이(베트남 전통 옷)를 입은 현지인이 그림을 열심히 설명해 주며 사라고 권한다. 린과 아담은 판화에 관심을 두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비가 온다던 날씨는 햇볕이 나서 더웠다. 여기는 여름이지만 한국은 한겨울이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가 활주로에 눈이 많이 쌓여서 출발이 20여 분 늦어진 생각이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추워서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 오늘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열 시에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관련 영상을 보여 주려고 어두운 지하 교실로 안내했다. 벽에 터널 모형이 걸려 있다. 그는 모형을 보면서 터널을 만드는 과정를 설명했다. 터널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깊은 곳은 8미터 혹은 10미터이며 얕은 곳은 3미터 혹은 4미터다. 탱크가 위로 지나가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사용한 도구는 호미와 바구니뿐이다. 이 지역 흙이 석회석으로 비가 오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견고하게 된다.
터널은 미로같이 복잡하다. 통로는 너비와 높이가 80센티미터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체구가 작은 베트남 사람은 지나갈 수 있어도 몸집이 큰 미국 사람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 안에 숙소와 부엌, 회의실, 무기고가 있고 심지어 병원과 극장까지 있다. 입구는 다른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여러 개를 만들었다. 나무나 식물로 위장이 되어 있어서 외부인이 찾기가 어려웠다. 주변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주요 지점마다 위장 통로와 함정이 있어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가이드 설명을 듣고 터널이 있는 밀림으로 갔다. 덤불에서 위장 식물을 걷어내고 널빤지를 열면 몸을 숨길 수 있는 구멍이 나온다. 가이드가 안으로 들어가는 시범을 보이고 원하는 사람이 체험하도록 했다. 몸집이 작은 서양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린이 아담에게 들어가 보라고 부추겨도 그는 싫다고 한다. 나도 선뜻 나서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딸도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가이드가 여기까지 와서 체험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괜찮다고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자꾸 권한다.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덤불에 감추어진 널빤지를 걷어내고 입구를 찾아 3미터 깊이 터널로 들어가서 휴대전화기 전등을 켜고 통로를 찾았다. 몸을 납작 엎드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다. 20미터 정도 기어가니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이렇게 작은 통로로 250킬로미터나 연결되어 있다니 상상되지 않는다. 1967년 1월 약 3만 명의 미군이 화력을 총동원해서 이 터널을 파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미군들 대부분은 터널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산소 부족과 극심한 무더위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터널 체험을 마치고 나오니 고막을 찢는 굉음이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격장에서 나오는 총소리다. 관광객이 요금을 내고 총을 쏠 수 있는 곳이다. 군대 사격장을 연상하게 했다. 편의점에서 코코넛만 사서 마시고 사격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가이드는 점심으로 베트남 과일을 주었다. 망고처럼 생겼으며 맛이 달아서 먹을 만했다. 표를 예매할 때 여행사 직원은 맛있는 점심을 준다고해서 내심 쌀국수나 분짜(베트남 음식)를 기대했는데 실망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프랑스 여자를 만났다. 옆좌석에 앉은 그녀는 프랑스 중앙 정부 공무원이다. 파리 근교에 살면서 기차로 매일 한 시간 출퇴근한다. 석 달간 휴가를 받아서 해외 여행하고 있다. 그녀는 아프리카 세네갈과 남아프리카, 우즈베키스칸도 여행했다. 이번에 호찌민 여행을 마치고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간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최근 이슈로 떠오른 연금 개혁과 정년 연장에 대해 물었더니 잘 설명해 주었다. 베트남이 물가가 싸서 여행하기 좋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카페에 가면 커피나 주스만 있지 디저트가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지배해서 곳곳에 프랑스 건축 양식으로 보이는 건물이 많다고 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호찌민 시내 호텔에 도착했다. 구찌 터널로 시작한 호찌민 여행에서 외세를 물리친 베트남 사람의 강인한 저항력을 엿볼 수 있었다.
첫댓글 터널 이름이 명품 가방을 연상하게 하네요. 터널 길이가 250km 라는 것도 놀랍지만 호미와 바구니만 사용했다니 직접 간 것은 아니지만 전쟁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베트남 사람들의 절실함이 전해오는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전 또 명품 가방에 얽힌 이야긴 줄 알았네요. 하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가 느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선생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외국인들과 여러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 보내셨네요.
고맙습니다.
영어를 잘 하시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시고 여행이 훨씬 즐거우셨겠네요. 선생님 덕분에 구찌 터널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베트남에 그렇게 긴 터널이 있네요. 베트남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꼭 한 번 여행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목표를 정하지 않고 공항에 계시던 원장님이 떠오릅니다.
결국 베트남으로 가셨군요.
땅굴을 250키로미터나 파는 베트남인이라서 미국을 이길 수 있었겠지요.
교수님 말씀처럼 그때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에 용서를 비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삶을 꾸리고 계시네요.
이제 여행수필집 내시겠군요.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그런 굴 속에서 버텨낸 것이지요.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버텨냈듯이요. 좁은 그 굴이 가슴 아프더라구요.
고맙습니다.
구찌 터널과 호치민, 베트남을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인생, 응원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