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63 ㅡ 방랑자 일기 (사소)
낯선 도시를 운전해 다니거나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언니가 어린 시절 테이프 늘어지게 들려주던 박인희 노래.
' 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
방랑자여 방랑자여 노래를 불러라~ '
가끔 오늘 같은 날은 내가 아직 포획되지 않은 얼룩말, 도시 방랑자 같단 생각을 한다. 본인은 충분히 이성적으로 사고한다고 자부하지만 딸에겐 다분히 감성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과 탄성이 적당하면 엔진의 연료가 될 수 있다.
팝업 된 [미래 배우자의 모습] 속임수 퀴즈에 빠져든다. '동물적 짐승남' '호! 이것은 몇 개의 범주에 속해 있을까? ' 선택의 확률과 경우의 수가 궁금하다. 상술이 여전히 진부함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후, 이 사업에 대한 현재 마케팅 현장과 현황을 파악하면서 흥미로워진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비즈니스의 진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그리고 솔로인 친구들에게 필요한 매칭 시스템 개발에 진심을 갖게 된다.
호기심 발동 경계령 1단계!
당장 누가 투자를 하겠다거나 사업에 의기투합하면 대박 큰일을 낼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맘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자유는 최대의 호사. '마담 버터플라이'라고 쓰인 플라워 카페를 휙 지나가다가 '호! 서초동 빈티지 유럽풍 가구가 있는 식물 카페?'
' 누구 집 거실? 카페인가? 가구점인가? 샹들리에와 가구들이 고풍스럽지만 배치는 약간 어지럽네.'
호기심 발동 경계령 2단계 ~접근!
나비 문양 수제 손잡이를 밀고 들어가자 80대쯤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서 휴대폰에 빠져 계신다.
"할머니! 할머니!" 대답이 없다.
'아!' " 사장니임~!"
드디어 은빛 단발이 고개를 드신다.
과거에 미술관 관장이었다는 사장님. 그녀는 마지막 인간적인 시대 벨 에포크 시대를 그리워한다고 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 산업혁명 이후 호황기에 유럽 살롱 문화와 박람회가 융성했던 시기가 과연 인간적인 시대라 할 수 있는지, 그것은 무엇때문인지 잠시 갸우뚱한다.
노 사장님과 나는 3500만 원 커피 머신과 4천 원밖에 안 하는 커피에 대해 얘기한다. 앱을 바꿀 수 없어서 몇 년째 그렇게 된 거라 하신다. 할머니는 카라얀이 마지막 썼다던 다이나 코 오디오, 가장 인간의 육성에 가깝게 들려준다는 AR2 스피커와 은쟁반, 황동 바구니와 프랑스에서 쓰던 실내 난로에 대해 얘기한다. 적극적인 청자가 된다.
맞짱구 진입 3단계!
이곳을 찾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신다. 사람들은 옛 것을 좋아하거나, 새것을 좋아한다. 나는 옛 것이거나 새것 중에 특별한 의미를 좋아한다. 흰 레이스 의자 커버들에 천갈이를 하지 않고도 깔끔히 유지되는 비법에 탄성을 지른다. 서랍 가득 천들과 바느질감이 있었다. 오래전 나의 서랍처럼.
최고이거나 명품이지 않으면 노 사장님 카페에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고 하신다.
' 저는 명품은 선호하지 않아요. 하지만 역사나 의미가 있는 사물은 저도 좋아요.'속으로 얘기할 뿐이다.
얘기 도중 쭉쭉 뜨근한 대추차를 다 마셔 버렸다. 어쨌거나 벨 에포크는 '문화교류'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적이긴 하다. 문화전달자를 꿈꾸는 할머니와, 문화개척자를 꿈꾸는 도시의 방랑자가 만난 것이다. 같거나 다른 얘기를 하며 잠시 교류를 한 것이다.
운전할 동안 마실, 커피를 사고 당근 조각 케익을 선물로 받고 거리로 나선다. 노사장님은 리움 전시회에 꼭 가보라고 하신다.
'가격표를 정정해드릴까? '
잠시 오지랖 경계령 4단계~바로 차단!.
근처 젊은이나 컴퓨터를 손보는 기사를 부르면 간단히 가격표를 수정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며 인사한다. 시간 반을 운전해 집에 도착하니 향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잘 가라는 할머니의 문자가 와 있다.
첫댓글 저도 나이 들면 문화를 전달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