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다 할 짜릿하고 역동적인 취미 활동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나의 몸에 밴 습관이자 취미는 걷기이다. 사실 나는 걷기 능력에 대해서도 별로 내세울 게 없고 지금도 빈약한 체력 때문에 건각을 자랑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하루에 걷는 걸음 수가 적다. 어떤 친구는 68세의 나이에도 날마다 2-3만보를 걷고, 심지어 어떤 날은 5만보를 걷는 녀석도 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신발 닳는 건 제 재산 축나는 거니 내가 뭐라고 간섭할 처지가 아니지만, 내 세금 들어간 아스팔트 닳아지는 건 아까우니 작작 좀 걸으라고 충고하지만, 체력이 차고 넘치는 그 녀석 입장에서는 그만큼 걸어 주어야만 한단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기록된 그날 걸은 걸음 숫자 기록을 찍어서 카톡에 올리며 과시한다.
나는 2006년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그 이후로 2020년까지 약 15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 동네 뒷산을 30-40분 정도 오르내렸는데, 처음에는 정말 신났다. 나는 길가 나무 둥치나 줄기, 뿌리와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풀포기들과도 서로 낯익은 사이가 되었는데, 어떤 크고 활기찬 풀포기는 2-3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봄이면 부활하여 나를 반겼었다. 특히 날이 궂은 날씨에 산길을 혼자 걸으면 그 길과 나무들과 풀들과 산등성이와 계곡이 모두 나의 독차지여서 가슴이 설레고 신났다. 세차게 비가 올 때는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와 키 큰 활엽수들이 샤워하는 소리가 내 발걸음을 들뜨게 했다. 안개가 낀 날은 겹겹의 산봉우리들이 다소곳이 면사포를 쓰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내 아내는 그런 나의 하이킹 습벽에 대해 날궂이 한다고 불평했다. 이곳에 이사해서 첫 몇 해 동안에는 산행 도중에 두꺼비나 뱀과도 이따금 마주치곤 했고 밤에 산길을 걸으면서 반딧불이의 군무도 보았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많아져 들끓기 시작하자 어느새 모두 자취를 감췄다. 꿩이나 딱따구리, 뻐꾹새는 아주 흔한 조류였는데 그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15년 가까이 똑같은 산길을 반복해서 오가니 점점 흥미가 없어지고, 또 나이가 들어 가면서 체력도 딸리고 해서 뒷산 하이킹을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각각 25분씩 동네 길 걷기를 하는데, 그 거리가 모두 합해서 채 만 보도 안 될 것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자연 마을인 양지 부락이 완만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 마을길을 개척자 정신으로 이리저리 한들한들 걷는다. 나는 양팔을 힘차게 치켜 올리며 양 다리를 박차고 나아가는 파워 워킹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대충 똑바로 걷는다. 아마도 gratia님의 “히말테기 없는” 걸음과 비슷한 모습일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이집 저집 개들과도 서로 면식을 갖게 되었다. 어떤 집 사나운 개는 내가 매일 보고 인사 건네는 데도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짖어댄다. 본성이 나쁜 놈일 것이다. 또 다른 개는 나와 친해져서 먼발치에서 나를 알아보고 꼬리를 치며 반가워한다. 뭐라고 욱욱거리는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심성이 착한 녀석일 것이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가서 국민학교 때는 고개를 하나 넘어 산길로 30분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어쩌다 할머니를 따라서 일로면 면소재지에 서는 오일장에 갈 때면 고개를 네 개 넘어서 이십 리 신작로를 어른 걸음으로 두 시간을 걸어서 갔다. 왔다갔다 사십 리 비포장 고갯길이니 꽤 먼 거리였다. 오가며 두어 번씩 고갯마루에 앉아서 쉬었다가 걷곤 했다. 광주에서 자취하던 중학교 때는 주말에 집에 갈 때 그 이십 리 고갯길을 걸어 다녔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버스가 운행되면서 아무도 더 이상 그 길을 걸어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의 걷기 경력에 대해서 내세울 게 없다. 일로 면소재지에 있는 무안중학교를 다녔던 우리 마을의 다른 친구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 이상씩 왕복 네댓 시간 동안 그 신작로 길을 걸어서 다녔으니 말이다.
걷기가 운동이라면 실행하기 가장 편리하고 쉬운 운동이다. 약간의 체력과 실행 의지만 있으면 집의 현관문 열고 나가서 두 발을 교차해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사람이 움직일 동(動) 자가 들어가는 동물이라 운동을 해야만 한다고 의사들이 말한다.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걷기가 짜릿한 재미는 없지만 전신을 움직이는 것이니 일종의 운동이기는 할 것 같다. 그리고 의사들은 나이든 사람에게 걷기가 무리가 되지 않는 좋은 운동이라고 한결같이 권한다. 그래서 대략 나이 50을 넘어서면 사람들이 걷기에 관심과 열성을 보인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지는 잘 모르겠으나 걷기는 유산소 운동이라고 한다. 근력 운동과 더불어 몸에 좋은 거라고 한다. 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고약한 지병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걷기가 좋다 하고, 또 몇 년 전에는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부족해서 이런저런 정신신체적 문제가 생겨 의사 선생님이 햇볕을 쬐면서 걷기를 하라고 조언해주셔서 나름대로 열심히 걷기를 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걷기를 운동 삼아 하게 된 것은 문명 생활 덕분이다. 문명의 이기들이 모두 우리의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들이어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두뇌를 사용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몸의 그밖에 부분을 편하게 모셔둔다. 근육노동을 최소로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인생 성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동물로서 인간의 근본 조건인 움직임을 최소화하게 되었고, 따라서 따로 큰돈 들여 PT를 끊어서 트레드밀에서 걷고 뛰거나 무거운 물건을 일부러 들어 올리고 끌어당기고 밀고 하는 근육 운동을 해야만 하게 되었다. 직업적으로 고된 근육노동에 종사하면 걷기나 PT와 같은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제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이나 어업, 광업과 같은 일차산업에 종사하면 온몸의 근육을 극한까지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걷기가 아무리 전가의 보도처럼 만병통치 처방 같아도 그 역시 과유불급일 것이다. 김삿갓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김병연(1807-1863)은 평생 팔도를 떠돌아 걸어 다녔지만 55세에 전남 화순 동북에서 생을 마감했다. 반면에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스는 20세 때 발병한 루게릭병으로 인해 그후 걷지 못하고 평생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했지만 76세까지 살았다. 물론 위 두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여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요즘 갑자기 맨발 걷기가 가히 전국적인 열풍이지만, 맨발 걷기든 신발 걷기든 걷기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걷는다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보부상이나 실크로드의 대상들은 평생 걸어 다녔지만 모두 돌아가셨다. 어쨌든 걷기는 각자 자신의 체력과 취향에 맞게 자신의 방식대로 적당하게 꾸준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는 걸음마를 배우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자신이 걸음마를 배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아이가 그걸 배우는 것을 보아서 잘 안다. 뒤뚱거리며 난생처음 첫 발짝을 떼고 다시 다음 발짝을 떼어 옮길 때 그게 그 아이에게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신나는 모험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 자기 일생에서 가장 먼 거리인 몇 발짝 앞에서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벌리고 맞이하여 안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아이는 일생일대의 짜릿한 여정을 위해 뒤뚱뒤뚱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 품에 안긴다. 그게 인생의 첫 걸음이다. 그리고 이후 아이가 걷는 길이 점점 멀어지고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집 안방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유치원으로 그리고 다시 마을길로 초등학교로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그리고 국내에서 해외로 활동 범위를 계속해서 넓히고 움직이는 거리를 늘린다. 아마도 인생 최고의 절정기에 가장 멀리 가장 널리 걸어 갈 것이다. 그런 다음 인생 절정을 지나면서 움직임과 걷기의 범위가 그 반대로 점점 축소되고 짧아지기 시작한다. 해외로 나갈 일이 점차 줄어들고 국내에서도 활동 반경이 점점 좁아진다. 더 나이가 들면서 움직임의 범위가 다시 마을로 집안으로 제한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될 때 거기가 그의 최종 도착지가 된다. 인생 말년에는 화장실을 스스로 걸어서 갈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걷기를 시작해서 걷기를 끝내기까지의 과정이다. 그게 천로역정이다.
첫댓글 요즘은 "너도 나도 맨발로 걷자"가 유행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걷는 운동이 만약 문명과 관련이 있다면, 그건 발걸음 수를 세주는 장비가 가장 강력한 계기이지 않을까요? 애플워치를 깜박하고 운동하러 나갔을 경우, 모든 운동 의욕이 사라지고 어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는 말에 동의하는 자가 적어도 오백명은 된다에 오백원을 걸겠습니다.
그 오백 명 중 한 명이 접니다. ㅎㅎ
남보다 심하게 많이 걷는 그 친구는 무릎 관절이 빨리 닳아 걷기 수명이 단축될 것 같은데요? ^^
요즘은 의식적으로 걸으려고 합니다. 하루에 만 보 채우는 게 목표인데,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