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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동문학과 가족
저- 9명
출-국학자료원 (2013.6.12.)234쪽
독정-2019. 9. 21
· 아빠 무서워 여길 어떻게 가(딸)
이제 다 왔어. 여기만 올라가면 돼. 이렇게 줄을 꼭 잡고 한발 한발 올라가면 돼(아빠)
그런데요. 아빠, 난 정말 무서워
소피야 아빠가 여기 있잖니. 내가 꼭 잡아줄게. 준비되면 말하렴.(그렇게 멀리 갔으니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봐 나도 무섭더구나)-<꼭 잡아 주세요. 아빠>
세상에서 곰처럼 포근하게 껴안아 주는 건 없을 거예요
그래? 그럼 이 아빠는 어때?
아빠는 털이 없잖아요. 하지만 아빠도 아주 포근해요. 그래도 아직은 아빠가 조금 더 좋아요
와, 다행이구나 아바도 곰하고 겨를 생각은 없거든
곰이 갔어요. 가버렸어요.
저런, 너무 실망 마라. 곰은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함께 살 수 없단다.-<곰>
아빤 그 아주머니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세요?
“때로는 그렇겠지, 우린 모두 다 이따금씩 외롭단다. 하지만 그분은 동무가 되어 줄 여동생이 있고, 또 우리처럼 꽃을 가꾸고 있지. 그리고 시를 쓴다더구나.“
시가 뭐예요?
“엄마가 연주하는 걸 들어보렴. 엄마는 한 작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데, 가끔은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그게 네 몸을 오싹하게 만들지. 그걸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거든. 그런 일을 말이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아빠, 자장가 불러 주세요.”
아빠는 침때 옆에 무릎 끓고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랫말이 꽃잎처럼 이불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그 꽃잎들이 내려앉는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어요<에밀리>
나는 아빠를 달까지 가는 길만큼 사랑해요
“아가야, 아빠는 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만큼 널 사랑한단다.”-<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미술 시간에 아빠를 그린 적이 있어요
“엄마를 그려도 돼.”
선생님은 저한테만 이렇게 말했지만 저는 그대로 아빠를 그렸어요
아빠, 얼마 전에 가게에서 물건을 훔칠 뻔했어요
하지만 훔치지 않았어요
나쁜 짓을 해서 지옥에 가면 아빠를 만나지 못하니까요.
하늘에 계신 아빠 저는 이제 곧 4학녀이 돼요. 아빠
걱정 마세요 아빠 <아빠 잘 있어요?.
<샬롯의 거미줄>
윌버는 몸집이 작아 상품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죽을 뻔 했지만, 농장주인의 딸 펀의 설득으로 목숨을 건진 돼지이다. 물론 아빠는 펀과는 달리, 윌버를 불쌍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헐값에 사서 고기용 가축으로 키우려는 계산으로 살려준 것이다. 하여간 펀의 농장에서 살게 된 윌버는 회색 암거미인 샬롯을 만난다. 윌버는 파리를 잡아먹는 샬롯을 보고 놀라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사촌이 거미줄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경청할 정도로 친해진다. 한편 윌버가 햄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터줏대감 양 새뮤얼의 예측이 가축들의 입을 타고 소문으로 커지자, 영리한 샬롯은 한 가지 묘안을 낸다.‘근사한 돼지’라는 글자를 거미줄로 만든 것이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대단한 돼지가 나타났다며 펀의 집에 몰려와서 감탄을 하고, 펀의 아빠도 윌버를 계속 돌볼 생각을 한다. 이후에도 샬롯은 잇속 빠른 쥐 탬플턴의 도움을 받아 ‘대단한 돼지’ ‘근사해’ ‘눈부신’이라는 수식어들을 고안해 내어 단순히 봄애 태어난 어린 돼지가 자신의 이름과 인생을 소유한 주체로서 자존감을 형성해 가게 도와준다. 한편 윌버는 박람회에 출품되어 사람들의 인기를 받지만, 샬롯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안 윌버는 밥을 먼저 먹게 해주겠다고 탬플턴을 설득, 샬롯의 알들을 보관한다. 샬롯은 월버에게 어머니처럼 대한다. 단지 그녀의 직계자식들에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좀 더 넓은 규모로 그 사랑을 확대해 나가서 어리고 순진한 돼지 월버에게 삶을 가르쳐 주고 지도해갔다. 그녀 삶의 진실한 요구는 그 연약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생명유지의 처절한 요구를 넘을 정도로 강하고 확신에 찼다. 작가는 이런 인생철학을 어린 웰버에게 자신이 낳은 알들을 필생의 역작이라 하며
“너를 돕는 것은 아마도 나의 보잘 것 없었던 삶이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고양되는 것일 거야.”하며 자신이 선택한 멘토의 역할이 가치 있고 보람된 것이라는 사명감을 보인다. 샬롯이 죽고 이들 중 세 마리가 윌버와 같이 산다 . 월버는 샬롯이 살던 곳에 거처를 정하기로 결정한 세 명의 어린 자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본인의 생명을 구하고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엏ㅆ던 ᅟᅣᆯ롯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어미와도 같은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비밀의 정원>
버넷이 1910년에 비밀의 저원을 출판했을 때 그녀는 이미 소공자, 소공녀로 유명해져 있었다.
<비밀의 정원>을 부활과 구원의 신화로 만드는 것은 대지를 어머니의 상징으로 읽음으로서 가능하다. 콜린의 어머니와 디콘의 어머니인 소어비 부인을 대신하는 모성이 바로 정원이며, 어린이 주인공 메리와 콜린은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자라다가 정원을 발견하고 가꿔가며서 정원의 마법을 발견하고 그 영향을 받으면서 마침내 치유되고 성장하게 된다.
메리가 정원을 가꾸고 즐겁게 지내는 동안 신선한 공기와 노동은 그녀 자시을 먼저 치유한다. 콜린이 처음으로 비밀의 정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선 후 “그 이야기와 같아. 온 세계가 여기에 ‘내 마음에 있어’라고 말한다. 즉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세계가 있음을, 그러므로 자신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정원의 푸른 공간, 말은 공기, 빛,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지내는 동안에 정원의 마법, 즉 삶을 새롭게 하는 힘을 알게 된다. 정원을 가꾸고 살려내듯이, 그들은 스스로를 가꾸어 성장. 부활한다. 자신을 가꾸는 방법으로 그들은 생각과 말의 힘을 알게 된다. 콜린은 어떤 경우든 마법은 ”그걸 생각하고 부르면 우리한테 찾아오는 것이다.“ 언어는 프뢰벨이 선택한 놀이ㅔ 참여하기 위한 신선한 공기와 자유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치료도구임이 입증되었다. 콜린을 걸을 수 있도록 하 ㄴ것은 언어실험의 결과다. 그들에게 콜린은 진지하게 말한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그걸 생각하고 부르면 아마 무리한테 찾아올 거예요.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법을 얻는 첫 단계일지도 몰라요. 버넷도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인 <정원에서> ‘생각에는 전기처럼 강력한 힘이 있어서 어떤 이에게는 햇빛처럼 좋고 어떤 이에게는 독약처럼 나쁘다.’고 한다. 이 마법의 원리는 나의 생각과 언행이 나의 삶,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긍정 생각과 언행은 원하는 삶을 창조하고 사건으로 돌아온다. 그들이 자신 밖에 모르는 아이였을 때는 가장 불쾌한 표정을 가진 작은 괴물이었으니 이제 정말로 예쁜 아이와 따스한 장밋빛 기운이 감도는 남자아이가 되었다. 콜린은 자신의 뜻대로 살기위해 마법을 사용하여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다. 예로, 콜린은 원하는 일이 일어날 때까지 그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마법을 일으키는 방법 중 하나다. “내 몸 안에 마법이 있다! 마법이 나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라고 계속 중얼거린다. 콜린은 날마다 자신이 건강해질 것이고 계속 중얼거리고 날마다 말하는 실험을 하고 그 실험에 성공한다. 건강한 몸이라는 콜린의 바람이 그의 현실이 된다.
원작의 언어의 마법을 홀란드는 부족적이고 그로데스크한 것으로 시각화하였다. 영화에서 콜린은 자기 아버지 아치볼드를 집으로 돌아오도록 밤에 집에서 슬그머니 나와 메리. 디콘, 벤과 불증 지피고 불 주면에서 빙빙 돌며 춤 추며 “위대한 맘법이여. 내게로 오라. 내 아버지를 여기로 데려오라.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라”첸트를 부른다. 불, 춤. 첸트와 함께 아이들이 어둡게 촬영되어 버네 소설에서 정원의 낮 동안의 밝은 영적 마법과는 다른 그로테스크란 장면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의 이런 마법의식이 콜린의 아버지, 아치볼드의 꿈에 나타나 아이들이 있는 정원으로 돌아와 걷고 있는 콜린을 본다. “나는 콜린하고 정원에 있어요.”죽은 아내가 꿈에서 한 말이 맞았다. 메리는 영화 마지막에 “마법은 풀렸다. 이모부는 웃게 되었고, 나는 우는 것을 배웠다. 비밀의 정원은 항상 열려있다. 열려있고 깨어있고 살아있다. 잘 보면 온 세상이 정원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버넷이 독자에게 “아가, 네 장미를 가꾸는 곳에 엉겅퀴는 자랄 수가 없단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미넝쿨로 가꾸어진 정원처럼 삶을 부활시키는 마법은 우리를 긍정 생각과 언행으로 이끌어 주인공들이 치유하여 새 가족 형성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밀의 정원>은 치유된 가족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성 높은 영화로 아이들은 나의 생각, 말과 행동이 나의 삶, 내가 경험한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긍정으로 가꾼다. 이 마법 원리를 이용하여 꿈을 현실로 이루어간다. 집안의 공허함은 메리를 집밖으로 나가게 하고 정원의 신선한 공기와 마법이 그녀를 치유한다.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열 살까지 성장한 메리와 그녀의 사촌 콜린의 거울을 보듯이 유사한 신경증 특성을 가지지만 이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영상화한다.
줄거리:어릴 적에 부모를 여읜 폴은 말을 못 하면서 두 이모와 함께 산다. 이모들은 폴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지만 33살의 폴은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웃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한 폴은 그녀가 키우는 작물로 우려낸 차와 마들렌 빵을 먹고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리며 성장하게 된다.
메리는 골골거리고 못되고 못생긴 아기였을 때부터 집 안 한쪽 구서에서 자랐고, 여전히 골골거리고 못된 아이로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에도 한쪽 구석에서 자랐다. 그리하여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메리는 어린 아이는 처음이다 싶을 만큼 이기적이고 못된 폭군이 되어 있었다. 메리는 응석받이여서 버릇없고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아이였으나 콜레라 전염병으로 부모가 죽었을 때, 고모부이자 보호자인 아치볼드의 집, 요크셔의 황야지대 대저택으로 보내진다. 차ㅇ르 매리 자신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이제껏 메리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었다. 오솔길이나 가로수 길을 따라사 재빨리 걷거나 뛰기 시작할 때면 몸속에서 느릿느릿 돌던 피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황무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면서 몸이 점점 튼튾졌다. 메리는 그저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달릴 뿐이었다. 얼굴에 와 부딪고, 윙윙 울부짖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처럼 자기르 뒤로 끌어당기는 바람이 딱 질색이었다. 그렇지만 메리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히스 위로 불어오는 거칠고 신선한 공기는 메리의 마른 몸에 좋은 뭔가를 허파에 가득 채워 주었으며, 밤에 찰싹찰싹 부딪혀 발그레한 색을 띠게 해 주었고, 흐리멍덩한 눈을 반짝이게 해 주었다. 메리가 미셀스웨이트의 뜰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처음으로 울새에게 매료되어 점차 외부로 마음을 돌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울새로 인하여 숨겨진 정원을 찾고 땅 속에 묻힌 열쇠도 발견한다. 며칠 뒤 메리는 다시 울새를 쫓아가다가 정원의 문을 발견한다. 정원 출입을 금지한다는 아치볼드의 명령이 “청개구리 메리 아가씨”에게는 아무런 위미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정원 안으로 들어간다. 잠겨있던 정원은 메리 자신의 비밀의 정원이 된다. 그녀가 서툰 정원 가꾸기로 바쁘고 행복하게 지내는 동아 마사의 남동생 디콘을 알게 되며 그가 메리를 도와준다. 디콘은 자연의 아이로서 다람쥐, 토끼, 여우, 황무지의 조랑말을 데리고 다닌다. 디콘은 황야지역 생명들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메리는 이내 그를 신뢰하게 되고, 두 아이들은 정원에 생명을 되돌리는 일을 시작한다. 하룻밤상의 변화는 없지만 그녀가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정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점차 몸무게가 늘고, 누런 비부는 분홍색으로 바뀐다. 그녀는 이제 미셀스웨이트 저택에서 자기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좋아하는 대상, 울새와 정원을 가지고 정원가구기 흥미 거리를 찾아 건강을 회복한다. 집안에는 여전히 이상한 점이 있다. 메리에게 아이 울음소리로 들리는 것을 마시는 바람이 집 주위에서 쌩쌩 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날 밤에 메리는 그 소리 때문에 일어나서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는다. 호화롭게 꾸며진 방에서 자기 나이 또래 남자아이가 짜증 내며 누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아이는 낙상 뒤에 태어난 고모부 아치볼드의 아들 콜린이며 그가 태어남으로써 릴리아스는 생명을 잃었다. 이 야이는 병약하여 침대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며 자기 아버지에 의해 의사, 간호사, 하인의 보도를 받도록 내버려졌다. 그는 메리처럼 제멋대로 무례하고 건방지다. 사촌인 메리와 콜린의 새 우정은 이들이 자아에 대한 몰두에서 벗어나서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한 밤중에 콜린이 발작 비명을 지를 때 메리는 잠에서 깨어서 그의 방으로 가서 조용히 하라고 야단친다. 콜린은 자기 등에 혹이 자라고 있어서 죽을 거라고 하는데 그는 신경증 상태에서 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드러난다.
‘옷을 벗기자 보기에도 가엾은 바짝 여윈 등이 나타났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갈비뼈와 등뼈 마디 하나하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메리는 허리를 굽히고 무자비하고 딱딱한 조그만 얼굴로 콜린의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혹은 없어 핀만한 혹도 없어!” 라고 말했다. 콜린이 혹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메리가 비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마침내 ㄱ를 가장 무서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콜린을 잠들게 하기 위해 메리는 자신이 찾은 정원에 대하여 들려준다. 이어서 디콘과 그의 동물들이 콜린을 찾아오고, 세 아이들은 하인과 정원사를 따돌리고 정원을 방분하기 위해 세세한 계획을 세운다. 메리아 콜린이 정원으로 들어간 것은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살아가던 그들이 모성의 대지로 들어가서 그곳의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정원에서 메리는 정원 가꾸기를 통해서 정원을 되살리는 동시에 자신도 건강해진다. 한편 콜린에게 마법은 자신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는 이 실험에서 성공하여 일어서서 걸으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치유된다 .콜린의 꿈은 건강하고 활발한 아이로 아버지를 만나는 것인데,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나 새로운 가족이 건강하게 만들어지는 행복한 결말이다. 콜린의 어머니와 소어비 부인을 대신하는 모성이 바로 정원이다. 어린 주인공 메리와 콜린은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자라다가 정원을 발견하고 가꿔가면서 정원의 마버블 발견하고 그 영향을 받으면서 마침내 치유되고 성장한다. 메리는 버릇없고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무례하다. 결코 사랑받아 본 적이 엇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 사회화되어 본 적이 없다. 즉 예의, 자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배운 적 없다. 이유는 메리 어머니가 아이를 원한 적 없고 하닌에 의해 양육되었다. 메리의 무례한 행동은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불만스럽게 기대하는 것이다. 콜린의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 있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으로만 존재한다. 가끔은 어머니가 날 보고 있는 게 싫어. 내가 아프고 속상한데도 어머니는 활짝 웃고 있잖아. 가 그 이유다. 메리의 어머니처럼 콜린의 어머니는 부재하지만, 소아비 부인이 콜린에게 해주는 말. 즉 “사랑스런 아가, 네 어머니는 바로 이 정원에 계셔. 난 그렇게 믿어 네 어머니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실 거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영혼은 정원에서 그의 아들 콜린이 건강해져서 걷게 되었을 때 꿈속에서 자기 남편을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이다. 콜린은 소어비 부인이 정원에 처음 온 날 “아줌마는 제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에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디콘의 엄마인 것처럼요!”하자 부인은 콜린이 디콘의 동생이기라도 한 것처럼 파란 망토 아래로 콜린을 바싹 끌어당겨, 따뜻한 두 팔로 푹 감싸 안았다. 소오비 부인의 영적이고 가장 중요한 선물은 아이들과 독자들을 위하여 변화를 가져오는 정원의 마법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치유, 부활을 마법이라 하는데 마법, 즉 정원의 마법은 사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정원 역시 아이들이 가꾸어주자 생명을 되찾아 재생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것을 마법이라 불렀고, 그 뒤로 몇 달 동안 마법이 일어난 듯 했다. 메리는 정원이 다시 살아난 고마움을 디콘에게 돌린다. 즉 그가 사람들에게 너무나 사랑받고 야생동물들이 그를 신뢰한 이유를 마법이라 설명한다. 디콘은 이전에 메리에게 꽃을 심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녀가 정원을 돌보면서 다른 무언가를 돌볼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하게 한다.
소어비 부인에게 콜린이 마법을 믿는가 묻자 그녀는
“그럼, 아가, 정말로 좋은 일을 믿고, 세상은 그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그걸 부르세요.”
<가족과 환상공간의 중요성>
아동문학은 주 독자층이 어린이(12세 이하)이고 중고등학생까지를 청소년문학 대상으로 규정한다. 아동문학 속에는 어린이, 가족, 삶이 있다는 점이다. 프로이드는 아동의 성장 단계에서 사춘기부터 부모와 분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니아 연대기-세번째 작품의 <새벽 출정의 항해>-C.S루이스
환상공간의 중요성, 욕망의 투사 및 유의 개성화과정
새벽출정호에서 부모 부재로 나니아 세계로 가는 여정의 기본 조건이 된다. <ᄉᆞᆽ, 마녀, 옷장>에서 2차 대던으로 전쟁터로 간 아머지가 1차적으로 부재하고 어머니는 위혐벅 현실에서 네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개 됨으로 어머니마저 부재하게 된다. 그런 조건 형성 후 나나아로 여행가는 것은 <캐스피언 왕자>에서도 런던의 일상으로 돌아온 후 다시 환상공간으로 여행이 계속되는 의미와 같다. 환상공가이 계속 되는 것은 환상공간이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거기셔 사건을 경험하며 아이들이 달라진다. 감정적 독립으로 부모가 부재하는 공간에서 아이가 해내야 할 과제다. 부모의 부재는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권력관계,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아동의 사화화에 대한 책임이 문명화이기에 여기서 아이의 홀로서기로 자신의 가치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모가 주입한ㄴ 가치에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 분석적 판단을 하게 된다. 유스티스가 나니아에서 모험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성장한다. 나니아라는 환상공간을 경험한 후 다시 현길로 돌아왔을 때 성숙한 시간을 얻어 성숙되어 있다. 환상공간으로 초대받는 존재는 아이들이고, 아이들에게 새 공간에서의 모험과 낯선 대상을 마나게 되느 경험을 제공한 환상공간은 중요 장치다. 콩과의례를 피르게 되는 유스터스는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은 어머니 자궁 속 양수 같아 그 양수로부터 바같세상이라 할 나니아로 나가야 하는 단계다. 유스터스가 환상 공간에 대한 긍정, 수용하여 새벽 출정호를 타는 것이 나니아로의 항해를 받아들이는 통과의례다. 기사단의 검을 찾는 모험과정으로 처음으로 환상공간을 긍정해 수용하는 것이다. 그 과저에서 욕망의 투사를 경험하여 성자의 걸쇠로 작용한 요소는 욕망의 투사를 통해 그들이 마지막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환상공간에서 하얀 마녀가 어머니(먹을 것을 주는 사람)처럼 나타나 욕망을 부추기고 유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먹을거리 제공은 정서적 수유다. 에드먼드는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사자, 마녀, 옷장>에서 피터와 수잔 등을 배신하게 하기 위해 어머니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터키 젤리로 그를 유혹하고 두 번째 영화 <캐스피언 왕자>에서도 하얀 마녀는 에드먼드를 부추겨 캐스피언을 배신하게 시도한다. 이렇듯 계속되는 시럼에서 하얀 마녀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어머니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다는 것과 그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형제를 배신해야 왕이 될 수 있다는 처지에 놓인다. 딸도 자매간 갈등의 요인- 자매간에는 어떤 종류든 시샘이 있다. 루시의 경우 언니보다 미모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언지 수장을 거울로 보며 자기 모습이 수잔과 같아진다는 것에 기뻐하다가 루시가 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현존을 위해 부족한 외모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며 진정한 주체로 서기위한 확신을 얻는다. 결핍된 것은 내 자신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주체의 거울은 그런 점에서 필요사고 자신의 욕망의 찌꺼기를 제거할 때 주체적 존재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유스터스ᅟᅳᆫㄴ 셋 중 가자 어리고 특별한 몸의 변화를 경험하며 환상공간에서 융의 개성화과정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즉 환상공간이 개성화과정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그 공간에서 가족이 배재되어 있고 그곳에서의 사건과 등장인물은 상징물로 기능하고 이미지로 재현된다. 개성화는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부정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종국에는 긍정의 자신을 발견한다. 자기 성취다.
순간순간 혼자 버려졌다는 생각이 강해지자 유스터스는 이미 그들을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단정하자 생판 낯선 골짜기에 와 있었고 바다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서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용의 굴속에서 용을 만나 자기가 용으로 변한 게 타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어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진다. 유스터스는 그 보물 중 그가 착용하고 있던 팔찌는 옥테시언 경의 것으로 그 보물을 탐해 자기가 용으로 변했음을 알게 된다. 우선 용으로 변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겠다 생각하곤 용으로서 자기 힘, 존재를 과시하다가 갑작스런 용의 출현에 아이들이 용이 자기를 공격하려 할 때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자기의 강한 마음을 깨닫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리려고 말하려 하나 안된다. 모래위에 글씨를 쓰나 문장이 안 된다. 한편 유스터스에게 다가온 사자는 그를 우물로 데려가 몸을 씻도록 하는데 이는 용으로 변한 모습이 마치 그가 용의 옷을 입은 것으로 대비되는 것이다 .몸을 물로 씻는 것은 ‘세례’라는 종교적 의미로. 원죄 씻고 새로 태어나듯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다른 섬으로 가던 중 바다뱀을 만나게 되자 용 모습을 한 유스터스는 뱀을 물리치고 친구를 구한다. 루이슨 용기, 결단, 지도자 정신, 믿음을 위해 투쟁하는 것 등이 모두 아슬란의 편에 있는 아이들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유스터스는 용으로의 변신이 신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형제애를 새로이 경험한다. 그리고 도덕적, 정서적으로 발전한 개인으로 탄생한다. 그들은 호수 물에 닿은 순간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호수에 도착하지만 호수에 손을 담그지 않고 에드먼드의 기지로 커다란 나뭇가지를 이용하려 한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인 터키젤리에 유혹당한 경험으로 물질적 욕망이 헛됨을 깨달았기에 황금으로 변하는 호수 물에 손을 담그지 않아 이미 성장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목소리들의 섬’에 도착한다. 회색 집 앞에 도착한 아이들은 두려움에 쌓여있다. 실제는 보이지 않은 채 소리로만 다가온 대상이다. 나무망치로 쿵쾅거리는 소리처럼 들리는 이들은 투명인간으로 예전에 마법사의 하인이었고 아이들이 와있는 곳은 위대한 마법사의 소유였던 섬이다. 마법사의 하인들은 서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변해 버린 모습 때문에 서로 보지 않게끔 하기 위해 투명 인간이 되는 주문을 외우게 되었단다. 마법사나 여자 아이만이 주문을 외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루시에게 주문을 다시 외워 지금의 투명한 모습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루시는 회색 집으로 들어가 욕망과 관련된 마법사의 책을 보고 오른쪽으로 책장을 넘겨 읽어내는 것만 가능(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을 수는 없다-시간의 흐름처럼 한 번 지나가버리면 그뿐인 것이다.)하다, 책으로 친구의 속마음을 엿본 루시는 마음이 상해 그 주문이 다음 기회에도 유용하리가 생각해 주문을 외우려 한다. 하지만 아슬란(아빠)이 이빨을 드러낸 성난 얼굴로 다가오는 느낌에 몸이 움찔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금지하는 것은 미움, 시기, 원망, 증오의 악감정을 담아두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욕망의 투사는 어둠의 섬에 도착한 아이들의 무의식에 감추어진두려움에 직면하게 해서 무의식 속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성장과 삶에 영향 받는 경험이 된다. ‘주문을 풀려면 동쪽 끝까지 가서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는데 환상세계에서 돌아온 유스터스는 아주 재미없고 평범한 아아라고어머니가 불평하지만 어머니가 아직 성장이 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모든 아동문학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배제는 아동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환상공간에서 겪는 부모의 부재는 개성화 과정을 위한 최적 조건이다. 부모의 품을 벗어난 것은 개체로서의 삶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환상공간으로 가고 황상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은 욕망의 투사를 이끌어 자기 성장을 가로막는 욕망의 찌꺼기가 무엇이지 가시적으로 파악하며 성장을 위한 노력으로 성장해간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영국. 로알드 달
어린 학생과 착한 여선생을 괴롭히는 악마 같고 거인처럼 크고 뚱뚱한 교장을 호낸는 이야기,마틸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 꿈을 잡아 병에 담자 잠자는 아이들의 귀속에 꿈을 불어놓어주는 <고마 작은 거인>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의 모임과 그들을 소탕하는 어린 주인공의 모험담<마녀> 악랄한 두 고모 밑에서 겨우 살아가던 제임스가 슈퍼복숭아를 타고 벌레들과 함께 바다로 가는 이야기<제임스와 슈퍼복숭아> 초콜릿 폭포, 초콜릿 나무와 꽃, 텔레비전으로 전송되는 초콜릿,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는 사탕, 평생 녹지 않는 왕사탕, 따뜻한 곳에서도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세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껌이 있는 판타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로알드 달의 작품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 즐거움을 준다.
부모나 선생의 눈에 말썽쟁이, 귀찮은 아이로 보이는 어린 주인공들은 남모르는 재능과 능력으로 어른을 골탕 먹이고 기발한 상상력과 전복적 방법으로 어른을 이기는 내용이다. 강자 어른과 약자 아이의 대립 구도로 유년의 학창시절 겪었던 선생님의 공포, 어른의 모순된 삶을 골탕 먹일 수 있는 대리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다.
후편,<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에서 진편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찰리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조부모들은 어른들이면서도 호들갑스럽고, 젊어지는 알약을 자식부부에게 나눠주는 것도 아까워하여 지나치게 약을 과용하여 간산아기, 무의 상태로 돌아갈 잉기적 인물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5명의 아이들은 집을 떠나 월리의 초콜릿 공장에서 시련과 모험을 겪고 버릇없는 4명의 아이들은 처벌을 받는다. 착한 찰리만이 마지막으로 남아 월리의 후계자로 공장을 상속받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해피엔딩으로 전통적 전래동화 구조다. 찰리는 황금초대장이 든 초콜릿을 네 번째 발견하는데 똑같은 상표, 독같은 종류의 초콜릿을 세 번째로 샀을 때 발견된다. 두 번째로 산 초콜릿은 윙카의 깜작 땅콩 크런치 바이여 나머지 세 개는 윙카의 퍼지멜로 초콜릿이다 즉 세 번의 동일 행동을 반복한 결과 마법의 물건같은 황금초대장을 발견한다. 전래동화의 세 번 반복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윙카 공ㅂ장 신제품을 실험하는 실험맨들인 옴파룸파족은 실험 중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불루베리처럼 온몸이 ㅂ라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수염과 머리가 끝도 없이 자라는 동안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실험 대상이 된다. 초대 받은 5명 아이들은 초콜릿 공장 실험실에 들를 때마다 윙카는 제품이 아직 실험단계라 시식을 금하거나 만지지 못하도록 하며 ‘스무 번이나 실험해 봤지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블루베리 열매 모양으로 변해 버디더군요. 뭐가 잘못 된 건지.“하며 실험맨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보다 성공하지 못한 실험에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이기적으로 이윤 추구를 하는 자본가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부잣집 아이들은 지나치게 음식을 탐하거나 껌만 씹거나 데쟁이 막무가내, TV에만 맴달려 사는 등 이상할 정도로 한 곳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등장, 반면 가난한 찰리는 부모 걱정하며 외가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 염려, 자기 욕망(초콜릿 먹고 싶지만)아껴서 한 개를 한 달 동안 먹는 아이다. 4명의 아이들보다 애어른처럼 조숙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행운을 얻고 거대한 공장주를 만나 후계자가 되면서 신데렐라처럼 신분상승과 권력을 쥔다. 윙카가 찾는 후계자의 기준은
“어른들은 제 말을 듣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거에요. 그래서 전 어린아이를 찾아야했습니다. 착하고 생각고 깊고 사랑스런 어린아이가 필요합니다.”하며 4명 아이가 테스트에 실패하고 마지막 찰리만 남았을 때 규칙을 어기고 몰래 붕붕쥬스를 마셨다는 이유로 찰리ㄹ르 그냥 돌려보내려하다. 이때 조 할아버지는 슬러그워스 사장에게 영원한 왕사탕을 갖다 주자고 제안하나 찰리는 거절하고, 받았던 왕사탕을 윙카에게 돌려준다. 그러자 월리는 “지친 세상엔 선행이 빛난다. 네가 이겼다. 널 속여서 미한하다. 슬러그워그는 우리 회사 직원이다. 너는 우리의 테스트를 통과했다.”며 후계자로 정하지만 경제 지배 논리를 답습하고 부의 상속을 옹호하는 강자의 경제 논리가 지배적인 사회구조를 보인다. 초콜릿 쟁이가 되려면 꿈 따라 자유롭게 살아야 해. 나는 가족이 없어 성공했다지만, 찰리는 온 세상 초콜릿을 다 줘도 가족은 못 버린다고 한다. 찰리 아버지는 해직된 치약공자의 기술자로 재취업하지만 치약 뚜껑만 만든 단순 노동자인 최빈곤층 노동자 출신 아버지가 치약공장 기계ㄹㄹ 고치는 기술공으로 재취업한다는 설정은 비논리적이고 설득력 없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월리는 “초콜릿을 만드는데 자신이 없어졌다. 어떤 색과 맛을 낼지, 모든 걸 내 맘대로 했는데, 내 맘이 병드니까 초콜릿도 병드는 거야.” 자기 심정을 토로한다. 그 답을 찾아 찰리를 찾아가 이야기하다 아버지와 화해의 길을 찾는다.
“넌 어디서 행복을 얻니?”
“가족이요.”내가 싫은 건 부—자식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해.“
“사랑 때문에 그래요.”
초클릿보다 더 달콤한 가족이라는 표현은 버튼은 돈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남편은 자신의 수입만으로 가족을 부양할 능력과 가구 수입은 절적절한 거주지와 음식, 안락함, 넉넉한 공간, 소비재 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이규희(자전적 작품)
나는 황지연못에 있는 세 개의 연못 중에서 가장 큰 연못가게 섰다. 커다란 연못 속에 아카시아 나무며 미루나무들이 거꾸로 쳐박혀 있는 게 보였다. 하늘과 구름도 들어가 있고, 내 모습도 길게 비쳤다.
‘제발 아버지도 황 부자처럼 연못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면...... .“
나는 나를 때린 아이보다 아버지가 더 미웠다.
결국 아버지가 없는 나라도 아버지를 만남으로 해서 갈 수 있는 나라. 통과의례의 관문인 셈이다. 그것은 아버지와 화해를 의미하고 진솔한 고백을 통해 한 인생이 성숙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