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를 보고
송하연
내 안에는 여러 개의 내가 살고 있다. 나의 이런 속 시끄러운 현상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하다’는 특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엄마의 글로 이루어진 내면세계를 그대로 안고 태어났지만 엄마처럼 확고한 글의 근간은 없다. 또 인생의 대부분을 초고도비만으로 보내다 몇 년 전에 살을 뺀 일도 내가 느끼는 정체성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뚱뚱한 나와 살을 뺀 나 두 명에 치여 사는 기분이다. 둘 다 뭘 바라고 내 안에 남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발제문을 맡는 일도 애매하게 느껴졌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에는 ‘내 oo살의 전부였던 작곡가’ 등 추억에 젖은 극찬과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았다. 그에 반해 세대가 미묘하게 어긋난 나는 곡명도 없이 그가 남긴 멜로디 몇 소절만 주워듣고 자랐다. 발제문을 쓴다는 게 친구의 10년 사귄 애인에 대해 발언하는 일만큼이나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스크린 속 인물들과 함께 웃고 울며 나이를 먹어온 사람이 있다면 나보다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나는 ‘당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에 사로잡혀야 했다.
사실 내 질문을 몇십 년 앞서 고민했던 사람이 엔니오 모리꼬네인 것 같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1984, 세르지오 레오네), ‘미션’(1986, 롤랑 조페), ‘시네마 천국’(1988 주세페 토르나토레) 등 멜로디만 들으면 누구나 “아!”할 만한 곡들의 작곡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B급 영화에 관현악만 붙이던 이전의 영화 음악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영화 음악의 창시자’였다. 악보를 다시 연주하기만 하면 그만이던 당시의 편곡에 굳이 캔 굴리는 소리를 넣겠다며 가수를 겁에 질리게 하고, 파업 시위 행렬의 북 치는 박자를 영화 전체에 담았으며, 노래에 휘파람을, 종을, 피리 소리를 넣었다. 거장이 된 후로도 어떻게 하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멀게만 보이는 엔니오도 나와 같은 유약한 인간이라는 점이 좋았다. ‘나올 만한 선율은 거의 다 나온’ 시대에 태어났고, 음악을 시작한 건 사실 트럼펫 주자 아버지의 의지였으며(‘음악 천재’는 음악을 접하자마자 운명을 느낄 줄 알았다), ‘허튼짓하지 않고’ 작곡에 매진하는 동안에도 매 순간 음악 안에서 두 얼굴로 분열했던 사람이라는 것. 순수한 음악에 복무하고 싶다는 마음과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생업 사이에서의 갈등은 오랫동안 그의 인생의 축이 되었다. 존경하는 스승 페트라시와 재능있는 또래들과 함께 음악원에서 전통음악을 공부했던 엔니오. 그러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던 엔니오. 불협화음들을 이용해 선율을 금지한 음악을 하는 ‘일 그루포’의 일원이었던 엔니오. 어머니가 늘 하던 “멜로디가 좋아야 곡이 잘 팔린다”는 말을 기억했던 엔니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책 표현처럼, 나는 엔니오 모리꼬네조차 ‘속에 일렁이는 수백 개의 가능성 중 어디에 자신을 고정’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뇌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영화에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지만, 사실 엔니오의 삶에 예정되어 있는 어떤 확고한 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음악가의 상업예술을 변절로 본 시대에 상업 음악에 뛰어들었던 건 선견지명이 아니라 음악원을 졸업한 뒤 맞닥뜨린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페트라시와 동료들에게 자신이 영화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가명까지 썼다. 엔니오가 선보이는 낯선 음악에 대한 세상의 반응도 좋지만은 않았다. 학계와 스승 페트라시에게서 들었던 ‘네 음악은 매춘이나 다름없다’는 비난과 ‘아직 만회할 수 있다’는 걱정스러운 회유를 몇십 년 지난 시점에 회상하는 그의 턱이 바르르 떨렸던 게 생각난다. 자기 자신을 둘러싼 틀에서 해방되기까지 그 사람은 얼마나 불안하고 괴로웠을까. 다만 그에 맞서는 그의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지금 느끼는 이 수치심과 자격지심까지 음악 안에 녹여내겠다. 나는 내 음악으로 설욕하겠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나만은 내 음악을 더럽혀진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엔니오는 상업 음악을 하면서도 페트라시에게 배운 작곡가의 위엄을 잊지 않았고, 음악은 감독의 관할 밖이라며 영화 안에서 작곡가의 영향력을 넓혔다. 그 결과 새로운 영화 음악이 탄생했다.
그는 “이 곡에 맞는 편곡은 내 곡밖에 없어요”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음악을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적인 거장 급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러 차례의 노미네이트 이후 어렵게 손에 든 오스카상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인생은 빈 종이였고, 운명이라고 부르는 성취를 이끈 것은 단지 매 순간 불안에 떨며 써나간 다음 음이었다. 그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이쯤에서 엔니오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생각이 바로 곡이 되지는 않아요. 작곡을 시작할 때면 늘 그 점 때문에 괴로워요. 눈앞의 빈 종이 위에 작곡가는 어떤 곡을 써야 할까요? 무엇을 써야 할까요? 생각은 이미 있지만 더 다듬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고 찾아내야 해요. 뭘 찾느냐고요? 그건 알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인생은 비슷한 것 같다. 눈앞의 빈 종이를 채우고, 다듬고, 나아가고, 찾아내야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적 도전을 보며 나 또한 분열된 나 자신이 수렴하는 부분을 찾아가고 싶어졌다. 내가 느끼는 이 모든 애매함의 울분(?)까지 녹여낸 설욕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김이 샐 만큼 별것 없는 무언가가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되고 무엇을 찾아내든, 엔니오가 자신의 음악에 그랬듯이 내 안의 어떤 것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다듬어가는 힘은 나에게 있다고 믿는다.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 그 무언가도 어느 끝에서 내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빈 종이 앞에서의 막막한 여정도 조금은 즐겁게 느껴진다.
첫댓글 장편영화를 보면서 저는 두번이나 졸다가 깨면서, 천재야. 그래 재능은 타고 나야돼.라고 짧은 생각을 했습니다. 송하연님의 발제문이 잠을 확 깨는군요. 첫문장부터 심상치 않는 발제문이라는 사실....영화내용과 자신의 삶을 반추시킨 발제문에 반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