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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라
2020. 3. 29.(주일낮예배) 이사야 39:1-40:1
요즘 우리나라 음악의 대세는 트로트이다. 그래서 개그맨 유재석씨가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를 부르고, 또 트로트퀸, 보이스퀸, 미스트롯, 나는 트로트가수다 등 트로트와 상관된 음악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되었다. 그리고 제가 잘 몰라도 가장 큰 인기를 모은 방송은 아마 미스터트롯일 것이다. 미스터트롯이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 종방 때 시청률이 무려 35%나 되고, 국민문자투표를 통하여 1등을 뽑아야 하는데, 773만명이 동시에 접속하여 서버가 다운되는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다보니 미스터트롯은 많은 스타를 만들어 내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한잔해를 부른 권영기씨이다. <사진1>
권영기씨는 2008년 mbc17기 공채개그맨으로 방송에 데뷔하였다. 그런데 인기를 끌지 못하고 결국 후배들에게 밀려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선배의 권유로 가수에 도전했지만, 이것도 실패하였다. 그래서 개그맨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어정쩡한 무명의 시간을 보내는 영기는 생활고를 겪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낼 때였다.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냄새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니 피범벅이 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영기씨는 병원에 실려가서 소장절제수술을 받았다. 월세를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크론병에 걸려 소장절제수술까지 한 영기씨의 삶에는 전혀 소망이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기씨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영기씨를 한 기자가 찾았다. 그리고 기자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 질문에 영기씨는 주저하지 않고 어머니라고 대답했다. 어릴 때 영기씨 아버지는 술과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런데 집에 오시면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가족을 때렸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집은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던 영기씨는 어릴 때부터 브랜드가 있는 아파트에 소파를 두고 어머니와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영기씨는 어렵고 힘든 순간에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영기씨는 고생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도전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여러분은 많은 실패 속에서 영기씨가 포기하지 못한 삶이 이해가 되는가? 이사야 36장-39장은 히스기야왕에 대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앗수르가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를 공격하여 3년만에 점령한다. 그리고 히스기야 6년에 앗수르는 유다를 침략하였다. 이것이 앗수르 1차 침입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히스기야 14년에 2차로 유다를 침입하였는데, 그 내용이 이사야 36장부터 기록되어져 있다. 앗수르 산헤립은 유다 땅 라기스에 본대를 두고, 랍사게에게 대군을 주어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랍사게는 사마리아 성읍이 무너진 것처럼 유다의 예루살렘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고 하면서 유다를 조롱하였다. 그때 히스기야는 이사야선지에게 기도를 부탁하여 랍사게가 고국에 돌아가 칼에 죽을 것이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사야 37:8을 보면 립나의 반란으로 산헤립은 라기스를 떠나고, 랍사게도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앗수르 2차 침략이다.
그 후 앗수르 산헤립은 구스 왕 디르하가(사 37:9)와 전쟁하기 위하여 3차 침략을 하였다. 그때 산헤립은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한다는 말을 믿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길을 비켜달라고 하지만, 히스기야는 길을 열어주지 않고 앗수르의 편지를 들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것이 이사야 36-37장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사야 38-39장은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을 때 기도하여 나음을 입는다. 그 후 바벨론 사신이 왔을 때 히스기야는 국고의 보물창고를 다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을 시간적 배열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신 후에 히스기야는 병들어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석학자들은 시간적 배열이 아니라, 주제적 배열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랍사게의 침략과 히스기야의 병듦이 같은 시간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왜 주석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는지 먼저 이사야 38장 6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사 38: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병이 든 히스기야에게 이사야가 와서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사형선고를 한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때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곧이어 하신 말씀이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징표로 아하스의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물러나게 해 주었다.
그러면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앗수르는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대영박물관에 가면 앗수르 산헤립의 왕궁 벽을 볼 수 있다. 그 벽에는 수척한 사람이 2명의 아들과 함께 걷고, 또 다른 가족은 야윈 황소들이 끄는 수레에 짐을 실고 가고, 여기저기에서 짐을 어깨에 매고 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공성퇴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성문이 무너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다음에는 왕이 화려한 보좌에 앉아있고 많은 전리품들이 왕앞으로 나아온다. 그 전리품 뒤에는 두 손을 높이 든 포로와 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왕의 보좌 위에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 <사진 2>
세상의 왕이요 앗수르의 왕인 산헤립은 느므두(n'medu) 왕좌에 좌정하고 라기스(Lachish)의 전리품은 그 앞을 잇따라 지나간다.
라기스는 블레셋과 국경을 같이 하는 유다의 주요도시이다. 그래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에 라기스를 요새화하였고, 히스기야는 르호보암이 요새화한 그 성을 더 튼튼하게 보강하여서 외벽이 3M, 내벽이 6M나 되는 이중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튼튼했던 라기스가 앗수르에 무너지고 라기스 거민들은 처참하게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앗수르 산헤립의 2차침략 때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립나의 반란으로 철수를 했던 산헤립은 이제 구스와 전쟁하기 위하여 다시 대군을 모아서 남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히스기야에게 앗수르를 절대로 이길 수 없으니 길을 내라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사야가 와서 히스기야에게 한 말이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였다.
만약 여러분이 히스기야였다면 이사야의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앗수르의 1차·2차 공격을 겨우 이겨내었는데, 또 다시 앗수르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이제 내 몸마저 무너져 버린다면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은 낙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어떤 분은 불평과 원망으로 분노할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벽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앗수르의 침략 앞에 사신들이 가지고 온 편지를 내어놓고 기도하던 히스기야는 이제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며 통곡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한다. 그런데 더 어려운일이 겹치면 낙심하거나 분노하는데, 히스기야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 기도하였고, 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더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참된 모습이 아니겠는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한 초등학생이 만든 방학생활규칙이 우리를 웃게 만든다. <사진3>
1. 주는대로 먹는다. 2. TV 끄라고 하면 당장 끈다.
3. 사용한 물건 즉시 제자리 4. 한번 말하면 바로 움직인다.
5. 엄마에게 쓸데없이 말걸지 않는다. 위 사항을 어기면 피가 코로나 올 것이다.
초등학생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마음에 주는 대로 먹고, 또 엄마 말씀을 잘 듣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누구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회적거리두기를 하면서 교회의 집회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부득의하게 예배를 드릴 때는 손소독, 발열체크, 2M이상 거리두고 앉기 등의 수칙을 주어서 준수하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요구에 어떤 목사님은 왜 예배를 강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교회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제공자로 만드는가? 또 예배를 드린 교회에 확진자가 나오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것은 종교탄압이다는 반응을 보인다. 거기에 비하여 어떤 목사님은 교회는 자발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가 교회는 다르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분 생각에는 누구의 주장이 옳아보이는가? 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가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며, 그 하나님이 만군의 주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수기 16장에서 고라자손이 다른 불로 분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 때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염병으로 죽어갔다. 그때 모세가 아론과 함께 향로를 들고 회막 앞에 서서 염병을 그치게 한 것처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목사들이 먼저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19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과 주장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가? 성경을 보시기 바란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서 18만 5천의 산헤립 군사를 다 멸하였다. 그리고 산헤립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니스록 신전에서 경배할 때 그의 아들이 와서 산헤립을 죽였다. 자기 힘을 믿고 하나님을 모욕하던 산헤립은 자기 아들의 손에 죽는 가장 비참한 왕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히스기야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히스기야는 구스왕과 다른 열국의 왕으로부터 존대함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사야서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기사는 이것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히스기야가 모든 열국으로부터 존대함을 받을 때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이 사신을 보낸 것이다. 그때 히스기야는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보물창고를 다 보여준 것이다.
왜 히스기야는 보물창고를 다 보여주었겠는가? 제가 신대원 다닐 때 구약학 한정건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히스기야가 보물창고를 다 보여준 이유는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바벨론에게 히스기야는 자신의 강력함을 보여줌으로 화친을 맺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다시 침략해 오면 바벨론과 힘을 합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였는데, 이제 열국의 왕들에게 존대함을 받게 된 히스기야는 자기의 힘으로 앗수르의 공격을 막아서려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사 39:7)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말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과신한 히스기야는 자신의 나라와 후손이 모두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유다는 바벨론의 3차례 침략으로 철저히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1차 침략에 다니엘과 3명의 친구가 끌려가고, 2차 침략에는 여호야긴과 1만명의 사람이 포로가 된다. 그리고 BC 586년 느부갓네살은 3차로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허물고 시드기야 왕의 눈을 뽑아 쇠사슬에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간다. 남유다는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사 39: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는 해에 사역을 시작한다.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라는 뜻을 가진 웃시야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제사장 스가랴가 있는 동안 정직히 행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정직하게 나라를 다스리던 웃시야는 말년에 교만해져서 제사장이 드리는 분향을 하려다 나병에 걸려 남은 여생 별궁에 거하다 죽는다.
그리고 이사야 사역의 마지막 왕이 히스기야이다. 그런데 그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공격 앞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는데, 결국 교만해져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지 않는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히스기야의 이 말을 듣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유다 20명의 왕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한 왕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할 수 있는 웃시야와 히스기야마저도 무너져 버리는 것을 보신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편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사야 40장 1절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나하무 나하무 아미(nachamu, nachamu ami)이다. 원래 히브리어는 동사가 먼저 기록되는데, 하나님은 위로하라를 2번 반복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위로받기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 마음이 느껴지는가? 유대인들은 최대 명절인 유월절에 아니 마민(나는 믿는다)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2차 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는 매일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보며 슬픔과 절망에 빠진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늦게 오신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보며 절망앞에 부딪친다.
그 나치수용소에 한 젊은 외과의사가 있었다. 외과의사는 노역장에서 유리조각을 주워서 아침마다 면도를 하였다. 어떤 날은 뺨에 피가 흘러도 외과의사는 거르지 않고 꼭 면도를 하였다. 그리고 외과의사는 아니 마민 노래 가사도 고쳐서 불렀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그가 늦게 온다고 불평한다.
아니다. 우리가 조급할 따름이다.
외과의사는 조급하지 않고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나치 간수가 줄을 세워놓고 죽일 사람을 고를 때마다 외과의사는 항상 그냥 지나쳤다. 새파랗게 젊은 외과의사의 얼굴에는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보였던 것이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리고 스웨덴으로 건너가서 병원을 개원한 청년은 유월절이 되면 가족 친지들을 다 불러서 자신이 개사한 아니 마민을 불렀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그가 늦게 온다고 불평한다.
아니다. 우리가 조급할 따름이다.
어떻게 유대인들이 아니 마민을 부를 수 있었겠는가? 이사야 63:5을 보면 하나님은 내가 본 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이 홀로 외로이 그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웃시야도 돌아서고, 히스기야도 돌아서 버렸지만 하나님은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그 팔을 스스로 잡아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그 구원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이 세대에 교회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있어야 할 것은 일하시는 그 위로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소망가운데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참된 위로가운데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