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57명의 공산당원을 대표하는 13명이 모여 중국공산당을 창당하였다.
공산당은 당내의 우경 기회주의와 좌경 모험주의를 극복하고, 중국 인민과 함께 항일민족통일전선 투쟁을 추동하여, 군벌과 매판자본가가 주축인 외세의존적인 국민당과 간악한 일본 제국주의자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1949년,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반제 민족해방과 반봉건 신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였다.
중국공산당의 반제반봉건 민족민주혁명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중국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첫째. 농민을 중심으로 한 대중주의 노선이다.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이었으므로 도시 봉기 위주의 좌경 모험주의 노선은 배제되었다. ‘물과 물고기’의 비유처럼, 국민당 군대가 중경으로 퇴각하고 일본군이 도시와 철도 위주로 점령한 그 사이에 농촌이 근거지인 해방구를 건설하여 혁명을 수행하였다.
둘째. 홍군을 중심으로 한 무력투쟁노선이다. 토지개혁으로 조성된 농민의 지지와 지원으로 확대된 홍군은 정치교육과 엄격한 기율로 조직되고 단련되어 군사적 무력과 혁명의 주력이 되었다.
3대 기율과 6항 주의가 강조되었는데, 모든 행동은 명령에 따르고, 인민으로부터는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취하지 않으며, 몰수한 것은 공유한다는 것이 3대 기율이다.
인민에게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그들은 도와준다. 매매는 공정하게 한다. 빌린 물건은 돌려준다. 손해는 배상한다. 잠자리에 사용한 짚단과 문짝은 돌려준다. 측간은 민가에서 멀게 설치한다. 등등이 6항 주의이다.
셋째. 광범위한 통일전선전술이다. 일본제국주의와 중국민족의 모순이 주요모순이므로 소수의 대지주와 대자본가를 제외한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 소부르주아, 민족부르주아 계급들을 망라한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함으로써 좌경교조주의를 배척하였다.
공산당의 지도와 노동자농민계급의 주도권을 확보하여, 부르주아와 연합하려는 우경 기회주의도 척결하였다.
넷째. 모택동 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았다. 모택동 사상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중국혁명의 구체적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사상으로서, 당의 모든 정책과 실행의 지도 이념이었다.
‘혁명이론이 없는 혁명운동은 없다’는 말처럼 모택동 사상은 중국혁명을 지도하였고 중국혁명과 함께 발전하였다.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가 옳은 것은 마르크스가 무슨 고명한 사상가여서가 아니라, 그의 이론이 우리의 실천과 투쟁 속에서 옳다고 증명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음은 1938년 5월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맞서면서 그가 ‘지구전론’에서 했던 말이다.
“사상은 주관적인 것이고 행동은 객관적 현실에서 주관이 드러난 것인데, 모두가 인간의 특수한 능동성이다. 이러한 ‘자각적 능동성’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여야 정확한 사상이고, 정확한 사상에 근거하여야 정확한 행동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와 같은 사상 및 행동과 자각적 능동성을 펼쳐나아가야 한다.” <181123려춘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