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 시 119:57-64, 고후 2:12-17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 소문을 듣고 이디오피아 여왕 시바가 솔로몬의 지혜를 사모하여 방문한다. 화분 둘을 가져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라고 시험한다. 벌과 나비를 가지고 향기를 구별하다. 말할 것 없이 진짜 화분의 꽃에는 향기가 있었기 때문에 벌과 나비가 향기있는 화분을 찾아 날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다. 모양은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으면 이미 그는 가짜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한다.
식당에 가면 음식 냄새, 병원에 가면 약품 냄새, 생선가게는 비린내, 화장품 가게는 화장품 향기가 난다. 그러나 쓰레기장을 가면 썩은 악취로 호흡이 곤란할 정도이다. 이는 온갖 채소, 과일, 생선, 음식 찌꺼기들이 뒤범벅 되어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채소, 과일, 생선, 음식물들이 처음부터 악취를 내는 것은 아니다. 방치되고 돌보지 않아 부패되면서부터 악취를 내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예수님을 모신 감격과 기쁨으로 살았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 혼자만 간직할 수없어서 그 감격과 기쁨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그리스인의 신앙생활이다. 그런데 지금 혹시 마치 쓰레기 하치장의 썩은 악취를 내듯, 나의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세속적, 비도덕, 비윤리, 비신앙적인 삶을 통하여 악취를 풍기지는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진솔한 대답으로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여기의 ‘향기’는 헬라어에서 ‘유오디아’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구약에서 ‘희생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복음 증거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적인 제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엡 5:2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표현하고 있다. ‘향기로운’은 구약에서 희생제사와 관련된 문맥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향기로운 재물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성도들도 이와 같은 희생적인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빌 4:18절에도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빌립보교회의 바울을 향한 물질적 도움이 바울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았다는 ‘풍부한지라’는 말로 연결된다. 이는 바울의 복음 선교사역을 돕는 빌립보교회의 물질적 도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의미가 부여된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을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는 놀라운 뜻을 담고 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됨은 바로 예수의 복음 선교 사역에서 표현되어지는 지고한 축복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희생과 같은 뜻으로 거룩한 성도의 희생적 삶으로 표현되어지는 아름다움이다. 향기 가운데서도 고급 향기로 살아갈 것인가, 싸구려 향기로 살아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예컨대 ‘샤넬 No5’는 전세계의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향수이다. 이 향수는 장미 꽃잎 45kg을 가지고 향수액 28g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것은 약 166배로 농축한 것이다. 장미 꽃잎 45kg은 대단한 양이다. 장미 꽃잎이 그 정도 무게를 가지려면 트럭으로 몇 대는 족히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향수는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하루종일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줄 것이다. 인삼에서 뽑는 향기가 인삼향이고, 국화향, 모과향, 오렌지향 등도 나름대로 각각의 향기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향기, 봉사의 향기, 헌신의 향기, 전도의 향기,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이 향기 등 각자의 독특한 향기를 나타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런데 싸구려 행기는 다른 사람의 속을 매스껍게 하고, 또 아무리 많이 뿌려도 오래가지를 못한다. 마찬가지로 악취를 내는 성도의 생활을 보면 헐뜯고, 흉보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파당을 짓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악취가 난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싸구려 향기인 것이다. 향수고 고급이 있고 싸구려가 있듯이 성도 가운데도 고급 성도가 있고 싸구려 성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탸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향기는 두 가지 냄새가 있다.
16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생명의 냄새로 나타난다. 그러나 복음을 거부하고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냄새로 나타난다. 이 복음이 성도들에게는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냄새가 되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된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똑같은 하나의 냄새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 냄새로 힘을 얻고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맡으면 죽어버리고 만다. 마치 여름에 모기향을 피울 때 그 향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지만 모기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는 것과 같다. 꿀벌은 주인을 위해서는 꿀을 준비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독침을 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만,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이 냄새가 역겨워 맡기도 싫은, 그래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여러분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고 있는가? 똑같은 포장이지만 비누를 쌌던 포장지는 향내가 배어 있고, 생선을 쌌던 포장지는 비린내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의 모습에서 풍겨나는 냄새는 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본문은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묻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 우리 옛말에 ‘도깨비는 향기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그곳에는 언제나 정화되어 밝고 깨끗해진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발휘되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모여와서 감화감동을 받아 인격과 윤리가 변하여 새로워진다는 말이다. 거짓된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증오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불의한 사람이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가 된다.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냄새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풍겨나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우리는 기도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계 5장과 8장에서 성도의 기도는 급대접에 담긴 향기라고 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피어나는 향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우리들은 순종의 냄새를 나타내어야 한다. 제사보다 나은 것이 순종이다. 또한 우리는 헌신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는 성도의 아름다운 삶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
1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성도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주안에서’는 성도의 기쁨과 감사와 축복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할 수 있는 향기이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다. 그런데 그 진흙에서 굉장한 향기가 발산된다. 나그네는 진흙에게 묻는다.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아니오.’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그저 한덩이의 진흙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오느냐?’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하찮은 진흙 한줌도 백합화와 오랫동안 함께 했을 때 사람의 이목을 끄는 굉장한 물질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게 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는가? 1년? 10년? 아니면 30년? 그런 세월을 예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예수 냄새와 성령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입으로는 예수와 함께 했지만 실제로는 물질과 세상과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흔드는 골치 아픈 악취를 발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가?
신문에 이런 내용이 보도된 적이 있다. 상점 안의 향기로운 냄새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상품 구매 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 마케팅 전공 교수 3명이 발표했다. 이들은 연구결과를 통해 소비자들은 좋은 냄새가 나는 매장에 다시 가려는 경향이 있으며, 같은 상품이라도 냄새가 좋은 매장의 것을 더 좋은 품질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매장에 손님이 다시 가고 싶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향가가 나는 교회가 되면 사람들은 그 교회에 서로 오고 싶어할 것이다. 교회가 원망과 불평의 냄새를 발한다면 교인들은 저절로 멀리멀리 피하여 달아날 것이다.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한다. 서로 사랑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된다. 감사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돈다. 찬양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된다. 복음성가 가사 중에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라고 했는데,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은 불평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아름다운 삶을 나타내는 것이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내게서 소중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도 주님을 위하여 깨뜨릴 수 있을 때 향유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이렇듯 하나님의 교회가 나의 희생과 헌신과 봉사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면 굳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지 않아도. 지동차 뒤에 익스투스(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나 지저스(예수)라고 쓴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나 ‘내 탓이오’ 같은 장식들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겠는가? 남들보다 더 얼굴을 찡그리고 기쁨이 없고, 한숨과 원망을 일삼는 모습이라면 결코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없지 않겠는가? 예수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20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