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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ug(월) :
아침부터 온다던 Surveyor는 코끝도 안 보이고 Pilot가 먼저 왔다. Shifting한다나. 505동원호가 부두에 접안한 체 허무하게 침몰하는 모습을 보다.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 한 게 서운하다. 池선장(그는 FAO출신이랬다)
‘형님 이런 수도 있습니까?’ ‘이 사람아 그만한 게 다행으로 알아라. 바다 위에서 그랬으면 어쩔뻔 했냐?’
그와 그의 선원들 모습이 더없이 처량하다. 아무래도 해난은 없어야 한다. 서서히 잠기는 그의 애선을 바라보는 지선장과 그의 선원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럴수록 선원단속, 사후처리,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냉정을 잃지 말라고 일러주기는 했다만 -.
2/Aug(화) :
안양7호 김해룡(그는 동방73호의 C/O를 했다)군 찾아오다. 뜻밖이다.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는데 -. 얼굴이 부었다. 끝까지 남았다 한잔 나누다. 고맙다. 잠시나마 내가 데리고 있었던 인연뿐인데 -. 역시 마지막 항차중인데 기관수리 관계로 긴급 입항했단다.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다. 주부식 Sign으로 구입키로 Telex하다. 감독, 동경에 전화결과 답신을 했다는데 연락이 없다. 급한데 별수가 없다. 자정 넘어 Shifting하다. Agent, Mr. Hose. 살찐 곰 같은 녀석이 사람이 좋다. 아침부터 하역 시작되다. 5일경 출항예정이란다.
3/Aug(수) :
1등기관사 병원에 보내다. 몸살이다. 수고 많았다. C/E가 똑똑했었더라면 그렇게 욕보지 않았을 건데 -. 구보감독의 부름이 뜻하는 것은 내 자신이 안다. 어떤 보고가 회사에 갈는지? 안양7호. 동원107호에 맥주 보냈으나 송 선장은 출항하고 말았다. 안항과 건투를 빈다.
주부식 사입시작. Fransari 이현일이란 작자. 이런 새끼가 한국사람 망신시킨다. 당신 부식 안 사도 좋고 안 먹어도 되니까 가져가랬더니 그제야 백배 사죄한다. 돈이 있어도 못하는 이곳 실정을 이용, 못 팔고 남은 것을 엄청난 가격으로 조건부로 끼워 판다. 얌체녀석. 김해룡군과 점심 나누고 Sauna로 피로를 풀었다. 전신에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어둑한 거리. Roman Steak House에서 나와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며 헤어지다. 다시 운반선을 타고 싶단다. 명곡 Tape 몇 개 샀더니 전부가 가짜다. 속은 내가 등신아이가.
4/Aug(목) :
Mr. Tikam과 그의 가부들. 본선을 사련단다. 배에까지 와보다. 사는 것은 네 마음대로 지만 내가 가고 난 다음에 사라. 사실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본선의 효과를 얻을런지는 의문이다만 선가가 문제겠지? 그들이 사업내용, 내외적 조건들을 내가 자세히 모르는 한 구체적으로 끼어들 수는 없다. Mr.Tikam. 돈 많은 인도인이라지만 그리 신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연이 걸려있는 동안은 사귀어 두자. Agent. Delivery Certificate와 Surveyor Report를 가져왔다.
8월1일 14:00가 Delivery Time이다. 구보감독 혼자 취해서 왔다. 이와자키란 놈하고 한잔 한 모양 같다. 솔직히 그의 고충을 털어놓고 ‘센쬬,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더 이상 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운하다. ‘이해하요, 다음기회 있으면 또 만날 수 있지 않소?’ 회사에 가면 선장의 기량을 전하고 다시 새 배를 건의하겠단다. 믿을 수는 없지만 한국인에 대해서 더럽게 굴기 짝이 없는 일본인으로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고 스스로가 인정을 하는 데는 그간의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아마도 渡辺국장이 좋은 말을 많이 했었을 것이다.
상준 군이 왔기에 데리고 나와 저녁 한 끼 사주고 용돈도 좀 줬다. 못내 헤어지기가 아쉬운가보다. 그래 잘해라. 성실! 그것이 자신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Lido에서 혼자 Jintonic한잔 하다. Laspalmas! 기대에 어긋나도 숫하게 어긋난 곳이다.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 Spain을 정복하기엔 너무나 내 자신이 비참해지기까지 했다. Pacha Bar든가? 그 늙고 퉁퉁한 두 여인, 암만 위스키를 줘도 취하기는커녕 뚜꺼비 파리잡듯 넙쭉 넙쭉 받아마시기만하던 그 모습에서 그들 생활의 한 모습을 느낄 수 있지 않았던가. 渡辺국장 떠나기 전에 찾아와 정중한 인사를 한다. 오히려 미안하다. 고생이 많았다. 그의 인자하고 자상한 인품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얘기의 상대가 되어 주었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인. 특히 의식적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지만 역시 사람나름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오래토록 건강하시길 빌었다. 이와사키씨 보다는 西村씨가 훨씬 인간미가 있었지. 그이 초대에 가지는 못했지만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5/Aug(금) :
1타수 다시 병원에 보내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너무 겁이 많기도 하다. 오후 병원에서 선장이 직접 오란다. 10시 구보감독. 와타나베국장 귀국길에 오르다. Radio. Slid기기. 라켓, 짧은 바지 등을 사다. 수많은 찬란한 소비재.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엉터리 투성이가 많다. 단 하나 모피 Coat는 탐난다. 마누라 생각이 난다. 값도 엄청나지만 가져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아직은 -.
동방의 이 과장이 왔다. Campex와의 관계로 -. 어리석은 작자들이다. Owner 송금 $10,000했음을 알려왔다. 큰일이다 내일까지 찾을 수 있을라나? Mr. Tikam도 최종적으로 만나다. 서로의 협조를 재다짐하다. On Deck Cargo Charge받다. ‘너는 나의 대리인이니까 믿으마’ ‘그래주면 나도 최선을 다하마’
내일 오전10시 D-day로 정하다. 오후 8시 다시 Oil Pier로 전묘, Bunkering하다.
Fuel oil Viscosity 때문에 Shell측에서 찾는다. C/E가 있는데? 왜? 예측한 대로다. Owner와 Charterer측의 상호이해관계상 협정한 F.O질 때문이었다. 분명히 며칠 전 구보감독과 C/E앞에서 다짐을 뒀던 일이다. 그리고 본사에도 Telex로 알렸는데 그 모양이다. 일본이나 동남아쪽에서는 비중으로 따지는데 여기는 粘質로 따진다. ‘Intermodratic 400'으로 나왔으니 그대로 하기로 하다. 그래가지고 기관장한다고 -. 원참. 일찍 자다. 내일을 위해서 -.
6 Aug(토) :
아침8시 선용금 가지고 온다던 Mr.Tikam이 감감이다. 9시반 Mavacasa를 찾다. Mr. Jose Luis Calzada, 신사타입으로 친절하게 협조해준 사람이다. Bilbao Bank에서 선용금 도착 확인. 위임하다. Canpex들렀더니 Mr.Tikam 늦잠을 자서 미안하다나. 다시 Las로 올 기회가 있을 듯하단다. 그래 잘해보자. 너도 벌고 나도 살고 -.
13시 출항. 갑판 위가 너무 지저분하다. 묶은 찌꺼기, 기름때 등등. 거친 외항. 뒷바람이라지만 파고가 높아 기울어짐이 심하다. Las항! 다시 한 번 뒤돌아 본다. 긴 Oil Berth끝에서 휫바람을 불며 손 흔들어 주는 것이 동원의 강영백형인가 보다. 고맙다. 다시 시작된 길. 무사, 안전 그리고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 뿐이다.
그저 정신이 벙벙할 뿐이다. 근 한 달 가까히 -. 시내구경 옳게 하지 못했다. 그 자체가 서운하거나 미련이 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쁜 가운데 잘 보냈다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뭔가 설치면 남만큼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질 수 있게하기도 한다. 오전 Mavacasa에 의뢰하고 온 두통의 편지 잘 들어 갈려나? 우선 좀 쉬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시간을 벌어야 한다. 되던 안 되던 그간 듣고 씨름했으니 그만큼이나 얘기할 수 있었다. 일본어는 그만하면 됐다는 평도 받은 셈이다. 아무리 굳은 대가리지만 그래도 뭔가 남아 떨어지는 게 있다. 속옷이 절었다. 벗어 던지고 새 기분으로 하자. 어쩌면 그곳 Lagos의 사정에 따라선 1년쯤 더 연기해야한다. 그리곤 길을 달리하자. 분명히 더 넓은 세상이 있었고 또 더 있음을 알았다. 사진 속에서 웃는 아내의 그리고 얘들의 모습이 한없이 그리워지나 나 자신만큼이나 처량해 뵈이기는 또 처음이다. 이렇듯 애태우게 할 줄 알았다면 혼자 살았을 것을 -.
8th. Aug.(월)
전체가 다시 시작하다. 어제까진 푹 쉬게 했다. 저녁엔 간단히 한잔씩 나누기도 하고 그간의 노고도 치하했다. 앞으로의 예정도 밝혔다. 오늘부터다. 새로운 기분으로 정비작업도 처음부터 시작하자. 우선 선내부터 싹 씻어내라. 묵은 마음의 때부터 벗기자. Malaria약도 이젠 좀 먹어라. 봤지? 갑견 강군의 경우를. 우거지 상들이지만 직접 봤으니 먹는다. 자신을 지키는 수단임에야 안 먹고는 안 돼지. 낮부터 정신이 이상하다. 약 기운 때문인가? 어리하고 핑 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낮잠을 깊게 잤다. 배를 타고 있음을 잊을 정도로 -. 목욕도 하고 세탁도 했다. 새 정신이 돈다. 위도가 낮아짐에 따라 그놈의 후리텁텁한 훈기가 찍찍한 해풍과 함께 덮친다. 이 더위가 또 하나의 적이다.
Mr.菅原가 일에 익숙하지 못해 고역이 많은 가보다. 그러나 충실한 그의 태도는 역시 일본인 특유의 성실함이 있다. 일본인이라고는 하나 우리와 특수한 입장을 들어 성의껏 가르치고 도와주도록 문 국장에게 일렀다. 편승한 가나출신 두 검둥이. 일하겠으니 써 달란다. 그래 대가는 줄테니 열심히 해봐라. 옷 입은 걸 보니 불쌍하기도 하다만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들에게 군림하는 자세로 하마,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럴 자신이 선다. 그것이 Lagos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결 바람이 잔다. 출렁이며 충만한 바다. 그리고 풍부한 바다. 그러나 내가 딛고 살기엔 너무나 부족함이 많고 바닥이 굳지 못하다. 벌써부터 대가리엔 두 가지색 머리털을 갖기 시작하는데 -. 그것이 비록 어른들 말대로 ‘새치’라고 해도 결코 시각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일전에 있었던 불면증 증세. 신경쇠약 비슷한 증세는 한동안 느끼지 못했다. 다행한 일이다. 속아 산 Tape. 생각할수록 분하다. 舶來品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치들에게 이런 것이 걸려들지 않고 욕심 없는 나한테 걸리다니. 이것들도 분명히 제 갈길을 잘못 찾았나 보다.
9th. Aug(화) 1977
직항으로 북에서 남으로 달린다. 오전 9시경 Senegal의 Dakar앞을 지난다. 두 달전 처음 Dakar 입항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대사관 유종열서기관. 전보나 한 장 쳐줄까? 또 하나. 출국 후 처음이자 마지막인 마드무아젤 뮤리엘의 살결내음. 주위에 가끔 Trawler들의 작업광경이 뵌다. Spain어를 시작하다. 되고 안 되고는 뒤로 미루고 한 번 용기를 가져보기로 하다. 교재는 3/E한테 빌려 양해를 구했다. 그걸 몰라 속 태우고 당한 서름을 생각하면 꼭 하고 말아야겠다. 일본어 하듯이 그 기분으로 시작해보자. 속에 금송아지 보다 더 한 게 있어도 표현 못할 때 그 무엇이 보람있으랴. a.b.c.부터 해 가면 뭐가 남아도 남을 것이다.
근 한 달 가량 놓았던 영어 회화는 새삼들으니 다소 생소하기도 하다만 할 수 없다. 그냥 틈나는 데로 계속하는 수밖에 -. 오후부터 흐린 날씨에 비가 온다. 후덥지근한, 습한 바람이 차츰 물결을 높인다. Deck위에 실린 몇 가지 Cargo가 빗물에 씻긴다. 괜찮을런지? 종일을 계속한다. 우기가 아직 끝이나니 않은 모양. 다소 배의 요동이 있다. 겨우 하루 반밖에 못한 갑판의 정비. 주갑판의 시뻘건 녹물이 보기가 안타깝다. 본선을 사기 위해 보러온 3명중 한사람이 왜 이렇게 녹쓸었는데 그냥 두었냐고 못내 아쉬워 하던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생각보다 해상과 기상이 좋지 않다. 내일부터라도 좋아줬으면 좋으련만-. 키니네를 계속해서 먹어서 인가 어리하던 정신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를 않는다. 독하기는 독한가 보다. 소화에는 별 장애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늦게까지 잠을 설치다. 흐린 날씨에 못한 천측이라 위치조차 불명확하다. Free Town 앞에서 변침할 때까지 D.R항법으로 가야한다. Canpex. Mavacasa. 德丸에 각각 Telex 보내다.
10th. Aug(수)
계속 비가 온다. 어떤 땐 짙은 비구름 속에 앞이 가리기도 한다. 주위를 항행하는 선박들이 가끔 Radar에 잡히기도 한다. 울렁이 는 바다. 사정없이 후려대는 파도의 끝트머리. 한 번씩 波頭와 선체가 부딪칠 때 마다 휘청거리는 선체. 8월 1일 Las Oil Berth에서 허무하게 물에 잠기던 동원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히 좋은 기분이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배와 바다의 생태를 알아 갈수록 어렵고 불안스러움이 더해가고 겁이 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최선의 노력. 그리고 사전 예방을 위한 철저한 이행이 따라야 할뿐이다.
Tokumaru에서 大德丸의 예를 들어 적재화물의 관리에 주의를 바란다는 전보를 받다. 회람시켜 담당사관들에게 도 알렸다. 사실 이번에 나로서는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의외로 많은 수리비용에다 선용품 사입. 또한 주부식 구입까지. 그러나 우리의 형편상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앞으로 남은 기단 안전항해와 무사한 운항만이 모든 것을 원만히 설명해 줄 수 있게 할 것이다. 우리 배의 향후 방향이 어찌 될는지? 또 다시 Laspalmas로 기항이 될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단 현상태로 내년 3월까지 Africa부근에서 운항될거라는 전제하에서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회사측으로서도 유리할거라 생각은 된다만 기업가들의 생각과 운영자들이 운영상 취해야 하는 제반 여건은 실제와 많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출국한지 꼭 5개월째다. 지루한듯 하면서도 잘 지나갔다는 느낌이다. 그간 2개월간 지중해방면으로 그리고 한 달 가량 Docking 때문에 쉬이 갔다만 앞으로 계속 Lagos-Lome간 전제 작업을 위주로 한다면 다소 문제가 뒤따를 것이다. 우선 돈을 번다는 그 자체로 봐서는 다행한 일이긴 하지만 살벌하고 불결한 주위사정. 더운 날씨. 유행하는 전염병. 풀 수 없는 스트레스의 쌓임 등으로 일어나는 결과가 문제다. 더욱 마음을 졸라매고 신경을 써야 한다.
어제가 立秋. 벌써 한 더위는 고개를 숙였을 거다. 어쩌면 방학 중이라 조용한 곳이라도 찾았는지 모르겠다. 정신적인 고충이 더욱 크리라.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고생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 이 고생의 대가를 찾을 수 있도록 더욱 마음의 자세를 굳게 해야한다. 언제나 지금까지 내가 바란 이상으로 잘해 주었다. 더욱이 두 곳에 매인 몸으로-. 무엇보다 그의 건강이 염려된다. 다른 일에는 철저하면서도 자신의 건강에는 그렇지가 못함을 짐작하고 있다. 현이의 사고로 받은 충격도 컸었나 보다만 그것도 자신의 불찰이기보다 하나의 運이다. 그와 나의-. 그리고 현이 자신의 -. 지난번 Las에서 받은 편지는 내 자신에게도 많은 것을 남기고 있다. 근래 얘들과 아내가 측은해 보이고 내 자신이 어리석게 생각되면 차라리 혼자 살았더라면 - 하는 생각을 가지게도 했다. 그처럼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만일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과연 그것은 내 잘못이기에 그런 것일까? 내 자신도 아는 만큼 알뜰히 해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고 가책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가장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아내가 저렇듯 애태우는데도 선뜻 박차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내가 사랑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용기가 모자라서 인지, 그도 아니면 현실이 급박해서 인지? 어려운 문제다. 비록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용기와 자신과 그리고 내일을 위한 강한 지향성을 불러 일으켜 주는 그 한마디가 지금의 나한테는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마치 그의 고충을 내가 더 깊이 모르고 있듯이-.
11th. Aug(목)
계속 흐리고 비를 뿌리는 날씨. 기분이 맑지 못하다. 아침 8시부터 일단 육지쪽으로 붙기로 하다. 우선 정확한 위치부터 찾아야 한다. 부근에는 산호초도 많은 곳이다. 계속 불어대는 앞바람 때문에 갑판 위가 해수로 가득하다. 오후 2시경 Sierra Le one과 Liberia국경 부근이 Radar에 Contact. 定針하다. 위도가 6도30분 경인데 흐린 날씨와 부는 바람탓인가 더운 감이 없다. 오후 목욕과 함께 짧은 바지로 갈아입다. 찬물에 목욕한 탓인지 감기기운과 오한이 든다. Las의 피로가 이제야 덧나는가 설사기도 있다. 너무 배를 차게 했던가? 주워지는 환경에 작 적응이 되고 잘 참아 가는데 이쪽을 나와서는 민감하게 몸 자체가 반응을 한다. 자신이 어쩌면 그만큼 세심한 주의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다른 곳과 달라 제반 병원시설과 통신연락이 여의치 않으니 항상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잠재의식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출국시 확정짓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왠만하면 2년을 버틸 각오는 했었다. 우선 아내에게 좀 더 신중한 상의는 없었지만 그놈의 Licence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무엇보다 큰 Handicap이 되고 있으니 이번에는 꼭 기한을 채워 아쉬운 데로 일반면허를 따야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좀 더 떳떳하게 인정을 받으며 할 수도 있다. 내 노력과 능력의 대가가 그것 때문에 제약을 받는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또한 이쪽 사정으로 보면 2년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도 같다. Las의 Mr.Tikam 말처럼 Barge를 쓸 경우 본선으로서도 그 용량과 능력을 감안해도 괜찮을 거다. 그렇다면 이왕 고생하는 것 다소 대우를 받아가면서 1년을 참으면 一石二鳥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긴하다. 문제는 내 스스로의 건강과 아내의 동의다. 아무리 내 남은 인생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를 버려가면서까지 내가 지금까지 뿌려온, 가꾸어온 것 전부를 부수어 가며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딴 면장과 번 돈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값어치가 있을 것인가? 오히려 그 반대다. 돈도 명예도 면허장도 장래도 우선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내 가정이 존재하는 다음에 있어야 한다. 그가 선뜻 동의해주지는 않으리라. 내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형편을 그렇지만 우선은 1년도 너무 길다는 지금인데-. 사실은 1년 연장의 결정은 여간한 결심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은 단정을 내릴 때가 아니지만 우선은 그러한 각오와 정신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더욱 건강에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도 계속하는 영어와 시작한 Spain어가 좀 더 영글어 보다 자유롭게 되면 더욱 폭넓게 길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약하고 못한 사람도 어쨌든 견디고 버텨야 한다는 야무진 각오들을 하고 있다. 내 자신이 아내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는 있다.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내가 ‘나는 몰라요’하고 포기해 버릴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약한 탓이다. 어쩌면 가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은 내가 더한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더하다. 한 가정을 거느린 家長으로서의 그 책임감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데도 있다. 문제는 내 자신부터 분명하고 확고한 내일을 위한 계획을 가져야한다. 그래서 단호히 어떻게 한다는 분명한 명분하에 아내에게 협조를 구할 것은 구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미지근한 끝맺음이 없는 유유부단한 내 성격이 가장 큰 내 결점의 하나임도 전부터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과감한 결단성이 지금 필요한 때가 되었다.
12th. Aug(금)
10시 Cape Palmas를 항과. 지금까지의 항로가 남북에서 동서로 바뀐다. 북위 4도 10분 서경 7도 50분. 여기를 기점으로 다시 북동쪽으로 간다. Lagos가 북위 6도니까. 기온이 고르지 못하다. 위도상으로 보면 많이 덥고 강한 일사 광선에 고생들을 할텐데-. 계속 부는 남서 계절풍 탓이다. 항해중엔 그래도 내 시간이 많아서 좋다. 우선 보고 싶은 책을 보고, 하고 싶은 또 해야 할 공부도 할 수 있다. 새삼 영어단어를 찾고 외워야 하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좀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각가지 여건들이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할 수 없다. 다행이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그저 혼자서 골머리를 싸메고 하니까-. 그만큼 성과가 쑥쑥 올라가 주면 좋은데 막상 그렇지 못한 데는 또 짜증과 실증과 신경질이 돋는다. 건망증은 아무래도 중병이라 여겨진다. ‘건망증 3기는 미친놈 1기’란 말이 자꾸만 떠오르기도 한다. 생각하면 누구나 사람은 자기의 생활이나 직업 혹은 사업 어느 것이든 계속 찾고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므로서 한 단계 앞선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시간적 정신적 혹은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못해 못하는 수가 많은데 비하면 나 같은 경우는 어쩌면 행운아적인 입장이 아닌가? 집에서 마누라나 얘들 보는데 공부한다고 허둥데는 그 꼴도 결코 좋지는 않으리라. 자기 사업에 쏟는 그 정성과 열의로서 교제을 위해 술도 마시고 마작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춤도 춰야하고 -. 밤늦게까지 고심하고 또 싸움도 하고-. 그런데 비하면 궁상스럽기도 하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내가 길을 잘 못 든게 분명하다. 중학교 때부터 꿈꾸어 오던 의사의 길이 고교진학과 함께 거의 반이상이나 껴져버렸지만 무어니 해도 내 자신의 어물적한 성격탓이 크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고 들었지만 콧수염이 바쁜 시간에 쫒길 때면 더없이 재미있게 움직이던 朴俊圭선생님의 그 꼬임에 한마디 이의(異意)를 달고 나섰더라면 또 문제가 달라졌을런지도 모른다. 학구적인 생활이 내 성격에 맞을거라는 생각만은 갖는다. 세상 사람이 모두 자신의 기호나 취미 적성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항시 자신의 현재에 대한 불만을 탈피하고픈 의욕만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박차고 나온 교단과 지금의 이 물길. 그러나 이 길을 그리 후회해본 적은 없다. 나 혼자 즐기던 여행벽이랄가 그런탓도 있고 우선은 한 푼을 더 벌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실히 성의를 다해왔다. 단 그것이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해마다 다소 변화는 있다고 하지만 땅을 딛지 못하고 보금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그 하나의 불변한 사태가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뻗어가는 내 가지와 잎과 함께 너무도 강하게 잡아당기고 당겨지고 싶어져 간다. 그것이 인간 본능으로 통하는 사는 멋이고 맛이고 재미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부터 시작한 스페인어가 제법 부피를 더해간다. 역시 하나의 외국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차츰 혼란이 따르기 시작한다만 계속하자. 아울러 그동안 미루어 오던 마작도 배워보기로 하고 하루 1시간 틈을 내기로 하다. 취미나 기호에 의해서 하는 것도 좋지만 기회 있을 때 배워두는 것도 괜찮으리라. 다만 그 자체에 빠지고 지면 안 된다. 2/E 말마따나 해군 장성이 마작땜에 신세 망쳤다고도 하니. 마작하는 중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해도 ‘응 그래’할 정도면 그것은 마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먹힌 것이 아닌가?
13th. Aug(토)
출항한지 꼭 1주일을 맞는다. 아무래도 시간이 아깝다는 정도로 잘 간다. 海狀이 이제야 제 Face를 찾는다. 가끔 파란 하늘이 뵈고 그 사이로 한 번씩 비치는 일광이 매우 두껍다. 역시 기온은 찬 편이다. 밤10시 짙은 안개가 낀다. 지척을 분간 못할 만큼 짙다. 머리위엔 반짝이는 별들이 뵈고 길게 뻗은 은하수엔 견우와 직녀가 한결 가깝게 다가서 뵈는데-.
해수온도와 그 표면을 덮고 있는 大氣의 온도의 차이가 생김으로 바닷위에만 생기는 안개다. 바다위에서는 웬만큼 높은 파도보다 짙은 안개가 무섭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안개가 끼는 날은 대개 바닷가 잔잔하고 바람이 없는 날이다. 꼬박 3시간을 무중항해하고 2/O에게 인계했으나 안심이 안 된다. 지난날 북양에서 안개 속을 헤치던 그 경험이 무엇보다 산 교훈이다. 300톤급 동방호가 3000톤급 개양호에 스치면서 부딪칠번 했을 때의 그 순간적인 아찔함을 잊지 못한다. 한치의 잘못이 있었더라면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났을 지도 몰랐다. 고기밥 일분전의 상황이었다. 닥아오는 산더미 같은 선체를 향해 ‘어 으 어-’ 하면서 손만 내졌던 강 선장. 아예 조타기를 놓고 반대방향으로 도망쳐 버린 키잡이 河군이였다. 설마를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다의 일이다. 정확한 판단, 과감한 행동, 충분한 여유를 둔 조치. 사전의 예방적 조치 등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마 아침해가 뜰 때까진 계속하리라. 내일 아침 08시경이면 Togo의 Lome항에 닻을 내릴 것인데-. 0.5마일 떨어진 곳의 어선 같은 선박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뒤숭숭한 꿈결에 다시 확인하고 눕다.
14th. Aug
아침 7시 기상과 동시에 걷은 커텐. 맑은 바다가 활짝 열렸다. 마음도 개운하다. Lome가 6마일 남았다. 17:35시 투묘. VHF로 Port Control애 연락. Mr. Jose에게도 연락을 부탁하다. 곧 나왔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부자간에 시커먼 털이 덤숭덤숭 난 배를 활짝 들어내고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늙어 뵈도록 콧수염을 반원형으로 길렀다. 죽이 잘 맞는다. 오랜만이라 반갑다. 편승한 검둥이 둘. Las의 Mr.Tikam한테서 연락이 없어 내용은 모르나 가나인이라면 문제가 된단다. 일단 경찰에 연락, 인계하겠단다. 그래 어서 데리고 가고 알아서 해라. 두 검둥이가 인사차 올라와 며칠간 일했으니 다소 얼마라도 차비 좀 달란다. 그것도 일이라고? 그러나 그 소행 자체보담도 우선 보기가 불쌍하다. 어째서 Las까지 가게 되었으며 왜 다시 돌아오는지는 모르나 그 차림새 행동거지가 말이 아니다. 각 $5씩을 주다. Mr. Jose. 나도 이제 Spain어 공부하기 시작했다니 잘한 일이라며 다음번에 만날 때는 스페인말로만 하잔다. 7개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그가 부럽다. 시원하고 탁 트인 그의 성격에서 친밀감이 있다. Kano Reefer라는 배는 역시 한국선원인데 오직 ‘This is Kano Reefer’라는 한마디 이외는 전혀 VHF통화가 안 돼 부득이 직접 외항까지 나왔더라면서 잘 해보잔다. 그에 비해 훨씬 예쁘고 스페인적인 미모를 가진 그의 Wife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자. 고맙단다. 2-3주일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 Lagos를 향해 닻을 감았다. 밤 9시 역시 수백 척이 대기하는 Lagos 외항. 각선마다 도둑들의 방지를 위해 켜놓은 휘황찬란한 현등들이 불바다를 이룬다. 멀찌감치 투묘. East Mole Sig. Station에 보고하다.
한 번 경험이 있는 일이라 시원시원히 contact가 된다. 그 놈, 수고했다며 고맙단다. Kano Reefer에서 찾는다. ‘노선장’인가. 마치 제 세상인양 뻔찌 좋게 물어댄다. 수대 J학번이라? 뭐 대단한 것 같으나 여기서는 별 수 없을건데 -. 날 얕보면 안 되지. 잘 해보라고-. 다시 긴 항해를 마친다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남은 기간에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봐야한다. 계속 더 해야 하느냐? 1년 마치고 가느냐? 도 여기서 부터다. 그런대로 부딪치고 헤쳐보자. 길이 있으렷다.
15. Aug(월) 1977
8.15. 우리나라에선 휴일이다. 어제 일요일. 모처럼의 연휴가 되리라. 밤새 잠을 못잤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엊저녁 11시 넘어 누웠고 신동아 6월호의 권말 소설 ‘말없는 사람’을 읽었는데. 우연히 아내에 대한 공상이 나래를 펴나갔다. 나를 버리고 간, 얘들조차 남긴 체 훌쩍 자신의 쾌락을 위해 가버린 것에서 시작해서 비참하고 처절하게 그러면서도 통쾌하게 갚음을 한 뒤 스스로도 얘들과 함께 영원을 향해 가버린 괴상하고도 허황한 공상들이 무척 오랫동안 괴롭혔다. 정말 괴롭고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좀처럼 이런 일은 없었는데 -. 마치 정신병자 처럼-. 3시경 일어나 속옷을 빨아 널고 다시 누워 한참 있었으니 4시는 되었으리라. 겨우 든 잠이였는데 7시에 다시 깨였다. 머리가 띵하고 눈이 충혈됐다. 신경과민인가? 08시 Agent Lansal에 입항보고 끝내고 곳곳에 타전을 마쳤으나 종일 머리가 무겁다. 낮에 오수도 쉬이 오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은 체 졸기만 했다. Main Deck Chipping 시작하다. Officer까지도 동원되어 하는데 얌체 같은 족속들이 마작을 하고 있다. 한마디 고함이 없을 수 없다. 물론 Mid-watch라 시간이 남긴 하지만 충분히 휴식을 위한 시간이지 노닥거리는 시간이 아니다. Kano Reefer에서 부식이 떨어졌다고 사정한다. 한달분 정도 사정을 봐서 편리를 봐줄까 보다만 쌍놈들 하는 짓들이 영 마땅치가 않다.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 듣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VHF를 통해 온갖 쌍소리 잡소리가 다 나온다. 제버릇 개 못주는가 보다. 모래쯤 Life Boat로 상륙. N/R도 sign받고 혹시 편지라도 있을라나 찾아와야겠다. 오늘은 예정된 Spain어를 목표량만큼 하지도 못했다. 무척 마음이 무겁고 무엇엔가 내 자신이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은, 근래 없었던 열등의식이 고개를 쳐든 날 같기도 하다. 내일은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 일찍자고 -.
17th. Aug(화)
08시반 Life-Boat를 내려 거의 8마일 가량되는 내항까지 갔다. 바람은 없으나 길고 큼직한 Swell이 굼실거린다. 점점 멀어져 가는 나의 愛船, 宏島丸가 비록 낡았으나 그 어떤 배보다 애착이 간다. Docking한지 20여일인데 벌써 외판의 Paint들이 벗어지는가 붉게 변한다. 落錆도 않은 체 칠한 것이라 도리 없으나 우선 보기가 흉하고 아까운 도료만 쓰이게 됐다. Lagos항내. 5개월전 경황없이 받아 출항하던 그때의 모습이 선하다. 항내에도 수십척의 배가 문자 그대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역시 무질서와 혼잡 그리고 똥으로 범벅이 된 부두 한 귀퉁이에 비집고 Boat를 대었으나 그 구역질 날것만 같은 악취에는 현기증이 난다. 배를 매는 사이에 벌써 2/O의 장갑에 똥이 묻었다. 빌어먹을!
대리점 Mr.Tangir가 반갑게 맞는다. 아직 3주일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밀린 배가 8척. ‘당신 배가 맨 마지막이오’ . Trans-Con에 가보다. 잡아준 택시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차내에서 기다린 시간이 30분이다. 한창 진행중인 고가다리 공사장에서 20분간씩 교대로 차를 보낸다. 숨이 턱턱 막힌다. 고속도로변엔 역시 건설중인 Transcontinental의 냉동공장. 아직은 정식 사무실도 전화도 없다. 황량한 모래벌판에 거저 Cement로 다져 지어나간다. Mr.Samtani를 가디리기 무려 2시간. 배도 고프고 미칠지경이다. 냉동바지고 뭐고 잘 안 돼는가 보다. 그나마 친절히 대해주고 저들의 고급차로 모셔다 주는데 기다린 보람을 가진다. 편지 찾고 또 보내다. 1년 더 연장하는 게 어떻겠는냐는 의견을 아내에게 묻는 엊저녁에 급히 쓴 것인데 Mr.Tangir에게 의뢰하다.
귀선도중 Kano Reefer에 들리다. 노x춘 선장! 사람보고 얘기들어보니 짐작 할 만한 작자다. 더 이상 만날 필요도 협조도 일없다. 주부식, 적당히 둘러대고 최소한 형식만 갖추어 봐 주면 되겠다. 골치가 팅하다. 육상에는 역시 그 더위가 있었다. 독한 악취, 강한 햇볕, 같이 갔던 R/O가 발갛게 익었다. 접안해도 걱정이다. 그 많은 사람 속에서 수도 없이 서식하는 똥파리떼가 우선 겁이 난다. 차라리 항내에 묘박을 한 체 양하를 했으면 -. 앞으로 빨라야 3주일 9월 초순이 되야 접안, 하역을 마치면 9월도 다 간다. 우선 식수가 걱정이다. Boiler 중지하다. 최대의 節水대책을 강구하다. 편지들이 많았는데 나한테는 딱 1장이다. 5월에 띄운 당신의 것이다. 이미 지난 것이고 또 그 후의 것들을 먼저 찾았기에 별다른 느낌은 갖지 못한다. 아무리 그라 날 욕해도 이제는 꿈쩍 않은 듬직한 바위처럼 마음을 갖기로 했으니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은 아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그리고 욕심이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를 두고 떠돌아 다녔고 고생을 시켰다고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직업상의 일이였고 또 자식새끼 데리고 그래도 남보다 좀 더 잘살아 보자는 뜻 그것뿐이다. 그 때문에 마누라한테 싫은 소리 들으면서도 참고 살아왔고 또 위로를 해주고 있다. 그게 잘못이라면 너무 자기중심적이 아닐까? 아무리 못나고 무능하다고 하지만 자기와 평생을 같이할 남편인데 -. 남에다 비교해서까지 공박을 한다는 것은 우선 그를 나무라기에 앞서 내가 잘못이다. 결국은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 달에 50만원 돈이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아무리 한국의 물가가 비싸고 돈의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 헌데 얼마만큼 안겨주면 만족을 할 것인가? 분명히 뭔가 잘못돼 간다. 2년이고 뭐고 당장 귀국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의욕도 용기도 없어진다. 내 자신 역시 아내로부터 해 받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아무리 해 받아도 부족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리다. 그러나 그것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진 않았다. 우선 내가 집을 자주 비우고 그나마 그를 가정 안에만 두지 못한 그 때문에 -. 근데 아내는 지금 비록 떨어져 있고, 그 분풀이를 할 때가 없어 그런다치더래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만 적어 보낸다. 부디 이 작은 실망이 거 크지 않도록 빌고 또 빈다. 오늘 보낸 편지, 다소 후회가 따른다. 또 무슨 소릴 해 올는지. 실상 편지 찾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C/S 기분이 좋아서 술 한잔 했다면 올라왔다. 얘 새끼 편지 조각을 들고-. 그 역시 아내 때문에 무척 고민 중인 것을 안다. 그의 처가 춤에 발을 딛였다는 얘길 듣고 있다. 끝이 보이는 듯하다. 그 나물에 그 밥아닌가.
그런데 그의 염려와는 달이 아무런 일없이 잘 있고 얘들 공부 잘 한다는 편질 받고 기분이 좋아서 한잔하고 온 그다. 그는 지금 다시 술을 마시면 강제귀국을 당해야 하는 처지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지만 보다 더 냉정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나 나나 종이쪽지 한 장에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은 군상들이지도 모른다. 내 신세가 이처럼 처량해보기도 드물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서편에 결려 있다. 빌어먹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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