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 곰배령을 찾아서
2005. 6. 3
우리 동네 내가 자주가는 음식점이 있다. "점봉산 산나물 비빔밥집"이다. 점봉산 산나물은 그만큼 지명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봉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곰배령'은 수천 평의 초원으로, 온갖 고산 화초들이 자생하는 곳이다. 곰배령은 홍천의 가칠봉과 점봉산, 설악산을 잇는 마루금(능선), 곰배령(1,100m)의 지형이 고무래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강선골에서 산행을 시작한 후 약 1시간반 쯤이면 갑자기 하늘이 툭 터지며 곰배령 평원이 나타난다. 등산로를 제외하고 산자락은 온통 꽃으로 가득하다. 길이 아니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빼곡한 꽃밭. 곰배령의 초원지대는 봄에는 산나물이 지천으로 돋아나고 봄, 여름, 가을 철따라 작은 꽃들이 피어나는 천국의 화원과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 야생화의 40%가 이곳에 자생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도 보호구역으로 등록이 되어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축구장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이 초원은 금방 떠나기가 아쉬워서 누구나 한 시간쯤은 머물게 된다. 나는 몇년을 벼루었으나 기회가 닿지않아 미루다가 지난 6월3일 친구 장곡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서울서 아침 8시가 좀 넘어 승용차로 양평~홍천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평일이라 길은 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가는 길이라 길을 잘 못 들까봐 조심스레 이정표와 지도를 보아가며 현지에 도착하니 근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곰배령 출입을 막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는 야생화는 물론, 각종 산나물과 약초가 많아서 식물보호를 위한 조치인 듯 했다. 우리 뒤에도 승용차 몇대가 왔고 출입을 두고 승강이를 하다가 겨우 출입구 안쪽 마을인 '강선마을'까지만 다녀오라는 승인을 받고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과연 조금 가니까 강선마을 입구 삼거리집 앞에는 여러대의 승용차가 있었고 등산인들이 많이 있었다. 삼거리집 앞에서 주인과 5~6명의 속초에서 왔다는 등산객인지 나물 채취인인지 같이 돼지 삼겹살 고기를 돌에 굽고 속초에서 금방 잡아 왔다는 오징어 회무침을 곰취나물, 참나물에 사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하도 권해서 얻어 먹었더니 맛이 너무 좋았다. 주인이 명함을 내미는데 "설피민국 추장 平山 李相坤" 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염을 기루고 산사람이 완연한 그는 경주사람인데 서울 살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에 묻혀서 약초와 나물을 캐면서 10년을 살았단다. 각종 약초로 만든 식초를 팔고 있었다. 곰배령까지 등산은 공식적으로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지만, 평일은 등산객이 몇사람 안되니 묵인하는듯 했다. 규정을 어기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게름직 했으나 여기까지 몇년을 두고 벼루어 왔는데 싶어 산행을 시작했다. 장승들이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듯 도열해 서 있었다. 산을 오르는 것인지 평지를 걷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고 등산로 옆으로 계곡물이 졸졸 물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새소리도 좋고 나무그늘로 가는 등산이라 조금도 더운줄을 모르겠다. 아니 덥기는 커녕 좀 서늘한 기분이다. 하이킹치고는 너무 편한 하이킹이었다. 길 옆에서 반겨주는 들꽃들을 사진에 담으며, 이런저런 세상사 이야기를 하면서 1시간 50분이 걸려 드디어 '곰배령' 야생화 천국에 도착하였다. 과연 엄청난 크기의 대평원이 산 능선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곰배령이 끝나는 지점에는 점봉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폐쇄시켜 놓고 있었다.바로 눈 앞에 '작은 점봉산(1,295m)'이 우뚝 서 있었다. 이곳부터 설악산 국립공원이란다. 산 입구부터 서 있던 장승이 이곳에도 '산림대장군'과 '산림여장군'의 이름으로 산행한 사람들을 노려보듯이 서 있었다. 자연훼손을 막아주려는듯.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점봉산 정상 (1424m)이 목표가 아니니 곰배령으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야생화를 보기 위한 등산이니- 매발톱, 노루오줌, 미나리아재비, 은방울꽃, 털이풀, 초롱꽃 등이 서로 자기가 예쁘다고 머리를 들고 있었다.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서 꽃이름도 모르느냐고 항의를 하는 듯했다.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야생화 도감이라도 구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카메라에 잡힌 들꽃만도 수십가지가 되는데 이름을 아는 것은 불과 몇개 뿐이다. 여름 야생화들이 피어있는 들꽃밭에는 줄을 쳐서 출입을 막고 있었다. 눈으로만 보라는 뜻이다. 눈과 카메라에 아름다운 꽃과 풍경을 담고 하산을 했다. 곰배령 능선은 탁 틔어 있어서 바람이 세었다. 자켓을 걸쳐야만 했다. 조금 내려오다 아늑하고 바람이 없는 곳에서 갖고 간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아내가 돼지불고기와 상추 등 야채를 준비해 산위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계곡물소리와 예쁘게 지저귀는 산새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그리고 눈은 늘 아래 길가를 보면서 걸었다. 좀 예쁜 들꽃이 있으면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려오다 보니 아까 오를 때 만난 노부부를 만났다. 70대후반으로 보이는 이 노부부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사진 전문가인듯 야생화를 큰 카메라에 정성껏 담고 있었다. 노 부부가 취미를 살려 같이 등산을 할수 있다는 것은 그들만이 가진 복이 아닐수 없다. 우리도 건강을 잘 지켜내야 할텐데-- 하는 다짐을 해 본다. 점심시간까지 해서 근 4시간반을 산에서 지냈다. 실지 산행시간만 따지면 2시간30분 정도일텐데 그만큼 들꽃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지체된 셈이다. 하산을 마치고 삼거리집에 도착하니 우리가 산행을 시작할 때 까지도 그곳에서 먹거리로 즐기던 일행들이 언제 다녀 왔는지 그들이 채취한 온갖 나물들을 자랑했다. 곰취나물이 대표격이다. 산에서 캔 더덕 냄새가 진동한다. 모래속의 인삼이라고들 하는 자연산 더덕이 몸의 기력을 높이는데 좋다고들 야단이다. 참나물과 버섯종류도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는 길에 방동약수터를 방문했다. 이 지방에서는 워낙 유명한 약수란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주말이면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페트병 3개로 제한하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약수를 담는 프라스틱통을 사서 한통을 담았다. 사이다를 마시는 것 처럼 탁 쏘는 탄산 성분과 철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방동약수터로 가는 길에는 더덕을 재배하는 넓은 더덕밭이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더덕밭이라 신기했다. 자연산과 같지는 않지만 수요가 많으니 이렇게 대규모 밭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오후 퇴근시간인데도 한가했다. 특히 서울근처로 접어들면 러시아워에 걸려 고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날 월드컵 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중계가 있어서 그런지 너무나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토록 벼루었던 점봉산 야생화 천국,천상의 화원이라고 하는 '곰배령'을 드디어 다녀왔다는 흡족한 마음으로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다. 오늘 곰배령 산행은 어느 산행 못지않은 뜻있고 보람된 하루였다고 마음에 새기면서 카메라에 담은 들꽃들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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