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9 주일설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디모데전서 1:18~20
2014년 4월 16일에 진도군 팽목항 앞에서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피해자 304명 중 다수가 학생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MBC부터 시작하여 TV마다 ‘전원 구출’이라고 보도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오보였습니다. 그것이 오보가 아닌 사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평형수를 빼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평형수가 있었으면 배의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어서 오뚜기처럼 복원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짐을 더 많이 싣겠다고 평형수를 빼버린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니라 미친 짓입니다. 다시는 그런 미친 사람들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평형수를 빼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신자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배가 침몰하면 천국으로 가던 신자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말씀을 잘 듣고 단 한 명도 믿음의 배가 파선하거나 침몰하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 2000년 교회 역사에 믿음으로 살겠다고 나섰다가 믿음에 관해 파선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있었습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어떤 이들이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이들(τινες)”이라고 하는 말은 복수입니다. 그런 사람은 여러 명입니다.
20절에는 믿음에서 파선한 두 사람이 나오는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입니다. 알렉산더는 <딤후 4:14>에도 나오는데 그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쳤습니다.
그는 구리 세공업자입니다. 그래서 돈이 많았겠죠. 신자가 사업이 잘되고 돈이 많으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까요, 방해가 될까요? 알렉산더는 돈 좀 있다고 교회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바울 목사님을 괴롭히다가 믿음을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서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서 시험 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딤전 6:10>에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이 많아도 시험 들고 돈이 적어도 시험 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돈이 많아서, 혹은 돈이 없어서 신앙생활이 힘들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문제는 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돈이 넉넉하든지 부족하든지 믿음에 굳게 서시기를 부탁합니다.
후메네오의 이름은 <딤후 2:17>에도 나옵니다. 거기에는 빌레도라는 이름도 나옵니다.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후메네오는 어느새 자기와 똑같은 악한 인간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감자 박스에서 하나가 썩으면 옆의 감자를 썩게 합니다. 양파 자루에서 하나가 썩으면 다른 것도 썩게 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악한 사람은 옆 사람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후메네오와 빌레도는 악성 종양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악성 종양은 다른 말로 암(癌 cancer)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성경은 이를 ‘암’으로 번역했습니다. 암세포는 주변의 정상 세포를 암세포로 만듭니다. 암세포가 많아지면 암 덩어리가 되고 결국 몸을 죽입니다.
빌레도(Φιλητός)는 헬라어로 ‘사랑받는’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참 좋죠. 성경에는 히브리어로 ‘사랑받는’이라는 이름이 한 명 더 있는데 누구일까요? 가장 유명한 왕입니다. 그는 다윗(דָּוִד)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차이는 있지만 다윗이나 빌레도의 이름은 ‘사랑받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교회의 기둥이 되었고 빌레도는 교회의 암(癌)이 되어 버렸습니다.
믿음에서 파선하고 교회의 암적인 존재는 후메네오, 알렉산더, 빌레도 이들만이 아닙니다. <딤후 4:10>에 보면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도망갔습니다. 즉 탈영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에는 왜 이렇게 믿음에서 파선한 사람, 교회에서 암적인 존재, 달아난 사람 이야기가 많이 나올까요? 그때가 바울의 노년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까지 끌려가서 감금되었습니다. 2년 후에 무죄로 석방된 바울은 다시 전도하고 다녔는데 네로 황제의 박해 시기에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평생 전도에 헌신한 바울이 나이 들어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때 여기저기서 배신자가 생겨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울이 젊었을 때는 좋다고 따라다니다가 바울이 늙고 감옥에 갇히자, 바울을 버리고 예수님도 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은 끝까지 가 봐야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죽을 때까지만 믿으면 됩니다. 죽기 전에 믿음에서 파선하면 영원한 지옥행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무저갱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한 명도 믿음에서 파선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믿음 안에 서 있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마주 보고 말하세요. “죽을 때까지만 믿읍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다 죄성이 있어 방심하면 그 죄성이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죄성은 먼저 본인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암이 되어 온 교회를 죽입니다.
사람 속에 죄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좀이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알고 호시탐탐 노리다가 기회가 생기면 바로 와서 유혹합니다. 주로 언제 유혹할까요?
돈을 잃어버렸을 때 유혹합니다. 돈을 벌었을 때 유혹합니다. 선거에서 당선되면 유혹하고 떨어지면 유혹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병들었을 때나 가족이 천국으로 갔을 때 유혹합니다. 반대로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서 나았을 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와서 유혹합니다. 사탄이 유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믿음에 서 있는 사람은 돈이 생겨도 은혜를 받고 돈을 잃어도 은혜를 받습니다. 선거에서 당선해도 감사하고 선거에 떨어져도 은혜를 받고 겸손해집니다. 병이 나아도 감사하고 가족이 천국에 가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은혜받고 감사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998년 우리나라 IMF 금융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어려움 때문에 그동안 교회를 떠났던 것을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왔습니다. 정부에서 예배당에 모이지 말고 비대면으로 예배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믿음에서 파선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동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아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떠나는 사람도 아니고, 떠나있다가 돌아오는 사람도 아니고 항상 믿음에 서 있는 사람이 좋은 신자입니다. 사소한 일만 있으면 흔들리고 방황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귀한 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파선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18절에서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 방법이 있습니다. 19절에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 말을 18절과 연결하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렇게 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비결은 믿음과 착한 양심입니다.
착한 양심(ἀγαθὴν συνείδησιν)은 도덕적 착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배의 평형수와 같습니다. 평형수가 가득 찬 배는 쉽게 넘어지지 않고 기울었다가도 다시 복원됩니다.
바울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싸우라고 합니다. 성도에게 믿음과 하나님을 닮은 착한 양심은 죄와 유혹이라는 파도와 맞서 싸울 때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평형수입니다.
18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전에 지도한 예언이란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도록 성령께서 교회를 통해 주신 명령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성령께서 교회에 그런 예언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성경과 교회의 질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목사 후보생을 교육합니다. 노회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보생을 심사하고 자질을 확인하여 목사로 안수합니다. 지교회에 파송 받은 목사는 성도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를 심사하여 세례를 주고 또 집사로 임명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님의 명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 시대에 예언하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질서와 체계를 따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교회의 직분을 세웁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 세례받을 때 목사가 한 설교, 집사로 임명받을 때 목사가 한 설교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과 같습니다.
디모데가 목사로 안수받을 때 주신 그 말씀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은, 여러분이 세례받을 때와 집사로 임명받을 때 주신 그 말씀으로 선한 싸움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세례받는 날 들은 설교, 집사로 임명받는 날 들은 설교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매 주일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면 믿음에서 파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봅시다. 성도는 반드시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죠. 배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평형수가 필요한데, 우리의 신앙생활의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채워야 할 평형수는 바로 믿음과 착한 양심, 즉 하나님을 닮은 성품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저와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죽어서 예수님의 나라에 도착하는 그때까지 믿음을 지키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믿음과 하나님 닮은 양심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