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언♡
성경: 베드로 전서 1장 3~5절
찬송: 159, 160, 161, 164, 165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베드로전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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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사건은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8절에 기록되어 있기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이같이 현장 증인들의 증언이 아주 많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스스로 부활하셨음을 나타내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영원한 생명의 종교이며 부활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가 부활하지 못하고 죽은 분이었더라면 기독교는 거짓의 종교요, 믿을 가치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이 기쁨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형벌의 두려움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숨 쉬는 날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때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공동체 내에서도 더러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처음 교회에 발 들여 놓을 때부터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따랐을 뿐이지 절실함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한마디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용서란 말의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죄인임을 깨닫고 있을 때, 용서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왜? 어떻게? 내 죄의 값을 치르셨는지, 그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만 용서를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수고와 어떤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내가 용서받았고 또 구원을 얻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그 은혜의 크기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되고 진실한 감사를 드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처음 죄를 범하였던 때의 일은 우리 모두 잘 알 것입니다. 최초의 범죄자는 아담입니다. 그런데 왜? 아담이 범한 죄가 내 죄가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 누구의 조언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것들을 만드신 이유는 그것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그 누구도 왜? 라고 물을 수 없는 절대적인 주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죄를 걸머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원죄라는 죄의 굴레가 씌워져서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일 후로부터 인간에게는 죄의 습성이 생겨났었는데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시기까지 인간에게는 악한 습성이 생겼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대가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예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양을 잡아서 그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속죄양을 잡아 그 피를 흘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와 같은 제사가 계속되다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영원한 속죄양이 되게 하심으로 누구나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신약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모든 창조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심으로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고 예수를 부인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알고도 짓고 또 부지불식간에 지었던 죄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그 모든 죄를 말입니다. 우리가 지었던 그 많은 죄를 생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게도 될 것이고, 어떤 죄는 안타까워서 가슴을 뜯게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사히 여겨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그 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고, 죄의 값을 형벌로 온전히 갚아야 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상상하기조차 두려울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히실 현장으로 가시면서 온갖 저주와 조롱을 다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몸이 뚫리고 찢어지는 고통을 받으면서 몸에 남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내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던 그 예수님을 생각해보면 가슴을 찢지 않고 어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구나. 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은 죄들은 충분히 그러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정말 엄청난 값을 치르셨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 시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죽음의 대가로 우리는 죽고 망할 사람이 아니라 영생을 얻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죽음이 우리에겐 산 소망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귀중하고 천한 것의 차이를 값으로 정합니다. 가장 귀중한 것은 엄청난 값을 치러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우리라는 존재는 얼마나 값진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을 비하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우리 자신을 너무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런 행위는 예수님의 죽음을 값없게 만드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고난과 승리의 길이, 나를 위하여 계획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감사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구별된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자들입니다. 믿음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지는 맙시다.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하찮게 살지 맙시다. 고귀하면 고귀한 대로 품위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은 잠시뿐입니다. 장차 얻을 그 영광은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얻으실 영광을 위하여 그 모진 고난과 죽음을 견디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가집시다.
주님 만날 그날까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죄로 인하여 소망 없이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져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지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셨으며,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 부활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었듯이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인하여 우리 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는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다시 살아가게 하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 은혜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시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천국의 유업을 잇게 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음을 믿고 감사하오니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고 축복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