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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ㆍ대)호군공"의 경칭에 대한 단상
대종중에서 소종중 등록을 받으면서 여러 소종중(=파派)에서 경쟁적으로 등록을 신청하여 대종중의 <소종중 등록 심사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43개의 소종중을 승인하였다고 공지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중에는 오래전부터 귀에 익은 소종중 명칭(=파명派名)이 있는가 하면, 좀 생소한 명칭도 상당수 눈에 띕니다. 그런데 어떤 파명 하나가 한편으로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지 몰래 낯설어 보였는데, 바로 8세 휘 병중(秉中) 할아버님을 파조로 하는 소종중이었습니다. 이 파는 지금까지 '호군공파(護軍公派)'로 불려 왔는데 이번에 소종중 등록을 하면서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로 파명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상호군공파'의 관계자께서는 이러한 소종중 명칭(=파명) 변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사유를 밝히셨습니다.
"오랜세월 有傳하는 記事를 외면하고 선대로부터 定하였다 하여 근거도 없이 호군공 할아버지, 또는 호군공파로 거리낌없이 稱하여 선조를 비하함은 후손으로서 도리도 아니며 불경스럽다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 후손들은 자책과 공분으로 결단하고, 이제라도 경칭을 바로하여 선조를 현양하는데 정진할 것을 결의 하였습니다."(출처: https://www.bannampark.co.kr/bannampark6_03/315)
즉 1642년에 간행한 최초의 세보(족보)인 임오보부터 관직이 '상호군(上護軍)'으로 기록되어 왔는데 '호군공'이라 부르는 것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선조를 비하하는 불경스러운 행위이며 후손의 도리가 아니므로 지금까지 사용한 경칭인 '호군공'을 '상호군공'으로 고친다는 것입니다. 후손들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판단은 일견하여 매우 타당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습니다. 오위(五衛)의 서반 관직인 호군은 정4품인 반면, 상호군은 정3품(당하)이니 당연히 '호군공'이 아니라 '상호군공'이라 칭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하고 더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상호군공' 개인에 대한 정보는 족보(세보)의 '上護軍'이라는 기록 외에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생졸연대도 알 수 없고 묘소도 실전되었습니다. 다만, 세 분의 부인과 자녀들에 관한 간단한 기록만 세보에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 '상호군'이라는 기록도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반남[나주]박씨 최초의 대동보인 임오보(1642년)에는 호군공의 관함이 '상호군(上護軍)'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70년 전(1572년)에 소고공(휘 승임承任)께서 지으신 문정공(휘 상충尙衷) 묘비문에는 '대호군(大護軍)'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재공(휘 태보泰輔)께서 지으신 참판공(휘 규葵) 묘표에도 '대호군(大護軍)'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참고: 『소고선생문집』에 실려 있는 문정공 묘비문에는 자손록 부분이 빠져 있는데, 그 전말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자손록 부분은 다른 분(남일공 휘 應男)께서 쓰신 것 같습니다.)
한편, '상호군공'의 맏사위인 남원인(南原人) 양수(梁琇)의 부친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문집에 실려 있는 이숙감(李淑瑊)의 <남원양씨족보서(南原梁氏族譜序)>에 "郡守[=양수]娶禦侮將軍羅州朴秉中之女。生一男曰潤。"라는 기록으로 보아 '상호군공'의 서반 품계는 정3품(당하) '어모장군(禦侮將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모장군은 오위의 관직 상호군과 품계가 일치하므로 '상호군공'의 관직은 '호군'이나 '대호군'이 아니라 '상호군'으로 보는 것이 일관하여 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임오보보다 70년 전에 작성된 문정공 묘비를 비롯하여 참판공 묘표에는 '대호군'으로 기록하고 있어 어느 쪽이 사실인지를 자신 있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위의 관직은 계(階)와 직(職)이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어모장군=상호군>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가 매우 흔했습니다. 즉 계고직비(階高職卑)(품계는 높으나 관직은 낮음)의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어모장군 ◎◎위 상호군>일 수도 있고, <어모장군 행(行) ◎◎위 대호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보에 기록된 '상호군'이 반드시 실제 '상호군'이었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정공 묘비와 참판공 묘표에 기록된 '대호군'은 잘못된 것이고 임오보의 '상호군'이 올바른 기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자호(二字號)' 관례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인명(名ㆍ字ㆍ號 포함)이나 지명을 두 글자의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관습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을 따라 조상의 경칭(=공호公號) 역시 두 글자를 사용하는 관례가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첨추(僉樞)', 사헌부 대사헌은 '대헌(大憲)'으로 줄여서 각각 '첨추공', '대헌공'이라 불렀습니다. 지방 수령인 온양 군수를 지내신 분이라면 '온양공' 또는 '군수공' 하는 식으로 줄였습니다. 또 (부원)군에 봉해진 경우, 예컨대 '금성부원군'은 '금성공'으로, '반성부원군'은 '반성공'으로 줄여 표기하였습니다.
나아가, 좌/우의정을 '의정공', 좌/우찬성을 '찬성공', 좌/우/동(부)승지를 '승지공'으로 각각 줄여서 호칭하였습니다. 또 사직(司直)과 부사직(副司直)을 구분하지 않고 '사직공'으로, 상호군(上護軍)ㆍ대호군(大護軍)ㆍ호군ㆍ부호군(副護軍)을 구분하지 않고 '호군공'으로 하여 각각 이자호(二字號) 관례를 따랐습니다. 예컨대, 8세 휘 병문(秉文) 할아버님께서는 '부사직'이었지만 '사직공'으로 호칭하고, 9세 휘 훈(塤) 할아버님께서는 '부호군'이었지만 '호군공'으로 호칭해 왔습니다.
관직에 기반한 공호(조상의 경칭)는 벼슬한 조상을 명예롭게 내세우면서도 二字號 관례에 따라 쉽고 편하게 호칭(또는 지칭)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지 조상의 관직을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것이 공호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좌부승지'를 '승지공'이라 부르고, '부사직'을 '사직공'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상호군'이나 '대호군'을 '호군공'이라 부른다고 해서 '선조를 비하한다'거나 '불경을 저지른다'고 후손들께서 자책(自責)까지 하실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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