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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강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4~1
26.01.25(일)
자 오늘은 3장 13절부터 6장 6절까지 이어지는 갈릴리 후기 사역을 계속 우리가 살펴볼 텐데 특별히 참된 제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함께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을 세우셨습니다.
자 12이라는 건 이스라엘 안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죠.
자 이 12이라는 것은 앞으로 장차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새로운 이스라엘 뉴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자 여기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선발하셨지만 그것이 다 한 번 선발하면 고정적으로 영원불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갖게 되는 영적 권위 이게 바로 예수님의 제자됨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시고,
또 천국비유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참된 제자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 함께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마가복음 5장부터 6장 6절까지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참된 믿음을 갖는 제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와중에 새롭게 펼치시는 이방인의 사역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포인트입니다.
예수님의 첫 이방사역 바로 가다라 지역입니다.
이 가다라 지역은 갈릴리 호수에서 갈릴리 호수가 이렇게 있다면 동편에 있습니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한 10km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는데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헬라 도시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그러냐면 데카폴리스라고 그럽니다.
이 지역 중의 한 곳인 가나라 지역으로 가시며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로마 제국이 세운 헬라화된 도시인 헬라 지역의 복음지역 복음사역을 시작하신 것이죠.
자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자 이것이 한 세트로 이어지는데요.
어떻게 이어지냐면 아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다가 혈루증 앓던 여인을 만나시고 다시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십니다.
여러분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A B A다시 샌드위치 구조죠
자 이 샌드위치 구조를 통해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중심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세 번째는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 자 이렇게 놀라운 사역을 아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께서 고향에 오셨는데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근데 고향을 와서 배척받으실 때 혼자 배척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함께 왔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배척받은 것이 단순히 예수님 홀로 배척받은 게 아니라 제자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제자도에 대해서 오늘 본문이 어떤 의미와 말씀을 하고 있는지 우리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역에 가셨습니다.
이 거라사를 가다라 지역이라고도 합니다.
헬라화된 도시죠. 이곳에 배를 타고 가셨는데. 이 지역에서 도착하시자마자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무덤 죄와 사망의 권세가 있는 곳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자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귀신들이 쫓겨나가는 것이죠.
아직 귀신 들린 사람들이 그 지역에 있다라는 건 뭐냐 아직 이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대 지역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이곳에는 아직 복음이 선포되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았고 귀신들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 오신 걸 보고 그 앞에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 사람의 상태를 말하죠. 아무도 그를 쇠 사슬로 멜 수 없게 되었다.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메었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다 인간적인 힘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다. 여러분 사탄의 세력과 귀신의 세력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누구만이 제어하느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제어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 안식일의 주인 죄를 사하시는 능력 있는 분 그분만이 귀신의 세력을 제어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만이 의지할 뿐이시죠. 자 이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다.
자기 몸을 상해하는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자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큰소리로 부르짖습니다.
뭐라고 그러느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요 여기 분명히 귀신이 고백하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자 여태까지 제자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풍랑 가운데 예수님을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선생님 단순히 나의 선생님 티처와 하나님의 아들 선 오브 갓은 하늘과 땅의 격차가 있는 큰 인식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과 지식 함께 가야죠 믿음과 지식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아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바로 제자도의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1장 23절에도 처음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귀신을 내어쫓을 때 귀신 들린 사람이 고백하는 고백과 같습니다.
여기 보면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느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고백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고백을 유대 지역의 갈릴리죠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에 있는 귀신이 고백했는데 이제 이방 지역에 있는 귀신들도 똑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의 세력은 유대 땅이나 갈릴리나 이방인이나 모두 사람들을 비탄에 빠뜨리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자 얘기하죠.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자 이 군대라는 말 헬라어로 레기온이라고 합니다. 레기온 영어로 하면 리전 정도가 되겠죠. 군단입니다. 군단 당시 로마 군단의 병력 수로 따지면 한 6천 명 정도가 됐습니다.
근데 이제 여기서는 이 군대가 이 사람한테 나와서 돼지 떼로 들어가는데 돼지 떼 2천 마리가 몰살하죠.
아마도 이 귀신의 군대는 2천 마리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어쩼던 간에 2천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군단의 수 이렇게 많은 이 사탄의 세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붙잡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거 보면 사탄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할 수 있는 방법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어보니까 군대라고 솔직히 얘기하죠. 자 그러면서 귀신이 예수님께 구합니다. 뭐라고 그러냐 주님 우리를 이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주십시오.
누가복음 8장 13절에 보면은 뭐라고 얘기하냐면 우리를 무적갱으로 들어가지게 하지 마십시오.
자 이 지방에서 쫓아내는 건 이 지방만 쫓아내는 게 아니라 결국 사탄 다시 너희들 무저갱으로 들어가 귀신이 거할 징벌의 장소 영원한 지옥 무저갱으로 들어가 말씀하시죠.
자 귀신이 예수님이 어떤 권세를 갖고 있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귀신 사탄을 무적갱으로까지 집어넣을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풍랑과 인간의 죄와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죠.
들어가라 그러니까 돼지 떼에 이 귀신이 들어가서 일제히 돼지 떼가 들어가서 어디로 들어가냐하면 갈릴리 호수 안으로 들어갑니다.
여기 말씀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3절 말씀에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 떼로 들어갔는데 그 2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다라 바다에서 몰살되었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 특별히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다는 성경에서 혼돈과 공허 그리고 사탄의 세력이 역사하는 장소가 바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한계시록 21장에 가면 놀라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아니하더라
바다 혼돈과 공허의 세력을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 세력 안으로 집어넣으셨다는 겁니다.
자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나자 이제 귀신 들렸던 사람이 정신이 온전해지죠
이 사람이 내가 어떤 일을 당한 것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고 또 돼지가 정말 바다에 들어가서 빠져 죽은 것을 본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께 뭐라고 하냐?
그 지방에서 떠나주십시오. 여러분 왜 떠나라고 했습니까?
아마도 경제적 피해
자 예수님을 처음 알 때 예수님을 따르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잘 믿으면 복 주실까 돈 많이 벌게 해주실까 근데 예수님 따랐는데 아이고 피해가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 따르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이게 아주 이방 지역에서는 믿음의 초보적인 수준을 보여주면서 예수님을 어떤 일이 있어도 따르는 그 믿음과는 아직 간격이 크다라는 걸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없이 이 지역을 떠나게 되시죠. 그런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지역을 떠나려고 하실 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함께 있는 것 뭐라고 했습니까?
제자라고 그랬죠 제자 삼아주세요.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할 때 누구를 선택했느냐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그랬습니다.
아직은 그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허락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얘기하시죠.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내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긴 것을 내 가족에게 알리라 이거를 증언이라고 합니다.
간증이라고도 교회에선 얘기하죠.
하나님이 하셨던 일들을 간증해라 그게 이 사람이 가서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데가볼리 가다라 지역만이 아니라 10개 도시 모두에 전파를 했더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며 그분을 사모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걸 보면 믿음이 처음부터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넘어지고 연약해도 헌신된 한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그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방인들의 믿음이 연약한 것으로 이처럼 출발합니다만 이게 점점 점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수로보니게의 여인의 믿음도 자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최초의 사람이 누구냐 바로 이방 백부장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아래서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이 장면을 통해서 이방사역의 기초를 닦으시는 것을 볼 수 있고 마마복음이 진행되면서 이 기초는 점점 더 성숙한 제자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6강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4~2
그 다음에 마가복음 5장 21절부터 43절까지 놀라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건 뭐냐면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해 혈류증 앓던 여인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자 이 이야기를 보면 야이로의 요청으로 예수님이 고치러 가다가 열두 해 혈뇨증 앓던 여인을 만나서 고치시고 다시 야이로로 가지요 A B A다시 샌드위치 구조입니다.
이런 샌드위치 자 그럼 이것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제자도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인 믿음의 요소입니다.
보겠습니다. 이에 그와 함께 가실세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예수님이 다시 가다라 지방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막 따라다니죠.
무리가 등장합니다.
마가복음은 무리와 제자를 구분합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따르기는 하지만 제자는 환란과 어려움이 있어도 따르는 자들이고 이 무리는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만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쓰러지는 자들이죠.
그런데 여기에 회당장 야이로가 등장합니다.
여러분 회당장이라는 건 그 당시에 유대인의 신앙 공동체의 중심인 회당의 업무 안식일 예배나 또 회당을 청소하고 정결하게 하고 또 성경 사본을 관리하는 이런 여러가지 업무들을 관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당의 크기에 따라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 그런데 이 회당장의 딸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 틈바구니 가운데 예수님을 찾아가서 고쳐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보고서는 엎드려서 간곡히 구합니다.
주님 제 어린 딸이 죽게 됐으니 손을 얹으셔서 구원을 받아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회당장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손 얹어서 낫게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회당장보다 훨씬 믿음이 좋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25절부터 나오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여인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혈뇨증이라는 것은 계속 몸에서 하혈이 일어나서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이게 1년 2년이 아니라 12년간 계속 화혈이 일어났다는 건 정말 피를 말리는 너무너무 힘든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하고 있죠.
자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다가갑니다. 예수님을 보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되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무엇만 해도요 옷에만 손을 돼도 회
회당장은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이 오셔서 손을 얹어주시면 후원을 받겠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손만 대어도 후원을 받을 것이다. 이 믿음이 있는 것이죠. 자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손을 댔더니, 어떻게 됩니까?
혈루근원이 곧 마르메 자 보십시오. 여기 곧이라는 유투스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마가보그맨 단어가 등장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이게 이미디어틀리 퀴클리 인스턴트리 곧바로 말라서 낫게 됐다 라고 말씀하죠.
이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자 예수님이 누가 내 몸에 손되었느냐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두려워서 주님 이렇게 제가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34절에 따라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구원했다고 그러고요. 믿음이 구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도의 문제를 점점점 심화하시면서 믿음의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서 마침내 야이로에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갔는데 이 말씀을 하시고 가시는 중에 이 사람들이 집에서 와서 딸이 죽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이 그 말을 듣고 회장장에게 뭐라고 하느냐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어떤 분은 그러죠 믿기만 해서 무슨 소용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뭘 좀 해야죠 해봐야지요
근데 이 죽음은요, 우리가 무얼 동원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과 능력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의 수준이 커집니다.
자 처음에는 회당장이 어떻게 합니까? 손 얹어주십시오. 자 혈류증 앓던 여인 손에 닿기만 해도 나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믿기만 해라 그리고서 들어가신 다음에 세 제자 예수님과 함께했던 세 제자 베드로 야고보 야고보의 형제 요한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첫 번째 그룹의 제자들입니다.
이들 외에는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않고 정말 믿는 자들만 들여보내시고 얘기하십니다.
자 회당장의 집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울고 곡하고 죽었다고 아이고 아이고 하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뭐라고 하십니까?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게 아니라 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잔다 믿음으로 선포하시는 거죠. 영적인 실상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예수님이 정확하게 보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40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비웃더라 믿음이 없으면 비웃게 됩니다.
제자는 믿음으로 갈 때 이 비웃음을 항상 직면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서 예수님께서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시죠.
그리고 울고 비웃던 사람들을 다 내쫓으십니다.
41절에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 쿵 자 쿵 하면 아람어로 일어나라 이런 말입니다. 일어나라 달리다 소녀야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시죠.
그러자 소녀가 놀랍게 일어납니다.
다들 크게 놀라고 감사하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소녀를 고치는 사역을 마무리 하십니다.
자 이런 놀라운 기적의 사역 다음에 예수님께서 6장에 가면 거기를 떠나서 어디로 가시느냐하면 고향으로 가십니다.
가시니까 제자들도 따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고향으로 데려가시는데 그냥 혼자 가시는 게 아니라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보겠습니다. 자 예수님이 안식일에 되어서 고향 회당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자 예수님 계셨던 가버나움에서 보통 나사렛까지 가는 데는 한 40km 정도가 떨어진 나사렛은 산악 지역입니다.
자 이곳으로 가가지고 산을 올라서 이제 가셨는데.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이야기를 말씀을 듣고 놀랍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그 지혜 권능 어찌됨이냐 어찌됨이냐 이 말은 신기해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이 예수를 어릴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제 자 예수님의 형제는 여전히 나사렛에 살고 있었고,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 하고 예수를 뭐합니까? 배척하더라
자 예수님을 안다고 착각했던 사람들입니다.
뭘로 알았습니까? 어릴 때 봤던 이웃 사촌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주님께서 지금 그를 통하여 하시는 역사를 봐야죠 믿음의 눈으로 안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봅니다.
자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거기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촌에 돌아다니며 가르치셨습니다. 떠나신 거죠.
믿지 않음 제자도의 치명적인 걸림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자 이런 거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현장을 보여주십니다.
자 이방 그 가다라 지역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통하여 믿음의 기초가 마련되는 과정 이렇게 놀라운 권능이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믿음의 기초가 없고 뿌리가 없을 때 예수님을 배척할 수 있다는 것 사실 이것이 다 뭐와 지금 깊은 관련이 있냐면 마가복음 4장에 씨 뿌리는 비유와 지금 계속해서 관련이 있는 겁니다.
계속 연결되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면서 회당 열두 해 혈류증을 앓던 여인을 통해서 또다시 죽어있는 소녀를 손으로 잡아 일으키시는 사건을 통해서 제자도의 믿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셔가지고 믿지 않는 그들 앞에 배척당하시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 그냥 혼자 간 게 아니라 제자들을 데려가셨다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이러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끝까지 따라가야 된다. 이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적용점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예수님을 붙잡자 예수님 따르는 것 항상 이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도 있고 박해도 있고 착각도 있고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서 내 모든 걸 쏟아주었는데 떠나주세요. 거절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라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끝까지 신뢰하며 나아가자
두 번째입니다
두려워 말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자 라는 겁니다.
이미 죽었고 다른 사람들이 포기하고 안 된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나를 그곳에 보내셨다면 광야 같은 그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만 바라보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나를 그곳에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 때문이라는 것이죠.
세 번째입니다.
고정관념으로 크신 주님을 제한하지 말자라는 겁니다. 자 예수님의 고향에 갔더니 어떻습니까? 아이고 내가 어릴 때부터 알아 이미 저건 내가 다 아는 거예요. 이전에 다 해봤어요. 이미 경험해 봤어요.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겁니다.
또 예수님 야이로의 딸 죽은 곳으로 갔더니, 필요 없어요. 다 죽었어요. 그냥 가시라고 하세요. 제한하는 신념들이거든요.
이런 자기제한적 신념을 넘어설 수 있는 것 넘어설 수 있는 사람 이게 바로 믿음의 사람 제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제자입니까?
제자로서 어떤 믿음을 갖고 지금 달려가고 있습니까? 주님 부르시는 거룩한 제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자로 잘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다음 시간에는 마가복음 6장 7절부터 예수님께서 이제 열두 제자를 드디어 사역 현장으로 파송하시고 그 사역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어떻게 보내 사역의 현장에 보내시며 훈련시키실까요?
다음 주에 계속해서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가복음 7강 예수님의 갈릴리 외부사역 1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마가복음 5장부터 6장 6절까지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참된 믿음을 갖는 제자는 누구인가 이방인의 사역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라사 지역에 사역하셨습니다.
이 거라사를 가다라 지역이라고도 합니다.
이미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대 지역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이곳에는 아직 복음이 선포되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았고 귀신들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탄의 세력과 귀신의 세력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누구만이 제어할 수있느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제어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 안식일의 주인 죄를 사하시는 능력 있는 분 그분만이 귀신의 세력을 제어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가복음 3장 13절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많은 사역을 함께 하시고 보여주시는 것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며 공부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보여주시고 또 훈련시키시고 함께하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들을 불러 사역을 보내시는 파송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열두 제자의 파송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열두 제자들을 부르셨고 함께 있게 하셨고 예수님의 사역에 동행시키셨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
파송하시는 동시에 두 번째입니다.
오병이여와 칠병이어 기적들과 제자들의 믿음 자 이렇게 해서 제자들의 사역으로 점점점 하나님의 나라가 커져가는데 이때 예수님께서 오병이여 이거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죠.
또 칠병이여 이것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일으키신 사역입니다.
이 두 사역을 일으키시면서 많은 이들이 주님께 나오는데 자 이런 일들이 진행되면서 더 놀라운 기적과 능력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제자들의 믿음은 생각만큼 그렇게 커가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더 나아가서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갈수록 이해할 수 없고 또 예수님이 가시는 길 또 제자도 잘 모르겠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연 이 제자들의 무지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나가는가 또 마가복음에 펼쳐지는 제자들의 파송과 반대되는 반대 측면으로서의 무지에 대해서 함께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먼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마침내 파송하시죠.
오늘 말씀 마가복음 6장 7절에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둘씩 둘씩 보내시고 드디어 보내신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 번도 제자들을 따로 별도로 독립적으로 파송해본 적이 없었는데 본격적으로 파송하신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보내실 때 그냥 보내시지 않고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당해 가셔서 처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실 때 제일 먼저 귀신이 소리 지르며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줄 압니다 라고 얘기를 해서 쫓겨나간 적이 있었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가야 되는데 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예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시면 자 그다음에 제자들이 나가서 선포하죠. 회개하라 그리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님이 권능을 주셨죠
또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는 치유의 능력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는 귀신 축출 그리고 회개 그리고 치유 이 모든 사역들은 곧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나아가서 예수님이 하셨던 그 사역을 열두 제자들이 더 확장해서 퍼져나가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 제자들은 단순한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제자에서 보냄받은 자로서 사역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 보냄 받은 자를 가리키는 특별한 명칭이 있습니다.
이 제자들을 뭐라고 말하느냐하면 사도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도라는 말은 아포스톨로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게 영어로 하면 아포슬이죠. 우리가 잘 아는 사도라는 뜻입니다.
사도 이 사도는 보냄 받은 자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예수님을 부름 받고 따라다녔던 사람들을 제자라고 한다면 이제 이 제자에서 사도로의 사역으로 전환되고 이들의 장차 이루어질 모습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이후의 모습이 사도로서의 사역을 기대하며 나아간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역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사도로 파송을 하시는데 사도로서의 고백이 있기 바로 전 다른 말로 하면 14절부터 29절 이 사이에 의미심장한 사건이 하나 등장합니다.
이것을 구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 마가복음속 샌드위치 구조다 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요.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둘씩둘씩 파송하시고 그 다음에 갔다 와서 제자들의 보고를 받습니다.
6장 30절에 이 제자들을 사도라고 한다고 했죠.
그 사이에 뭐가 있냐하면 세례요한의 죽음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있고 또 그 다음 사건이 이어지는데 그 중간에 또 다른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사건이 있을 때 이것은 별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서의 이야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샌드위치 구조라고 그랬는데 자 그러면 이 가운데 있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의 제자들이 감당할 사역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어떤 마음으로 따라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자파송 장면 부분부터 같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들 여행 떠나는데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지팡이 여행 갈 때 꼭 필요하죠.
험한 길을 갈 때나 높은 길을 갈 때나 이 지팡이 외에는 양식 가져가지 말고 배낭 이 안에 가져가지 말고 돈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아라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라는 말은 뭐냐 오직 주님의 주권만을 의지하고 가라 다른 말로 하면 제자라는 것은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 의지하여 이 모든 걸 가지고 출발하라 라고 말씀을 하시죠.
자 의복도 그렇습니다.
신만 신고 두 벌 옷 입지 말아라 말씀하시죠.
이런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사역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자 이런 마음으로 사역을 할 때 제자들이 마음에 이렇게 각오해야 될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세례요한의 등장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세례요한이 어떤 사역을 했길래 그랬을까요? 세례 요한이 그 당시에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다가가서 경고를 합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당시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내를 취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첫 번째 부인이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헤롯 왕이 나바테아 왕국과 상당히 좀 친했었는데 이 딸과 이혼을 하고 자기의 이복형인 아리스토블루스의 딸이자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세레 요한은 이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자 분명히 구약성전에 보면 이런 일들에 대해 명확하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레위기 18장 16절에 보면 너는 내 형제의 아내를 범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명히 경고를 하고 있죠.
또 다른 곳 한 곳을 더 보면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이것은 더러운 일이라 레위기 20장 21절에서 경고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하지 말라고 금한 것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자 이 말을 듣고 헤롯에게는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성가신 가시였죠
자 그런데 헤로디아가 헤로디아는 헤롯의 새 아내죠
이 요한이 이렇게 얘기한다는 걸 알고 너무 기분이 나빴습니다. 아주 원수로 여겨서 어떻게든 죽일려고 했지만 죽이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것은 헤롯에게 아직 마음의 양심이 남아 있어서 세례 요한이 선포할 때 그를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알고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고 괴롭지만 맞아맞아 그의 말이 맞아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돼 라는 가책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두려워하고 움찔움찔하니까 헤로디아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이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는데 아주 간계한 수를 동원해서 죽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 헤롯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서 춤을 춰서 헤롯 왕을 기쁘게 하죠. 도대체 무슨 춤이기에 그랬을까요?
제임스 오스카가 쓴 살로메라고 하는 소설을 보면 이 살로메가 추었던 헤로디아의 딸이 추었던 이 춤을 일곱 베일의 춤이라고 그럽니다.
숨죽이게 만드는 일곱 베일의 춤이라고 그러죠
일곱 베일은 뭐냐 말 그대로 옷을 일곱겹을 입고 와서 음악이 고조되면서 한 겹씩 벗으면서 흥분을 자극하는 춤 이게 바로 일곱 베일의 춤이었습니다.
이 춤의 맨 마지막에 한껏 고조됐던 헤롯 왕이 얘기를 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게 말해봐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러자 그 당시에 곧 바로 현장에서 말하지 않고 어머니한테 쭈르르 달려갑니다. 어머니한테 얘기를 하니까 엄마가 얘기를 하죠.
야 다른 것 하지 말고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고 해라 그래서 가가지고 아버지한테 목을 달라고 하지요
모든 신하 앞에 다 얘기했었는데 이거 어떻게 취소합니까? 할 수 없이 명에서 세례요한의 목을 가져다주게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아서 가져다주고 이걸 보고 헤로디아가 기뻐하는 장면 이게 그 유명한 세례 요한의 머리를 건네받는 살로메라고 하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이런 그림을 여러분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1층 드농관 5실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건네받는 살로메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작품으로 1500년경에 그린 것으로 얘기를 하죠.
이 무시무시한 그림을 보면 미소를 띠고 있지 않습니까? 참 무서운 여인입니다. 헤롯대왕의 가계도를 짧게 보면 이렇습니다.
조금 헷갈릴 것 같으셔서요 헤롯대왕이 있는데, 헤롯대왕에게는 여러 아내들이 있습니다. 도리스 미리암네 클레오파트라 기타 부인 5명 많이 있었죠.
그중에 이 미리암네를 통해서 나온 아들 중에 아리스토블루스가 있었습니다.
이 아리스토블루스에게는 아들 헤롯 아그립바 1세 사도 행전 12장에 나오죠.
그다음에 헤로디아 딸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헤로디아 딸이 누구의 아내였냐면 동생 헤롯의 동생인 빌립 1세 빌립 1세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분봉왕 헤롯이 얘기를 해서 취한 것이죠. 그리고 그 딸 살로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블루스의 딸인 이복형제의 딸을 헤롯이 다른 형제가 취했던 것을 또다시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선하게 보지 않으셨던 것이죠. 이렇게 해서 세례 요한이 죽었습니다.
그리고서 이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보고를 하죠.
그러면 제자들이 그리고 세례 요한의 죽음 사역 보고지요
자 이게 샌드위치 구조라는 것은 제자들이 감당해야 될 사명을 따라가다 보면 세례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 또 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사역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운명이 이렇게 될 수 있고 또 제자들의 스승인 선생님 사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배하는 사람이었죠. 이 세례 요한이 갔던 그 길 이런 길을 예수님도 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도 이런 전철을 밟아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까지도 서슴없이 나갈 수 있는 각오 이것이 제자를 넘어서 사도의 기본적인 요건이다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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