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는 거...
1936년 음력으로 11월 24일 서울 상암동에서 전주 이공 중자 익자, 안동 권씨 재자 순자 사이에서 4남3녀 중 차남으로 아버지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근처에서 수수농사를 주로 해 오시던 할아버지께서는 4남중 제일 골격이 크고 힘이 좋았던 선친을 농사를 시킬 계획이셨습니다. 다른 아버지 형제는 장교, 검사, 교수 등의 계획이 있었던 것에 비하자면 슬프다면 슬프지만 가업을 잇는다든지 건강함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서는 한편으로 위로가 됩니다. 할아버지 계획과 상관없이 학업을 계속하고 싶던 아버지께서는 중학시절에 한국전쟁 중 할아버지를 잃으시고 할아버지 계획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십니다.
1962년 백천 조씨 부자 순자와 결혼 3남 1녀를 두셨는데, 두 분 모두 늦은 나이의 결혼이시라 막내인 저는 아버지 어머니 친구분들 자제에 비하면 꽤 나이가 어린 편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해 보면 아주 다정다감한 분은 아니셨지만 어린이날에는 형들과 누나, 저를 데리고 남산이나 당시 창경원등에서 찍었던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일부러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형 누나는 교복이나 유치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려서 기억은 형 누나들이 있는 막내이다 보니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높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막내만의 잔정들이 또한 많기도 했습니다. 굵은 팔뚝과 넓은 어깨는 늘 커다랗게만 느껴졌습니다.
4년전 아이들은 데리고 아버지 댁에 방문했는데 기침 중 객담에 피가 조금 비치신다는 말씀에 노인분들은 폐렴으로 고생들 많이 하시니 내일 병원에 가셔서 방사선 사진 꼭 찍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와 지나가는 얘기로 큰 병 아니시길 기원해 보았는데 허망하게고 방사선 검사 후 다시 근처 큰 병원에서 C T 검사 후 폐암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놀란 가족들은 평일 저녁에 급히 아버지 댁으로 모였는데 생각 밖에 평온한 얼굴로 담담히 질병을 받아들이시고 계셨습니다. 그 후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의 부작용은 있었으나 평소 강한 체력과 의지로 어렵지 않게 이겨 내셨고 1년 넘는 시간동안은 암의 진행이 늦어 오랫동안 진료 없이 3개월 간격으로 검진만 받으시고 정상적인 생활을 해 오셨습니다. 양평근처 국수역에서 가까이 있는 산에 오르시고 준비해 가신 도시락도 즐기시고 해먹에 누워 삼림욕도 하시고 한 동안은 투병환자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올해 설에 가벼운 감기 증세로 한 2주 정도 고생하시다 폐렴으로 암센터에 입원하셔서 진료중 의료진 얘기로는 폐암환자에서 일반 폐렴이 아니고 폐암성 폐렴이 진행되면 좀 힘드실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후로 부쩍 체력도 떨어지시고 호흡도 벅차하시는 게 늘었습니다. 그 후 검진에서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환자의 체력적인 문제로 연기해 오다가 50여일 전 입원치료를 권유 받고 입원치료 중 차도 없이 조금씩 경과가 나빠지시다 10여일 전 기관지내시경을 통한 시술 후 급작스럽게 상태가 위중해 지셔서 중환자실로 이송되셨고 10 여 일 동안 약간의 차도를 보이시다 20일 새벽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조금은 소원함이 있었던 큰형님이 유일하게 임종을 하셨는데 모두 아버지의 가족생각하시는 배려라 생각하니 임종을 못 지킨 죄스러움과 서운함이 조금 희석이 됩니다.
2년 전 암센터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 간호사의 호출이 기억납니다.
‘이장호씨 보호자... 이장호씨 보호자 오세요...’
아무생각 없이 들어오던 보호자란 말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아버지의 보호자라... 그 커다란 어께와 팔뚝에 매달려온 세월이 어제 같은데... 그 아버지의 보호자라 불리고 아버지 또한 보호자란 호명에 막내아들이 일어나는 일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름에, 나이가 들어감에, 병들어 감에, 너무나 슬프고 서러운 단어가 되었습니다.
어제 아버지를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셨습니다. 파주에 선영이 있는데 내년 초에 이전 문제로 당분간 일산 청아공원에 모시고 내년 봄에 이장 할 계획입니다. 3일간 걱정해 주시고 찾아주신 동경연 회원 모두께 감사의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걱정해 주셔서 모든 장례 일정이 원만하게 치러졌습니다.
오늘 하루는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하시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이의수 배상.
첫댓글 글 잘 보았습니다. 현재 저도 아버지가 병상에 계신지라 가슴에 더 파고듭니다. 저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의 크기와 명칭은 조금은 처연한 느낌입니다. 스스로가 아버지가 되고 자식을 살피면서 이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어제는 일본만화 다니구치의 "아버지"를 어린이도서관에서 보았습니다. 이의수원장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의젖하게 빈소를 지키시던 이원장님! 비록 임종을 지켜드리디 못 하였으나 고인께서는 따스한 정을 않고 좋은세상에 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운 내세요!!!
아버님의 임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제 마음에도 잔잔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막내 같지 않은 막내아들 이랄까 ..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십시요..
가슴아프게 글 읽었습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늦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찾아뵙고 직접 위로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더욱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버님 아니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 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