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가 1/이해인
눈보라 속에서 기침하는
벙어리 겨울나무처럼
그대를 사랑하리라
밖으로는 눈꽃을
안으로는 뜨거운 지혜의 꽃 피우며
기다림의 긴 추위를 이겨 내리라
비록 어느 날
눈사태에 쓰러져
하얀
피 흘리는
무명(無名)의 순교자가 될지라도
후회 없는 사랑의 아픔
연약한 나의 두 팔로
힘껏 받아 안으리라
모든 잎새의 무게를 내려 놓고
하얀 뼈 마디 마디 봄을 키우는
겨울나무여
나도 언젠가는
끝없는
그리움의 무게를
땅 위에 내려 놓고 떠나리라
노래하며 노래하며
순백(純白)의 눈사람으로
그대가 나를 기다리는
순백의 나라로
폭설이 세상을 덮은 날('17.1.20) 다낭을 향해 떠난다. 그토록 기다리던 눈은 갈증이 극에 다다를즈음 '맘하나'가 모이는
날(1.12~13) 내리더니 다시 해외로 떠나는 날 폭설로 반겼다.
늘 그랬던 것처럼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신발이 푹
빠질정도로 눈이 쌓였다. 처음 발자국을 내는 기분은 수줍은 처녀를 대하는 것처럼 신비롭다. 그 순결을 거두어내는 떨리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순백의 영혼이 소스라치게 움츠린다. 점령당한 영혼은 이내 흔적을 남긴 한 사내에게 모든 것을 맡긴채 흐느껴 운다. 순백은 더렵혀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더렵혀 진다는 것은 추하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받아드리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은 결코 녹녹치 않다는 사실의 알림이다. '처음처럼'이란 단어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실감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첫
사랑, 첫 날, 새 해.. 첫 의미가 주는 희열감을 맛보는 순간들이다.
11시30분 인천공항행 버스에 8명의 '감사모' 회원들이 자리했다. 모습 하나 하나에서 행복감이 묻어나 있다. 떠난다는 것은 설렘 자체다. 늘
떠나도 늘 긴장된다. 그 긴장의 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특히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더 그렇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해인 수녀는
'끝없는 그리움의 무게를 땅 위에 내려 놓고 떠나리라'고 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가?
온통 우리나라를 오염시키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의 사슬의 무게를 내려놓고, 더 나아가 너무도 익숙한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을 통해서 새로운 영혼의 모습을
발견하는거다.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큰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초조와 불안,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들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과 만남에 익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만남과 이별에 초연한 삶.. 그 가능성을 향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수양을 하고, 도를 닦는다고
하며, 종교를 갖는 것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늘 만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출국과 입국을 위해 분주하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분은 우리회원의 조카뻘 되는 여행사
이사분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발권부터 했다. 수하물을 붙인 후 두꺼운 외투를 맡긴다. 그 장소가 지하로 옮겨진 것이 작년과 달라진 것이다.
1년전 1.8일 방콕을 향해 떠날때 경험했기에 이 번에는 쉽게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것이다. 출국을 위한 소정의 절차가 끝나니 시장기가 절정에
다다랐다. 18:40분발이니 충분한 여유가 있다.
식당 곳곳도 만원이다. 마음에 드는 식당에 자리하고 평온이 찾아왔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쏟은 후에 긴장이 풀어지며 오는 여유? 그 느긋함이 느껴지며 행복감에 젖어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매달 모임을 갖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우리들이 작년부터 해외 나들이를 계획했다. 너무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1년만에 또 한번의 일탈을 결행 한
것이다.
탑승을 위한 절차를 모두 마치고 각자 또는 끼리끼리 면세점을 기욱거리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구매하기도 했다.
탑승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 쇼핑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만족한 순간들이다. 우리 부부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국악 공연팀도 만나
감상하고, 어가행렬도 감상했다. 여행객들을 위해서 문화예술적 감상의 기회를 주는 이런 행사야 말로 국격과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 대찬성이다.
어느덧 출국 시간이 가까워 오는지 회원 모두가 모였다.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 전광판이다. 20분의 지연이다. 어차피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가? 다낭에 도착하여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인데 아무렴 어떤가?
일정표를 꺼내들었다. 다시 한 번 여행
일정을 꼼꼼히 들여다 본다. (주)하나투어, 대한항공0463비행기 18:40분 이천공항 출발 21:45분 다낭공항 도착-가이드 미팅-호텔 로얄
호이 안 투숙...
탑승이 시작 되었다. 가장 긴장되는 짜릿한 순간이다. 익숙했던, 가장 익숙한 내 나라를 뒤로 하고 낯선
이국으로의 떠남, 그 육중한 비행기 안에서 5시간여를 보내야 한다. 이륙이 힘차게 우리를 공중으로 끌어 올렸다. 캄캄한 밤에 하늘 높이 떠서
힘찬 비상의 날개짓을 한다. 기내에서의 그 지루한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 가에 따라서 여행의 맛은 초장부터 다를다. 우선은 현실을 철저히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시간 활용을 요령껏 하는 사람만이 여행의 참 맛을 느끼는 것이다.
음악 감상도, 영화
감상도, 약간의 잠도, 신문을 뒤적이는 일도, 기내 쇼핑 안내 책자 등 시간의 활용을 적절히 안배하며 공중에서의 묘미를 즐길일이다. 영화감상은
제격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순간 기내식 저녁이 제공된다.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행위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면 기내식이 아닐까?
식사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그 좁은 식탁에 그 좁은 쟁반에 담겨진 음식들과 숙련된 모습으로 손님에게 제공하는 스튜어디스의 움직임은 기막힌
예술이다.
끝임없는 미소와 친절한 행동은 가히 으뜸이다. 이 사회가 저런 친절로 가득하다면 그게 천국일게다. 우리는 그 친절을
먹으며 얼마나 감사함을 갖는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가끔 기상천외한 기내 난동사건을 보면서 말이다. 그 친절함을 배신하는 행위야 말로 인간
이하다.
이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경이로운 현상을 보면서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고 그 놀라운 상황들 속에서 감사함을 저버리지
않을때 참 의미의 여행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