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난 몇 번의 대선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첫째, 항상 낮아만 가던 투표율이 10년 전 대선보다도 더 높아진 이변이 일어났고,
둘째,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다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대다수 언론에서 보도하였던 내용, 즉 투표율이 70% 이상이면 야당 후보, 65% 이하이면 여당 후보가 유력하다는 주장에 거의 모든 국민이 중독되어 있었기에 특히 두 번째 결과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3시가 지나자 투표율이 75%를 넘을 것이라는 TV 보도가 나와 이번에는 야당 후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6시가 넘어 최종 투표율 75%에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오차범위 이내이지만 여당 후보가 1% 이상 앞선다는 예측 보도를 접하였을 때 출구조사 결과를 수긍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출구조사의 잘못이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1만 표, 2만 표, 5만 표, 10만 표, 20만 표로 점차 여야 후보의 득표 차이가 벌어져 갔다. 처음에는 부재자 투표에 의한 현상이려니 생각했지만, 그 추세는 바뀌지 않았다.
더구나 야당 후보가 이겨야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보이는 경기, 인천 지역에서의 득표율마저도 개표가 5%, 10% 진행될 때까지 여당 후보의 우세가 지속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출구조사가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개표가 상당히 진행된 9시에도 그러한 추세가 지속되자 이제는 야당 후보가 질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나 스스로도 언론에서 얘기한 투표율의 미신에 중독되어 있었지만, 어찌 보면 이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나 역시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였을 때 정확히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였고 주변에도 그렇게 얘기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간단한 산수에 의해서 결과가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야당 후보가 안철수가 되는 경우에는 문재인 지지자 모두가 안철수 후보를 찍겠지만, 반대로 문재인이 되는 경우에는 안철수 지지자의 상당수가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 문재인 지지자는 모두 안철수 후보를 찍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그들은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결코 여당 후보에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안철수 지지자의 경우는 민주당 내지는 소위 ‘노빠’들에 대한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미 그전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즉, 박근혜-안철수 양자 대결의 경우에는 대다수 경우 안철수 후보의 우세로 나타났지만, 박근혜-문재인 양자 대결의 경우에는 대다수 경우 박근혜 후보의 우세로 나타났었다.
결국 이러한 추세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20%를 훌쩍 넘는 상당수 안철수 지지자들이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의 다자간 지지도를 20% 중반으로 보았을 때 이는 전체 유권자의 5% 정도에 해당되는 수치이며 이러한 지지층이 반대쪽으로 옮겨가면 10%의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이전에도 나타났었다.
바로 지난번 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한명숙이 맞붙었던 서울시장과 김문수, 유시민이 맞붙었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나타났다.
한명숙, 유시민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위 ‘친노’ 핵심 인사들이다. 당시 서울의 경우 서울시 광역의원 및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결과를 얻었고, 경기도의 경우에도 경기도 광역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사실 광역의원의 경우 후보자들의 인물 됨됨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정당을 보고 투표한다. 두 군데 모두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지만, 시장과 도지사 선거에서는 졌다.
왜 일까?
민주당(또는 ‘친노’)만이 모르는(또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국민 중에 현 여당은 싫지만 ‘친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을 찍었지만 단체장 선거에서는 ‘친노’가 싫어서 찬성투표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에도 소위 ‘친노’가 장악한 민주당은 똑같은 우를 범하였다. 지난 국회의원 총선에서다. 한명숙 대표 휘하의 민주당은 소위 선명성만을 내세워 ‘친노’를 대거 공천하였다가 절대적인 위기 앞에 겸손모드로 돌변한 이름까지 바꾼 새누리당에 일패도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친노’ 문재인 후보를 앞세워 비슷한 우를 범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산수임에도 그들은 굳이 그것을 외면하고 ‘적합도’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며 고집을 피웠다. 결국 ‘여리디 여린’ 안철수 후보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사퇴하고 말았다. 안철수 후보가 참으로 정권교체를 바랐다면 ‘당연한 산수’에 바탕하여 문재인 후보를 끝까지 설득하였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분이 나쁘다고 또는 힘들다고 하여 그냥 그 확실한 길을 버렸다. 그는 젊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으로 정권교체를 바랐던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친노’와 안철수 후보, 양측 모두 정권교체를 바랐던 모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