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례식
연탄 구루마를 끌며
힘겹게 언덕받이를 오르는
아버지 뒤로 올망졸망
어린 사내 아이들 셋이
가난을 밀고 있었다
한글과 구구단만 깨치고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해야했던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있게 살라고 가르치던
아빠는
아들들만 걱정으로 남기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변소 청소와 막노동
온갖 궂은 일로 불법체류를 막아내던 아버지는
드디어 영주권을 얻고
아들들을 불러모았다
아이들이 무시하고 놀려요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 살던 때
큰아들에게 너도 걔네들 무시하고
기죽지 말고 살거라
교통사고로 갑자기 떠난 그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진은
넥타이 맨 점잔빼는 초상화가 아니라
크게 확대한 연탄배달 사진이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살거라..
풀 깎는 일을 하다 한 팔이 부러져
병원에서 기브스를 하고서도
바로 달려가서 다른 한 손으로 풀을 깎아
약속을 지킨 아버지
비가 오면 아무도 일하러 나오지 않으니
동네 풀 깎는 일은 전부 우리 것이라며
좋아하시던,
하느님 믿고 그 은총 안에서
주일 꼭 지키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거라, 하시던
이 사진 한 장이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에게 곧
살아가는 힘이라고
증언하는 큰 아들
하늘나라에선 시민권 꼭 따서
걱정없이 편히 쉬시라고
아들은 울먹이고 있었다..
20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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