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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4장1~19절
제목 : 솔로몬의 행정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선물로 받은 솔로몬은 두 창기의 첫 재판을 지혜롭게 판단하므로 왕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이어 솔로몬은 다윗의 행정제도를 이어받되, 확장된 나라의 규모에 걸맞게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고 적절한 자리에 인재들을 배치하여 든든한 나라를 세워 갑니다.
솔로몬의 고관들의 명단(1~6절)
1)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1절).
“[1]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솔로몬이 왕이 된 사실을 새삼스럽게 기술하는 까닭은 다음에 계속해서 내각, 행정 구역, 문화 및 건축 등 솔로몬 왕국의 일반적인 면모를 기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마치 국정(國政) 보고서의 첫 서두와도 같은 공식적 서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시작되는 4장 전체는 연대순으로 기록 되었다기 보다는 솔로몬 통치의 업적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로 들어서게 된 이후 솔로몬 이전에 두 왕이 있었습니다.
그 두 왕은 곧 사울과 다윗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이전되어 가는 과도기의 왕으로서, 당시 이스라엘은 지파들 간의 근린동맹(近燐同盟)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관료 정치나 세금 체제, 궁정 생활 등이 미숙했을 뿐 아니라 매우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에 의해 발전되었고 확장되었습니다.
즉 다윗은 국내적으로는 여러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체계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주변 여러 국가들을 정복하여 국경을 넓히고 조공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빼앗아 강력한 수도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모든 일을 수행키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따라서 다윗도 그의 통치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일부만을 통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부왕 다윗이 숱한 피를 흘려 이룩해 놓은 거대한 왕국을 순순히 이어 받았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역할은 거대한 왕국 이스라엘을 더욱 결속력 있게 하나로 결합시켜 유지해 나가며, 그로 인해 대내외로 힘을 확장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솔로몬은 무엇보다 정치,행정,외교,세제 등의 조직을 더욱 확대 개편하고 체계화시키는 일과 중앙 집중화시키는 일을 착수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솔로몬은 통일 왕국 이스라엘 최전성기의 왕으로서,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솔로몬처럼 그의 생애 내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 모든 것은 다윗 언약(삼하 7:12-16)에 근거하여 기드온 산당에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3:11-14)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결과였습니다.
2)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입니다(2절)
“[2]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신하. – 여기서 '신하'('하사림')은 다윗의 부하들을 일컬을 때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삼하 8:16-18;20:23-26).
이러한 사실은 다윗 시대에 비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국가 조직이 더욱 발전하고 정착하였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Bahr).
이러하니라. - 본절 이하에서 계속되는 솔로몬의 신하들의 관직(官職)을 그 순서에서 살펴보면 솔로몬 시대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즉 종교, 행정, 관료가 우선시되는 평화의 시대인 것입니다(Keil).
그러나 이전 다윗의 시대는 군대 장관이 최우선의 자리를 차지하는 전쟁의 시대였습니다(삼하 8:16;20:23).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 본절은 여러 가지 해석의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1) 성경 여러 곳에서 사독의 아들은 '아히마아스'인 것만으로 나오고 있고(삼하 15:27;18:27;대상 6:8)
(2) 제사장 아사랴(아사리아)는 아히마아스의 아들이지 사독의 아들이 아니며(대상 6:9)
(3) 본절 외에 4절에서 제사장들의 이름이 구태여 한 번 더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입니다.
우선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가 누구냐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성경 용례상 종종 나타나듯 여기서도 '아들'을 가리키는 '벤'이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2:8;창 29:5;31:28등). 아사리아는 사독의 후손으로 곧 그의 손자일 것으로 보는 견해(Hammo-nd).
그런데 이 견해의 난점은 시간 간격상 사독의 손자가 당시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를 나이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2) 아사리아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형제일 것이라는 견해(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고, 더구나 제사장 가문의 족보를 알리는 역대상 6장에 위배됩니다.
(3) 본문(2절)을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로 고쳐 읽은 다음 3절과 연결시켜 아사리아를 사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와 같이 서기관으로 보는 견해(the Vulgate, Luther).
그러나 이러한 본문 수정은 무엇보다 문법상 액센트 문제, 연계사 와우탈락 문제 등으로 인해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난점에도 불구하고
(1)의 견해를 가장 타당한 견해로 채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난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첫째, 아사리아의 부친 아히마아스는 일찍 죽었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로 대제사장직 수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사리아가 보다 유명한 조부 사독의 이름하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둘째, 솔로몬 시대에 아비아달과 사독이 대제사장직으로 있기는 하였으나, 아비아달은 곧 파멸되었고 사독은 고령이었기 때문에, 가장 오래도록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아사리아가 이들과 같이 그리고 이들에 앞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당시 사독은 매우 고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통치 기간은 길었기 때문에, 사독의 손자가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를 수 있는 나이는 계산상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Pulpit Commentary).
한편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아사리아의 직위인 '제사장'이 어떤 직위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하여 카일(Keil)과 베르(Bahr)는 여기 '제사장'의 '하코헨'은 '총리 대신'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그들은 '코헨'은 삼하 8:18에서 '대신'(大臣)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또한 솔로몬 왕국의 관료 서열 중 맨 처음에 등장하는 위치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즉 성경 용례상 '코헨'이란 용어는 거의 대부분 순수히 '제사장'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일반적으로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국의 가장 큰 업적은 성전 건축 사업에 있는 것인 만큼, 모든 관료들 중 대제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즉 아사리아(Azariah)는 사독의 손자로서(대상 6:8,9), 사독이 고령으로 맡은 바 대제사장직을 수행치 못하게 되었을 때 부친 아히마아스 대신 그 직을 승계하여 대제사장으로서 솔로몬 왕국에 봉사한 인물입니다.
3) 에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입니다(3절).
“[3]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시사 - '시사'(Shisha)는 삼하 8:17의 스라야, 삼하 20:25의 스와,
대상 18:16의 사워사와 동일 인물일 것입니다(Keil, Bahr, Hammond).
그는 다윗 시대의 서기관이었습니다.
서기관(書記官) - '서기관'(소페림)의 임무는 나라의 공문서를 작성하고 보관하는 것 외에도 재정(財政) 문제를 맡는 것도 포함합니다(왕하12:10).
따라서 서기관은 매우 중요한 관직이었습니다(Bahr).
관직 명단의 순서도 이를 반영합니다(Hammaond).
한편 이 직책은 세습이 된 것 같습니다.
시사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서기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그는 다윗 왕 때부터 이미 사관(史官)이었습니다(삼하8:17;20:24).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솔로몬 시대에도 계속 유임된 것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왕(父王)에게 충성하던 인물들이 그대로 솔로몬에게 등용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 역시 솔로몬 시대가 평화 시대였음을 보여 주는 단면입니다.
사관(史官) - '사관'(마즈키르)의 히브리 동사 '자카르'는 '기억하다','생각해 내다'등의 뜻입니다.
따라서 사관(recorder)은 '생각해내는 사람'으로서 국사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왕으로 하여금 어떤 계획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왕으로 하여금 어떤 계획을 기억하도록 상기시켜 주는 임무도 가졌습니다(Dentan).
이런 맥락에서 드보(De Vaux)는 사관을 궁중 의전(儀典) 관장으로 보았습니다.
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입니다(4절).
“[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브나야는 군대 장관이요. - '브나야'(Benaiah)에 대해서는 삼하 23:20-23;왕상 1:8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브나야를 제외한 솔로몬의 중신들은 모두 종교,행정,궁정의 관료들로서 평화 시대에 걸맞는 관직들이었습니다(Wordsworth).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 제사장직을 파면당한(2:27) 아비아달의 이름이 여기 다시 나타나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솔로몬이 그를 다시 복직시킨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Clericus,Grotius).
그리고 또 혹자는, 아비아달은 제사장의 직무 정지를 당했을 뿐 제사장직 자체를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합니다(The-odoret).
그러나 본장이 솔로몬 통치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비아달은 솔로몬 즉위 초기에 한동안 솔로몬 치하에서 제사장직을 맡았으므로 여기서 언급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치하에서 실질적인 대제사장을 수행한 자는 사독의 손자 아사리아(아사랴)이지만(1절), 이들은 다윗과 솔로몬 왕국 건설에 이바지한 공이 컸으므로 여기에 기록된 것입니다(Patterson).
5)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사붓은 제사장이요 왕의 벗입니다(5절).
“[5]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 - 아사리아 혹은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심'이란 뜻인데, 당시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은 대략 30명 가량 됩니다.
한편, 여기서 '나단'은 데니우스가 주장하듯 다윗 시대의 유명한 선지자 나단이 아니고, 삼하 5:14에 나타나는 다윗의 아들 '나단'입니다(Keil,Bahr).
따라서 나단의 아들들인 관리장 아사리아와 대신 사봇은 솔로몬의 조카들이었다.
관장. - '관장'(알 하니차빔)은 '관장들'(나치빔) '위에서'(알) 관리하고 지휘하는 직책입니다.
따라서 관장은 7-19절에 나오는 열 두 관장의 우두머리입니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 '대신'(코헨)은 2절에서 처럼 '제사장'(pri-
est, NIV)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공동 번역도 '사제'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이 직책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반 제사장들과는 달리 다윗 시대와 마찬가지로(삼하 8:18), 왕의 영적이고 의례적인 일들에 대해 논의하고 조력하는 일종의 고문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Patterson).
이 직책을 부연 설명하는 '왕의 벗'(레에 함멜렉)이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그런데 당시에 '왕의 벗'은 공적 직무의 호칭으로서 명예와 경의의 직함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후새'가 이같이 불려졌습니다(삼하 15:37;16:16).
이상으로 미루어 '대신'은 왕의 신뢰할만한 논의 상대로서 일종의 고문(顧問)과 같은 직책인 듯합니다(Keil).
6)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입니다(6절)
“[6]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이더라”
궁내 대신. - '궁내 대신'(알 하바이트)은 왕궁의 살림을 도맡은 관리자요, 청지기 직책입니다(16:9;왕하 18:18;사 22:15).
즉 궁중사를 총괄하는 이 직책은 이전에는 없던 것인데, 솔로몬의 부요하고 화려한 궁중생활 때문에 새로 생긴 직책입니다(23절;18:3등).
드보(De Vaux)는 'master of palace'로 그리고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manager of palace affairs'로 각각 번역했습니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아도니람은 아도람과 동일 인물일 것입니다(삼하20:24).
그렇다면 그는 다윗 시대 때부터 같은 직책을 맡아온 것입니다(Bahr,Keil). 한편 '감역관'(알 하마스)은 세금과 부역(賦役)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직책은 도가 지나칠 때 백성들의 미움을 사기 쉬운 자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후에 르호보암 때 아도니람은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습니다(12:18).
2. 열두 지방과 지역 행정관들의 명단(7~19절)
1)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었습니다(7절).
“[7]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 '관장'(나치빔)의 주요 임무는 1차적으로 맡은 바 각자의 지역에서 왕실의 식량과 물자를 조달하는 것입니다.
즉 '세금 징수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맡은 바 임무를 원활히 수행키 위해서는 각자의 지방에서 도백(道伯)과 같은 정치권력을 지녔을 것입니다.
한편 이들 열 두 관장이 담당한 구역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기존 열 두 지파의 구획과 유사하긴 하나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는 필요한 물량을 일정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각 지역 생산량의 많고 적음을 따라 구역을 나눴기 때문입니다(K-eil).
같은 의미에서 '열 두 관장'을 둔 이유 역시 기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1년 동안의 물량 공급 횟수인 '열 두 달'에 기인한 것입니다(Hammond).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 이는 솔로몬 왕국의 중앙 집권화가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아울러 이는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실이 모든 지파를 완전 장악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한편, 혹자는 이러한 열 두 관장 제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기를,
이는 당대의 이방 폭군 제도와 다를 바 없는 착취 제도라고 비난합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왕정 체계를 사무엘에게 요구 했을 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듯이(삼상 8:10-18),
왕정 제도가 백성들의 재산과 권리를 제어할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그러한 점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대로(3:13),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솔로몬 왕국에 부와 영광이 충만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 비단 솔로몬뿐만 아니라 그의 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을 뿐 아니라(20절), 포도 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다'(25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식물을 예비하였으니. - '일년 중 한달씩 물품을 공급하는 것이 그들 각자의 임무'라는 뜻입니다.
즉 차례대로 한 달 분씩의 공급 책임을 졌다는 말입니다.
공급 품목은 아마 각 지역의 토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현물(現物),
또는 세금이었을 것입니다(J.Hammond).
2)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입니다(8절).
“[8]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땅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세겜 건너편까지를 말합니다(수 17:14-18;24:33).
이곳은 팔레스틴 중부의 산악 지대로서 정착하여 살기 좋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벧엘과 실로에 사사 시대의 두 주요성소가 있었습니다(Cundall).
3)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입니다
“[9]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마가스. – 이 지명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위치 또한 분명치 않습니다.
단지 본절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단 지파 지역의 어느 곳일 것으로 추측할 따름입니다.
사알빔. - 수 19:42의 '사알랍빈'과 동일 지역.
오늘날의 위치는 '얄로'(Yalo) 북서쪽의 '셀빗'(Selbit)으로 추측됩니다(Keil).
벧세메스. - 이 지역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 독자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즉 어떤 때는 유다지파의 성읍으로(수 15:10),
어떤 때는 잇사갈지파의 성읍으로(수 19:38)등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의 연관 관계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본절의 벧세메스를 수 19:41의 '이르세메스'와 동일시합니다(H-ammond, Keil).
그리고 현재의 '아인 세메스'(Ain-Shems)로 추정됩니다.
엘론벧하난. - 이 지명은 수19:43의 '엘론'의 변형된 명칭이거나 '벧하난'이라는 또 다른 성읍과의 결합된 명칭일 것입니다.
70인역(LXX)은 '벧하난'앞에 '-까지'를 뜻하는 접속사(헤오스)를 삽입하여 '엘론에서 벧하난까지'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무튼 이의 지명들은 단 지파에 속한 지역으로 여겨집니다(수 19:40-48).
4) 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그가 주관하였습니다(10절)
“[10] 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그가 주관하였으며”
아룹봇. - 이 지명은 이 곳 이외에 다른데서는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러나 헤벧 땅에 속한 어느 지역일 것입니다.
소고와 헤벧 온 땅. - 소고와 헤벧 두 성읍은 크게는 헤벧(Hepher) 땅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헤벧 땅은 해안에 위치한 샤론(Sharon)평원의 남부 지방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의 지명들을 유다 지파에 속한 지역으로 주장하는 몇몇 주석가들의 주장은 혼돈을 일으키기 쉽습니다(Bahr,Keil).
왜냐하면 솔로몬 당시 유다 지방과 헤벧 땅은 그 사이에 벤데겔의 행정구역(9절)이 있었으리 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5) 나밧 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습니다(11절)
“[11] 나밧 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으며”
돌 높은 땅. - '돌'(Dor)은 갈멜 산 남쪽으로 지중해 연안의 한 성읍입니다. 그리고 이 성읍은 여러 세기 동안 중요한 항구 도시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합니다(Reed).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이에 대항한 가나안 왕들의 동맹 중 일원이 이 돌의 왕이었습니다(수 11:2;12:23).
한편 '돌 높은 땅'은 이 성읍과 샤론(Sharon) 평원 일부를 포괄하는 지역입니다.
지역 특성상 비옥한 샤론 평야를 끼고 있어야 왕실에 곡물을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벤아비나답 - '벤아비나답'은 '아비나답의 아들'입니다.
이 아비나답은 이새의 둘째 아들이자 다윗의 형 즉 솔로몬의 큰 아버지일 것으로 봅니다(PEB).
그러므로 벤아비나답, 곧 아비나답의 아들은 솔로몬의 사촌이 됩니다.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으며. - 벤아비나답이 솔로몬의 사촌이라면 그는 자기 조카와 결혼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친결혼은 고대 사회의 왕실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러한 유사한 예를 찾아 볼수 있습니다
(창 24:4;28:2;29:19;수 15:16,17;삿 14:3).
6)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습니다(12절)
“[12]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다아낙과 므깃도. - 이 성읍들은 므낫세 지파의 경내에 속했으며(수 12:21;17:11) 갈멜 산의 동쪽 기슭 곧 이스라엘 평원 끝에 위치하였습니다.
이스르엘. - 본절의 다른 성읍들과는 달리 이 성읍은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속하였습니다(수 19:18).
그리고 이곳은 이스르엘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IDB)
한편 아합 왕 시대에는 이 성읍이 왕의 거주지가 되었습니다(18:45,46).
또한 후일 여기서 나봇의 포도원을 둘러싸고 사건이 일어납니다(21장).
이로 미루어 이스르엘(Jezreel)은 매우 비옥한 땅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세린'(Zerin)입니다.
사르단. - '스레다'(7:46;대하 4:17)라고도 불리웠던 이곳은 여호수아의 영솔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때 강물이 기적적으로 멈춰 쌓였던 곳입니다(수3:16).
또한 솔로몬 시대에는 히람(Hiram)이 성전 건축을 위해 놋그릇들을 녹여부었던 곳이도 합니다(7:46).
벧스안. - 이 성읍은 므낫세 지파의 한 성읍으로서(삿 1:27),
이스르엘 골짜기 동편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수 17:16).
현재의 '베이산'(Beisan)입니다(Robinson).
그런데 '벧스안 온 땅'이라 할 때는 이스르엘 골짜기 동편 끝에서 요단 골짜기 서북단에 이르는 초승달 형의 옥토 지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전략상 요충지였으므로, 역사적으로 외세의 많은 침공을 당했습니다(Hamilton).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 - '바아나'(Baana)는 사관(史官) 여호사밧(3절)과 형제일 것입니다(Keil).
아벧므홀라. - 이곳은 벧스안 남방 16Km 지점이며,
선지자 엘리사의 고향입니다(19:16;삿 7:22).
욕느암. - 레위인의 성읍 '욕므암'(대상 6:68)과 동일 지역입니다.
그리고 '깁사임'(수 21:22)과 같은 곳으로 추정됩니다(Bahr).
그러나 이 성읍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혹자는 스불론 경내로(Beek), 또 혹자는 므낫세 경내로(Hammond 등) 봅니다.
7) 벤게벨이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마을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육십 개의 큰 성읍을 주관하였습니다(13절)
“[13] 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그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마을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육십 개의 큰 성읍을 주관하였으며”
길르앗 라못. – 갓 지파의 성읍으로(수 20:8), 혹은 '라못 길르앗'으로 불리웁니다.
길르앗 지방 동북쪽의 중요 요새지로서 레위인의 성읍이며(수 21:38;대상 6:80) 요단 동쪽의 세 도피성 중 하나입니다(신 4:43;수 20:8).
주요 요충지였으므로 역사상 이곳에선 많은 전투가 있었습니다(15:20;22:3;왕하 8:28;9:14).
야일의 모든 촌. - 즉, 민 32:41의 '하봇야일'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의 길르앗지방을 공격하여 거처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때 므낫세 지파의 용사 야일(Jair)이 빼앗은 성읍들을 통칭 '하봇야일'(Havoth-Jai-r, '야일의 촌락들'이란 뜻)로 부르게 되었습니다(신 3:14;수 13:30).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육십. - '바산' 곧 '아르곱'은 길르앗 라못(혹은 라못 길르앗)의 동북 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신 3:4 주석 참조).
원래 이 지역의 60개 성읍은 바산 왕 옥(Og)의 성읍들로 모세 영솔하의 이스라엘이 탈취한 것입니다(신 3:1-11).
그런데 그 성읍들은 높은 성벽과 문과 빗장을 가졌고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많이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신 3:5).
따라서 '야일의 모든촌'과 아르곱(Argob) 땅의 이 '성읍 육십'은 분명 구별됩니다(Keil).
8) 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입니다(14절)
“[14] 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마하나임. – 얍복 강 북쪽에 위치한 길르앗 지방의 중요 도시로 갓 지파에 속한 땅입니다(수 13:26,30,;21:28).
본래 이 지명은 야곱이 지은 것으로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입니다(창 32:1,2).
요단 동편의 이곳은 왕들의 피신처로 종종 이용되었습니다(삼하 2:8,9;17:24-27).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 - '아히나답'(Ahinadab)은 대하 9:29의 '선견자 잇도'의 아들로 여겨집니다(J.Hammond).
9)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습니다(15절)
“[15]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으며”
납달리. – 열 두 행정 구역 중 최북단에 위치한 납달리 지파의 영토입니다.
납달리 서편에는 아셀, 남쪽에는 스불론, 잇사갈 지파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히마아스. - 카일(Keil), 헤몬드(Hammond)등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인물을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Ahimaaz)일 것으로 봅니다(삼하 15:27;17:17).
솔로몬의 딸 바사맛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 납달리 지역의 관장 '아히마아스'역시 돌 지역의 '벤아비나답'과 마찬가지로(11절) 왕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고대 사회의 풍습상 왕은 신하들 중 충성심이 강하고 유능한 인물에게는 이처럼 딸을 배필로 허락함으로써 포상을 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왕실(王室)도 공고히 했습니다.
어쩌면 이를 위해서도 당시 왕의 다처다첩(多妻多妾)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10) 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16절)
“[16] 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아셀. – 납달리 서쪽 곧 지중해에 연한 지역으로 아셀 지파의 영토입니다.
아롯 - 이곳의 위치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고대 주요 역본들에는 '베아롯'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단에 위치한 '바아롯'(수 15:24;19:44)과는 무관합니다.
후새의 아들 바아나. - '바아나'(Baanah)는 '다윗의 벗'인 아렉 사람 후새의 아들입니다(삼하 15:32).
11) 잇사갈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입니다(17절)
“[17] 잇사갈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잇사갈. – 잇사갈 지파의 영토로서 12절의 지역들 즉 다아낙, 므깃도, 벧스안 등을 제외한 이스르엘 평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서북으로 스불론, 남으로 므낫세 사이에 위치합니다(수 19:17-23).
12) 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입니다(18절)
“[18] 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베냐민. - 베냐민 지방은 여타 지역에 비해 수도 예루살렘에 가장 근접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북으로 에브라임, 남으로 유다 사이에 위치하였습니다(수 18:11).
엘라의 아들 시므이. - 이 인물은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던 1:8의 시므이(Shimei)와 동일 인물인 듯합니다(Keil,Patterson).
13)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 지방장관입니다(19절)
“[19]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그 한 사람만 지방 관장이 되었더라”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옥의 나라 길르앗 땅. - 아모리 왕 시혼(Sihon)과 바산 왕 옥(Og)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패퇴시키고 오히려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민 21:21-35).
그런데 본절의 '길르앗 땅'은 13,14절의 벤게벧과 아히나답의 관할 지역을 제외한 요단 강 동남부 지역을 가리킵니다(Keil). 왜냐하면
(1) 보통 길르앗은 요단 동편 전체를 말하며(신 34:1;삿 20:1)
(2) 13,14절의 지역은 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3) 요단 동편 전체에서 이 북쪽 지역을 제외하고도 사해(死海)까지 이르는 므낫세의 땅과 갓의 땅은 매우 광활하기 때문입니다(민 21:24,33).
우리의 아들 게벧. - '우리'(Uri)의 아들 '게벧'(Geber)은 '벤게벧'(13절)의 아버지입니다(J.Hammond).
그 땅에서는 그 한 사람만 지방 관장이 되었더라. - 이 구절의 해석은 구구하나, 대체로 '그렇게 넓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관장이 다스렸다'는 뜻으로 보고 있습니다(Bahr,Keil).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솔로몬은 선왕(先王)인 다윗의 행정제도를 계승하고 그 때 활동하던 인재들을 다시 중용하되, 확장된 나라의 규모에 맞춰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새 인물들을 등용하여 견고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합니다(1~6절).
과거(過去)의 유산(遺産)을 인정하고 존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시대적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하는 ‘지혜(智慧)’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업적 쌓기나 세력 키우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고 의(義)입니다.
내 뜻을 이룰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주변을 ‘내 사람’으로만 채우고 싶은 욕심이 나와 공동체를 위협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2) 솔로몬 왕국은 제사장 중심의 나라로 출발합니다(2~5절).
다윗 시대에 비해 더 많은 제사장이 채용됩니다.
군대 장관을 앞세운 다윗과 달리(삼하8:15~18),
*삼하8:15~18 “[15]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솔로몬의 내각 명단에는 제사장이 가장 먼저 거명됩니다.
다윗이 ‘전쟁(戰爭)’을 통해 기반을 닦은 나라를 ‘신앙(信仰)’위에 세우려 한 것입니다.
3) 아도니야의 반란을 잠재우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데 앞장선 브나야가 군대를 책임지고, 사독은 대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맡으며, 나단의 두 아들은 지방 장관의 두령과 참모로 왕을 보좌합니다(2~6절).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통솔력이나 정세(政勢)를 간파하는 정치력, 실무에 능한 행정력도 필요하지만, 더 긴요한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충심(忠心)(진심)입니다.
그럴듯한 공약(空約)으로 우리 귀를 즐겁게 하는 권력(정치든 종교든)을 따르기 전에, 국가와 민심(民心)에 대한 그들의 중심이 어떤지를 먼저 따져 보십시오.
4) 다윗이 이룩한 통일국가를 이어받아 “온 이스라엘”의 왕(1절)이 된 솔로몬은 과거 열두 지파의 구분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시대적 요청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여 열두 행정구역을 편성”합니다(7~19절).
이를 통해 지방자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면서
“각 지방에서 공평하게 세금과 물자를 제공받을 수”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공평과 공의와 공익이라는 토대 위에 사람과 체계를 세웁니다.
문제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씀하신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이런 나라가 되었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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