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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상12장1~40절
제목 : 하나님의 군대, 다윗의 군대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를 받앗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1~22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부터 그와 함께했던 지파와 그 지파 출신 용사들의 명단을 알려 줍니다.
23~40절은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다윗과 함께한 지파와 그 지파 출신 명단으로 다윗이 단지 유다 지파의 왕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지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지파 별로 다윗을 위해 싸운 용사와 군인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아직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에게 쫓길 때 다윗의 편에 선 사람들입니다.
1. 지파 별 용사들(1~22절)
이 단은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당하여 도망 다니던 시절 함께한 용사들의 명단으로 베냐민 지파 용사들, 갓 지파 용사들, 므낫세 지파 용사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1) 베냐민 지파 용사들(1~7절)
(1)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자들입니다(1절)
“[1]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본장에 나오는 용사들의 명단은 성경중 오직 본서에서만 소개된 유일한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그에게 찾아와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용사들과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도 이미 거국적인 지지를 받았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1절). - 시글락(Ziklag)은 가나안 정복 후 시므온 족속에게 할당된 땅이었으나(수 19:5) B.C. 12세기 초에 블레셋이 점령한 이후 다윗 시대 전까지 계속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특히 사울 왕이 다윗을 핍박하던 당시에 이곳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내분을 조장하려는 음모 하에 이곳을 당시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의 거로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1년 4개월을 지낸 후(삼상 27:1-7) 헤브론으로 돌아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삼하 2:1-4).
(2) 그들은 양손잡이로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입니다(2절)
“[2] 그들은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그들은 활을 가지며. - 이는 곧 본절 및 그 이하에 나오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모두 활로 무장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동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따른 것은 다윗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정통성 있는 통치자(삼상 16:1-13)로 인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사울의 폭정과 비 신앙적 행동 그리고 심한 정신병적 증세에서 더 이상 희망과 기대를 찾지 못하였을 것입니다(삼상 22:17-19).
한편, 여기서 '동족'은 가까운 친척을 의미 한다기보다는 단순히 같은 지파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Keil, Lange).
그러므로 우리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동족애보다 하나님의 의를 쫓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행동은 동족애를 내세워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의 행동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삼하 16:5-8).
혹자는 이와 관련 베냐민 지파가 사울 왕의 출신 지파이므로 이들이 다윗에게 나아온 행위 자체가 다윗의 영광을 더욱 기리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Stotki).
(3)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는 기브아, 기브온, 고라, 그돌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 됩니다(3~7절)
[3] 그 우두머리는 아히에셀이요 다음은 요아스이니 기브아 사람 스마아의 두 아들이요 또 아스마엣의 아들 여시엘과 벨렛과 또 브라가와 아나돗 사람 예후와[4] 기브온 사람 곧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의 우두머리가 된 이스마야이며 또 예레미야와 야하시엘과 요하난과 그데라 사람 요사밧과[5] 엘루새와 여리못과 브아랴와 스마랴와 하룹 사람 스바댜와[6] 고라 사람들 엘가나와 잇시야와 아사렐과 요에셀과 야소브암이며[7] 그돌 사람 여로함의 아들 요엘라와 스바댜더라
기브아 사람 - 여기서의 기브아(Gibea)는 사울의 기브아(Gibea)라고도 불려지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입니다(삼상11:4;13:2,15;14:16;15:34;삿20:10).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오늘날의 텔-엘-풀(Tell-el-Ful)입니다.
아스마웻의 아들 - 11:33에서 다윗의 용사로 소개된 아스마웻(Azmaveth) 또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므로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 것으로 보여집니다(Curtis).
아나돗 -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이었습니다(수 21:18).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아나타(Anata)입니다.
기브온 사람(4절) - 기브온(Giveon)은 예루살렘 서북쪽 9.6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수 18:25).
이곳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산당이 있었습니다. 왕상 3:4 주석 참조.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의 우두머리가 된 이스마야. - 여기서 30인은 삼하 23장과 본서 11장에서 소개된 다윗의 30인 용사와 다른 어떤 자들이라고(Curtis)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이스마야(Ismaiah)가 30인 명단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그 또한 그들 중 한명이었으며 그들의 두목이었음이 분명합니다(Payne, Keil, Lange). 우리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18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데라 사람 요사밧 - 그데라(Gederah)는 유다 산지에 있는 성읍으로서(수 15:36)베냐민 지파의 성읍이 아닙니다.
혹자는 이곳에 베냐민 지파의 용사 요사밧(Josabad)과 그 가족들이 이주해 살았다고 주장하나(Keil) 이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와는 반대로 혹자는 1-7절에 베냐민 지파의 용사와 더불어 일부 유다 지파의 용사들이 함께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Bertheau, Lange).
하룹 사람(5절) - 하룹(Haruph)은 지명이 아니라 인명으로 보여집니다.
즉 여기서 하룹 사람(Haruphite)은 갈렙의 후예 하렙(Hareph)의 자손들일 것입니다(2:51).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1-7절에 일부 유다 지파의 용사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주장이 입증되는 셈입니다. 4절 주석 참조.
고라 사람들(6절) - 혹자는 이들을 레위의 후손 고라(Korah)의 자손들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즉 이들을 레위 사람으로서 베냐민 지파 내에 살았던 자들로 보는 것입니다(Payne, Lange).
그러나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그돌 사람(7절) - 그돌(Gedor)은 유다 산지에 위치한 성읍으로(수 15:58) 베들레헴 근처, 곧 오늘날의 길벳 그둘(Khirbet Gedur)입니다.
2) 갓 지파 용사들(8~15절)
(1) 갓 사람 중에서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른 자들로 그들은 용사요 싸움에 익숙한 자들로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사슴 같았습니다(8절)
“[8] 갓 사람 중에서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 - '견고한 곳'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므차드'는 광야에 있는 산의 정상에 세워진 '요새'를 뜻합니다.
다윗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삼상 22-24장에 비추어 볼 때 이 '광야'는 유다 광야이며 이 '견고한 곳'은 유다 광야 곳곳에 흩어져 있었던 굴 또는 요새지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삼상 22:1;24:3).
그리고 이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하던 첫 해에 해당합니다.
즉 본 문맥에서 갓, 베냐민, 유다 자손들이 다윗에게 합류한 때는 앞의 문맥(1-7절, 다윗이 시글락에 있었던 때)보다 앞서는 때이며 다윗의 피난 시절 초기입니다.
그 당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유다 광야의 은신처들을 찾아다니며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서에는 그 당시에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이 사백 명 가량(삼상 22:2) 또
는 육백 명 가량(삼상 23:13) 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기록은 본문맥의 역사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돌아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닙들루'는 '구별하다'는 뜻의 동사 '바달'의 닢알형(단순 재귀형)으로 이는 '스스로 구별하여...에게 속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스 6:21).
본절에서 특히 이 말은 사울 왕의 편에 섰던 사람들로부터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별하여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에게 속했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Bertheau, Keil, O. Zockler).
싸움에 익숙하여 - 이는 곧 체계적으로 잘 훈련된 병사들을 묘사하는 말입니다(7:11).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 고대의 문학에서 '사자'는 용사들의 용맹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었고 '산의 사슴'은 그들의 민첩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었습니다(삼하 1:23;2:18).
즉 본절은 갓 지파 용사들의 강인함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 갓 지파 용사들이 서열에 따라 차레대로 소개 되고 있습니다(9~15절)
“[9] 그 우두머리는 에셀이요 둘째는 오바댜요 셋째는 엘리압이요[10] 넷째는 미스만나요 다섯째는 예레미야요[11] 여섯째는 앗대요 일곱째는 엘리엘이요[12] 여덟째는 요하난이요 아홉째는 엘사밧이요[13] 열째는 예레미야요 열한째는 막반내라[14] 이 갓 자손이 군대 지휘관이 되어 그 작은 자는 백부장이요, 그 큰 자는 천부장이더니[15] 정월에 요단 강 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 이 무리가 강물을 건너서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에게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우두러니는 에셀이요(9절)-에셀은 ‘도움’이라는 뜻으로 ‘도움의 형제’라는 뜻의 베냐민 지파의 우두머리 하이에셀과 비슷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11명은 천부장 백부장의 역할을 한 지도자의 이름입니다.
다섯째는 예레미야요(10절) - 이와 동일한 이름은 13절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유명한 대선지자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Jeremiah, 렘 1:1)와는 다른 인물들입니다.
여덟째는 요하난이요 - 요하난(Johanan)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입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으로서 다윗을 섬긴 용사 가운데에도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가 있었습니다(4절).
군대 지휘관(14절) - 문자적 의미는 '군대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큰 군대의 지휘관'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만 '탁월한 용사'라는 뜻입니다(Keil, Lange).
그 작은 자는 백부장이요, 그 큰 자는 천부장이더니. - 혹자는 본절을 갓 지파 용사들이 능력에 따라 각자 일백 인 또는 일천 인을 지휘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Kittel).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당시 다윗을 따르던 무리들이 육백 인에 불과 했다는 기록(삼상 23:13)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절은 갓 지파 용사들 중 상대적으로 약한 자는 적군 일백 명을 감당해 낼 수 있었으며 가장 강한 자는 천명을 감당해 낼 수 있었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Keil, Bertheau, O. Zockler, P.C. Barker, Kautzsch).
정월에 요단 강 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15절) - 정월은 히브리 월력으로 니산월(지금의 태양력 3-4월)로서 이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틴에서 늦은 봄, 여름은 건기(乾期)였으며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우기(雨期)였습니다. 성경 총론, '팔레스틴의 기후' 참조.
따라서 사람들이 건기인 여름에는 요단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봄에는 비록 건기이긴 하였지만 간간이 봄비가 내리고 또한 겨우내 얼었던 레바논 산록(山麓)의 눈들이 녹으면서 요단 강물은 범람하였습니다. 수 3:15 주석 참조.
그런데 갓 지파 용사들은 바로 이러한 때에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나아오기 위해 불가불 넘기 어려운 요단 강물을 도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에게로 나아오는 그들의 간절함과 영웅적 모험 행위를 볼 수 있습니다.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에게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 이는 당시 사울 왕을 계속 따르는 자들이 갓 지파 용사들의 길을 막았을 때 그들이 사울 왕의 추종자들을 물리쳤음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Curtis).
즉 갓 지파 용사들은 사울 왕의 군대에서 이탈하여 다윗에게로 향하여 나아갔으므로 그때 그들의 길을 막으려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3) 다른 지파들의 용사들(16~22절)
이 단락은 다윗과 함께한 지파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 다윗과 함께한 베냐민과 유다 지파 용사들의 에피소드입니다(16~18절)
“[16]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오매[17] 다윗이 나가서 맞아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매[18]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견고한 곳에 이르러. - 이는 곧 8절과 같은 상황입니다.
즉 베냐민과 유다자손들은 당시 요새에 거처하던 다윗에게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8절 주석 참조.
다윗이 나가서 맞아(16절). - 여기서 '나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차'는 현재 있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다윗이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이와 같이 한 것은 자신을 찾아온 자들이 사울 왕의 첩자일 것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17절). - 여기서 '손'은 '행위'를 상징하며(욥 16:17;시 7:3;9:16) '불의함'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는 포악한 '폭력 행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베냐민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원한을 살 만한 불의를 도무지 저지르지 아니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 '조상의 하나님'이란 '옛 족장들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이는 무죄한 자를 그 언약대로 인도하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출3:6주석 참조.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무죄함을 강변한 것입니다(Curtis).
한편, '책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카흐'는 법정 용어로서 진상 조사를 통하여 고소하는 행위, 또는 비난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창 31:36;욥 9:23;40:2;미 6:2).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18절) - '아마새' 역시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었으나 30인의 명단(삼하 23장;대상 11장)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4절 주석 참조. 그런데
⓵ 혹자는 본절의 아마새(Amasai)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일 것이라고 주장한다(Kittel, Bertheau)
⓶ 그리고 또 다른 학자들은 아마새가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후에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가 그만 요압에 의해 살해된 '아마사'(삼하 17:25;19:13;20:4, 8)라고 주장합니다(Keil, Barnes, Lange).
위의 두 견해 중 우리는 (1)번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비새(Abishai)는 30인의 두목이 아니라 둘째 3인의 두목이었기 때문입니다(11:20, 21).
반면에 (2)번의 경우는 두 이름들이 철자 상으로 거의 일치하므로 비교적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감동하시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베쉬'는 '옷을 입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성령(聖靈)께서 아마새의 전인격을 감싸 전적으로 자기의 영향력 아래 두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 본절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아마새의 시적(詩的) 찬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라는 말은 과거에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을 뿐 아니라(삼상 18:12 이하) 미래에도 도우실 것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Lange,Keil).
이와 같은 아마새의 찬사는 여호와께서 진정 다윗을 택하셨다는 고백이기도 하였습니다(Myers).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 여기서 '받아들여'란 말은 다윗이 아마새와 그 일행에 대한 편견이나 의혹이 없이 저들을 자기의 편으로 받아들인 것을 말합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나 아마새의 감동적인 시적 설득으로 인하여 저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다윗은 아마새를 그의 주변에 모여든 사백 인 또는 육백 인의 우두머리 중 한 명으로 세운 것입니다.
(2) 다윗은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이스라엘 군대를 치려는 블레셋 군대에 합류하지 못하는데, 이때 므낫세 지파 용사들이 다윗에게 합류하였습니다(19~21절)
“[19] 다윗이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가서 사울을 치려 할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두어 사람이 다윗에게 돌아왔으나 다윗 등이 블레셋 사람들을 돕지 못하였음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이 서로 의논하고 보내며 이르기를 그가 그의 왕 사울에게로 돌아가리니 우리 머리가 위태할까 하노라 함이라[20]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르대이니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21]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도둑 떼를 쳤으니 그들은 다 큰 용사요 군대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다윗이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가서 사울을 치려 할 때에(19절) - 이는 곧 과거 다윗이 블레셋으로 피신하여 시글락에 거주하던 때의 일입니다(삼상 27:1-7).
그때 블레셋과 사울 휘하의 이스라엘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바 다윗은 블레셋 편에 서서 사울을 대적치 않을 수 없는 형편에 빠졌었습니다(삼상 28:1, 2).
므낫세 지파에서 두어 사람이 다윗에게 돌아왔으나. - 갓, 베냐민, 유다 지파에 이어 이처럼 므낫세 지파에서도 몇 사람이 다윗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에게 돌아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 알'은 전쟁 중 지휘관을 배반하고 적에게로 나아가는 배신행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여기서는 사울 왕을버리고 다윗에게 투항한 저들의 망명 행위를 가리킵니다(삼상29:3;왕하 25:11).
우리 머리가 위태할까 하노라 함이라 - 블레셋 방백들이 사울과 전투하기 전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이유입니다.
즉, 이들은 전날 다윗의 용맹을 기억하고 이러한 다윗이 자기들을 배반하여 사울 왕과 화합할 경우 자기들에게 미치게될 화(禍)를 염려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절은 다윗이 사울 왕과 화합할 경우 자기들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그리할 것이라고 우려하던 블레셋 방백들의 말입니다(삼상 29:3, 4).
그들이 이처럼 다윗을 경계했던 까닭은 전날 다윗이 그들과의 싸움에서 보인 용맹성을 그들이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 29:5).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20절). - 이때는 블레셋 방백들의 강한 반발에 못이긴 아기스왕이 다윗에게 참전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다윗과 그 무리들이 다시금 시글락으로 돌아가게 된 때를 말합니다(삼상 29:1-11).
이때는 블레셋 군대가 사울과 접전하기 위해 이스르엘(Jezreel)로 올라갔던 때이기도 합니다(삼상 29:11).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르대이니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 이들은 바로 19절에 언급된 '다윗에게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 곧 지휘자들 이었다고 하니 당시 다윗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들이 돌아온 때는 사울과 그 군대가 블레셋 족속에게 크게 패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직전이었습니다.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도둑 떼를 쳤으니(21절). - '이 무리'는 분명히 다윗에게로 돌아온 므낫세 용사들(19, 20절)입니다.
삼상 30:1에 의하면 이들은 다윗이 없는 동안 시글락을 약탈하고 다윗의 두 아내 및 여인들을 사로잡아간 아말렉 족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때 이 므낫세 용사들 및 다른 용사들의 도움을 받아(삼상 30:7-15) 아말렉 족속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두 아내와 모든 것을 도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삼상 30:18, 19).
그들은 다 큰 용사요 군대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 '큰 용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깃보레 하일'은 '큰 군대'로 번역되기 보다는 '용감한 용사들'로 번역되어야 옳습니다.
한편 여기서 이들은 22절의 '큰 군대'와 달리 다윗에게 모인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Bertheau, Oettli).
즉 문맥상 이들은 므낫세 지파에서 온천부장들(20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Keil, Lange, O. Zockler).
(3)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습니다(22절)
“[22]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 본절은 당시 다윗의 무리들이 육백명을 넘어서 수천 또는 수만 명에 이른 것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당시 다윗의 무리가 사백 명 또는 육백 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에 집착하여(삼상 22:2;27:2) 본절은 저자의 주관적 사고에 의해 기록한 것으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절은 그 이후 다윗의 무리들이 어떻게 크게 늘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길보아 전투(삼상 31장)에서의 패배이후 상당수의 패잔병들이 다윗에게 나아왔다는 분명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절은 분명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Keil, Lange).
한편, '큰 군대'나 '하나님의 군대'에서 '군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하네'는 '진영'(陣營)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군대'란
⓵ 군대의 큰 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Lange),
⓶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군대를 의미하기도 함을 알 수 있습니다(Keil, Payne).
2. 용사들의 숫자(23~37절)
“[23] 싸움을 준비한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24] 유다 자손 중에서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을 준비한 자가 육천팔백 명이요[25]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칠천백 명이요[26]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육백 명이요[27] 아론의 집 우두머리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 있는 자가 삼천칠백 명이요[28] 또 젊은 용사 사독과 그의 가문의 지휘관이 이십이 명이요[29]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아직도 태반이나 사울의 집을 따르나 그 중에서 나온 자가 삼천 명이요[30]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가족으로서 유명한 큰 용사가 이만팔백 명이요[31] 므낫세 반 지파 중에 이름이 기록된 자로서 와서 다윗을 세워 왕으로 삼으려 하는 자가 만 팔천 명이요[32]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33] 스불론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34] 납달리 중에서 지휘관 천 명과 방패와 창을 가지고 따르는 자가 삼만 칠천 명이요[35] 단 자손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이만 팔천육백 명이요[36] 아셀 중에서 능히 진영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사만 명이요[37]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십이만 명이었더라”
23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11:1-3에서 이미 소개된 다윗 왕의 대관식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삼하 5:1-3).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각 지파의 용사들의 명단과 통계는 11:1의 '온 이스라엘', 삼하 5:1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한 자세한 내역(內譯)입니다.
즉 이들은 모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줄 것을 다윗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온 자들이었습니다. 삼하 5:1 주석 참조.
그리고 이들이 다윗에게 나아온 때는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 반을 지낸 때로서(삼하 2:1-11) 본서 저자는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약력을 생략하고 곧 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면모를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저자의 기술 형식은 처음부터 다윗을 신정국가의 영광스런 왕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11:1 주석참조.
이 단락은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이 될 때 그와 함께 한 용사들의 숫자로 여기에는 우다, 시므온, 레위, 베냐민, 에브라임, 서브낫세, 잇사갈, 스볼론, 납달리, 단, 아셀, 르우벤, 갓, 동므낫세까지 14지파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이 될 때부터 다윗을 지지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레위 지파의 경우는 아론과 사독 가문까지 언급하여 제사장 그룹이 다윗 왕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 다윗에게로 나아온 무리들의 총 수효가 340,822명입니다(23절)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23절) - 여기서 '예비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츠'는 '전쟁에 대비하여 장비를 갖춘', 또는 '무장한'이란 뜻입니다. 또한 '군대 장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세'는
(1) '두목', '우두머리'라는 뜻과 함께
(2) '전체', '총계'라는 뜻이 있습니다(삿 5:30;7:16, 20;9:34, 44;삼상 11:11). 그런데 본 문맥에서는 (2)번의 의미, 곧 '전체 무리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Lange, Barnes, Keil).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문맥에서 온 이스라엘의 총수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싸움을 위해 무장한 온 무리들이...'라고 번역되어야 옳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 다윗의 즉위를 보는 저자의 시각(視覺)입니다(11:3).
즉 저자는 이 말을 함으로써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더구나 무장한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더구나 무장한 온 이스라엘의 병사들이 그에게 나온 사실 등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상 대관식 장면에서 보여준 다윗의 피동적(被動的) 자세(11:1-3;삼하 5:1-3) 역시 그의 나라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해 줍니다.
그 수효가 이러 하였더라 - 다윗에게로 나아온 무리들의 총 수효은 도합 340,822명에 이르는 큰 수였습니다.
혹자는 400명 또는 600명에 불과한 다윗의 무리들이 이렇게 큰 수로 불어난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본 문맥이 다윗의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부각시키기 위한 저자의 과장인 것으로 봅니다(Curtis, Thomas, Mazar).
그러나 그러한 시각은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불신앙적 견해와 다름없습니다.
2) 유다 자손 중에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 준비한 자가 6,800명(24절)
방패와 창을 들고(24절) - 여기서 '방패'(친나)는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로서적의 화살을 막기 위해 가지고 다닌 '작은 방패'(마겐)와는 다른 것입니다.
또한 창은 찌르는 살상용 무기입니다.
이후 각 지파에서 무장한 무기들이 소개되는데 이 같은 무기에 대한 기록은 다윗 왕조의 강대한 위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편 이밖에도 그 같은 무기들은 오늘날 성도들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앙의 무기를 시사해 주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카일(Keil)은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 위해 많은 수의 병력을 집결시킬 필요가 없었으나 북쪽 지파들은 다윗을 최초로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병력을 파송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3)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7,700명(25절)
4)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 육백 명이요(26절) - 이밖에도 여호야다가 이끄는 용사 3,700명과 사독의 용사 22명이 더 있었으니(27, 28절) 레위 지파의 용사들은 모두 8,322명이었습니다.
한편 이처럼 성직(聖職)을 맡아 봉사하던 레위인들 가운데서도다윗을 추종하는
용사들이 많았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다윗의 왕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임을 증거해 둡니다.
5)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 그와 함께 있는 자가 삼천칠백 명이요(27절)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지도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야다(Jehoiada)는 대제사장이 아니었다.
당시 대제사장은 이다말의 후손 아비아달이었다(삼상 23:9).
한편, 이 여호야다는 다윗의 시위대장 브나야의 부친임에 틀림없습니다(11:22;27:5;삼하 8:18;20:23;23:20,).
6) 젊은 용사 사독과 그의 가문의 지휘관이 이십이 명(28절)
젊은 용사 사독 - 본절의 사독(Zadok)은 다윗 통치 하에서 아비아달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맡았으며 솔로몬 즉위 때에 단독으로 대제사장직을 맡은 바로 그 사독일 것입니다(삼하 15:24;왕상 2:35;4:4, Payne, Keil, Lange, Curtis). 본절은 그가 다윗의 대관식 당시에 아직 젊은이였음을 일러줍니다.
7)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삼천 명이요(29절)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삼천 명이요 -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가장 적은수입니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 내에는 지파 우월주의에 빠진 실권자(實權者)들이 여전히버티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8)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가족으로서 유명한 큰 용사가 이만팔백 명(30절)
유명한 큰 용사 - 에브라임 지파는 옛부터 용감한 전사(戰士)들로 유명했었습니다. 신 33:17 주석 참조.
한편 본절은 문법상 '본 족속에 따라(according to) 유명한 큰 용사'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B.D.B. Bertheau).
즉 본절은 기질적으로 에브라임지파 가운데서 유명한 용사들이 많이 나왔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9) 므낫세 반 지파 중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만 팔천 명이요(31절)
므낫세 반 지파 중에 이름이 기록된 자 - 본절의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서편에 거주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37절에 요단 동편의 반 지파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여기서 '기록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브'는 '임명하다', '지정하다'는 뜻입니다(민 1:17).
즉 여기서 '기록된 자'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위해 특별히'임명받은 자'란 뜻입니다.
10)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32절)
시세(時勢)를...아는 두목이 이백 명이니 - 이백 명은 당시 다윗에게 나아온 잇사갈 지파 전체의 수가 아니라 다만 지휘자들의 수입니다(Keil, Lange,Curtis).
여기서'시세(時勢)를 안다'는 말은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 또는 통찰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 - 이는 곧 잇사갈 지파가 그들의 판단 또는 지도를 따랐다는 말입니다(창41:40;민 4:27;신 21:5,Keil, Lange).
11) 스불론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33절)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 이는 무장(武裝)을 한 채 전쟁에 대비한 연습을 하였다는 말입니다(Lange, Keil).
때문에 공동 번역은 본절을 '훈련을 받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 - 이는 한 마음, 또는 견고한 마음으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능히 진에 나아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다르'는 '배치하다'라는 뜻으로 모든 용사들이 적군 앞에서 견고한 마음으로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Lange, Keil).
12) 납달리 중에서 지휘관 천 명과 방패와 창을 가지고 따르는 자가 삼만 칠천 명(34절)
방패와 창 - 여기서 방패는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이나 창은 24절의 찌르는 창과는 약간 다른 종류입니다. 24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니트'는 길이가 짧고 던질 수 있도록 고안된 무기를 가리킵니다(삼상18:11;20:33).
대개 이 같은 창은 앞, 뒤쪽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었습니다(삼상 19:9, 10;22:6;26:7;삼하 1:6;2:23;23:21).
13) 단 자손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이만 팔천육백 명(35절)
14) 아셀 중에서 능히 진영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사만 명(36절)
단 지파와 아셀 지파 가운데서 다윗에게로 나아온 용사들의 수는 합쳐서 '육만 팔천 육백 명'입니다.
이는 다른 지파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숫자인데 그들 지파의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다른 지파에 비해 많은 탓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민 26:42-47).
15)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십이만 명(37절)
이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 언급되었습니다.
본서 저자는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를 언급함으로써 모든 백성의 열화 같은 지지 가운데 출발하게 된 다윗 왕조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3. 다윗의 왕위 추대(38~40절)
1) 온 이스라엘이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지지 했습니다(38절)
“[38]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이 모든 군사 - 위에서 언급한(23-37절)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나아온 이스라엘 온무리들을 가리킵니다.
전열을 갖추고 -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라는 뜻입니다.
성심으로 - '온 마음(Whole heart)으로' 라는 뜻입니다.
즉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한 용사들은 모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한 순수한 마음들을 지닌 채 다윗에게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미처 헤브론에 나오지 못한 모든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조차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본 기록은 다윗 왕조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출발한 이상적인 신정 국가(神政國家)였음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사실은 아브넬(이스보셋의 군장)이 죽기 전에 한 말을 통해서도 능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해당 부분인 삼하 3:17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2) 사흘 동안 풍족하게 즉위식 잔치를 벌일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39절)
“[39] 무리가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이는 그들의 형제가 이미 식물을 준비하였음이며”
무리가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 이는 곧 다윗 왕의 즉위를 축하한 3일 간의 잔치를 가리킵니다.
당시 왕이 즉위할 때에는 대관식(왕상1:32-48;왕하 11:12-20),
왕홀(王笏)의 수여(삼하 1:10;왕하 11:12;시 89:40),
기름부음(삼상 9:16;10:1;삼하 2:4;왕하 23:30) 등의 의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때에 백성들은 다 같이 환호하며(왕상 1:34, 39;왕하 11:12, 14) 기쁨의 잔치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들의 형제가 이미 식물을 준비하였음이며 - 여기서 '그 형제'란 이미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한 유다 지파 및 시므온 지파를 가리킵니다. 25절 주석 참조.
이 지파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치를 준비하는 데 동원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잔치에 필요한 제반 물자(物資)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사실은 유다 지파나 시므온 지파가 다른 북쪽 지파에 비해 군사를 적게 소집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25절 주석 참조.
3) 다윗의 즉위식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음식을 보내며 기뻐하는 축제의 자리였습니다(40절)
“[40] 또 그들의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에다 음식을 많이 실어왔으니 곧 밀가루 과자와 무화과 이는 ”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실어 왔으니 - '근처에있는 자'는 유다 지파에 인접해 있었던 지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북단에 위치한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들까지도 음식을 실어왔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행동은 다윗의 즉위를 그들이 진심으로 크게 기뻐했다는 사실을 증거해줍니다.
과자와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 이것들은 팔레스틴의 기본 소산물들로서 히브리인들의 잔치석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삼상 25:18;30:12;렘 40:10, 12;암 8:1).
아무튼 본절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는 잔치가 굉장히 성대(盛大)하였음을 시사해 줍니다.
실상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큰 무리가 사흘 동안 잔치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게 해 줍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음이었더라. - 본절 앞에는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 '키'가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절을 정확히 직역하면 '이스라엘 가운데 기쁨이 있기 때문이더라'가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본절에서 말하는 기쁨은 3일 간의 잔치의 결과 였다기보다 오히려 잔치를 벌이게 된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은 잔치의 음식을 먹음으로 얻었던 것이 아닌 보다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실상 본절의 '기쁨'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심하'는 주로 여호와 안에 있을 때 가지는 기쁨을 나타냅니다(대하 20:27;시 5:11;9:2;64:10).
따라서 이들의 희락은 오직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다윗의 왕 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서 가졌던 순수한 기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희락 때문에 유다 지파 근처 사람들이나 먼 지파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잔치 음식을 날라 온 것입니다.
한편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즉위를 기뻐하여 사흘 동안 '기쁨의 잔치'를 벌였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성도들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곧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성취되는 때이니 바로 세상 끝 날입니다(계 21:1-8).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23-40절 강해, '참된 기쁨의 비결'을 보다 참조하라.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7,29절 사울의 동족인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다윗을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혈연을 따르지 않았고 기회를 쫓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동족 사울을 버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다윗을 따르기로 결심한 자들입니다.
사울은 군대와 권력을 쥔 왕이고 다윗은 도망자였지만 그들은 힘이 아닌 대의(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를 따랐습니다.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혈연, 지연, 학연을 따르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힘이 있는 곳이 아니라 힘을 보태야 할 곳에 계십니다.
8~15,20,21절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용사들도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갓 지파는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은(8절) 실전에 익숙한 전사들이었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다윗을 도와 ‘도둑 떼를 친 큰 용사’였습니다.
그들은 일찌감치 요단 동편에 터를 잡았지만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정복의 선봉에 섰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왕위 다툼이 직접 이해관계에 있지 않았기에 강 건너 일을 불구경하듯 지켜보다 승리한 편에 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들은 옳은 편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를 용인함으로 불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 나와 우리 공동체의 가담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16~19절 베냐민과 유다 족속의 용사들이 왔을 때, 다윗은 그들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다윗을 속인 자에게 하나님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 선언합니다.
이에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은 ‘다윗과 연합한 이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연합의 끈은 하나님이시고, 연합의 목표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블레셋은 함께 연합할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19절). 나는 누구와 어떤 단체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고 있습니까?
22~40절 각 지파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23절)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기도]
공동체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악에 대항하는 군사로 살게 하소서.
열방 브라질에서는 살해 사건의 90%가 미제 사건이고, 많은 범죄 사건들이 신고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범죄 사건을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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