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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꽃
이현수
누구에게나 일생에 한번쯤은 쥐어짜면 붉은 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강렬한 순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선명하고 짙어서 두 눈이 뽑힐 것 같은 그런 시간이 자기도 모르게 지나갔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수렁에 발을 빠뜨린 것처럼 허둥대다가 진흙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턱턱 막히게 될 즈음에야 어렵사리 수긍하겠다. 홍수가 잠든 마을을 삼키듯이 소리도 없이 왔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뒤통수를 치고 가버려서 다들 그 순간을 선연한 핏빛으로 기억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무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안채가 돌아앉아 있어서 대문께의 기척을 들을 수는 없지만 마당에 깔린 흰 잔돌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만이 자네 왔나 하는 뜻으로 잠깐 고개를 들었을 뿐 그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무관심쯤이야 아랑곳 없다는 얼굴을 하고 성큼 마루로 올라섰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방으로 쑥 들어갔다.
"고치려면 며칠 걸리겠는데요."
안방의 텔레비전을 안고 마루로 나온 그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 안되는데. 애들이 봐야 하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텔레비전을 안고 나가던 그가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마루를 닦는 중이었고 올케는 도마질을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의 수상쩍은 거동을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굳어졌던 그의 얼굴과 목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1분이나 2분쯤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노르께한 피부에 꽃물이 드는 걸 보고 있자니 민망해져서 나는 눈길을 창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부는 지 마당엔 함박눈이 사선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내려 일정한 간격으로 찍힌 그의 발자국이 대부분 지워지고 뒤축이 움푹 들어간 자리만 희누르스름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뒷목에서 선뜩한 기운이 느껴진 것은. 깜짝 놀랄만큼 차가운 게 빠른 속도로 뒷목을 타고 등줄기로 내려간다고 느낄 즈음, 다행스럽게도 굳었던 몸이 풀린 모양이었다.
"가게에서 보던 티브이 가져다 드릴 테니 고치는 동안 보세요."
과일 씨를 뱉듯 나오는대로 툭 던지곤 그만이었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몸을 숙여 한쪽 팔꿈치로 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안은 자세 그대로 뒤로 돌더니 슬몃 열린 현관문을 엉덩이로 닫았다. 마루에는 여자들이 세 명이나 있었고 건넌방엔 두 남자가 있었지만 누구도 그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올 적에도 그랬듯 현관을 나서는 그의 등에 대고 수고했다거나 잘가라거나 하는 흔히 할 법한 인사치레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오면 오는구나 가면 가나보다, 무심히 그를 맞고 무심히 그를 보냈다. 그가 닫았으니 보지 않아도 문은 완벽하게 닫혀졌을 것이다. 한 줄기의 바람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어서 가족들이 모였다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난 후에 그가 가게에서 보던 텔레비전을 가져와 코드를 꽂고 만화영화를 연속으로 내보내는 유선방송에 채널을 고정시키자 그를 에워싸고 있던 크고 작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서비스 하나는 끝내주네요. 수리하는 동안 보라고 자기 가게에서 보던 티브이를 손님 집에 달아주는 사람은 아마 저 사람밖에 없을 거예요. 그것도 이 추운 날에 발품을 두 번씩이나 팔면서요."
올케는 세심한 그의 배려에 감격한 모양이다.
"그분 이름이 뭐죠?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그의 이름? 나는 알고나 있느냐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건너다보았다.
"글쎄다. 대전 전파사 작은 총각 아니냐."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지만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나 역시 그의 이름은 고사하고 나이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보다 한두 살은 아래로 보여 그 정도 되었겠거니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우리 집의 온갖 것들을 세세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제가 시집와서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땐 먼 친척이거나 아니면 그분의 부모님이 우리 집 드난살이를 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머님과 형님이 그분을 대하는 품으로 봐선 그런 것 같지도 않구요. 이도저도 아니니까 궁금하잖아요. 누구예요, 그분은?"
"아무도 아냐. 그냥 친한 이웃이라고 알면 돼."
올케는 그와 우리의 관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남편과 남동생과는 달리 집요한 데가 있었다. 남편도 올케처럼 그가 궁금한 눈치였고 양자로 들어온 남동생도 그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올케처럼 캐묻지는 못했다. 지나가는 말로 누구야? 하고 물었을 뿐이다. 그때도 나는 그랬다. 아무도 아니라고. 사실 따지고 보면 남편이나 양자로 들어온 남동생이 할 일을 그가 대신하는 셈이었다. 두 남자가 새로운 가족으로 들어왔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를 불렀다. 남편과 남동생은 퓨즈도 제대로 갈아끼우지 못하는 위인들이었다. 그러니 무슨 염치로 캐물을 수가 있겠는가. 집을 둘러보면 벽에 박힌 못이나 마당의 빨래줄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우리는 하수구가 막혀도 그를 불렀고 물이 새어나와도 그를 불렀다. 어느 날엔 철물점에 들러 굵은 철사를 사가지고 왔고 또 다른 날에는 점심을 먹다말고 페인트 통에 방수액을 넣어가지고 뛰어 왔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을 우리는 여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가 없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열대여섯 살이나 먹었을까. 얼떨결에 딸려온 실뭉치 같은 몰골로 마루 끝에 걸터앉은 그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삼십년이라니. 이제 그도 하루가 다르게 흰머리가 늘어나고 오랫동안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우두둑, 무릎 관절이 꺾이는 소리에 무참해질 나이가 되었다.
"형님!"
올케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흘러넘친 물에 부엌바닥이 흥건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려고 물을 틀어놓은 것도 모르고 개수대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스웨터 앞자락이 흠뻑 젖어 밑으로 늘어져 있었는데도 나는 축축한 기운도 옷이 무거워졌다는 것도 느끼질 못하고 있었다. 젖은 스웨터를 갈아입고 마른걸레로 부엌바닥을 닦고 있으려니 난데없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은 그를 '대전 전파사 작은 총각'이라고 불렀다. 사장이었던 형이 대전으로 이사를 가고 그가 전파사의 새로운 사장이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를 '대전 전파사 작은 총각'으로 불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엄연히 처자가 딸린 아저씨인데도 말이다. 삼거리에 대전 전파사를 차린 건 그의 형이었다. 가랑비가 질금질금 내리던 늦가을 저녁, 삼거리를 지나던 아낙 하나가 간판을 달던 형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도처에 물안개가 자옥하게 끼여 사물을 구분하기가 힘들었지만 낡은 간판들 틈새에 낀 대전 전파사 간판은 새것이어서 가로등 불빛에 유난히 번들거렸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토바이에 부속품을 싣고 마을을 누비며 고장난 가전제품을 고치던 형은 노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젊은 사람이 붙임성이 있다고들 했다. 제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그는 타지사람이었다. 암암리에 배척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고장 처녀에게 장가를 들고나서야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했다. 그가 형을 따라 우리 집에 오던 날은 불볕이 따갑던 복중이었다. 그들 형제가 더위에 지친 후줄근한 몰골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우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건져 올렸다. 부엌에서 꺼내온 칼을 장독 뚜껑 모서리에 쓱쓱 문지르고 나서 수박을 절반으로 쪼갰다. 한눈에 봐도 무딘 식칼이었다. 형은 보름달처럼 잘린 수박을 덥석 베어물었다.
"가게 일거리가 늘어나서요."
입가에 흐르는 과즙을 소매부리로 문질러 닦던 형이 마루 앞에 어정쩡히 서 있는 그를 가리켰다. 비쩍 마른 몸에 값싼 나일론 셔츠를 걸친 그는 사람들이 함부로 쓰다가 내돌리는 몽당빗자루 같았다.
"동생인가 보네."
"네."
"중학교는 마쳤는가?"
"졸업하자마자 불렀습니다. 입도 덜겸 기술이나 가르쳐 볼까하구요."
"한 가지 기술만 있으면 밥걱정은 안해도 되지. 그나저나 군식구가 늘어 자네 색씨가 고생이겠구먼."
그는 이마가 앞가슴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수그린 채 자신이 들고온 공구통만 만지작거렸다. 14인치 흑백텔레비전과 리디오를 고치는 형 옆에 붙어앉아 십자드라이버나 나사를 집어주기도 했다. 그의 뒷목이 어찌나 가는지 내 눈엔 배배 말라비틀어진 오이처럼 보였다. 간신히 중학교만 졸업하고 한 입 덜기 위해 형에게 얹혀살게 된 말라깽이 촌놈인 그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치는 형에게 내 시선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들 형제는 가고 없었다. 어머니는 대전 전파사 작은 총각이 저희 형보다 속이 깊다고 했다. 소리도 없이 식칼을 갈아놓고 갔노라고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대전 전파사 작은 총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는 가전제품을 고치러 올 적마다 남자 손이 필요한 자질구레한 일을 덤으로 해주고 가곤 했다. 숫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가 어떻게 덤으로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했는지 어머니가 차린 밥상 앞에 스스럼 없이 앉을 수가 있었는지 그건 모를 일이었다. 한창 자랄 나이에 형수 손에 얻어먹는 눈치밥이 오죽하겠냐며 밥상을 따로 봐주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잔정이 많거나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그 시절 나이 든 어른들은 다들 품이 넉넉했다. 정육점에 고기를 한 근 끊으러 가도 집집마다 주는 고기의 양과 질이 달랐다. 없는 집이나 식구가 많은 집은 비계를 적당히 섞고 곱창이나 허파 따위의 부산물을 한 덩이씩 얹어주고 식성이 까다롭거나 식구가 단출한 집은 연한 살코기를 주었다. 젊은 여자가 삼거리에 야채가게를 새로 차렸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파는 콩나물의 양도 달라졌다. 첫날은 일률적으로 양이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을 집는 여자의 손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거였다. 그런 시절이었으니 몽당빗자루 같은 그를, 시키지 않아도 이일저일 찾아내서 곧잘 할줄 아는 기특한 남자애한테 밥상을 차려주는 건 마을에서 흔한 일이었다.
하교길에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해 돌아보면 형의 허리춤에 매달린 그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흔들리는 철제 공구통도 그들의 존재도 비포장 도로에 뽀얗게 날리다 사라지는 먼지처럼 내겐 그때뿐이었다. 새로 사야할 노트나 볼펜만큼도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쟁반에 담긴 과일껍질이나 물린 밥상의 흔적 따위로 그가 다녀갔다는 걸 알았다. 그가 남긴 것들. 잘 빠지지 않던 속옷서랍이 매끄럽게 빠진달지, 굴러다니던 송판 쪼가리로 만든 의자가 나무그늘에 되똥하게 놓여 있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솜씨도 늘어나 대문에 칠을 하거나 깨진 기와를 갈아끼운다거나 하는 덩치 큰 바깥일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남주긴 아까운 아인데. 부족한 딸이 하나만 더 있었더라도."
그가 왔다가면 어머니는 그를 가족으로 들어앉히지 못해 안달을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만들어준 나무의자에 앉아 편히 쉬면서도 조금도 고마운 줄을 몰랐다. 쑥쑥 빠지는 속옷서랍을 잘도 여닫으면서도. 차곡차곡 개켜진 속옷을 조심스레 꺼내질 않고 손에 집히는대로 꺼내입어 마구 헝클어진 속옷을 그가 봤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질 않았다. 그는 있으되 보이지 않았고 존재하되 없는 사람이었다. 내 시선은 눈앞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그라는 존재를 단숨에 통과해 번번이 그의 등뒤에 있는 벽이나 액자에 고정되곤 했으니까.
이런 나완 달리 그는 나의 모든 것을 봤을 수도 있다. 탱탱하게 여물어 가는 가슴, 조금씩 넓어지는 등, 어떤 사이즈의 속옷을 입는지 보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보였을 것이다.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 티를 입고도 예사로 그를 대했고 치맛자락이 말려올라가 허벅지가 드러나도 재빨리 치맛자락을 쓸어내리려는 동작을 취하지도 않았다. 나는 동네 할아버지 앞에서도 그의 앞에서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기는 집도 마찬가지였다. 바쁜 일이 있으면 어머니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에게 열쇠까지 맡겼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어디를 고치라고 하면 그는 대문을 따고 들어와 집안을 휘휘 둘러보곤 일거리를 찾아 뚝딱뚝딱 고치고 나서 다독거릴 것들은 살뜰하게 다독이고 갔다. 비라도 올 기미가 보이면 마당에 내어널은 고추며 빨래를 걷어두고 가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차츰 반경을 넓혀 도시로 유학간 내게까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대학에 입한한 뒤에도 그의 보살핌은 계속되었다. 서울까지 달려와 벽에 못을 치고 틀어진 문짝을 손보고 망가진 헤어드라이어를 고쳤다. 겨울이면 외풍이 심한 셋집의 창문에 비닐을 덧대어 주었고 여름에는 '쫄대'라고 불리던 가는 막대로 방충망을 치고 가기도 했다.
"거래처에 온 김에 들른 길인데 어디 고장난 데 없어요?"
그때는 쓰던 물건이 고장나기보다는 마음이 자주 고장이 나있곤 해서 작은 구멍가게에 불과한 전파사가 서울에 무슨 거래할 일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궁금해할 여력도 없었다. 그는 말했다. 수금할 것이 있다고, 도매상에 물건하러 올라온 길이라고. 시골 구석에서 가전제품을 얼마나 많이 팔길래 물건하러 서울엘 다 오는 것이며 어찌하여 수금이 서울에까지 깔려 있었던 것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질 않았다. 간판이 대전 전파사였듯 그의 주 거래처는 대전에 있었는데도.
"이거 어머니가 갖다드리래요."
그의 손에는 김치통이나 밑반찬이 담긴 올망졸망한 짐들이 들려 있었다. 나는 김치통이나 밑반찬에 표하는 관심의 반의 반만큼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자기가 앉을 자리는 없다는 얼굴로 선 채 방과 부엌을 둘러보곤 했다. 고장이 났거나 부서지려고 하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것들을 짧은 시간 내에 어쩜 그리도 귀신같이 찾아내던지. 선 자리에서 부서진 곳을 찾아내 후딱 고치고는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릴 때가 많았다.
불편한 데 없어요?
고칠 거 또 있습니까.
서울 셋집까지 찾아와 고장난 데가 있느냐고 물어봐주면 온돌방에 발을 들인 것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는데도 나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그에게 밥 한끼 따뜻하게 먹여 보낸 기억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밍밍한 얼굴로 그를 맞고 그를 보냈을 것이다. 제발 그에게 시원한 음료수라도 대접했기를,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서 보냈기를, 암만 머릿속을 헤집어보아도 그에게 일한만큼의 대가를 지불한 기억이 내겐 전혀 없었다. 대가는 고사하고 저축한 돈을 찾아쓰는 사람처럼 당당하기까지 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와 우리의 관계를 두서없이 말하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올케가 매 듭을 짓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날카로운 죽창에 심중을 꿰뚫린 것마냥 저릿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스테인리스 개수대에 흩어진 물방울들이 도르르 굴러들어와 가슴에 차게 맺히는 것 같았다.
"저어 형님, 혹시……."
올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곤 황급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딱히 꺼낼 것도 없는 눈치였다. 냉장고 안에 든 반찬통을 이것저것 뒤적거리기만 했다. 나는 올케가 하지 못한 말을 알고 있었다. 무심결에 운을 떼고는 당황해서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는 올케처럼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실마리를 찾아 머릿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느 한 순간, 벌건 그의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왜? 왜? 왜?
확 붉어진 얼굴로 두 주먹을 쥐고 쏟아놓던 말.
당신이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아슴푸레 풀어진 기억의 끄트머리를 용케 끄집어 냈다. 생애 단 한 번, 그가 내게 대든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그가 역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았다. 그도 어디론가 가기 위해 역에 나온 길이었을 것이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앞뒤 생각없이 어?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동작을 크게 해서 손을 흔들었다. 엉겁결에 손을 흔들었지만 곧 자신의 행동에 수줍어졌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역사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그 시절엔 누구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 흔드는 그를 보지 못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을 때 머쓱해진 그의 손은 벌써 아래로 내려진 후였다. 난 그가 내게 인사를 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을 무시로 들락거렸지만 대화를 나눠 본 사이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친한 사람이지 나와 친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거 말고 고장난 거 또 있습니까. 그가 하는 말이라는 게 고작 그 정도였니까. 그것도 날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입은 치마나 의자나 방바닥에 시선을 던지고 머뭇머뭇 말하곤 했으니까. 그는 집에서 만나면 아는 사람이지만 길에서 만나면 모르는 사람이었다.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나누질 않았다. 그건 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설혹 손 흔드는 그를 보았다고 해도 내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구나 잇몸을 환하게 드러내며 다정하게 웃는 그라니.
그가 내게 인사를 한 게 아니라고 단정하고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지나쳐 매표구로 갔다. 차표를 사며 그에게도 저런 얼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했을 뿐이다. 역에 있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그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돌아서서 빙그레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제서야 아차, 싶어 돌아봤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변해버린 뒤였다. 처음부터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에겐 여드름 자국 숭숭한 사내녀석이 새침한 여자애한테 수작을 걸다가 퇴짜를 맞은 걸로 보였을 것이다.
역사 뒤 후미진 곳으로 불려나간 나는 돌연한 그의 행동에 말을 잃었다. 왜? 왜? 왜? 내 인사를 받아주질 않습니까. 당신이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불타는 얼굴로 덤비듯 따지는 그를 오래 쳐다볼 수가 없어서 담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샐비어에 눈을 주고 멍하니 있었다. 쨍한 햇볕에 화르륵 불이 붙을 것 같은 샐비어나 그의 얼굴이나 붉디붉기는 매 한가지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분란 때문이었다고, 금기의 구역으로 정해진 곳들을 샅샅이 섭렵하고픈 열망 탓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노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당신을 보지 못했노라고, 당신에게 부러 무안을 주기 위해 혹은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당신이 부끄러워 모른 체한 게 아니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고개를 들면 머릿속을 단단히 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가 화산이 터지듯 날아가 버리고, 그리고 나면 안간힘을 다해 다지고 잠재워두었던 열망들이 파죽지세로 솟구쳐올라와 정말이지 나는, 나를 걷잡을 수 없을 듯 하여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거라고 머릿속 코르크 마개가 열리지 않게끔 땅만 보고 다니는 거라고 그가 알아듣게 조근조근 말하지 못했다. 속에서 바글거리던 말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공중으로 흩어져 버려서.
때맞춰 기차가 들어왔다. 천둥치듯 들어오는 기차를 보곤 플랫폼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가까스로 출발하는 기차에 뛰어올라 난간의 손잡이를 잡고 역사 뒤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탄 기차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기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서 역사 뒤에 붙박인 말뚝처럼 보이던 그도, 둘둘 뭉쳐진 샐비어의 붉은 빛덩어리도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나는 간혹 내가 인간이 아니고 기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을 다스릴 수가 없을 때는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통제가 되는 로봇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내딴엔 튼튼하게 조였다고 생각했던 잠금장치가 예고도 없이 풀리는 바람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고 기계라면 뚜껑을 열고 잠금장치가 제대로 조여졌는지 점검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아까만 해도 그랬다. 텔레비전을 안고 나오다가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몸이 굳어졌다. 그 꼴을 기와집 아주머니에게 들키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기와집에 발걸음도 하지 못할 뻔했다.
"텔레비전만 갖다줄 게 아니고 가게에 있는 물건들 몽땅 실어다 주지 그래요."
기와집 말만 나오면 눈에 쌍불을 켜는 아내였다. 오늘은 가게에 손님도 없고 해서 일찍 안채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와 브라질이 하는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보나마나 질 게 뻔한 게임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지켜볼 작정이었다. 인생에서는 이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지만 축구에서는 기대를 품어봄 직도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축구니까 말이다. 채널을 맞추려는데 코미디 프로를 보고 있던 아내가 이마를 찌푸리며 가게의 텔레비전은 어쩌고 안채로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텔레비전을 고치는 동안 보라고 기와집에 갖다주었다고 했더니 대뜸 눈썹꼬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덤볐다. 저녁때가 지났는데도 저녁할 생각은 안 하고 축구가 끝날 때까지 옆에 붙어앉아 고시랑거렸다. 기와집 양자의 결혼식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사가 사나워지려고 한다. 기와집에 가서 전 좀 부치랬다고 안색이 하얗게 변하던 아내였다.
"기와집 일에 나까지 끌어들일 생각 말고 당신이나 열심히 충성하구랴."
물론 나는 혼주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뒷일을 봐야할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혼식 당일날 해야하는 일이다. 결혼식 하루 전에는 여자 손이 필요한 일들이 기와집 부엌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텐데 저러구러 방구들만 지고 누웠으면 뭘하나 싶어 슬쩍 말을 건네봤더니 예상대로 아내는 엉덩이도 들썩거리지 않았다. 정에 굶주리고 산 나에게 마음 비빌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이 기와집 아주머니 아닌가. 그걸 뻔히 알면서도 아내는 끝내 기와집엘 가지 않았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고생만 시킨 게 미안해서 꾹 참았다.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데는 아내의 공이 컸다. 그런 탓에 아내가 종알종알 볶아대도 무던히 참아넘기는 편이다.
양옆에 붙은 가게를 사들여 확장공사를 하고 통유리로 갈아끼우기 전, 대전 전파사라는 간판과 썩 어울리던 구멍가게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 가게 왼편에는 모서리마다 긁힌 자국이 선명한 철제 책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속지의 테두리가 인주처럼 붉은 두 권의 장부와 공구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새로 출고된 가전제품보다는 기름때가 낀 부속품들이 훨씬 많이 쟁여져 있던 가게. 무더운 여름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벽에 붙은 선풍기가 덜덜덜 돌아가고 한겨울에는 우그러진 양은주전자에서 끓는 보리차 소리가 문밖으로 사정없이 빠져나오던 곳. 가운데가 우묵하게 들어간 바닥을 길과 같은 높이로 돋우고 나무로 된 네 개의 유리문을 알루미늄 새시로 바꾼 건 아내와 결혼하고난 후의 일이었다. 유리문은 사철 말갛게 닦여 있고 집과 가게 안팎이 청결했으며 아내는 누구보다도 자주 가게 앞에 물을 뿌려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몸이 잰 아내는 성격마저 사근사근해서 사람들은 내게 처복이 있다고들 했다.
"기와집 딸도 내려왔겠네…… 맨날 뚱해 가지고…… 여자라고 고분고분한 맛이 있길 하나.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영 밥맛이야."
내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아내는 명혜 씨를 깎아내리지 못해 야단이다. 막돼먹은 여자는 아닌데 명혜 씨에게만은 가시부터 박고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저게 뭘 알고 저러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뜨끔했지만 그렇다고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명혜,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부르면 파릇파릇 봄물이 드는 것만 같은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큰딸을 낳을 때 아내는 산통으로 무진 고생을 했다. 양수가 터지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나올 생각도 하질 않았다. 양수도 없이 마른 아이를 낳느라고 연신 비명을 질러대는 아내를 보다못해 남자에겐 출입이 금지된 산실까지 들어가 아내의 손을 잡고 같이 힘을 주었다. 아내는 엄마를 부르며 용을 쓰다가 바드득 이를 깨물다가 혼절을 하기도 했다. 이러다 사람 잡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보건소가 떠나가게 고함을 질렀더니만 보건소에 상주하는 젊은 의사가 들어와 분만촉진젠가 뭔가 하는 주사를 아내의 팔에 놔주었다. 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아내의 몸부림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산통이 극에 다다르던 순간 아내가 한 욕을 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씨발놈!"
아이가 세상에 나오려고 머리를 자궁밖으로 막 내밀던 그 순간에, 아내는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자신의 온 힘을 끌어모아 내게 씨발놈이라고 욕을 했다. 산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의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새어나온 욕이라면 발음이 그토록 정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하고 싶었던 욕이 하필이면 왜 씨발놈이었을까. 아내에게 욕을 들어도 싸지만 그렇다고 죽을 죄를 지은 건 아니다. 하늘에 맹세코, 난 명혜 씨에게 욕정을 품어본 적이 없으니까.
대전 전파사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유리문을 여러 번 두드렸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가게에 불을 켜두고 나간 걸로 봐서 멀리 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유리에 얼굴을 박고 가게 안을 훑어 보았다. 김치냉장고와 에어컨, 세탁기, 가스오븐레인지, 시디 플레이어, 전기압력밥솥. 가전 삼사에서 나온 각종 제품들이 가게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계산대와 마주 보이게 놓인 장식장 아래 네모난 공간이 눈에 띄었다. 텔레비전 한 대가 들어가면 딱 맞을 공간이다. 그가 우리 집에 가져온 텔레비전이 놓였던 자리일 것이다. 가장자리와 가운데 절반이 컴컴해서 한층 우멍해 보이는 공간을 나는 눈이 시리도록 쳐다보았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저 네모난 공간처럼 빈 채로 남은 그의 마음을 기어코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이. 다리에 쥐가 나도록 서 있었는데도 그는 오지 않았다. 다리를 두드리며 전파사 앞에 서 있는데 호프집에서 나온 남자 둘이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며 지나갔다.
어쩌면 그가 없는 게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가게에 있었더라면 나는 열에 들뜬 얼굴로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생전 가게 근처에도 오지 않던 내가 밤중에 나온 걸 보고 당황한 그는 더듬거리며 소파에 앉으라고 권할 것이고, 뭐든 대접을 해야하는데 있는 건 커피뿐이어서 낭패한 얼굴로 서 있다가 별수없이 서툰 솜씨로 분말커피를 탈 것이다. 나는 커피를 탈 동안도 기다리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의 등에 대고 말할 지도 모른다. 앞뒤에 놓인 말을 전부 잘라먹고 삼십년의 세월을 단숨에 건너뛰어 한다는 말이, 이제는 너무 많이 쓰여 나달나달 해지고 뜻조차 모호해진…… 미안합니다…… 정도겠다. 그는 차스푼에 담긴 분말커피를 반은 흘리고 나머지 반만 간신히 종이컵에 넣는 중이거나 아니면 차스푼을 놓치고 돌아서서 본래도 커서 겁이 많게 생긴 눈을 한층 크게 치켜뜨고 날 쳐다볼 지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을 정돈해서 말을 한다고 해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이 정도겠다.
미안해요. 삼십년 동안 한번도 당신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아서 미안해요. 당신은 늘 내 옆이나 뒤에 있었는데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서 미안해요. 길을 가다가 팔을 조금만 부딪쳐도, 이웃집 여자의 작은 호의에도, 식당의 서빙하는 종업원에게도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하면서 당신에게만은 그러질 못했어요. 당신을 향해 웃은 적이 없고 고맙다고 말한 적도 없으며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는 말로써 내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실패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휘를 총동원한다고 해도. 그가 요행히 말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이해한다고 해도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매우 높아서 내 뜻이 고스란히 전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들을 그도 내게 말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도 나처럼 말하지 못할 테니까.
큰딸은 이상하게도 명혜 씨를 많이 닮았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딸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하마터면 명혜냐고 부를 뻔했다. 허리에 두두룩하게 살이 오르고 눈밑에 잔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지금의 명혜 씨가 아닌 그 옛날 기와집 명혜. 귀밑을 덮을락말락한 차랑차랑한 참머리도 그랬지만 교복을 입은 태가 영락없이 명혜를 빼다박았다. 그녀에 관한 기억이라면 어느 것 하나 선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단발머리 중학생, 종종 땋아내린 갈래머리 여고생, 섬머슴애처럼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닌 대학시절, 만삭이 되어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던 뚱뚱한 뒷모습까지도 금방 본 것처럼 되살려낼 수가 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요새 한창 뜨는 여배우가 나오면 아내는 저 여자가 예쁘냐고 묻는다. 나는 속으로 그녀보다 예쁘다거나 그녀보다 못하다고 대답을 한다. 세상엔 그녀보다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 있고 흰 사람이나 검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그녀는 세상을 보는 내 잣대 구실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여자가 명혜, 바로 그녀니까.
그녀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 내겐 더 없는 행복이고 내가 숨을 쉴 때 그녀도 다른 곳에서 숨을 쉬고 있겠거니 여기면 마음이 물속처럼 고요해진다.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녀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해질 때가 있다.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잘근잘근 깨무는 검지손가락,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많이 닳는 구두 뒤축, 어색하고 멋쩍을 때마다 콧등을 찡그리며 손을 이마에 갖다대는 습관, 나는 그녀의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녀가 자라나는 걸 봤고 늙어가는 모습도 봤다. 이러면 된 것 아닌가. 사랑이 무어 그리 대수인가.
어린 시절, 갖고 싶은 걸 가져보지 못한 아이여서 나는 포기하는 데도 도가 텄고 아픈 데도 이골이 나서 여간 아파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인생, 인생, 하지만 거미줄 투성이의 지루한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햇빛이 쨍하게 드는 날은 기껏해야 일년에 두어 번도 안된다는 걸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 느낀 것도 아니다. 잡초처럼 거칠게 살아온 날들을 밑천삼아 감으로 때려잡은 것이다. 인간처럼 불공평한 게 어디 있으랴. 나는 내 인생이 불리하다는 걸 일찍이 간파해 버렸고 그녀도 내 몫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종종 가당찮은 꿈을 꾸기도 한다. 그녀가 날 위해 더도덜도 말고 따뜻한 밥 한 그릇만 지어준다면, 맛갈스런 반찬을 앞으로 밀어주거나 생선가시를 알뜰하게 발라주는 그녀의 손을 내 생전에 볼 수만 있다면, 그녀를 쳐다보고 가슴 조렸던 날들이, 체한 것처럼 명치 끝에 얹혀 있는 것들이 일시에 녹을 것만 같다. 맺힌 마음은 그런 꿈이라도 꿔서 달래기라도 하련만 때없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는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게 화근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소리쳐 부를 때 나사가 풀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봤을 때 급기야 잠금장치가 고장나고 말았다. 생전 가게 근처에도 오지 않던 그녀가 가게로 나온 걸 보고 전기 합선이 된 것처럼 스파크가 일면서 내 안의 무엇인가가 터져 버렸다. 북받치는 감정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화두처럼 품고 살아왔던 파꽃 얘기를 하고야 말았으니. 그 해 여름 마당 가에 울려퍼지던 파꽃이라는 명랑한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데, 그때부터 파꽃은 사시사철 내 안에서 꽃을 피웠는데,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 이제 그녀를 볼 수도 없고 금방 감은 머리에서 풍기는 샴푸 냄새를 맡을 수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팍팍해질 지도 모르겠다.
몇 번 더 유리문을 두드렸다. 텅텅거리는 낮고 묵직한 소리가 가슴을 옥죄며 파고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밤하늘엔 별도 뜨질 않았다. 어느 새 눈이 그치고 찬 바람만 날카롭게 부는 거리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누군가 황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뜻밖에도 그가 전파사 앞에 있었다.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왔더니만."
나는 그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반갑기는커녕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문을 일찍 닫네요."
"겨울밤엔 해가 짧아 손님이 빨리 끊기거든요."
손바닥을 비비며 어색하게 서 있던 그가 쌍화차를 내왔다.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질 않고 문이 밖으로 잠긴 줄만 알았어요."
"안채에 들어가 쉬느라고 문을 안에서 잠군 거였어요."
"방해가 된 셈이군요."
"안그래도 가게에 나오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테레비 말고도 손볼 게 몇 개 더 있거든요."
고맙게도 그는 내게 어떻게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쌍화차를 후룩후룩 마시더니 곧장 안방의 텔레비전을 꺼냈다. 그는 익숙한 손길로 텔레비전 뒷면의 고정된 나사를 풀기 시작했다. 작업대는 소파와 두어 걸음 떨어져 있어 시선 두기가 한결 편했다.
"일하는 게 재미있나 봐요."
납땜인두로 텔레비전 뒷면을 지지는 중이어서 연기가 몹시 나는데도 그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재미있다기보단 하면 할수록 저한테 맞춤한 일 같아요. 기계 냄새, 기름냄새가 편하게 느껴지거든요 처음엔 배가 고파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이 일이 좋아졌어요. 기계는 손이 간만큼 고쳐지고 무엇보다 사람처럼 속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마음에 들어요."
"내 눈엔 복잡해 보이기만 하는 걸요."
"전기 회로나 계기판, 여러가지 전선이 붙어있어서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를 알고 나면 의외로 간단해요. 저는요. 나사가 빠졌거나 전선이 꼬였거나 끊긴 걸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탁하지 않은 것도 고칩니다. 고쳐달라는 것만 손보면 한두 달 지나서 다시 부를 게 뻔히 보이거든요. 장사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절로 손이 가는 걸 어쩌겠어요. 사람 일이라는 게 이상도 하지요. 고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고쳐줘 손해를 볼 것 같은데도 한참 뒤에 따져보면 그게 외려 남는 장사였으니."
쌍화차만 마시고 일어설 작정이었다. 여기 올 때 마음과는 다르게 바람 쐬러 나왔다가 들른 것처럼 하고 일어서야지, 했다. 그에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 나나 마흔이 훌쩍 넘은 터수에 그런 걸 물어보기도 열적은 일이기도 해서 그냥저냥 지내고 말자고 마음을 다스렸다. 뜨거운 쌍화차를 마셨더니 얼었던 속이 풀렸고 가게 안의 더운 공기에 몸이 녹진거렸다. 따뜻한 이곳을 두고 바람 부는 거리로 나갈 일이 꿈만 같기도 했다. 소파에 등을 깊숙이 묻고 하릴없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텔레비전을 고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훔쳐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맙다는 말이 불쑥 나왔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줘서 고마워요. 내색은 안하지만 어머니도 무척 든든하게 생각하고 계세요."
"제가 뭘한 게 있다구요."
"우리한테 얼마나 힘이 되는데요. 그런데도 어머니와 난 거기가 고마운 거 잊고 살 때가 많아요."
"그 말은 어머니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무심해 보여도 속이 깊은 분이세요."
"필요할 땐 가족처럼 대하고 그렇지 않을 땐 남처럼 대하기도 하고, 차라리 남이라고 생각했다면 예의라도 지켰을 텐데. 거기 기분은 생각지도 않고 우리 편한대로만 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실은 그렇게 대해주는 게 저도 편해요. 그쪽 집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속으로는 남이라고 생각 안하고 살거든요."
납땜을 하던 그가 일손을 놓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화약 냄새가 코끝을 확 스쳤다. 찢어진 비닐봉지가 유리창에 붙어 한동안 머뭇대더니 제풀에 날려 사라지고 바람이 문득문득 가게 유리창을 흔들며 지나갔다. 그의 눈이 작아지는가 싶더니 눈꼬리가 점점 아래로 처졌다.
"그쪽은 배고픈 거 모를 거구만요. 무섭다 무섭다 해도 세상에 배고픈 것처럼 무서운 건 없네요. 어릴 적 내 소원은 밥을 실컷 먹는 거였어요. 그러다 형이 이곳에 전파사를 내면서 따라왔고요. 형수한테 밥을 얻어먹을 때는 눈치밥이라 먹고 돌아서면 금세 배가 꺼지대요. 그래서 그쪽 집에도 자주 갔던거구요. 어머니가 내 밥하고 그쪽 밥을 다르게 펐던 거 모르고 계시죠. 그쪽 밥은 밥알을 살살 흩어서 봉곳하게 푸고 내 밥은 한 숟갈이라도 더 들어가게 주걱으로 꾹꾹 눌러 담아주누만요. 밥그릇이 크면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밥은 그쪽이랑 같은 그릇에 담고요. 첨엔 밥만 보이더니 나중에는 집이 눈에 들어오대요. 식구 많은 곳에서 북적대며 살다가 그쪽 집엘 가면 조용해서 좋았어요. 무슨 일을 하든 어머니나 그쪽이 일절 상관을 안 하니까 재미도 나고요. 노는 손에 쉬엄쉬엄 고칠 거 고치면서 그쪽 집에서 편히 쉰 폭이지요."
"그래도 거기가 한 일을 생각하면……."
"그쪽이 아니었으면 파꽃도 꽃이란 걸 평생 모르고 살 뻔했으니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외려 난 걸요. 파꽃, 기억 안 나시지요?"
"파꽃이라뇨?"
"내가 열아홉이었으니 그쪽은 스물이었을 것이오. 서로 말도 섞질 않고 지내던 시절이었는데 그날은 별스럽게 말을 많이 했구만요. 그 해 어머니가 텃밭에 파를 심으셨어요."
그에게 텃밭 얘기를 듣고 나서야 빼곡하게 심겨진 푸른 대파와 대궁 위로 꽃망울을 톡톡 터뜨리던 흰 파꽃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잡풀이 가랑가랑 자라던 마당 가. 시종일관 얼굴을 간질이던 노란 햇빛.
"아! 맞아요. 파꽃을 보고 저것도 꽃이냐고 물었지요."
탁구공처럼 둥근 파꽃이 다문다문 피어 있었으니 칠월 초순쯤 되었겠다. 햇살을 품은 호두나무 잎새와 텃밭에 가득한 대파가 한데 어우러진 칠월의 마당은 청렬한 푸른 빛으로 차고 넘쳤다. 나는 평상에 앉아 마른빨래를 개켰고 그는 호두나무 그늘에서 선풍기를 고치고 있었다. 바싹 마른 순면의 여름옷들을 접어 개킬 때마다 파삭파삭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시원하게 울어젖히는 매미소리, 이따금 호두나무 잎새를 흔들고 가는 바람, 그가 선풍기 부속품을 가지러 마당을 가로지르며 지나갈 적마다 물 묻은 맨발이 고무슬리퍼에 닿아 질컥거리는 소리마저도 경쾌하게 들렸다. 텃밭의 파꽃이 눈에 띈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눈길을 확 잡아당길 순백의 흰빛도 아닌, 퇴색하고 바래져서 흰빛이라기에도 뭣한 그런 볼품없는 꽃이 눈에 들어왔으니. 때마침 화단엔 화사한 여름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던 중이었는데도.
"파꽃이 피었네요."
신기한 듯 말하자 별안간 그가 불퉁거리며 성을 냈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어디 꽃이랄 수가 있나요."
"왜요? 파꽃은 꽃이 아닌가요."
"꽃밭에 핀 꽃만 꽃이지 텃밭에 핀 걸 누가 꽃으로 봐주기나 하나요. 말이야 파꽃이니 가지꽃이니 호박꽃이니 좋게들 하지만 그냥 파나 가지나 호박으로 보지 누가 저걸 꽃으로 봐요."
"파꽃이 어때서요. 꽃만 화려하게 피우는 꽃나무보단 쓰임새도 많잖아요. 보면 볼수록 대견하기만 한 걸요. 파가 억세져서 못먹겠다 싶어 눈을 거두면 저토록 안간힘을 다해 봐달라고 꽃을 피우니……."
"그럴까요…… 향기는 고사하고 파 냄새나 풍기는 저것들도…… 꽃축에 들긴 할까요?"
"그럼요. 꽃밭에 핀 꽃만 꽃이 아니라 텃밭에 핀 꽃도 꽃은 꽃이에요. 내 눈엔 하얀 파꽃이 예쁘기만 한 걸요. 한 대궁에서 올라와 둥글게 뭉쳐진 저 자잘한 꽃송이들 좀 보세요.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것 아닌데 자꾸만 눈이 가잖아요."
대궁 위로 안쓰럽게 피어난 파꽃을 보며 나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는 이제껏 그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단 말인가. 그날 기분에 젖어 대수롭지 않게 흘린 말을.
"그 일이 어제 일만 같은데 벌써 옛날 일이 되고 말았구만요. 그 시절을 어찌 건너왔나, 돌아보면 스스로도 기특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루에서 뻣뻣하게 굳은 그를 봤을 때처럼 뒷목이 차가와져 몸을 움츠리고 있는데 안채 쪽에서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는다고 나간 사람이 어쩌구 하는 소리가 슬리퍼 끄는 소리에 묻어 들리더니 안채로 통하는 문이 벌컥 열렸다. 잠옷차림으로 나온 그의 아내가 너무 놀라는 바람에 난 자리에서 머쓱하게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여길 다아……."
"텔레비전 맡긴 게 있어서 찾으러 왔어요."
내가 듣기에도 내 말이 군색한 변명처럼 들렸다.
"아…… 예."
긴가민가하는 꺼림칙한 표정을 감추느라고 여민 잠옷 앞춤을 다시 여미곤 하던 그녀가 마지못해 안채로 들어가고 난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만 갈게요."
그의 아내가 가게로 나올 때부터 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나오자마자 일어서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참고 있던 중이었다. 밖으로 나오려는데 그가 내 옷자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잠깐만요!"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라서, 불티가 탁탁 튈 것만 같아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섰다.
"파꽃도 분명 꽃은 꽃이지요? 꽃…… 맞지요?"
나는 그의 말을 잘못들은 게 아닌 가 내 귀를 의심했다. 그가 다시 묻고 있었다. 열아홉의 풋풋한 청년이었던 그가, 구부정한 등과 주름진 이마와 굵어진 손마디, 세월이 지나간 흔적을 감출래야 감출 수도 없는 중년의 사내가 되어 다시금 간절하게 묻고 있었다. 파꽃도 꽃이냐고. 그가 지고 메고 끌고 온 시간들이, 어둠속에서 홀로 애를 태우며 견뎠을 시간들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아우성치는 것만 같아 나는 입을 어웅하게 벌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세 발짝 뒤로 가면 그는 두 발짝 다가와 충혈된 눈으로 물었다. 파꽃도 꽃이냐고.
삼십년을 한결같이 내 인생의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그가 느닷없이 생의 전면에 그것도 놀랍도록 생생하게 부각되는 순간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는 빚진 게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미안할 뿐이지 빚을 진 건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날 빚쟁이 몰듯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기미도 흔적도 없이 당신 혼자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던 삼십년의 시간을 난 정말로 몰랐던 것이지 모른 체 한 게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유리문을 등으로 밀고 나올 때에도, 달리는 대형트럭에 들이받혔다가 튕겨져 나온 것 같은 얼굴로 가게 앞까지 따라나온 그가 두 팔을 아래위로 번갈아 내흔들며 뭐라뭐라고 외쳤을 때에도 나는 어어어, 외마디를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등뒤로 주유소와 떡집이 거꾸로 뒤집혀 흔들흔들 지나갔다. 전봇대와 앙상한 가로수와 상점의 간판들이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발목이 접히는 바람에 그예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려니 따뜻한 물기가 눈가로 비어져나왔고, 그때서야 비로소 혀밑에 잔뜩 짓눌렸던 발음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파…… 꽃.(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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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소설가. 1959년 충북 영동 출생. 1991년 충청일보,
1997년 문학동네 신인공모 당선. 김유정 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소설집 "토란"과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