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모자를 쓰자
이문재
나는 머리가 큰데다 얼굴이 네모난 편이어서 모자 쓰기를 싫어했다. 교복에 모자를 써야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틈만 나면 모자를 벗었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친구나 선생님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턴가 모자를 구하러 다녔다.
내가 모자를 쓰게 된 사연은 조금 심각했다. 그때 나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으며, 4년차 잡지 기자였다. 그리고 첫 시집을 펴낸 젊은 시인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낮에는 기사를 쓰고 , 밤에는 시를 쓰는 거야.' 나의 이중생활은 비교적 잘 지켜졌다.
그런데 웬걸, 나는 시인이 아니었다. '밤의 나'는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퇴근하고 나서도 일과 연관된 사람을 만났고, 꿈속에서도 취재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사의 첫 문장을 궁리하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기자였다. 시를 위한 시간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무슨 수를 써야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모자였다. 남대문 시장을 몇 바퀴 돈 끝에 벙거지 같은 등산모를 하나 구했다.
가방 속에 늘 모자를 챙기고 다니다가 퇴근하고 나면 벙거지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부터 월급쟁이가 아니다." 모자를 쓰는 순간, 나는 시인이 되었다. 모자는 세상에 대한 칼이자 방패였다. 모자를 쓰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다. 모자 쓰기와 같은 안간힘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시를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후배들에게 모자를 쓰라고 자주 권유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라는 충고다. 어릴 때 가졌던 꿈을 꽉 붙잡되, 부디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을 선택하라고 당부한다. 걷기나 달리기, 명상, 책 읽기, 악기 연주, 숲 해설, 새 기르기, 외국어, 가구 만들기 등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운 특기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평균 수명은 길어지고 있다. '이모작 인생'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두 번째 농사는 첫 번째 추수가 끝난 뒤에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20~30대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는 ' 돈이 되지 않는 취미'가 두 번째 인생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소유의 노예가 아니라 존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올봄에는 모자를 쓰자. 모자를 쓰고 '나'를 만나러 가자. 이모작을 하러 가자.
이문재 (Moon Jae Lee)시인, 교수
첫댓글 헷~ 요 사진은 좀 나왔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