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간 김에 임실 강진시장 국수가게 행운집까지 내달렸다. 2년 전 3000원에 여섯 반찬 올랐던 국숫상과 주인 할머니가 여전한지 궁금했다. 문 앞에서 돼지 머리 삶아 살 발라내던 할머니가 반색한다. 다리에 깁스를 했다. 달포 전 넘어져 뼈를 다친 뒤 문을 닫았다가 며칠 전 억지로 나왔다고 했다. "아들은 말리지만 단골들이 성화여서…." 실은 퍼주기 좋아하는 할머니가 좀이 쑤셔 못 배겼을 것이다.
부엌 바구니에 연한 얼갈이배추 속잎이 봄빛으로 담겨 있다. 무쳐 먹으면 맛있겠다 생각했더니 금세 무쳐 내준다. 머리 고기와 김치 셋, 새우젓까지 여섯 찬이 변함없다. 국물이 안 보이게 양푼 가득 담은 국수도, 3000원 하는 값도 그대로다. 어스름 저녁 손님은 공짜 머리 고기에 막걸리 두 통을 비우는 농부뿐이다. 맥주·소주는 3000원이면서 막걸리는 2000원 받는다. 시골 장터 인심이다.
마침 큰아들이 밭에서 트럭 가득 무를 뽑아 왔다. 할머니가 농부 손님에게 튼실한 무를 넷이나 들려 보낸다. 농부 입이 벌어졌다. "요즘 무 맛있을 철이여. 생채 해먹어." 우리한테도 한 다발 안긴다. 2년 전 다듬던 상추를 신문지에 한 무더기 싸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