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로맨스
8월 말, 무더위도 한창일
때, 포항에 살면서 울릉도도 한번 못 가봤다는 핑계를 대고 배를 탔다.
몇 번 시도를 했는데 그 때마다 운이 없게시리 시간만 날리고 배는 뜨지 않았는데 올핸 다행스럽게 성공을 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동해 푸른 파도를 가르며 수평선 둥근 선 위로 파란 하늘과 바다가 닿은 곳을 따라 물 위를 날아서 달리는 페리호는 세시간 반을
날았다.
사진에서만 보던
도동항, 사진보다 작고 좁은 골목에는 간판들이 빼곡했다. 울릉
주민들은 오천 원이면 가고 오지만 타 지역 사람들은 오만 원을 내야 가는 곳, 화산섬 저 밑에서는 아직도
무엇인가 끓고 있을 것 같고 화산암의 성긴 돌에서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것 같았다.
작은
24인승 버스가 가장 큰 차인 울릉도의 관광은 간단했다.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허락하면 성인봉에 오르고 다음날 날씨가 허락하면 독도에 다녀오고, 오징어를 먹고 박물관을 갔는데 문이 잠겼다. 호박엿은 어쩌다 울릉도가
고향인 것처럼 행세를 하는지, 엿 공장에 손님이 만원이다. 맛이나 보라는 권유에 몇 개 집어 든 낚시에 걸려 호박엿, 더덕엿 고루 한 배낭을 채우고 어디 가나 있는 촛대 바위랑, 전설
가득한 이야기를 참기름에 미끄러지는 줄줄 녹음기 틀어 놓은 듯한 말을 흘려 들으며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혼자가는 여행은 여유가 많아 좋다. 누구랑 말 걸어 시간 빼앗길 염려도
없고, 사진 찍고 돌아서 또 찍고 증명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도 아닌 자유를 만끽하며 글 감을 찾는답시고
시선을 휘둘러 보지만 여행은 역시 사람 보는게 팔 할은 되는 것 같았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로운 마음과 후덕함이 보인다. 미소 지으며 말하고 야박 하지도 않고 다들 친절하고 다들 예쁘고 잘
생겼다, 나만 빼고.
굽이굽이
산을 돌아 나리 분지에 올랐지만 기다리는 것은 두부 한 접시와 휴식 30분이었다. 화산섬에 분지가 있다는 것과 몇 집들이 농사를 지으며 가난을 딛고 살았다는 안내판이 바래지고 있을 뿐, 차츰 지루함과 도시에 숙달된 불편함이 고개를 들었다.
모기는
잠도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을 한 듯 모기 약을 너무 많이 뿌려 화생방전을 치르고 겨우 잠이 깬 새벽,
선선한 갯 내음에 이끌려 독도로 향했다. 도동이 아닌 저동으로 가야하기에 작은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 하나를 넘어 내린 곳에 작은 항구가 또 있다. 나와 같이 육지에서 배를 타고 온 모닝 커피가
두 배 값으로 팔리고 있었다. 선장을 몇 십 년 했어도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고,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라며 운이 좋은 손님들이라고 추켜 세우면서 한시간을 달렸다.
독도, 십년 전에 만원을 내고 독도 명예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한 명예독도시민으로써 너무 늦게 왔다는 자조도 섞어, 나 홀로의 독도 부두를 걸었다. 몇 억년 전 바다가 끓어 오르고 용암이 분출 할 때, 오늘의 이 광경을 생각했을까? 독도를 지키는 경찰들은 수평선보다 부두의 물가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객의 안전을 지키랴. 사진 모델이 되어 주랴, 한시간을 분주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돌아오는 배에서 갈 때는 앞자리가 빈자리였는데 올 때는 손님이 있길래 사연을 물어보니 독도 주민 이란다. 그러고 보니 서도 수면 위로 건물 두 채가 보인다. 저기에 주민과
공무원이 파견 나와 있단다
자국민이 거주하는 섬 이라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 다른
나라도 시베리아 오지나 그린란드 툰드라 지역에도 사람이 살게 하려는 해당 국가의 노력을 읽은 적이 있다. 에스키모
인들에게 지원금을 주면서 정착하게 하려는 노력을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어서 국가에서 참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러 가는 데 웬 여자분이 길을 묻는다.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느냐고? 함께 걸으면서 언제 뭍으로 가느냐 물으니 내일 간단다. 내일은 바람이
불어 배가 안 갈지도 모른다고 하니 안색이 변한다. 나는 오늘 나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오늘 나가야 하겠단다. 그런데 숙박비를 이미 다 지불 했단다. 가서 사정해 보면 돌려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그런 말을 잘 못한단다. 그녀도 혼자 온 여행이었다. 그렇게 울릉도에서의 낯선 만남이 시작되었다.
민박집
주인이 항구에서 횟집을 하고 있었다.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하니 바늘도 안 들어 가는 철면피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나도 아니지. 법적으로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는 등, 지금부터 녹음을 하겠으니 말씀을 잘 하셔야 한다는 등, 심지어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 이런 사례는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엄포까지 놓으며 70% 환불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둘이서 점심으로 회덥밥을 먹었다. 무용담을 다시
들먹이며 칭찬을 들으며 겸손과 은근한 자랑과 함께 …
서른
넷에 혼자가 되어 장사를 하며 남매를 키웠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인생이 허무하다고, 그래서 다 접고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는 나보다 다섯 살이 적은 돈 많고 예쁘게 생긴 솔로였다.
왜
진작 재가를 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아이들 때문에 못했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고, 이제라도 좋은 사람 만나 팔자를 고쳐 보라는 등, 남자와 여자는
성격이 잘 맞아야 하며 결혼 생활도 기술이라는 평소 지론이며 이론에 해박한 예를 들어가며 배 떠나기 전까지 커피까지 나누어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여자는 아쉬운 지난 날들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 아니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오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내 생각을 물어 오기도 하면서 사뭇 친절과 칭찬을 섞어 점점 이야기는 익어가고
진솔 해져 갔다..
오후
네 시, 뱃고동 소리 울림을 들으며 내일 일을 오늘로 당겨진 일정에 들어주는 이야기지만 쉬지않고 나직하게
웃고 공감하고 각오하며 새로운 꽤 괜찮은 호감과 기대를 안고 여섯 시간을 이어졌다.
그날은
포항에서 불빛 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항구 근처가 영일대 해수욕장이고 거기서 불꽃을 쏘아 올리는 국제
불빛 축제였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오늘 부산에
가셔야 하는지요?”
“아니요, 어차피 저는
내일 울릉도에서 나와야 하는 것인데요 뭐”
"그럼, 불꽃 축제를 보시고
저녁이나 함께 하시면 안 될까요?”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표정을 읽고, 난 내심 쾌재를 불렀다. 내게도 이런 로맨스(?)가 있게 되다니 ㅎㅎㅎ
배가
항구에 닿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끝 줄에 여자는 뒤에서 내 손을 잡고 서서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디서 택시를 탈까, 어디로 갈까,
뭘 먹어야 하나, 축제 기간이라 근처에는 자리도 없을 텐데, 머리 속이 마하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다 내려 왔는데 저 편에서
“여보~!” 하며 손을
흔드는 아내가 보였다.
첫댓글 이 글 올리고 엄청 혼났다, 글은 글일 뿐, 상상도 못하냐, 작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