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수첩
강 돈 묵
나는 전자수첩 하나를 가지고 있다. 가까이 지내던 분이 선물로 준 것이다. 참으로 편리하다. 일일이 기억해 두어야 했던 전화번호나 약속 같은 것을 잘 챙겨준다. 굳이 내 스스로 외우려 하지 않아도 된다. 전에는 메모를 하며 하나하나 찾아야 했는데 편리하게 되었다.
전자수첩이 생긴 후로 나에겐 기억력에 이상이 생겼다. 무슨 일이든 기억해서 처리하려던 생활 습관이 없어지고, 편하게 살려는 나태가 찾아온 것이다. 모두 기계에 의탁해 사는 삶이 된 것이다. 이러면 아니 되는데 하면서도 편리함에 저절로 익숙해져 간다.
전자수첩을 사용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 연세가 아흔인데도 기억력 하나만은 대단하시다. 글을 몰라서 전자수첩의 사용이 불가하지만, 아마 글을 아셨어도 필요 없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기억력이 좋아 전자수첩 정도는 사치스럽게 느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많이 두셨다. 자녀를 많이 둔 집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는 속으로 웃는다. 아무리 내걸어도 우리 집만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빙긋이 웃긴 해도 여간해서는 우리 집 얘기는 입에 담지 않는다. 남의 집 얘기를 재밌게 들어주고 있어도 속에서는 아니다. 어쩌다 내 집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어머니가 둘이냐, 아버지가 둘이냐 묻는다. 그 부담을 덜기 위해 언제나 나는 입을 다문다. 그러나 오늘은 지상에 공개하며, 분명히 한 아버지에 한 어머니임을 밝혀둔다. 어머니는 팔 남 삼 녀를 두셨다. 나는 아들로 다섯째이고,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다. 지금 어머니는 증손까지 거느리고 눈앞에 고손(高孫)을 기다리는 연세이다. 슬하에 백에 가까운 자손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증손들의 가름을 정확히 하신다. 우리들은 어쩌다 만난 손자뻘 되는 아이를 보면, ‘이 아이가 누구 애야?’ 하고 물으나 어머니는 그러시는 적이 한번도 없다. 한 수 더 떠서 ‘애비는 왔니?’ 하신다.
어머니는 행복한 분이시다. 어머니의 행복은 집안의 내력에서 찾을 수 있다. 몇 대를 독자로 내려와 후손이 귀했다. 그러다 아들이 없어 대가 끈긴 적도 있었다. 양자를 들여 겨우 혈육의 끈을 이어갔으나, 후손이 귀하긴 매일반이었다. 양자를 들인 후에도 삼 대에 걸쳐 독자였다. 삼대독자이신 할아버지께서 오 형제를 두었고, 아버지는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이런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아들을 여덟이나 낳은 어머니로서야 그 이상 복이 어디 있겠는가. 자손을 많이 두었으니, 집안 어른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자식들도 모두 장성하여 사회에서 제 구실을 하고 있으니, 무에 아쉬울 게 있겠는가. 십 일 남매 가정을 살펴보면, 대학교수가 넷, 중학교 교장이 둘, 회사 사장이 셋이고, 고향에서 선친의 전답을 지키는 아들이 있다. 이러니 손자 대에 가서야 더 일러 무엇 하랴. 다만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아픔이 하나 있다면, 몇 해 전 아들 하나를 앞세운 일이다.
이렇게 식구가 많으므로 더러는 어려움도 있었다. 별생각 없이 꺼낸 모임이 추진하다 보면 엄청난 행사가 되기도 한다. 식구가 많아 잠자리가 모자라 제 가족이 잘 천막을 차에 싣고 와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형제들이 모이는 경우에는 범위를 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자손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생일을 기억하시는 분이 어머니이시다. 글을 모르시니 적어 놓은 것도 없으련만 정확히 기억해 내신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글을 안다 한들 전자수첩을 사용하였겠는가. 오히려 당신의 기억력으로 전자수첩을 조롱하실 분이시다.
어머니의 명석한 머리는 자손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들집에 오셔서 느닷없이 미역국 냄새가 나면 며느리 생일을 기억해 내고 슬며시 쌈지 돈을 꺼내실 때는 좋지만, 시장에서 돌아온 며느리 장바구니를 보며 오늘의 가계부를 쓰실 때는 소름이 끼친다. 시장에는 전혀 나가시지 못 하면서도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셈을 따지시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 셈이 빠르시니, 자식들이 회전하는 어머니의 머리를 따라잡기에 힘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어머니가 더러는 자식들을 요리 재고 조리 재어 들볶는 것으로 오해될 경우도 있다.
전자수첩을 오래 쓰다보니, 화면에 줄이 생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압력이 가해져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줄은 더 많아지고 이제는 화면에 뜬 글자를 읽기가 거북하다. 아래위로 옮겨가며 글자를 해독해 내야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어 두 번 세 번 전화를 해서 찾아내기도 한다. 가령 3과 5에 줄이 옆으로 가 있으면 구분하기 힘들다. 이때는 두 숫자를 다 걸어 본다.
화면에 줄이 생겨 글을 읽어내기 어려운 전자수첩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요즈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두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 그래도 정신은 맑아 괜찮으셨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흐려지신다. 당신께서도 치매가 와서는 아니 된다며 혼자 앉아 화투장을 넘기시지만, 옛날의 어머니가 아니다. 이제는 내 전자수첩처럼 기억력에 금이 가고 어릿어릿하는가 보다. 며느리가 자신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고 ‘어머니, 오늘이 누구 생일이지요?’ 하고 물으면 전에 같이 쌈지 돈을 꺼낼 줄도 모르신다. 오히려 어린아이가 되어 당신만을 챙기신다.
“내 생일 멀었어, 추석 지나고 스무 날은 돼야 혀.”
어머니는 오십에 혼자되셨다. 위로 두 남매만 결혼시켰고, 아홉이나 남겨놓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때 네 살이던 막내아들이 장성하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나 죽어서 네 아버지 옆에 가면 할 일 다 하고 왔다고 으스대란다.’ 하시는 어머니. 이 세상에서 더 으스대고, 명석한 머리로 자손들을 들볶는 일이 있을지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계시다가 가셨으면 좋겠다.
전자수첩은 고장이 나면 수리 점에 보내거나 다시 구입하면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흐려진 정신과 불편한 몸은 어디에 가서도 되찾을 수가 없다. 오늘도 어머니가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오래오래 지켜주시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