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세미나는 한태일 배우가 주인공이다. 한국영화100년사에 그처럼 오랜 기간 활동하는 성실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 참석자들도 친지부터 이두용 감독, 이해룡, 박동룡, 김영인, 안진수 배우, 한훈 가수 등 동료 영화인, 광운대학교 대학원 최고위 과정 동문들 하며 극장의 객석이 꽉차 세미나 개최 이래 처음 보는 대성황이었다.
그것은 한태일 배우가 살아온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태일 배우는 한 때 태일이란 예명으로 액션영화에 감초처럼 출연한 원로배우다. 그는 이소룡보다 한 살 어리다. 그의 시대는 운동을 많이 했던 시대다. 그만큼 살벌한 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그도 이소룡 처럼 운동 꽤나 했던 배우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무술영화가 유행하지는 않아 그의 액션영화 출연은 한참 후의 일이다. 격투기 특기를 갖고 있었지만 살리지 못하고 김효천 감독의 명동시리즈 등에서 깡패 역할을 맡았고 결국 이소룡 사후에 이두용 감독의 태권도 액션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그와 동시기에 활동했던 배우로는 이순재, 신구, 송재호, 신충식, 이해룡, 이종만, 김영인, 박동룡, 이무정 등이다. 많은 분들이 타계한 지금 그는 영화배우협회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원로가 되었다. 그는 1941년 일본의 고베에서 출생하였고 광복후 제주도로 귀향하여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라벌예술대학 무용과를 다녔다. 연극영화과 대신 선택했던 과였고 주로 명동에서 지냈다. 당시 명동은 예술인들의 집합처였다.
그는 1962년 김화랑 감독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로 데뷔했다. 그가 양훈 배우의 로드 매니저를 했던 인연으로 데뷔한 것이다. 그는 심우섭 감독의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강범구, 설태호, 고영남,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다. 문여송 감독의 <진짜 진짜 잊지마>에서는 훈육선생님으로 출연했다. 특히 기억나는 영화들은 김효천 감독의 명동시리즈다. 또 TBC TV 형사 드라마 <추적> 등에도 출연하며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는 동시녹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두용 감독과는 <돌아온 외다리>에서 만났는데 그가 각종 운동을 하며 주인공을 받쳐줄 수 있는 액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캐런티는 모두 어음으로 받아 최고 20%씩 와리깡(할인)해서 썼는데 합동영화사 곽사장은 특별히 한 편의 캐런티를 현찰로 주되 한 번에 두 편씩을 찍게 했다고 한다. 두 편 동시에 찍기는 남기남 감독의 특기인데 이두용 감독도 한 때는 그렇게 촬영한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 중 기억나는 것은 <무장해제>, <초분>, <물도리동>, <피막>, <최후의 증인>, <뽕> 등이다. <최후의 증인>에서의 배역은 한동수 역이다. 그가 나직이 하는 대사 "묻어라!"가 금방 떠오른다.
이두용 감독이 태권도 영화 연출을 그만 두게 된 사연도 그가 들려주었다. 그가 배우협회에 갔다가 선배인 장혁 배우가 "으악새 배우"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두용 감독에게 하소연했던 것이다. 당시 동료 영화인들의 태권도 영화 장르에 대한 조롱과 멸시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말 때문일 수도 있고 이 감독 스스로의 선택인지 이 감독은 이후 <초분>, <물도리동> 등의 향토영화 연출을 시작한다.
그는 학생영화에 단골출연하는 배우다. 그만큼 미래 영화인들에 대한 투자며 배려다. 청주대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나의 순정씨>에 출연하여 휠체어 타는 할아버지의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노익장을 보여주는 그의 노력은 선후배와 동료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범 영화인이다.
그는 지금도 영화, 학생영화, 드라마, 연극, 악극, 뮤지컬 등 여러 장르에서 부지러히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아직 진행 중이며 내일이 전성기인 노력하는 배우 중에 배우이다.
한태일 배우에게 쏟아진 박수하며 공로패 증정 등 오늘 세미나는 지난 10여 년간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 중 가장 감동스러운 세미나가 아니었나 싶다.
오늘 참석자들에게 준비된 떡과 음료, 기념 타올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