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올레팀에서 강윤규님의 발제로 독토를 했던 책입니다.
당시 발제자가 저에게 준 과제는 일부다처제를 옹호하고 라시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발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강계장은 뵨태~
장난삼아, 그 때 글을 임명옥님의 답글로 다시 올립니다.
제 이름은 라시드입니다.
-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
나는 마리암이라는 여자와 정식 결혼을 했습니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결혼이었습니다.
마리암은 나의 아이를 갖게되었습니다.
저는 아빠가 된, 아빠가 되려는 여러분처럼 행복했습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태어날 아이의 침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전날은 아이가 입을 부드러운 양가죽 겨울 코트를 사가져 오기도 했습니다.
계단이 아이에게 위험할까 걱정도 했고,
뜨거운 석유풍로도 걱정이었습니다.
날카로운 나이프와 포크도 아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치울 생각이었습니다.(P121)
그러나 미래의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슬프고 좌절하며,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시점에 사랑스러운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총알과 로켓탄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고 납치와 강간이 난무한는 거리로 나앉을지도 모를 여인,
죽음만이 기다리는 얼어붙은 묘지와 같은 수용소,
그도 저도 아니면 거리의 여자가 되어야만 할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라일라.
저는 그녀와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결혼이었죠.
여러분께서 늦은 밤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를 부르는 것보다도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일이죠.
또한 퇴임한지 몇 년이 지나면 꼭 숨겨둔 자식이 나타나는 그 어떤 나라 대통령들보다도 훨씬 도덕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아프카니스탄 사람 누구에게나 물어보세요.
물론 인터콘티넨털 호텔의 문지기인 압둘 샤리프라는 남자에게
나의 연적이었던 타리크가 죽었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한 일은 있습니다(P273).
난 라일라를 너무나 사랑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죠.
아줌마들은 아주 아주 마니 마니 보고요(그래서 아줌마인가요).
어찌되었든 지혜롭고 용감한 남자가 미녀를 차지한다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편하게 손으로 밥을 먹던 저도
그녀 앞에서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죠(P284).
한국 남자들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김치찌게나 된장찌게 좋아하면서도
처음 데이트할 때는 레스토랑이라는 곳에가서 나이프와 포크로 우아하게 식사를 하신다면서요.
백포도주 한 잔을 곁들여서 고기는 미디움으로 주문하구요.
그렇게 라일라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도 좋아했습니다.
나는 태어난 아이를 내가 운영하는 가게로 데리고 가기를 좋아했습니다.
한국의 박종택씨처럼.
나는 일을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아이를 지켜봤고,
아이가 선반을 엎어 버리기라도 하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혼냈습니다.
사랑스러운, 자랑스러운 나의 아이였으니까요.
아이에 대한 나의 인내심은 깊어서 마르는 법이 없는 샘물같이 보였습니다.
나의 아내 라일라의 눈에도......
나의 아이는 저녁을 먹을 때 조차도 나의 옆에 앉아서 둘만의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당연히 한국의 아빠들도 매일 아이와 놀아주겠지요?
그러나 나의 행복한 가정을 세상은 그냥 놓아두지 않죠.
바다밑에 웅크린 악마들도, 하늘의 천사들조차 부러워할만큼 행복했던 나의 가정을.
쿠데타가 일어나고, 암살이 자행되고, 군벌이 날뛰고 탈레반이 들어오고
세상은 미쳐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저는 근면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기에......
한국의 잘 나가는 분들처럼 망명을 할 필요도,
감옥에 갈 일도,
백담사에 갈 일도,
가택연금을 당 할 이유도 없는 묵묵히 살아가는 소시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험하고 거칠어
총까지 들고 가족을 지켜야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대단했었으니까요.
누구든 내 집에 들어 오는 자는 대갈통을 날려버릴 생각이었습니다(P342).
그런데 그만 나의 가게,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들을 위해 일하던 가게가 불이 났습니다.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곳 저곳 일자리를 구했습니다만
정치 경제적으로 국가 상황도 좋지 않고,
나이가 많은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마침내 우리 가족,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아이들은 굶주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참, 한국은 요즘 어떤지요?
들리는 말로 실업자가 얼마고 젊은 백수가 어떻고 조기퇴직이니 명퇴니
여러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이런 사이길로 빠졌군요.
저는 경기가 너무너무 어려워 부유한 마리암의 아버지,
나의 장인어른께라도 신세를 져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어떤 분은 저를 비굴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장인의 재산이 탐이 났다면 왜 이 굶주리는 상황에까지 와서 도움을 청했겠습니까????
저도 자존심 강한 남자 아니었습니까?
어찌되었든 어렵게 빌린 전화로 장인어른을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장인은 몇 년전 세상을 떠나셨더군요.
어떻게든 굶주리는 가족의 식비를 마련하려 애쓰는 제가 문제라면,
수천억원씩 돈을 챙겨놓고, 한 번에 3,000억원씩 정치자금을 받고도 고개 빳빳이 들고 사는 그 어떤 나라의 대통령은 무엇입니까?
전화를 빌렸던 호텔을 나오다보니 빈 탁자에 먹다 남은 과자가 있어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P421).
부정(父情) 앞에서는 자존심도 뭐도 없는거니까요.
내 아이의 조그마한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살아 온 이 가엾디 가여운 나를 왜? 왜? 왜?
미워하시고 증오하십니까?
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지만
지성인이라는 나의 연적 저 타리크를 보십시오.
그도 배가 고프자 돈을 벌려고 대마초를 밀반출 하려다 붙잡혀 기나긴 감옥살이를 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나는 국법에 위배되는 그런 짓은 하지않았습니다.
잘릴은 어떠했습니까?
집안 좋게 태어나서 부유하고 많이 배웠으면서도
친자식을 버리고 여자를 버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자식을 버리지도 여자를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남자의 아이조차도 부양했습니다.
최소한 잘릴처럼, 여러분 나라의 위정자들처럼 위선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웃의 그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고
그 어느 선량한 사람의 창문으로 로켓을 발사하지도 않았고
지나치는 그 어느 여인에게도 실례를 범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나 살상하는 군벌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수만명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폭탄을 투하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아프카니스탄에 온갖 불행을 은밀히 선사한
미국, 러시아, 영국 등
힘을 가진 존재들 앞에서는 침묵하면서
왜 나만 가지고, 힘 없고 묵묵히 살아가는 나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과하는 것입니까?
나의 행동이 잘못되어 보이는 것은
내가 처한 전쟁, 교육, 가난, 법규의 문제라는 환경의 문제일뿐입니다.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불쌍한 보통의 사람일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보통의 인간입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첫댓글 ㅋㅋㅋㅋ 일부 종사는 어려워~
예전에 아파트 에르베이터에서 거울을 보았는데 배우자의 모습이 여러개 나타난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어려웠던 터라 문득 저사람들이 존재해서
하나는 돈벌어오고 하나는 집안일 하고 하나는 애인이 되고 하나는 양육하는 사람 등등 상상만 해도 좋았던 기역이 납니다,
그래도 양심적인건 그래도 한사람의 분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음은 남녀 불문하고 자연스러운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상상만이라고 해보십시요~ 그 순간은 행복했답니다~
라시드의 입장에서 쓰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라시드는 사실 평범한 가장이었고 평범한 이슬람교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들여 있는 악의 역시 평범함 속에 묻혀서 마리암과 라일라, 아이들에게까지도
그 악의가 아무렇지도 않게 죄의식 없이 가해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요. 악의 평범성.
저에게는 히틀러의 독재 만큼이나 무섭게 느껴집니다.
악의 평범성.
이번 인문학페스티벌 선정도서인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 많이 했습니다.